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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에겐 있고 유시민에겐 없는 것"

[이태경의 고공비행] "대선주자 유시민, '진정한 노무현 정신' 배워야"

대선의 승패를 가르는 요소들은 허다하겠지만, 후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구도가 유리하게 짜이고, 담론과 정책 면에서 상대진영을 압도한다 해도 지지자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내는 힘은 상당 부분 후보가 지닌 정치적, 인간적 매력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비록 차기 대선후보 가운데 단연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한나라당의 박근혜 의원과는 아득한 거리를 두고 2위를 달리고 있기는 하지만,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씨는 대중정치인으로서 적지 않은 매력과 흡인력을 지닌 사람이다. 선천적인 재능에다 엄격한 지적 수련이 더해져 형성됐을 유 씨의 명민함은 정확한 정세 판단과 시의적절한 의제 설정의 원동력인데, 유 씨가 지닌 총명함은 대중정치인으로서는 크나 큰 자산이다.

유시민 씨의 다른 장점 가운데 하나는 그가 말과 글을 매우 능숙하게 다룬다는 점이다. 기실 현역 정치인 가운데 말과 글을 부리는 재주 면에서 유시민 씨 앞에 놓일 만한 사람을 찾기란 어렵다. 유 씨는 말로 하는 토론에서 불패의 신화를 자랑한다. 실제로 방송 토론을 해 본 사람이면 안다. 유시민 씨처럼 명쾌하게, 빈틈없이, 철저하게 토론의 상대방을 제압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또한 유 씨는 말을 잘 하는 사람이 글에 서툴다는 통념을 비웃듯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배출한 글쟁이다. 유시민 씨는 경제나 헌법 혹은 역사 같이 좀처럼 대중들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주제들을 간명한 문체로 풀어 쉽게 설명하는 희귀한 재능의 소유자다. 이명박 대통령 같은 예외가 있긴 하지만, 정치인에게 있어 말과 글을 통한 유권자들과의 소통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매우 귀중한 자질임이 분명하다.

유시민 씨의 숨겨진 장점 (어쩌면 유시민 씨의 가장 큰 강점일지도 모른다) 가운데 하나는 그가 경상도 출신이라는 점이다. 여전히 출신지역이 전국단위 선거에서 중대한 상수(常數)인 대한민국에서 인구의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영남 출신이라는 사실은 대단히 큰 강점이다. 영남 출신 유권자들에게 완전히 배척당한 상태에서 대선승리를 바란다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이런, 저런 재능들과 영남출신이라는 행운(?)이 겹쳐서 유시민 씨는 꽤 열광적이고 충성도 높은 지지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것 같다. 외연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이 들리기는 하지만, 대중 정치인에게 그것도 대권을 꿈꾸는 대중정치인에게 열성적인 지지자들의 존재는 없어서는 안 될 버팀목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석함, 거의 장인의 경지에 오른 언어를 다루는 솜씨, 영남 출신이라는 태생적인 이점에, 단단한 지지자들까지 갖춘 유시민 씨의 정치적 앞날은 밝아 보인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유시민에겐 노무현이 보여준 진정성과 헌신성이 필요

경솔한 판단인지는 모르겠지만, 유시민에게는 노무현에게 있었던 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대의를 향한 헌신과 공익에 대한 투신, 진정성과 희생정신이 그것이다. 물론 현실정치인이었고 권력의 정상인 대통령에 선출된 경험이 있는 노무현의 정치적 행보가 항상 수도자나 순교자의 자세와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무현도 정치적인 셈법에 능했을 테고 여론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웠을 것이며 결정적인 국면에서 승부사 기질을 발휘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노무현은 자신의 정치적 이해를 대의에 맞게 조직할 줄 아는 정치인이었다. 그리고 노무현은 자주 자신의 이해 보다 대의나 공익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노무현의 그런 결단과 결정, 혹은 그런 결단과 결정의 밑바탕에 흐르는 진정성과 헌신성에 국민들은 열광했고 마침내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던 것이다.

김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에서 유시민 씨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과거 노무현이 보인 모습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계산이 빠르고 정확한 유시민 씨가 고작 참여당의 원내진입을 위해 야권연대의 정신을 훼손하려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모르긴 해도 유 씨는 참여당의 원내 진입을 훨씬 넘어서는 정치적 성과를 얻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일 게다. 그 성과는 친노의 적자(嫡子) 라는 상징권력의 획득, 영남지역에 교두보 마련 같은 것일 테고, 그런 성과들은 유 씨가 대선에서 야권단일후보로 선출되는데 미력이나마 보탬이 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유 씨의 이 같은 정치적 기동(機動)이 대의를 향한 헌신이나 공익을 위한 투신으로 읽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임의 룰을 참여당에 유리하게 조정하려고 애쓰는 유 씨에게서는 노무현의 상징과도 같은 진정성이나 희생정신 대신 냉혹한 정치적 셈법만이 어른거린다. 유시민 씨는 이런 평가가 박정하게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지 않은 유권자들은 유시민 씨가 김해에서 보이는 태도가 "하늘이 두 쪽 나도 정권 교체하겠다"는 유시민 씨 자신의 호언과 충돌한다고 느끼고 있다.

유시민 씨는 비범하고 재능이 승한 사람이다. 그러나 신묘막측한 수읽기와 정교한 계획만으로 대한민국호를 이끌 선장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유시민 씨는 노무현 정신의 고갱이를 계승할 필요가 있다. 대의와 공익을 사적 이익 보다 앞세웠던 노무현은 진보개혁진영의 갱소(更蘇)를 위해 목숨을 던져 역사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지금 유시민 씨에게는 노무현적 투신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것만이 유시민 씨가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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