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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 중의 감 - 청도 이준수 반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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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 중의 감 - 청도 이준수 반건시

[안병권의 고향보따리]<27>

유년시절 소풍 갔을 때 제일 기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던 일 중의 하나가 '보물찾기'이다. 이를 앙다물고 선생님이 숨겨놓은 '보물(쪽지)'을 찾아 산을 헤매다가 발견해서 기쁘기도 했고, 끝내 손에 잡힐 듯 잡힐 듯 안 잡혀서 서러웠던 기억, 지금 생각해도 즐겁다. 입에 침이 돌 듯 머릿속에 추억이 돈다.

'보물섬'이란 잡지도 있었고, 즐겨 읽은 소설들중에 보물섬, 보물지도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보물의 느낌이 자꾸 축소되어가는 것이다. 미지의 세계속에 가득 널려 있었던 보물, 내 마음속 전부를 다 채우고 있던 보물이 어른이 되어가면서 자꾸 물질적이고 계량적으로 되어버렸다. 나라의 유형문화재중의 하나로 '보물'이란 개념을 배우고 나서는 낭만적이고 꿈결 같았던 컨셉이 고정화 되어버려 아주 작아져 버린 것이다.

어릴 때는 '가치(價値)' 였다가 점점 더 '물건(物件)' 으로 가는 느낌이 들었다.

사전을 찾아보면 '썩 드물고 귀한 가치가 있는 보배로운 물건(物件)'으로 보기도 하고 '아주 귀중히 여기는, 가치 있는 존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나는 후자에 방점을 찍는다. 시공간을 아우르고, 사람들의 생각을 담고 있는 '귀중한 가치'를 보물이라고 이야기 하는게 맞다.

감, 감꽃
▲ 납작한 청도반시

▲ 암꽃(좌)은 감 열매를 품고, 수꽃(우)은 땡땡땡 종모양으로 생겼다.

감꽃이 필때쯤이면 뻐국새도 와서 울기 시작하고 촌에서는 모질고 모진 보릿고개가 막바지에 이른다. 배고파 보채는 아이들에게 어머니는 "조금만 기달리거라! 감꽃이 피었으니 열밤만 자고나면 햇보리를 먹을 수 있단다." 손짓몸짓 건네며 녀석들의 성화를 달래야했다.

감자밭에 노고지리가 알을 낳고 재수 좋은 놈은 못자리에 넣을 갈풀 베러 산에 갔다가 꿩알도 열두개씩 주워오기도 했다. 감꽃이 피는 것은 힘든 보릿고개가 끝난다는 신호였고 가난한 농촌사람들에게 '희망의 꽃'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감꽃 이었다.
그렇게 감 꽃은 슬프기도 했고 희망이기도 한 채 우리 곁으로 해마다 다가섰다.
추억을 머금고 멀기도 하고 가깝기도 한 채 우리에게 오곤했다.

아프지만 살가운 기억들이다. 나보다 윗대들에게는 슬프고 가슴 저미는 '아픔의 꽃'이었지만 소위 386세대라 일컫는 필자 세대(50세 전후)에게는 배고프기는 했지만 아련한 '추억의 꽃'으로 남는다. 배고파 초근목피 모진 고생은 어른들이 했고 아이들이었던 나는 나름대로의 기억으로 남아있으니 말이다.

2년전 필자는 한국농업대학 영농조합법인 사장으로 일했다. 그 무렵 청도반시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졸업생 스토리를 기획하고 청도반시 이야기를 UCC로 녹여내는 과정에서 청도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소싸움'과 '씨 없는 감' 청도반시의 내력을 공부하면서 "아! 그랬구나!" 하는 새삼스런 느낌으로 청도는 내 곁으로 다가왔다.

2010년, 다시 청도감 이야기를 만들 기회가 생겨서 청도감 영농조합법인(대표 이준수)을 만났다.

청도소싸움

▲ 청도 소싸움

소싸움에서 인생을 배운다. 한물갔다고 평가되는 싸움소들이 당당히 재기해 상을 타내는 경우가 있는데, 꼭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 인생에도 많은 굴곡이 있을 수 있지만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싸움소들에게서 찾아낸다. 경제난에 시달리는 많은 이웃들이 있겠지만 우직한 소처럼 다들 꿋꿋하게 어려움을 헤쳐나갔으면 좋겠다.

소싸움은 이 땅에 농경문화가 정착한 시대에 목동들이 망중한을 즐기기 위한 즉흥적인 놀이로 시작하여 차차 그 규모가 확산되어 부락단위 또는 씨족단위로 번져 서로의 명예를 걸고 가세(家勢) 또는 족세(族勢) 과시의 장으로 이용되어왔다.

소가 한곳에 모여 풀을 뜯다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힘을 겨루게 되고, 소의 주인도 자기네 소가 이기도록 응원하던 것이 발전하여 사람이 보고 즐기면서 소싸움으로 발전했다.
▲ 수원시 입북동 영인목장에서 키우는 싸움소 두마리

가까이서 만난 싸움소의 위세는 당당함 그 자체였다. 그들의 풍채 앞에서 은근히 위축이 되었다. 일체의 간사함과 졸렬함을 거부하는 '위풍당당' 그 자체였다. 이 친구들은 장소를 이동하기 위하여 차를 대면 기꺼이 올라탄다. 왜냐하면 다시 돌아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 한우들은 차를 들이대면 머뭇거리고 꺼린다. 한번 가면 다시 못 온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실제 한우가 이동하는 경우는 도축장으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도감 영농조합법인
▲ 경북 청도군 매전면 예전리 동창천 다리 너머 청도감 영농조합법인

청도의 감나무밭은 동창천을 따라 양 옆으로 시작이 되서 동창천에서 끝난다.
동창천을 '비단내' 한자어로 금천(錦川) 이라고 한다. 금천이란 이름처럼 동창천은 수량이 풍부하고 물이 맑은데다 곳곳에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운문댐이 생기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 청도감영농조합법인 이준수대표(40)

오늘도 아이는 식전 댓바람부터 분주 합니다.

아침 일찍 산으로 일 나가시는 할아버지를 따라가기 위해서 입니다.
할아버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지게에다 거름을 잔뜩 지고 손자의 고사리 손을 잡고 감 밭으로 향합니다. 얼마 전에 심어 놓은 감나무에다 거름을 주기 위해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쉬지 않고 이 산길을 다닙니다.

청도반시는 씨가 없는데 어릴 때부터 씨 있는 감을 보지 못했기에 감에는 원래 씨가 없다 생각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이는 건실한 청년이 되었고 내 고향 씨 없는 청도반시가 '보물'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청도반시로 감말랭이 곶감 사업을 생각하며 귀농이라는 꿈을 안고 고향으로 귀향하여 농촌생활을 시작합니다.

청년은 귀농을 하기 위해 몇 해 전부터 하나씩 하나씩 귀농사업을 준비했습니다.
대형할인점 직거래를 하면서 경영과 유통물류를 배우고 소비자도 공부했습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시행하는 귀농인 교육을 수료하고 친환경농산물, 추적이력관리 인증을 받고 홈페이지도 새로 만들었습니다. 유통관리사, 농산물품질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단단히 준비했습니다.

대부분 농민들의 생각은 생산은 얼마든지 하는데 판매하기가 어렵다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제일 어려운 숙제는 좋은 품질의 감말랭이를 저렴하게 많이 생산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생각합니다.

우리 가족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안전하고 위생적이고 맛있는 감말랭이를 경쟁력 있게 많이 생산할 수 있다면 판매는 제품 자체가 한다고 자신합니다.

[이준수대표의 회고]

청도감영농조합법인 대표 이준수씨는 고향이 청도 매전면이다. 중학교까지 나오고 고등학교는 경산에서 다녔다. 대학에서는 전산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회사 전산실에서 근무하다가 사돈의 요청으로 이마트 울릉도 오징어 납품회사를 맡아 경리부터 경영까지 8년간을 일했다. 자금의 흐름, 거래처관리, 매장관리, 세무회계관리, 직원관리방법 등을 두루 섭렵하면서 회사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2005년도였던 그 무렵, 고민에 빠졌다.

사돈은 온천지가 오징어인 울릉도의 자연조건을 가지고 사업을 하니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데 나는 무엇인가? 삶이란 어떻게 사는게 행복한 것이지? 의문이 꼬리를 물었고 마침내 결단을 내린다.

"그래! 나도 사방천지 감으로 둘러싸인 고향 청도로 내려가 감 사업을 하자"

어렸을 때는 감을 돈이라고 안 봤다. 친구들하고 감도 집어 던지며 놀았고 발에 채이는게 감이었다. 하지만 약 2만평의 감나무 밭이 있고 할아버지때부터 내려온 역사도 있었다. 그러던 중 매전면에 감말랭이 지원사업으로 자금이 내려왔고 아버지가 신활력사업의 일환으로 사업을 받았다.

경기도에서 사돈어른 회사일을 하면서 인연 맺은 거래처에 감말랭이와 반건시 납품을 시작했다. 전산실 근무덕에 홈페이지도 직접 제작해서 본격적으로 고향에서의 사업준비에 들어간 것이다.

청도감

우리나라에는 하늘이 내려준 가을 최고의 선물 '감'들이 다양하다. 상주둥시, 청도반시, 의성사곡시, 산청단성시, 구례장둥이, 영동월하시, 도근조생, 함안대봉시, 경산반시, 평핵무……. 하나하나 독특한 특성으로 우리들의 입맛과 함께 해왔다.
▲ 청도반시는 넓적한 쟁반같이 생겼다 해서 반시(盤枾)라 하며 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들중 '감중의 감' 청도반시는 종자 자체가 씨가 없는게 아니고 청도가 해발 고도가 높은 산들이 주변을 둘러싼 분지형 지형이라 타 지역의 감나무 수꽃가루가 자연 유입되기 어렵고, 안개가 자주 끼는 지형적 특성으로 한참 수정이 이루어져야 할 시기에 벌의 수분 활동이 제약되는 등의 지형적 요인으로 인해 생기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청도감나무도 다른 지방으로 시집가면 씨가 들어선다.

암수가 만나지 못하는 아픔이 간절하지만 육질이 연하고 당도가 높은 특성(18브릭스)이 있으며 씨가 없어 먹기에 편하고 가공에 매우 유리한 장점을 갖고 있다. 청도감은 9월말경부터 완숙되기 전에 따기 시작하고 수확과 동시에 가공작업에 들어간다. 가공작업은 설날이전까지 지속된다.

원료감(수확 당시에는 딱딱하다) 연화 작업을 하루 정도 하고 껍질을 벗겨 숙성실에서 하루를 보낸다. 건조실에서 수분을 빼고 냉동 보관한다. 이 일련의 과정에 6~7일이 소요된다.
▲ 감말랭이(우), 청도반건시(좌)

▲ 원료감(껍질 깐감)과 반건시(우측), 감말랭이는 1/4~1/5크기로 줄어들고 반건시는 1/3로 줄어든다.

이 과정을 거치면 감의 수분이 날라가고 고유한 단맛, 그 정수만 남게 된다.
보기만해도 침이 넘어간다. 참 달고 맛 난다. 자연이 품은 단맛은 단순한 설탕 맛 하고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감이 내어준 단맛에 각종 영양소가 골고루 담겨 있으니 '하늘이 내려준 가을 최고의 과일'임이 분명하다.

고유하다는 것

고유하다는 것은 아주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나는
과정이고 결과다

자연과
끊임없이 다투고 순응하면서

자신의 생존에 적합한
조건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어느 시점, 어느 순간 최적의 상태이다

문화와
역사로 봐도 그렇고

사람과
문명으로 봐도 그렇다

눈에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고유한 것은
그 나름의 분명한 자기원인과 결과를 지니게 마련이다

청도의 자연환경
청도반시 & 청도사람들

하나같이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청도 여행을 하면서 단순하게 청도 감을 반건시나 감말랭이를 중심으로 한철의 특산품 컨셉으로 들여다 보는 것은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2010년 6월 내 눈앞에 보여진 청도의 감나무, 청도의 자연환경, 청도사람들 그리고 청도를 움켜주고 있는 모든 것들을 최대한 보려고 노력했다. 청도는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기에 함부로 예단하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 되겠지 싶었다.

청도 매전면 예전리를 이루는 것들
▲ 청도감 영농조합법인 감나무농장과 홍시를 맛나게 드시는 어른들

조상들로부터 이어 내려온 내력이 가득했고 땅은 환경친화적인 재배방식으로 유기물질의 다양성이 존재했다.
이가 없으신 할머니가 홍시를 맛나게 들고 계신다. 이준수대표가 어린 갓난아기때부터 함께 해온 마을 어르신….

홍시는 이가 불편하신 어른들께는 아주 훌륭한 간식이고 영양식이었다. 쪼글쪼글 이 없는 볼살, 오물오물 마치 아이처럼 좋아라 하시며 평생 몸에 익은 홍시 맛을 즐기시던 할머니도 생각나고…. 어머님께 이번 가을에 제대로 된 홍시를 보내드려야겠다.
▲ 두껍아 두껍아 헌집줄께 새집다오. 오래된 지게와 가득 담긴 청도감, 전통과 문화와 살아가는 방식이 아직 남아있는 고향이다.

▲ 보리밭전경과 살구가 한창이다. 살구 맛은 폐부 깊숙히 스며있는 맛이다. 난 톡하고 깔끔하게 과육과 분리되는 살구씨가 너무 기특하고 좋다.

▲ 동창천에 고디(다슬기)가 많이 산다. 자연하천의 아름다움과 기능성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연륜이 깊은 감나무가 수두룩하다.

다정다감 기분 좋게 만드는 먹을거리
▲ 출장 길, 주인장으로부터 받아 든 기억나는 감

왼쪽은 전남진도 김종북 농장에서 무화과와 같이 나온 감이고 오른쪽은 무주구천동 복분자 농장에서 받은 정감어린 홍시다. 맛도 맛이고 감이 갖는 선연한 이미지가 안먹어도 마음 가득 훈훈해진다. 감은 그렇게 사람과 사람사이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였고 조금은 서먹했을 관계도 단박에 말랑말랑하게 해주는 '도깨비 방망이'이기도 했다. 주고받는 사이에 서로의 마음이 있는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 청도감 영농조합법인 청도반건시

감나무의 속명'Diospyros'는 '먹거리의 신'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감나무를 일곱가지의 덕이 있는 나무 '칠덕수(七德樹)'라 부른다.

첫째 수명이 길고
둘째 녹음이 짙으며
셋째 단풍이 아름다우며
넷째 열매가 맛있으며
다섯째 잎은 훌륭한 거름이 되고
여섯째 날짐승이 둥지를 틀지 않으며
일곱째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

감을 선물하고 먹는다는 것은 7가지의 의미를 먹는 것이고 축복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청도의 고유한 먹거리 청도반시, 청도의 보물 청도반시.

보물섬 청도를 찾아 떠난 귀향청년 이준수를 만나는 여정은 내게는 즐거운 추억이고 유쾌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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