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이들 지역 세입자들은 도시계획사업으로 인해 주거이전비를 받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야 하는데, 세입자들과 관련 시민단체는 법적으로 임대주택 입주권도 보장돼있다고 하는 반면 서울시는 둘 중 택일을 주장해 마찰이 일어났다.
이와 같은 다툼은 뉴타운 사업 지구에서도 똑같은 이유로 생겨나고 있다. (☞ 관련 기사 : "법 좀 지켜라"… 비명지르는 뉴타운 세입자) 시가 임대주택 공급을 늘릴 생각은 않고 세입자들을 '밀어내기 식'으로 사업을 강행하는 태도는 문제라는 지적이다.
▲ 13일 다산플라자 앞에서 시범아파트 주민들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를 비판했다. 용강동과 옥인동 아파트 대표들은 기자회견 내내 어색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시위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그들의 입장이 빈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나눔과미래 |
세입자들 "시가 법 위반"
이들 시범아파트 세입자들과 서울시의 악연은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해 4월 서울시는 용강동과 옥인동 시범아파트 구역을 공공장소로 재개발(도시계획사업)하기 위해 사업시행인가를 내렸다. 용강시민아파트에는 한강르네상스 사업의 일환으로 수변공원을 조성하고, 옥인시민아파트 일대 역시 인왕산 인근 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었다.
보상 여부를 둘러싸고 문제가 발생했다. 시는 세입자들에게 4개월치 주거이전비와 임대주택 입주권 둘 중 하나를 택일하도록 했다. 이에 상당수 세입자들이 임대주택 입주권을 선택하고 살던 곳을 나오게 됐다.
하지만 관련 법령에 임대주택 입주자에 대한 주거이전비 미지급 단서조항이 삭제된 사실이 관련 시민단체에 의해 알려지면서 마찰이 본격화됐다. 시가 의도적으로 세입자 권리를 제대로 보장해주지 않았다는 인식이 퍼진 것이다.
▲ 서울시가 지난 4월 임대주택에 살고 있는 옥인동 시범아파트 세입자에게 보낸 공문. 시는 "… 귀하께서는 주거이전비를 청구하였으므로 …(중략)… 기 입주한 임대주택은 포기한 것으로 간주되고, 귀하께서는 임대주택의 현 계약기간이 종료되면 임대주택을 명도하여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미 임대주택에 들어간 세입자에게도 주거이전비를 신청할 경우 살고 있는 임대주택을 내놓으라는 입장을 명확히 한 셈이다. ⓒ프레시안 |
지난 2007년 4월 12일 개정된 이 법 시행규칙 54조 2항은 "공익사업의 시행으로 인하여 이주하게 되는 주거용 건축물의 세입자로서 … (중략) … 당해 공익사업시행지구안에서 3월 이상 거주한 자에 대하여는 가구원수에 따라 4개월분의 주거이전비를 보상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새 규칙만 보면 임대주택 입주권을 보장한다는 근거가 없다.
반면 개정 전 조항은 주거이전비 보상분을 3개월분으로 한정한 것과 더불어 "다만 다른 법령에 의해 주택입주권을 받았거나 무허가건축물 등에 입주한 세입자에 대하여는 그러지 아니한다"라고 단서조항을 달아놓았다. 개정 전 법령만 보면 '임대주택 입주권을 받은 사람만' 주거이전비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 개정 후 해석이 달라지는 원인이다.
남철관 나눔과미래 국장은 "단서조항이 삭제됐으니 '임대주택을 선택한 사람도 주거이전비를 받는다'는 해석이 맞다"며 "사실상 세입자가 무조건 임대주택을 선택하는데, 이 경우에도 시에서 주거이전비를 지급하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법이 명시적으로 "세입자에게 임대주택 입주권과 주거이전비 모두를 지급하라"고 말하진 않았으나 현실적으로 둘 다 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는 뜻이다.
실제 세입자 50명이 서울시를 상대로 낸 소송 결과인 지난 3일 서울행정법원 역시 "임대주택 입주권을 줬다는 이유로 주거이전비 지급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서울시는 원고들에게 700만~16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럼에도 주거이전비 지급을 거부하는 서울시를 두고 세입자들이 "시에서 위법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서울시 "공공주택 없는데 어쩌란 말이냐"
실제 서울시 행정규칙에도 세입자들의 권리에 대한 규정이 명시돼 있다. '서울특별시 철거민 등에 대한 국민주택 특별공급규칙' 5조는 '국민주택 등의 특별공급 대상자'로 철거대상 건물 보유자와 일정 조건을 갖춘 세입자 모두를 명확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 관련사업 관계자의 말은 다르다. 주택공급과 관계자는 "입주권과 주거이전비 모두를 요구하는 것은 자의적인 해석"이라며 "이미 세입자들에게 알려드린 대로 주거이전비를 신청하신 분은 입주권을 취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시는 지난 7일 낸 해명자료를 통해서도 이와 같은 입장을 강조한 바 있다.
시는 이처럼 법률을 달리 보는 이유로 역시 '서울특별시 철거민 등에 대한 국민주택 특별공급규칙' 중 7조를 제시했다. 이 조항은 철거민에게 공급할 주택에 대해 "공가, 곧 현재 남아도는 임대주택에 한해서"라는 단서를 달아놓았다. 시 관계자는 "남아도는 임대주택이 없으면 주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시 관계자는 "새로 아파트를 공급할 경우 국민주택을 전체 입주물량의 10% 정도로 공급하는데, 수요자가 넘치는 반면 공급이 딸린다"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임대주택 입주권 지급은) 어렵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세입자는 그러면 영원히 임대주택에 못 들어가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임대주택을) 받고 싶으시다면 기다려야 한다"라고 답했다. 임대주택 입주를 원하는 세입자는 (주거이전비를 받지 말고) 마냥 기다리라는 얘기다.
▲ 13일 기자회견에서 세입자들은 서울시가 지난 4월말 세입자들에게 보낸 임대주택 대기물량을 공개했다. 총 76호가 모자란다고 시는 밝혔다. 임대주택을 짓지 않으니 대기물량이 소화될 리도 없고, 따라서 세입자들은 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없다. ⓒ프레시안 |
전문가 "공급도 제대로 안 하고 '나 몰라라' 식은 문제"
전문가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시가 상위 법률이 엄연히 명기돼 있음에도 이를 지키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남 국장은 "공공사업에는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는 게 상식인데 시가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며 "관련 법률이 있음에도 법을 따라야 할 시가 멋대로 규칙을 만들어 이를 어기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정경섭 진보신당 마포구 당원협의회 위원장은 "법이 위인지 행정규칙이 위인지는 교과서만 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이라며 "과연 (서울이) 상식이 통하는 사회인지 궁금하다"고 비난했다.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시가 서민 생활 안정을 위해 임대주택을 보다 많이 공급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 옥인 시범아파트. 360여 세대 중 대부분이 시의 말을 따라 주거이전비만 받고 떠나간 이곳은 사업 시행을 알리는 라커칠로 흉물스럽게 변해 있었다. 이곳 세입자 대표인 김혜옥 씨는 "시가 사람이 뻔히 사는 곳에도 라커칠을 해놨었다. 항의하고 나서야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프레시안 |
이와 관련, 시에서 재개발 대상 지역 세입자들의 요청으로 지난 4월말 문서 공개한 '공공임대주택 지구 평형별 잔여물량 현황'에 따르면 총 16개 지구에서 76호의 임대주택 공급이 수요에 비해 모자랐다.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는 "결국 재정비 사업 보상을 세입자 권리로 볼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라며 "공공(서울시)에서 재정비를 수익만을 위해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변 교수는 보다 근본적으로 순환재개발 방식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이런 문제가 생기는 까닭은 결국 시에서 임대주택 공급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재개발만 무리하게 밀어붙이기 때문"이라며 "난곡지구에서처럼 순환재개발 방식으로 임대주택이 충분히 공급되게끔 사업을 추진하는 게 지자체의 임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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