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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사태가 'MB 이후' 정권에 남긴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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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저축은행 사태가 'MB 이후' 정권에 남긴 숙제

[해설] 금융감독 재편 논의 핵심은 '감독기능 분산'

저축은행 연쇄 부실 사태가 금융 감독체계 재편 논의까지 번지고 있다. 이번 사태에 감독기구의 실패가 큰 원인을 제공했다는 공감대가 확산됨에 따라, 이미 1990년대부터 논의된 해묵은 화두가 다시 여론의 한복판에 선 모양새다.

최근 감독체계 개편 논란의 주요 쟁점은 금융기관 감독권을 둘러싼 '금융위원회-한국은행'의 기싸움으로 비춰지고 있다. 금융위에 과도하게 집중된 감독권한의 '분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두되는 셈이다.

학계에서는 이참에 예금보험공사 등 실질적인 위기대응기관에도 감독권을 분산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상시 감독-위기 시 감독기구의 분리 △개별기관-거시경제 감독기구의 분리를 통해 감독기구에도 책임을 묻는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결국 '모피아'로 일컬어지는 금융관료의 권한 약화와 연계된다. 나아가 '정책-감독기구 통합'으로 대표되는 이명박 정부의 금융 감독체계 재편을 전명 부정하는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 임기 내에는 감독기구 재편은 매우 어렵다. 금융위 권한을 강화하는 현재의 감독체제는 이명박 정부가 인수위 시절에 이미 구도를 짜놓은 것으로, 감세·4대강 사업과 마찬가지로 정부 철학을 대표한다. 정부가 스스로의 잘못을 시인하고 개편 논의에 불을 붙일 이유가 없다. 또 '모피아'로 불리는 고위공무원 집단의 반발을 살 게 뻔하다. 이미 레임덕에 빠진 이명박 정부는 개혁을 밀어붙일 추진력을 상실했다.

그럼에도 이 논의는 다음 대선, 나아가 차기 정부 때까지도 중요한 화두가 될 공산이 크다. 흔들리는 건 저축은행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학계에서 주로 거론되는 다음 세 가지 개편방안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감독체계 관련 논의의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저축은행 대량 인출사태는 금융감독의 실패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금융감독당국의 평시 감독에 문제가 생겼음에도,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 금융위가 자신을 스스로 심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뉴시스

1. 예보 힘을 키워라

예보는 캠코(자산관리공사)와 함께 가장 중요한 위기관리기구다. 예보는 지급불능 상황, 즉 담보를 걸고 돈을 빌릴 수도 없는 형편의 기관에 자본금을 확충하는 기구다. 따라서 현재 감독체제 개편 논의에서 우선적으로 가장 시급한 부분은 예보의 감독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이다.

저축은행 사태에서 보듯, 금융기관이 위기에 빠졌다면 평상시 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금융감독당국도 감독 실패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금융위를 정점으로 금감원, 예보가 수직적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현재 예보는 정부조직법상 금융위의 지도감독을 받는다.

따라서 결국 예보를 금융위에서 빼내는 감독체계 개편이 이뤄져야 예보의 감독권한 강화도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 논의를 따르면 금융위 산하 조직인 예보는 기획재정부 장관 아래서 금융위와 같은 수평적 지위로 격상된다.

이는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의 공통된 금융 감독체계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미국의 예를 들었다.

"미국은 은행의 경우, 평상시 감독은 연방준비제도(Fed)가 한다. 그러나 위기관리는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맡는다. 즉, 감독·검사 권한이 평시에는 Fed에 있다 위기 징후가 보이면 Fed와 FDIC의 공동 감시가 이뤄지고, 위기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FDIC에로 완전히 이양된다. 적기시정조치(경영개선 명령) 발동권한도 FDIC에 있다.

즉 평시 감독기구와 위기 감독기구가 상호 견제할 수 있는 수평적 위치에 있다. 그래야 감독의 실패까지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적기시정조치 발동권한을 금융위가 갖고 있다. 평시 감독권과 위기 감독권이 모두 한 기관에 몰려 있다. 저축은행 사태를 두고 금융위에서 이처럼 잡음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이유다. 자신의 감독실패를 은폐하려고만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어차피 예보가 기재부 장관의 지휘를 받는다면, 결국 '모피아'의 통제 아래에 놓이는 건 같지 않을까.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강조했다.

"예보는 위기시 국민의 세금을 써야 하는 기관이다. 정부 통제에 놓인다 하더라도 국회에 공적자금 조성을 요청해야 하고, 국회의 심의와 감시를 받게 된다. 이는 어떤 정부도 극심한 정치적 공격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실행하기 어려운 조치다. 국회라는 안전장치가 존재하는 셈이다.

당장 이번 저축은행 사태를 보면 된다. 정부가 처음에는 국회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은행과의 공동계정을 허용하는 방안으로 문제를 풀려고 했다. 그러나 저축은행이 속속 무너지는 상황이었던 지난 2월에도 돈을 마련하지 못했다. 야당을 움직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결국 예보를 금융위 산하에서 빼낸다면, 보다 투명하게 국민의 세금을 위기시 사용할 수 있게 되고 정부의 정책실패까지 물을 수 있게 된다."


▲금융위가 독점한 감독권한의 분산 문제는 경제관료들의 경제권력 재편 논의와 맞물릴 수밖에 없다. 11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김석동 금융위원장(왼쪽)과 박재완 고용노동부장관이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2. 한은 금통위를 정부에서 독립시켜라

최근 여론은 금융위의 감독권한 일부를 한은에 주자는 방향으로 쏠리고 있다. 이는 2년째 국회에 계류 중인 한은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기도 하다.

한은은 최종대부자 기능을 한다. 즉, 부실은 없지만 일시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한 금융기관에 담보를 설정한 후 대출해준다. 또 국내에서 유일한 통화신용정책 기관이다. 이 때문에 1997년 IMF 사태,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 등의 '시스템 위험'이 발생하는 경우에 한해 한은이 담보 없이도 금융기관에 대출해줄 수 있도록 국내법은 예외를 두고 있다.

즉, 한은의 감독권한은 이런 '특수한 상황'에 한해 쥐어주면 된다. 체제적 위기가 와서 한은이 돈을 찍어내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만큼 한은에도 강력한 감독권한을 쥐어주는 게 맞다는 얘기다.

그런데 만약 한은이 정부나 대기업 등 일부 이해자의 편을 들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한은은 국회의 감시도 받지 않는다. 사실상 국민의 대표기관이어야 할 한은의 독립성에 신뢰가 떨어진다면 이는 감독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현재 한은 금통위가 이렇다. 금통위원의 임기는 4년에 불과하다. 대통령 임기보다 짧기 때문에 대통령이 임기 내에 자기 입맛에 맞게 금통위원을 전면 교체해버릴 수 있다. 당장 이명박 정부 들어 7명의 금통위원 중 6명이 교체됐다.

금통위원회 후보를 추천하는 단체 대부분은 대형은행과 재벌 등의 이해를 대변할 가능성이 높은 곳들이다. 중소기업, 일반 예금자, 노동자 등의 이해가 한은의 통화정책에 직접적으로 녹아들어갈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다.

따라서 한은의 정책집행기구인 금통위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우선적으로는 금통위원 추천기관을 보다 다양화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일반 국민의 대표자들도 한은 금통위에 들어가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금통위원 임기를 대폭 늘리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 연준이 바로 이러한 방식을 통해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했다. 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 임기를 14년으로 늘리고, 대통령은 홀수 해 2월 1일에 오직 1명의 FOMC 위원만을 교체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해 8년 동안 집권하더라도 최대 4명, 즉 FOMC의 3분의 1만 교체 가능하도록 제한했다.

김 교수는 "중앙은행의 실질적인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금통위원 임기를 대통령보다 더 길게 수정하고, 정부를 비롯한 특정세력의 입김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며 "이는 중앙은행에 감독권을 부여하는 것만큼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동걸 한림대 교수(전 금융연구원장)는 아예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힌 한은 독립성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금통위원의 3분의 1가량을 야당이 임명하도록 하고, 이들이 국회에 정기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 금통위를 '사회적 통제'의 영역에서 국회의 감시 대상으로 바꾸자는 의미다.

3. 금융위-예보-한은 감독 협조시스템 구축해라

▲감독기구 간 협의체 구성을 위해서는 결국 감독당국의 권력 수평화가 이뤄져야 한다. 공교롭게 한은은 김중수 총재 취임 이후 줄곧 독립성 시비에 휘말려 왔다. ⓒ뉴시스
감독시스템 개편의 큰 그림은 결국 평시(금융위)-위기시(예보)-시스템 위기시(한은)로 감독기구를 개별적으로 두는 방안이다. 미시적 감독기구(금융위, 예보)는 역시 미시정책에 주로 집중하는 정부, 국회 통제에 두고, 거시 감독기구(한은)는 통화정책을 집행하는 한은으로 분산배치하는 식이다.

전 교수는 "쉽게 말해 금융위는 가정의학을 담당하는 동네병원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아픈 사람이면 누구나 와서 치료받는 곳이다. 만약 보다 중대한 병이 발견된다면 내과·안과·이비인후과에 가듯, 예보가 감독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이 병이 인플루엔자처럼 전체로 번진다면 한은에 감독권이 넘어가도록 하는 식"이라고 비유했다.

그런데 이해관계가 다르고 서로에 대한 견제의식도 강한 조직 사이에 감독기능을 분산시킨다면 과연 효과적인 감독체계가 마련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에 학자들은 감독기구 간 협력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결국 금융건전성 감독은 어느 한 기관이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닌만큼, 유관기관들의 상위 협의체를 공식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국은 영란은행(BOE)과 재무성의 상설협의체를 갖고 있다.

물론 지금도 대통령 주제 하에 비상경제회의 등 다양한 협의체가 마련돼 있다. 그럼에도 감독기구 간 협의체는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거시건전성 감독의 권한과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하고, 그 협의내용은 추후 공개토록 해 금융감독의 방향을 추적가능하도록 하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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