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정부는 지난 4월 동남권 신공항을 백지화한 데 이어 이달 들어서 LH본사를 분리 없이 진주로 일괄 이전하기로 결정하고 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를 대전 대덕지구로 결정했다. 이런 정부 결정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그런 논란은 결정 자체보다 과정의 불투명성과 비일관성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현 정부를 경상도 정권으로 생각해온 영남지역에서 반발이 가장 거셌는데, 백지화된 동남권 신공항이 워낙 큰 사업이라서 LH본사의 진주 이전으로는 상실감이 달래지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과학비즈니스벨트에 걸었던 기대가 컸던 탓으로 보인다. 영남권의 반발을 보면서 든 생각은, 결정과정의 혼선과 오류가 끔찍히도 심각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명박정부가 지지기반의 이익을 넘어 국민적 합리성을 추구한 것은 칭찬해주어야 하는 일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지지기반에 등돌린 MB정부의 합리성?
사실 과학비즈니스벨트가 세종시 문제와 얽히면서 표류하고 연초 좌담회에서 대통령이 나서서 충청권 유치가 공약은 아니었다는 식의 말을 했을 때, 이 정부는 영남권에 새로운 특혜를 주려는 유혹에 이끌렸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지지기반에 집착하고 특혜를 주는 것이 이명박정부에서 그리 낯선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로 10조 원 규모의 동남권 신공항보다는 적다고 해도 7조2000억 원이 소요되는 포항-삼척 고속도로를 들 수 있다. 포항-삼척 고속도로는 경제성지표인 비용 대비 편익이 경제성을 이유로 백지화된 동남권 신공항의 절반 이하인데도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동남권 신공항을 건설하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고 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당파적 이익추구 성향이 매우 강한 이명박정부가 영남권의 이익을 저버리고 비당파적 합리성을 추구한 것은 칭찬뿐 아니라 설명도 필요한 일이다.
설명을 위해서는,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이 정치적 입장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일정한 정책 스펙트럼을 가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정책 스펙트럼은 폭이 넓을 수도 좁을 수도 있지만, 일정한 폭을 가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파라고 모든 의제에 대해 우파적인 정책만 채택하는 것은 아니며, 이 점은 좌파도 마찬가지다. 또한 지역주의적 정당이라고 해서 모든 문제를 지역주의적으로 처리하는 것도 아니다. 만일 정책 스펙트럼이 충분히 넓다면,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은 상대편 당파나 실행함 직한 정책, 나아가 상대편 당파가 반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실행하지 못하는 정책마저 펼쳐나갈 수 있다.
MB의 '오프사이드 플레이', 성공할까
이렇게 상대 당파의 정책 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오프사이드 플레이'가 정치사에서 흔하지는 않지만 그리 드문 일도 아니다. 비스마르크의 복지정책, 드골의 알제리 포기, 린든 존슨의 베트남 확전, 닉슨의 중국과의 데탕트, 시온주의자 베긴의 이집트와의 평화협정,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서글픈 예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한미FTA 추진도 그런 예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한편으로는 영남권의 이익을 배반할 정도의 합리성을 가지지만 다른 한편 당파적인 이유에서 공약 뒤집기까지 무릅써온 이명박정부의 행동은 이런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이명박정부의 행동을 간단히 복기해보자. 이명박정부는 언제나 자신의 정책적 행동반경을 매우 넓게 잡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집권하기 전에는 중도실용을 내세웠고, 집권 후에도 친서민정책을 자주 표방했다. 그리고 그런 표방 덕에 집권도 가능했고 집권 후 추락한 인기를 회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정책은 중도실용이 아니었고 친서민도 구두선(口頭禪)에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중도실용의 표방 때문에 집권 전에는 우리 사회의 많은 진보적 이론가들조차 이명박정부가 최소한 남북관계만큼은 평화적으로 관리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명박정부는 예상과 달리 민주화 이후 남북관계를 가장 위험한 국면으로 이끌어가기도 했다. 이런 행동패턴은 이명박정부가 공언과 반대로 매우 좁은 정책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좁은 정책 스펙트럼에 갇힌 보수진영
생각해보면, 이명박정부는 남북관계와 스스로 친서민정책이라 칭한 사회복지 두 분야 가운데 하나에서만 전향적 정책을 채택했어도 현재와 같은 고립에 빠져들지 않았을 것이며, 야권의 대안 모색은 훨씬 힘겨운 일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정부는 일련의 국책사업 결정에서 보듯이 오직 지역주의에 대해서만 일정한 수준의 합리성을 관철할 수 있을 뿐 나머지 분야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정부의 정책 스펙트럼이 이런 양상을 보이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지역주의가 약화되었기 때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흔들리는 분단체제하에서도 그것의 관성적인 동시에 기득권을 유지시켜주는 힘이 남한사회 보수파를 여전히 강력하게 가로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정부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민주파에는 두가지 학습이 이루어졌다. 하나는 한국사회의 대안이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의 사이공간에서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두 진영 각각의 힘의 크기와 무관하게 독자노선으로는 대안을 조직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런 깨달음은 야권연대를 통해서 성공의 경험을 확보하기도 했다. 수평적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민주파와 보수파 사이의 공간에서 조직되었던 DJP연합을 상기해보면, 현재 우리는 87년체제의 중력중심의 이동을 경험하는 데까지 전진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이 체제가 민주적으로 재편될 전망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며, 그렇기 때문에 야권연대는 단순한 후보단일화를 넘어서는 프로젝트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두가지 학습에 또 하나의 학습을 보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 보수파의 경우 분단체제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책략으로만 체제의 중심 이동을 용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일 뿐, 실제로는 이를 결코 허용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한때 우리 사회 성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실용이라는 표어에 현혹되었다. 그리고 지금 또다시 "내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였다"는 박근혜 의원의 말에 이끌리고 있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기득권 유지를 위한 집권의 수사일 뿐이다. 왜냐하면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분단체제의 힘이 그런 말을 구현할 보수파의 정책 스펙트럼을 좁게 가두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개혁진영의 혁신 능력에 달렸다
물론 보수파의 프로젝트가 대중을 현혹하는 데 성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보수파의 대담한 혁신 능력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진보개혁진영의 능력이 대중에게는 보잘 것 없게 여겨지기 때문일 공산이 크다. 예컨대 박근혜의 구호나 정책들이 설득력을 가진다면, 그것은 그 구호와 정책의 힘이라기보다 대중이 보기에 진보개혁진영의 구호와 정책이 공허하고 실행가능성이 취약하며, 야권연대에서 보이는 협상능력이 지리멸렬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87년체제의 중력 중심을 이동시켜 그 체제를 민주적으로 재편할 가능성의 관건은 진보개혁진영 자신의 혁신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늘 한국사회에 합리적 보수가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사람은 합리적이어야 할 때 합리적이기 마련이다. 체제의 중심 이동과 더불어 더 민주적인 체제가 수립된다면, 그와 함께 더 넓은 정책 스펙트럼을 가진 합리적 보수도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출현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진보개혁진영은 합리적 보수가 존재할 공간마저 창출해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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