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냐, 성장이냐'
정부는 물가 안정을 고르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말로는 그랬다.
이명박 대통령은 10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열린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올해 국정과제 중에서 성장과 물가가 있는데 우리가 물가에 더 심각하게 관심을 갖고 국정의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또한 "올해 상반기에는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를 물가안정에 두고 전방위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했다.
다만 단서가 붙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물가 문제는 우리가 최선을 다하더라도 이른바 비욘드 컨트롤(Beyond Control)"이라고 했고, 윤증현 장관은 "전체 경제운용 기조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윤 장관의 발언은 앞으로도 고환율-저금리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관련 기사 : 靑 "물가에 우선순위 두지만 5%성장 기조 안 변해")
여기에 임종룡 기획재정부 1차관이 11일 "환율을 조정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고 못 박았다. '고환율' 정책이 물가 불안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사실상 물가 안정보다 성장에 방점을 둔 정책을 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관련 기사 : "재벌은 선물을 고마워하지 않는다")
"물가 폭등은 고환율-저금리 때문"
이러한 정부의 태도에 대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정면으로 비판했다. 경실련은 11일 성명을 내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부가 물가가 너무 올라 인플레이션에 대한 위험성이 매우 커졌다는 것을 이제라도 인식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경실련은 "정부는 물가 폭등을 외부 요인으로 돌리지만, 물가 관리 실패의 가장 큰 이유는 고환율-저금리로 대변되는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에 있다"고 강조했다.
고환율 정책은 수출 대기업에게만 이익을 줄 뿐이라는 게다. 수출 대기업은 환율 격차로 최대 이익을 누렸지만, 그만큼 소비자들은 오른 수입 물가를 감당해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부의 저금리 기조는 대출을 부추겨 유동성 증가를 가속화했다는 분석이다. 역시 물가 상승의 한 원인이다.
물가 불안에 대해서는 이미 작년 상반기부터 경고의 목소리가 나왔었다. 경실련은 "이명박 정부는 작년에도 6% 경제성장률에 집착하고, G20 정상회의를 자신의 치적으로 만들기 위해 거시지표들을 인위적으로 좋게 포장하려고 고환율-저금리를 주축으로 한 성장 기조의 경제정책을 포기하지 않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부자 감세, 4대강, 구제역도 물가 폭등 불러"
한발 양보해 이번 물가 상승에는 유가 불안 등 외부적 요인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부는 여전히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부자 감세'와 4대강 예산 조기 집행 등이 그렇다. 경실련은 두 정책이 시중에 과도하게 유동성을 풀어 물가 상승 요인을 자극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배추 파동'과 구제역 사태에 대한 정부의 '늑장 대응'은 이명박 대통령이 집중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힌 이른바 'MB 물가지수'를 올렸다. 임의로 소비를 줄일 수 없는 생활필수품 가격이 오르면서 서민들의 고통은 더욱 가중된 셈이다. (☞ 관련 기사 : 'MB 물가', 전체 소비자물가보다 2배 높아)
경실련은 "신선식품이나 축산품에 대한 공급예측을 실패한 점, 전‧월세 상승을 고려않고 임대주택 공급 확대를 게을리 한 점 등 각종 정책 실패에 대한 부분에 대해 눈감으려 한다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정책적 신뢰는 더욱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단체는 "유가 급등으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은 앞으로 3~6개월 후 생산자물가와 소비자물가 상승을 또다시 압박해 인플레이션 심리를 자극할 것"이라며 "정부는 단기적으로 대기업을 찍어 누르는 가격통제식 물가대책에서 벗어나 금리 및 환율 조정, 재정집행 속도 완화 등 거시적인 경제정책으로 물가안정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정책 신뢰를 높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