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이 없는 국책사업을 벌이면 막대한 적자를 초래하게 되고 결국 나라 빚이 누적된다. 작년 GDP대비 우리나라 재정적자의 비율이 2%에 이르고 국가채무의 비율이 36%이었다고 한다. DTI규제를 다시 실시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가계부채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말하자면, 국민도 나라도 빚더미에 앉아있다. 이런 상황에서 동남권신공항추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해명은 최소한 경제적으로는 지극히 타당해 보인다.
물론, 우리나라 재정적자가 OECD 평균에 비해서 아직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외국과의 단순 비교는 금물이다. 우리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불가피한 대규모 국가부채의 가능성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 경제는 수출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개방경제다. 따라서 외부의 충격에 극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 여력을 비축하고 있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에 대비해야 하고, 남북통일에도 대비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은 국가채무 증가를 극히 경계해야 할 상황이다. 참여정부 시절 5년간 재정적자의 대 GDP 비율이 평균 0.4%이었을 때도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참여정부를 향해서 '적자정권'이니 '파산정권'이니 하면서 극언을 퍼붓지 않았던가.
물론, 동남권신공항을 추진하는 측은 경제성이 충분히 있다는 변명을 펴고 있지만, 국토연구원의 연구결과를 뒤집을 만한 강력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신공항이 경제성을 가지려면 우선 항공수요가 충분히 커야 하는데, 이에 관해서 밀양신공항을 추진하는 측이나 가덕도 신공항을 추진하는 측 모두 배후도시로부터의 접근성이 매우 좋다는 점을 첫 번째 장점으로 꼽고 있다. 예를 들어서 밀양에 신공항을 건설하면, 대구, 울산, 포항 등 배후도시 시민들이 이 공항으로 몰려온다는 희망적 예측을 내놓고 있다. 일단 이 예측이 옳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밀양신공항 건설과 함께 이 배후도시에 이미 있는 공항들은 모두 폐쇄해야 한다. 지금도 고객이 없어서 썰렁한데, 정말 그렇게 접근성이 좋은 밀양신공항이 건설된다면 대구공항도 울산공항도 아예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 자체가 막대한 사회적 손실이다.
그렇다면, 동남권신공항의 접근성이 추진하는 측의 변명처럼 그렇게 좋은가? 전문가들의 의견은 매우 회의적이다. 예를 들어 밀양에 신공항이 생긴다고 해보자. 대구에서 밀양 신공항까지 택시비만 6~7만 원 소요되는데 멀쩡한 대구공항을 내버려두고 밀양까지 갈 대구시민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가덕도 역시 울산, 대구, 창원으로부터 한참 거리가 멀다. 공항에 가는 시간이 비행기 타는 시간보다 길다면 누가 그런 공항을 이용하겠느냐는 전문가의 반문에 고개를 끄떡이지 않을 수 없다. 막대한 돈을 들여서 지은 무안공항과 양양공항이 파리를 날리게 된 이유도 바로 이 접근성 문제 때문이었다. 이미 다른 공항에서 반복된 실패요인으로부터 동남권신공항 두 후보지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니 동남권신공항은 접근성이 좋아도 문제요 접근성이 나빠도 문제다. 이래저래 문제다.
물론, 앞으로 항공수요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문제는, 동남권신공항 건설이 그렇게 늘어날 항공수요에 대처하는 방안들 중에서 가장 값비싼 대안이라는 것이다.
다른 손쉬운, 값싼 대안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대구공항, 울산공항 등 기존 공항의 시설을 대폭 개량하고 공항운영 방법을 개선함으로써 이들의 경제성을 대폭 높여주는 방안도 있고,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방안도 있으며, 군비행장을 따로 만들어서 김해공항을 민간전용 공항으로 만드는 방안도 있다는 것이다. 왜 우리는 기존의 것을 잘 살릴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자꾸 새것만 만들어서 내다 버리는 낭비를 계속 일삼는가? 이 환경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항과 같은 사회간접자본에 관해서도 필히 재활용의 지혜를 적용해야 한다.
▲ 한나라당 대구지역 국회원과 당직자 등이 지난달 29일 오후 대구 수성구 대구시당 대강당에서 동남권신공항 밀양유치 촉구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은 "신공항이 백지화되면, 내년 총·대선 공약채택을 재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수 전문가들의 입장은 동남권신공항 자체가 경제성이 없다는 쪽이다. ⓒ뉴시스 |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각종 사회간접자본(SOC)이 과잉 공급되고 있다는 점도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회간접자본이 과잉 공급되고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사회간접자본의 경제성이 떨어짐을 의미한다. 도로가 너무 많이 건설되어서 그 경제적 타당성이 크데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을 이미 수없이 들어온 터이다.
정부가 사회간접자본 계획을 남발하고 있다는 비판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번 동남권신공항 역시 수요를 마구 부풀림으로써 막대한 혈세를 낭비하는 전형적인 대형 토목사업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일부 영향력 있는 정치가들은 경제성을 떠나 지역간 균형발전을 위해서라도 동남권신공항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허나, 이런 사회간접자본 과잉공급 상황은 동남권신공항건설이 해당 지역주민에게 과연 실질적으로 얼마나 큰 이익을 가져다줄지를 의심케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 문턱에 와 있다. 바로 얼마 전에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다시 2만 달러 대로 진입하였다고 한다. 과거 선진국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 대를 넘어서면 서서히 경제성장의 효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즉, 경제개발 및 소득수준의 향상만으로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이기 매우 어려운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이른바 경제성장효용체감의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선진국 문턱에 선 우리나라도 이제 경제개발의 약발이 서서히 떨어지는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재정지출의 효과에 있어서도 그렇다. 특히 지방재정의 경우 경제개발을 위한 지출보다는 사회개발을 위한 지출이 훨씬 더 큰 효과를 초래한다는 연구결과도 이미 나와 있다. 도로나 공항을 건설하기보다는 교육, 보건, 생활환경, 사회보장 등을 확충하는 것이 지역주민에게 훨씬 더 큰 혜택을 준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최근 우리 정치권을 흔들고 있는 복지논쟁이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다. 과거 선진국이 그랬듯이 우리나라도 이제 복지국가로 진입하고 있다. 경제개발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국민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사회가 아니라 사회복지의 확충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국민의 복지를 끌어올리는 사회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남권신공항건설은 해당지역 주민에게도 별로 이익을 주지 못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대통령의 특별 기자회견 이후 동남권신공항 논쟁이 일단 수면 아래로 갈아 앉은 듯이 보인다. 하지만, 내년 대선을 앞두고 언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지 모른다. 선심성 개발공약으로 한 자리 잡아보려는 정치가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지 않은가. 이제 우리 정치인들도 제발 시대착오적 개발공약을 자제함으로써 성숙된 모습을 보이기를 바랄 뿐이다. 일부 언론에 보도되었듯이 이번 기회에 대규모 경제개발사업의 비용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분담하는 방안을 구체화해볼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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