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교수는 이 글에서 "북한의 후계체제를 강 건너 불인 양 신기하고 놀라운 구경거리로 바라보는 선정적 접근이나 3대 세습의 옳고 그름의 문제로만 판단하는 가치개입적 접근 모두 일면적"이라면서 북 후계체제는 "호들갑의 대상이 아니라 차분한 관찰의 대상"이라고 지적한다. 나아가 3대 세습에 대한 조롱과 비판보다는 북의 후계체제가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방책을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 교수는 김정일의 권력승계과정에 비해 비교적 짧은 시간에 급속하게 이루어진 김정은의 권력 승계를 '압축적 후계과정'에 비유하면서 이러한 후계체제에는 안정성과 불안정성의 요소가 혼재하고 있으며 특히 "후계체제의 불안정성이 증대될수록 한반도의 불안정성도 커진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후계체제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후계구축과정에서 북이 경직된 보수화로 기울거나, 한국과 미국 등에 대한 강경 대외정책을 지속하는 것, 또는 중국에의 의존이 심화되는 것 등을 제어하는 것이다.
즉 후계체제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진전으로 결과되며, 유연하고 전향적인 대내정책으로 귀결될 수 있도록 여건과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선 중요한 것은 현재 전면 파탄에 직면해 있는 남북관계가 정상화돼야 한다고 필자는 지적한다.
<한반도포커스>는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의 교수진과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한반도 문제 관련 정책소식지로 이번 10호에는 '동북아 정세와 한반도'를 주제로 5편의 글이 실렸다. 11월 첫째 주 동안 매일 1편씩 소개될 예정으로 2일에는 이남주 교수(성공회대학교 중어중국학과)의 '중국의 굴기와 동북아' 가 실릴 예정이다. <편집자>
김정은 후계체제를 놓고 안팎이 떠들썩하다. 유례없는 3대 혈통 세습을 놓고 찬반 논란이 한창이고 '청년대장'의 후계자 안착 여부도 말들이 많다. 대장칭호 부여 이후 당대표자회 개최와 노동당 체제 정비를 거쳐 외신을 불러들인 공개 열병식까지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북한의 후계체제를 강 건너 불인 양 신기하고 놀라운 구경거리로 바라보는 선정적 접근이나 3대 세습의 옳고 그름의 문제로만 판단하는 가치개입적 접근 모두 일면적이다. 북한의 수령제 하에서 후계체제 구축과정은 충분히 예상된 논리이자 예정된 구도이다. 이미 김일성에서 김정일로의 후계과정을 역사적으로 경험한 바 있는 북은 당연히 김정일에서 다음 후계체제로의 구축과정을 언젠가 치러내야 했다. 충분히 있을 수 있고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 혈통 승계로 서둘러 압축적으로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 후계체제는 호들갑의 대상이 아니라 차분한 관찰의 대상이다. 옳고 그름의 신앙고백을 강요하는 선악의 입씨름이 필요한 게 아니라 김정은 후계체제의 특성과 안착 가능성을 정확히 타산해보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차분한 접근이 차분한 대응을 가능케 할 것이다.
지금 김정은 후계과정은 후계체제의 완성이 아니다. 후계과정은 크게 구축과정과 공고화과정으로 구분되는데 지금 단계는 후계체제 구축을 완료하고 공고화하는 게 아니라 후계체제 구축과정에 공식 진입한 것이라는 의미다. 즉 후계자로서 공식 내정되었지만 명실상부한 후계자로 공식 확정된 것은 아직 아니란 뜻이다. 1974년 김정일은 당 정치위원에 선출됨으로써 후계자로 공식 내정되었고 이후 1980년 6차 당대회에서 당 정치국상무위원과 당비서 및 당중앙군사위원에 선출됨으로써 실질적인 후계자로 공식확정되었다. 이를 감안하면 지금 김정은은 당 중앙위원과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지위이지만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비서직을 갖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오히려 1974년 김정일의 지위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김정은은 앞으로 검증과정을 거쳐 나머지 고위 당직과 국가기관 직위까지를 확보함으로써 공식적인 후계자로 확정되는 절차를 남겨 놓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의 지위는 1974년 김정일의 지위와 비슷하지만 공개적인 대외 행보는 1980년 후계자 확정 이후 김정일의 수준 이상이다. 즉 권력 지위와 대외 공식화 사이의 불일치가 있는 점이 지금 후계체제의 특징인 셈이다. 또한 김정일의 경우는 당활동을 통해 당을 장악하고 후계자 내정 이후 대중을 상대로 공개 활동을 시작한 반면, 김정은의 경우는 후계자 공식내정과 대내외 선포를 먼저 한 후 당내 리더쉽 확보와 군장악에 나서는 역순의 과정을 밟고 있음도 차이점이다. 이는 후계구축 과정을 서둘러야 하는 지금 북한의 다급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고 그만큼 김정은의 권력토대가 상대적으로 취약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향후 김정은 후계과정은 안정성과 불안정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후계과정이 안정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은 김정일 위원장이 살아있는 권력이고 그가 선택한 후계자와 그 후계자를 후견할 김경희, 최룡해, 리영호, 장성택 등이 최선을 다해 후계체제 구축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짧은 후계 구축과정에도 불구하고 북은 나름의 치밀한 계획 하에 거쳐야 할 준비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다. 후계자 낙점 이후 후계체제 대비용 국방위 인선을 확대하고 2009년 4월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헌법 개정으로 국방위원회의 위상과 권한을 강화했다. 후계체제를 제도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그리고 금년 최고인민회의에서 북은 후계체제를 국방위 차원에서 책임질 인사로 장성택 부장을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고속 승진시키고 후계자를 뒷받침할 수 있는 최영림 내각 체제를 굳혔다. 헌법개정과 국방위 강화를 거쳐 내각 재편을 단행한 이후 9월에 당대표자회를 개최함으로써 후계체제용 당정비와 당조직 인선을 완료했다. 그리고 연이어 당창건 기념일 열병식을 통해 외신기자까지 초청해서 후계자 내정을 대내외에 공식 선포하는 절차를 밟았다.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후계과정임을 알 수 있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오른쪽)과 김정은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뉴시스 |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여전히 불안정성이 내재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이는 '압축적' 후계과정 자체가 갖는 한계이기도 하다. 압축성장의 빛과 그늘을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압축 후계과정은 당연히 부작용과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김정일이 스스로 당생활을 통해 쟁취한 권력, 확보한 권력, 검증받은 권력으로서 후계자의 입지를 다져갔다면 김정은은 부여받은 권력, 올려세운 권력으로 후계체제를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권력토대의 측면에서는 상대적 불안정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후계자 내정 이후 김정은의 자질과 역량이 부족한 것으로 판단될 경우 더더욱 후계체제 구축과정은 불안해질 수 있다. 후계자로 선택된 20대 후반의 젊은이가 감당해야 할 과제와 넘어야 할 산은 너무도 많다. 중앙위원으로 둥지를 튼 노동당에 대한 리더쉽 확보도 문제이고 당과 군과 국방위원회를 연결하는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직의 수행과 이를 통한 군장악도 관심거리다. 주체사상을 넘어서서 이른바 선군사상을 체계화시키고 이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해석권을 후계자가 확보할 수 있을 지도 지켜봐야 한다. 강성대국 진입을 앞에 두고 직간접적인 경제성과를 가시화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한 후계자의 능력이다. 대중과의 대면접촉이나 공개 활동을 통해 지도자로서의 인민적 카리스마를 일정 정도 확보하는 것도 관건이다. 공식 내정 이후 공식 확정까지의 검증기간에 최소한 이 정도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후계체제의 구축은 순연되거나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후계체제를 떠받치는 권력엘리트의 변화도 불안정성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번 인선의 핵심인 리영호 총참모장의 부상과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과의 쇠락은 후계체제 구축과정을 둘러싼 인적 변화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009년 국방위원회 확대 당시 국방위원에 들지도 못했던 리영호가 1년여 만에 당정치국 상무위원과 당중앙군사위 부주석과 인민군 차수 자리를 거머쥐고 후계자의 '정치적 스승'으로 등장한 것과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화려하게 부상했던 오극렬이 이번 당인사에서 정치국과 비서국, 중앙군사위 어디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은 극명하게 대비되는 권력엘리트의 부침이다. 급속하게 진행되는 후계체제 구축과정에서 떠오르는 권력집단과 내리막길의 권력집단이 생겨나는 것은 아무리 수령제하의 일사불란한 체제라 하더라도 막을 수 없는 현상일 것이다. 이른바 김정은 라인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도 권력의 속성상 어찌할 수 없다. 권력엘리트들의 부침과 갈등이라는 인지상정의 권력속성 자체가 바로 김정은 후계체제의 불안정성의 요인인 것이다.
김정은 후계체제의 정책전망도 논란거리다. 본질적으로 후계체제는 수령의 사상과 위업을 가장 잘 계승할 인물이 필수조건이므로 당연히 수령의 정책과 기조를 계승해야 하는 구조와 논리를 갖고 있다. 따라서 김정은 후계체제는 김정일의 정책과 노선을 벗어나기 보다는 대체로 계승할 가능성이 높다. 단절성이 아닌 계승성의 측면이 강한 것이다. 또한 지금은 후계체제가 완료된 이후 공고화 단계이거나 권력 승계과정이 아니고 후계체제 구축과정이기 때문에 김정은의 정치적 재량권이나 정책적 자율성은 결여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일각에서 언급하는 김정일-김정은 공동정권이라는 발상은 북한의 특성과 후계체제 과정과는 맞지 않는 분석이다. 대내 경제정책이나 대외 정책 모두 이미 북한이 밝히고 공언한 원칙과 기조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원만한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우호적인 대외환경의 필요성으로 인해 북미협상이 진전되고 남북관계가 개선되는 것 자체를 김정일이 마다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자신의 원칙과 공언을 저버리고 미국과 한국에 굴복하면서까지 대외관계 호전을 시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후계체제 구축이 정책기조의 변화와 수정을 결과한다는 인과론적 접근은 아직 시기상조인 셈이다.
후계체제의 불안정성이 증대될수록 한반도의 불안정성도 커진다. 일각에서는 후계체제의 불안정을 급변사태 대망론과 연결해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준비되지 않은 급변사태는 오히려 우리에게 재앙이자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할 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북한, 김정은 후계체제의 북한을 냉정한 시각으로 차분하게 접근하고 신중하게 관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후계구축 과정에서 북이 경직된 보수화로 기우는 것을 최대한 막아내고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에서도 강경한 대외정책으로 일관하는 것을 제어해야 한다. 더불어 후계과정의 필요에 의해 북이 중국에 의존하는 것 역시 우리로서는 결코 환영할 일이 아니다. 후계체제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진전으로 결과되고 유연하고 전향적인 대내정책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여건과 환경을 만들어내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한국의 대응이다. 후계과정을 단지 놀랍고 비난할 일로만 간주하기보다는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해소하고 향후 김정일과 김정은의 바람직한 정책선택을 유도해야 한다. 죽일 놈 살릴 놈의 야단법석이 아니라 후계체제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북미관계 개선, 개혁개방의 북한으로 귀결될 수 있도록 우리의 개입력과 영향력을 고민해야 할 때다. 전면파탄에 직면해 있는 지금의 남북관계가 정상화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의 합리적 대응이 북한의 올바른 정책선택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후계체제는 이미 한반도와 동북아의 핵심 변수로 자리매김되었다.
* 원제 : 김정은 후계체제와 한반도: 안정성과 불안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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