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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뚤어진 동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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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뚤어진 동정심"

[이정전 칼럼] 애덤 스미스가 '서태지·이지아 이혼 사건' 봤다면?

영국 윌리엄 왕세손과 케서린 빈(嬪)이 결혼식을 마친 후 키스하는 장면이 30일 주요 일간신문의 제1면을 대문짝만하게 장식하였다. 각 언론매체마다 일제히 이 결혼식을 특집으로 다루었다. 이날뿐만 아니라 벌써 여러 날 전부터 '세기의 결혼식'이라며 각종 언론매체가 이 결혼식을 요란하게 보도하였다. 영국 왕실의 결혼식이 우리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기에 언론매체들이 그렇게 부산을 떨까. 어떻든 한 동안 온갖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 세기의 결혼식을 20억 명의 지구인이 텔레비전으로 시청했다고 한다. 왜 사람들은 자신과 관계가 없는 영국 왕실의 결혼식에 이렇게 야단법석일까.

보수주의 인사들과 신자유주의자들의 우상인 애덤 스미스가 살아서 이 야단스러운 모습을 보았다면 과연 그는 무어라고 했을까. 틀림없이 그는 길게 탄식을 하였을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살았던 250여 년 전에도 각종 언론매체들이나 잡지들이 부유층과 저명인사의 일상생활 얘기를 미주알고주알 다투어 보도했었던 모양이다. 부유층과 저명인사에 대하여 필요 이상 깊은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애담 스미스의 불평이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그는 부유층과 저명인사에 대한 그런 세인의 깊은 관심을 동정심의 발로라고 보았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런 동정심을 "비뚤어진 동정심"이라고 부르면서 애담 스미스가 이를 질타하고 경고하였다는 점이다.

물론, 부유층과 저명인사에 대한 강한 동정심이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기여한다는 점을 그도 인정하였다. 우리나라의 보수인사들이나 신자유주의자들은 반기업 정서를 비난하면서 재벌과 성공한 기업가들을 존경하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경제교육이 필요하다고 외치는데, 그 이유는 기업가를 존경하는 정서가 그들의 기득권 유지에 도움이 되며 나아가서 체제유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는 그런 비뚤어진 동정심이 동시에 한 사회의 도덕적 타락을 초래하는 "중요하고도 보편적인(great and universal)" 원인임을 강조하였다. 다수의 사람들이 부유층과 권력층을 부러워하고 칭찬하다 못해 경배까지 하다보면 가난한 사람이나 불우한 사람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풍조가 조성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보수주의자들과 신자유주의자들이 추앙해 마지않는 애담 스미스는 기업가를 존경하는 풍토를 오히려 경계하였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담합과 음모를 일삼는다는 말이 <국부론>에도 나오는데 이 말은 오히려 기업가들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보수주의 인사들이 굳이 나서지 않더라도 이번 영국 왕가의 결혼식에 대한 언론보도나 최근 서태지·이지아 사건에 대한 세인의 엄청난 관심 등에서 보듯이 부유층과 저명인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동정심'은 점점 더 도를 더해가고 있는 것 같다. 서민들의 생활이 날로 어려워지고 있고 소득불평등이 날로 심화되고 있지만, 주요 언론매체(특히 보수성향 언론매체)들이 이런 절실한 우리의 사회문제를 영국 왕실의 결혼식만큼 앞 다투어 일제히 특집으로 비중 있게 다룬 경우가 과연 있었던가.

소득불평등이 심한 나라라고 하면 선진국 중에서는 미국이 단연 첫 번째로 꼽힌다. 미국은 세계에서 시장경제가 가장 발달한 나라이기도 하다. 이번 영국 왕실의 결혼식에 대한 미국인의 관심이 역시 대단했었다. 영국TV보다 오히려 미국TV가 영국 왕실 결혼식에 관해서 훨씬 더 자주 보도했다고 한다. 부유층과 저명인사에 대한 미국 국민의 비뚤어진 동정심이 너무 강해서 그들의 소득불평등 문제가 묻혀버린 것이 아닐까. 우리는 제발 그러지 말아야 하겠다.
▲ '서태지·이지아 이혼 사건'에 대한 관심이 식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우리는 더 중요한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놓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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