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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는 왜 공공병원 확충에 실패했을까?"

[복지국가SOCIETY] "건보 보장성 강화해야 공공병원도 산다"

노무현 대통령의 '공공병원 30% 확충' 공약

"돈이 없어 환자가 치료를 포기하는 나라는 나라도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대선 때 선거운동을 하면서 남긴 말이다. 당시 보건의료 분야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내세운 대표 공약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당시 50% 대에 불과하던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80% 수준으로 강화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전체 병의원의 10%에 불과한 공공병원의 비중을 30%까지 늘리겠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두 가지 공약은 모두 지켜지지 못했다. 그러나 애초 목표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건강보험 영역에서는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 건강보험 진료비 '본인부담 상한제'가 도입되었고, 암, 심장병, 뇌졸중, 희귀난치성 질환 등 중증질환의 보장성이 큰 폭으로 강화되었다. 절반 이상의 성공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공공병원 비중이 아직도 10%에 불과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공공병원 확충은 그야말로 빈 공약으로 끝나 버렸다.

공공병원 30% 확충이 빈 공약으로 끝나버린 이유가 공공병원 확충에 참여정부가 아무런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타박하기는 힘들다. 공공병원 확충은 대통령 공약 사항이었다. 2005년 공공보건의료 확충 종합대책에 4조 3천억 원이라는 적지 않은 예산도 배정했다. 참여정부의 의사결정 라인 곳곳에 공공병원 확충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여럿 포진해 있었다. 최고 국정책임자의 관심도 있었고, 돈도 있었고,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왜 공공병원은 전혀 늘지 못했을까?

세계적으로 공공병원의 비중이 가장 낮은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공공병원의 확충은 매우 중요한 보건의료개혁 과제이다. 이 때문에 공공병원 확충은 선거 때마다 빠진 적이 없는 진보개혁 세력의 단골 요구였다. 그러나 그 동안 가시적인 성과는 전혀 거두질 못했다. 십 수 년째 한 목소리로 요구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성과를 내지 못한 개혁과제도 드물다.

지난 십수 년째 그랬듯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공공병원 확충은 진보개혁 세력의 요구사항 리스트에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요구사항 리스트에 공공병원 확충을 올리는 당사자조차도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공공병원이 유의미하게 확충되리라고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공공병원 확충을 요구하는 당사자조차 실현 가능성을 반신반의 하는 상황이라면, 공공병원 확충은 이미 물 건너 간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자. 도대체 참여정부 시절에 왜 공공병원 확충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공공병원 확충을 위해서 어떤 문제가 풀려야 할까? 적어도 이 질문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있어야, 지금까지와는 다른 '성과' 있는 공공병원 확충 운동이 가능하다. 반복적으로 요구사항 리스트에 올리는 것만으로는 공공병원을 확충할 수 없다.

공공병원 확충을 꺼리는 지방정부

최근,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을 보면, 지금껏 공공병원 확충이 안 된 이유를 알 수 있다. 몇 달 전, 한 지자체의 의회 의원들이 시장에게 시립병원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 지자체는 인구가 5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적지 않은 규모의 도시이지만, 지역 내에 변변한 병원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으려면, 인접한 광역시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큰 공장들도 여럿 있는 지자체였기 때문에 재정 여력도 웬만큼 되는 도시였다.

그러나 시장의 단 한 마디에 시립병원을 만들자는 목소리는 이내 잦아졌다. "시립병원 만드는 것까지는 어떻게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모든 공공병원들이 매년 수십억 원씩 적자를 보고 있는데, 이걸 매년 어떻게 메워줄 수 있느냐?" 이것이 우리나라 공공병원들이 처한 냉정한 현실이다. 지방의료원, 적십자병원 등 공공병원의 대부분이 매년 수십억 원씩 적자를 보고 있다. 극히 일부 병원이 적자를 면하고 있는데, 이조차도 영안실 운영 수입으로 진료영역의 적자를 메워서 가능했던 것이다.

"공공병원이 공공적 기능을 수행하다 보면, 적자를 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이렇게 발생하는 적자는 당연히 정부가 메워주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필자도 이 주장에 백번 동의한다. 그러나 공공병원을 설립하고, 운영해야 하는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이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기가 힘들다. 특히, 재정 여력이 취약한 지방정부의 경우, 매년 수십억 원의 예산을 떼어서 공공병원의 적자를 메워주는 데 투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재정 적자를 메워주어야 할 당사자가 손사래를 치는 상황에서, 밖에서 아무리 큰 소리를 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 한국에선 병원이 비급여 진료를 많이 해야만 수익을 낼 수 있다. 이는 공공병원이 살아남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대폭 강화하는 것을 전제로 보험수가를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그래서다. 사진은 환자들로 붐비는 병원 대기실. ⓒ연합

'건강보험 하나로' 실현과 공공병원 확충

거의 모든 공공병원이 왜 적자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진료비 수입이 적기 때문이다. 국립대병원은 병상 당 진료비 수입이 동급 민간병원의 90%, 지방의료원이나 적십자병원 등은 병상 당 진료비 수입이 동급 민간병원의 50~60% 수준이다.

공공병원은 민간병원에 비해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보험' 진료도 적고, 과잉진료도 덜하다. 공공병원은 민간병원에 비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영역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훨씬 높다. 국민에게는 아주 좋은 일이다.

그런데, 현행 건강보험수가는 병원들이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보험' 진료를 통해 수입을 보전한다는 전제 하에 낮은 수준으로 책정된 것이다. 따라서 어떤 병원이 비보험 진료를 소극적으로 하고, 과잉진료도 하지 않으면서 국민건강보험 급여 진료 중심으로 적정하게 진료를 하면, 해당 병원은 십중팔구 적자를 보게 되어 있다. 현행의 공공병원이 딱 그 구조에 얽혀 있는 것이다. 국민에게는 좋은 일이 공공병원의 지속가능성을 가로막는 것이다.

'건강보험 하나로'가 실현되면, 공공병원은 이런 적자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 비밀의 열쇠는 '비보험 진료의 전면 건강보험 적용'에 있다.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각종 비보험 진료를 건강보험 급여 항목으로 대거 전환하지 않고서는, 환자의 병원비 부담을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비보험 진료의 전면 건강보험 적용'은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운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수단이다. 그런데, 비보험 진료를 대거 건강보험 급여 항목으로 전환하면, 기존 건강보험수가의 재조정 과정이 불가피하다. 기존의 건강보험수가는 비보험 진료를 통해 병원 수입을 보전한다는 전제 하에 책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병원 수입을 별도로 보전할 수 있는 건강보험 '비보험' 진료가 사실상 없어지게 되면, 이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건강보험수가를 상향으로 재조정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 비보험 진료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낮았던 공공병원들과 공공적 행태를 따르려는 일부 민간병원들의 경영 여건이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이들 병원들은 그 동안의 진료행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적자를 보지 않고,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게 된다. 이에 반해 비보험 진료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높았던 영리적인 병원들의 경쟁력은 급격히 약화된다.

이렇게 기존 건강보험수가의 재조정이 이루어지면, 지방정부 입장에서도 한결 수월하게 공공병원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초기 신축 비용은 여전히 큰 부담이지만, 어떻게든 만들어 놓기만 하면 추가적인 재정 지원 그리 크지 않아도 공공병원이 운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그 동안 공공병원 확충의 걸림돌로 작용했었던 결정적인 장애요인 하나가 해결되는 것이다. 여기에 지역별 병상 총량제와 과잉 공급된 민간병상이 의료시장에서 철수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병행된다면, 공공병원 확충은 더욱 수월해진다.

그 동안 많은 이들은 공공병원 확충으로 대표되는 의료공급체계의 공공성 강화와 건강보험 하나로(혹은 무상의료) 실현을 선후관계로 이해했다. 취약한 공공의료와 영리적 민간의료라는 공급체계의 문제가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건강보험 하나로의 실현 가능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논리적 모순에 빠지기도 했다.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건강보험 하나로(혹은 무상의료) 주장은 당장에 접어야 한다. 그리고 의료공급체계의 공공성 강화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의료공급체계의 공공성 강화와 건강보험 하나로(혹은 무상의료) 실현은 선후관계가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떠받쳐 주는 관계이다. '비보험 진료의 전면적인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통해 '건강보험 하나로'가 실현되면, 공공병원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 한결 수월해진다. 그리고 공공병원이 확충되어서 양질의 적정진료가 광범위하게 제공되면, '건강보험 하나로'를 한결 수월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공공병원이 확충되고, 의료공급체계의 공공성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운동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건강보험 하나로' 실현이 공공병원 확충의 첩경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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