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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대란이요? 월세 사는 사람에게는 꿈같은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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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대란이요? 월세 사는 사람에게는 꿈같은 얘기죠"

참여연대 토론회 "고층아파트, 서민에겐 오를 수 없는 '높은 벽'일 뿐"

혼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정혜경(40) 씨는 두 칸짜리 반지하 방에 산다. 월급 90여 만 원으로 세 식구를 부양하기도 녹록지 않지만, 가장 큰 걱정거리는 집 문제다. 월급의 절반이 월세로 나가기 때문이다. 정 씨가 사는 집은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만 40만 원. 정 씨는 월세를 내기 위해 낮에는 일하고 퇴근 후에는 밤 11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한다.

"현재 꿈은 전셋집에 사는 거예요. 보증금이 얼마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월세를 많이 내거든요.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있다면 아무리 힘든 일도 견딜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열심히 살려고 했는데 벅차네요."

▲ 정혜경 씨는 보증금 없는 월세방을 찾아 이사를 전전했다가 간신히 500만 원을 구해 두 칸짜리 지하방을 얻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국민 10명 중 4명이 셋방살이

집값이 떨어지는 추세라지만 서민들에게 내 집 마련은 머나먼 꿈이다. 내 집은커녕 '전세로 옮겨 월세 안 내고 사는 게 꿈'인 서민이 아직도 전체의 1/5에 가깝다. 통계청이 5년마다 한 번씩 치르는 인구주택총조사(2005년)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4명은 전·월세에 산다. 전세는 약 1000만 명, 월세와 사글세가 약 660만 명에 달한다. 국민은행이 제공한 주택금융수요실태조사에 따르면 작년 셋방살이 가구의 약 41%가 연소득 2500만 원 미만의 저소득층이었다.

많은 서민들이 전세 자금이 없어 월세를 전전하지만 값싼 중소형 주택을 주로 공급하는 공공임대 주택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국토해양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LH공사와 전국지방자치단체가 작년에 공급한 임대주택은 7만7028호로 2007년 13만3120호의 절반에 불과하다. 올해는 9만 호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8월 말 공급된 임대주택은 2491호로 목표치의 1/3에도 못 미친다.

반면 부부 가구·이혼 가구·비혼 가구·혼자 사는 노인 증가 등으로 소형 주택의 필요는 급증했다. 서울에 사는 가구 중 60%는 '부부와 미혼자녀로 구성된' 전통적인 가구가 아니다. 특히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20.8%로 30년 만에 4배나 급증했다. 부부 가구는 11.9%, 한부모와 자녀 가구도 9.7%로 10가구 중 1가구 꼴이다. 서울시는 2030년까지 1인 가구 비율은 전체의 24.9%, 부부 가구는 16.7%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재계약 거부', '빚 때문에 입주 거절'…너무 높은 임대 주택의 벽

직장 생활을 하기 위해 6년 전 서울로 상경한 노정옥(35) 씨는 전형적인 저소득층 1인 가구다. 하지만 "(저소득층뿐 아니라) 평범한 직장인이라도 전세자금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는 게 노 씨의 설명이다. 서울 어느 지역이든 방 한 칸짜리 원룸을 구하려 해도 전셋값이 5000만 원을 넘기 때문이다. 월 100만 원을 버는 노 씨는 "한 달에 20~30만 원도 저축하기도 힘들다"며 "전세금 5000만 원을 모으려면 매달 50만 원씩 저축해도 7년 이상이 걸린다"고 말했다.

노 씨는 처음에는 신혼부부인 친구네 집에 얹혀살다가 눈치가 보여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얼마 후 근로복지공단이 운영하는 구로여성근로임대아파트에 입주했지만 이마저 매각될 위기에 처했다. "예산 낭비"라는 이유에서다. 임대기간이 끝나자 근로복지공단 측이 재계약을 거부하는 바람에 노 씨는 다시 고시원을 전전할 위기에 처했다.

▲ 저소득층 1인 가구가 서울에서 살 수 있는 주거 공간은 고시원, 원룸 등으로 선택지가 제한된다. 사진은 서울의 한 고시원 풍경. ⓒ연합뉴스

정 씨 또한 우여곡절 끝에 기존주택전세임대에 당첨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저소득층 가정에 저렴한 보증금과 임대료를 받고 공급하는 전셋집이다. 그러나 얼마 후 정 씨는 "은행에 전세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들어올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입주를 포기해야 했다. 정 씨는 "한 달 안에 빚 3000만 원을 갚아야 한다는데 그 돈이 있었으면 임대주택을 찾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정 씨는 폭우 피해로 천정에 비가 새고 곰팡이가 피는 집에 다시 눌러산다. 그런 정 씨에게 집주인은 "월세를 더 올려 받으려다 많이 봐주는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고층아파트는 서민들에게 올라갈 수 없는 높은 벽일 뿐"

노 씨는 "서울에서 혼자 직장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취 문제에 당면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정 씨도 "아무리 여기저기서 고층아파트들이 들어선들 우리 같은 서민들에게는 올라갈 수 없는 높은 벽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의 바람은 '서민들이 살 수 있는 임대주택이 많이 지어지는 것'이다.

이런 사연은 모두 참여연대가 29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마련한 주거안전망 토론회에서 발표된 것이다. 이 자리에서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 서채란 변호사는 "이미 가계부채가 800조 원이 넘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대안으로 내놓은 전세 자금 대출 확대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주원 나눔과미래 지역사업국장은 "주거복지의 선진국을 보면 자가소유, 민간임대, 공공임대주택의 비율이 6:2:2 정도 된다"며 "공공임대주택의 비율을 15~20%까지 늘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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