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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거탑> 속 의료사고 피해자, 기댈 곳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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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거탑> 속 의료사고 피해자, 기댈 곳 생겼다"

의료분쟁조정법 통과…"감정단 공정성 확보가 관건"

의료 사고를 당한 환자가 장기간·고비용의 소송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피해를 구제받을 길이 열렸다. 한국과 일본에서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소설 <하얀 거탑>에 나오는 것과 같은, 의료 사고 피해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막대한 소송 비용 때문에 억울함을 참고 지내야 했다. 그런데 이들이 기댈 수 있는 제도가 생긴 것. 그러나 사고 입증 책임이 환자에게 있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의료분쟁 조정기구를 설립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안(이하 의료분쟁조정법)'이 지난 1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안이 내년 3월부터 시행되면 의료분쟁 조정건도 늘어날 전망이다.

▲ 해마다 늘어나는 의료사고 소송건수에 비해 환자들의 승소율은 높지 않다. ⓒ한국백혈병환우회
지금까지 환자들은 병원 측의 과실이 분명한 의료 사고가 나도 소송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의료심사조정위원회나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하는 방법도 있지만, 위원회가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데다 주로 소액사건을 맡아서 이마저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았다.

결국 환자들은 평균 2~3년(대법원까지 7년)이 걸리는 소송기간과 1심에만 평균 500만 원 이상 드는 변호사 비용을 감당해야 했다. 게다가 의학적 전문성이 없는 환자 측이 병원의 과실을 규명하기 어려워서 2006년 환자가 소송에서 이긴 경우는 일부승소율을 합쳐도 22.1%에 머물렀다.

양측 합의 시 의사는 형사처벌 면해

의료분쟁조정법은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라는 독립기구를 설치해 환자의 분쟁 비용을 낮추고 분쟁 기간을 최대 120일로 단축시켰다. 의료사고 피해자가 구제신청을 하면 중재원은 의사 2명, 법률가 2명, 시민단체 인사 1명으로 구성된 '의료사고 감정단'을 만든다. 감정단은 의료진의 잘못이 있는지, 환자의 피해는 어느 정도인지 조사한다.

감정단의 조사가 끝나면 '의료조정위원회'는 이를 토대로 의료진과 환자의 적정 배상액을 제시하며 양측을 중재한다. 이 과정에서 어느 한쪽이 중재안을 거부하면 의료소송으로 간다. 환자가 중재를 거절하면 조정을 거치지 않고 처음부터 소송으로 갈 수도 있다.

법안은 양측이 중재안을 받아들이면 피해자가 의료진 측에 '업무상 과실치상죄'에 대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한 형사처벌 특례조항을 담았다. 단 피해자가 생명의 위험을 겪거나 불구 또는 불치나 난치병이 걸린 경우는 제외된다. 또한 의사가 주의 의무를 다하고도 어쩔 수 없이 생긴 무과실 사고에 대해서는 분만에 한해 국가가 보상을 해주기로 했다.

의료분쟁조정법 통과를 둘러싸고 의사단체, 환자단체, 시민단체는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 의사단체와 환자단체는 일단 법안을 반기는 분위기다. 의료진 측은 형사처벌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고, 환자 단체는 저비용으로 신속하게 피해를 구제받을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 드라마 <하안거탑>의 한 장면. ⓒMBC

시민단체 "환자가 의료 사고 증명하기란 불가능"

그러나 환자와 의료진 중에 누가 사고 입증 책임을 질 것인지 정하지 않아 반발도 적지 않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해 연말 국회 복지위원회를 졸속으로 통과한 수정법안에는 이 법의 핵심 골격이자 법 제정의 실효성을 판단하는 주요 근거인 입증책임전환 규정이 삭제됐다"고 비판했다. 의료행위는 전문성과 밀실성을 특성으로 하는 데다, 진료기록마저 의료기관에 의존해야하기 때문에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 시민이 의료 사고를 증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경실련은 "입증책임이 전환되지 않으면서 형사책임특례만을 보장할 경우 의료인은 의료사고의 사실관계를 밝히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고 조정제도는 당사자 간의 합의를 종용하는 식으로 사건 해결에만 주안점을 두게 돼 의료사고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도 입증 책임 조항 삭제에 대해서는 우려를 내비쳤지만,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감정단을 구성하는 데 희망을 걸고 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회장은 "가재는 게 편이라고 감정단의 의사들이 너무 의료진 편에만 설까 걱정된다"며 "감정하는 의사가 얼마나 의학적 양심에 따라 감정하느냐, 변호사와 시민이 얼마나 감시하느냐에 따라 이 제도의 성패가 달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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