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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의료는 공짜가 아니다"

[복지국가SOCIETY] "26등이 3등더러 '저질'이라 욕하는 코미디"

'무상의료'가 다시 등장했다. 진보정당이 처음 '무상의료' 공약을 전면에 내걸었던 2004년 이후 6년 만의 화려한 복귀이다. 무상의료가 인구에 회자되는 것 그 자체가 무척 반갑다. '반대'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관심'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 사회의 지배담론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반복적인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무상의료를 둘러싼 세간의 말잔치가 더욱 질펀하게 벌어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런데 보수진영은 무상의료에 '공짜의료' 딱지를 붙이며 비난하고 있다. 무상의료 주장은 무책임한 정치적 언동이며, 무상의료는 저질일 것 같다는 이미지를 형성하려는 것이다. 또 무상의료는 의료이용의 폭증으로 의료재정을 거덜 낸다고 주장한다. 정말로 무상의료는 '공짜의료'인가? 무상의료는 '저질의료'인가? 그리고 무상의료는 불필요한 의료비의 폭증을 야기하는가?

무상의료는 '공짜의료'인가?

무상의료는 공짜가 결코 아니다. 무상의료는 '질병 치료와 건강 유지에 필요한 의료이용을 돈 때문에 포기하거나 미루는 일이 없도록 보장하는 의료'이다.

실제로 무상의료를 실현하고 있는 많은 국가들에서 외래진료나 입원진료 그리고 의약품 처방을 받을 때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이 있다. 다만, 환자 부담금 액수가 미미하다. 환자 부담금은 환자에게 의료서비스가 공짜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시키되(즉, 비용을 인식시키되), 필요한 의료이용에 장애를 초래하지 않는 수준으로 설정되어 있다.

또, 무상의료는 '돈을 안 내는 의료'가 아니라 '병의원 방문할 때 내야 할 돈을 미리 앞질러 내는 의료(선지불, Prepaid payment)'이다. 즉, '돈을 먼저 내느냐? 나중에 내느냐?'는 시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결국에는 누군가가 비용 부담을 해야 한다. 누가 부담하든 간에, 의료비용 중에서 선지불된 몫이 클수록 국민은 병원비 걱정과 의료 불안에서 벗어나 안정된 삶을 더 잘 영위할 수 있게 된다.

선지불해야 할 비용을 누가 감당할지는 별개의 논점이다. 세금이든 보험료든 '국민은 얼마나 부담하고, 기업은 얼마나 부담할지, 그리고 소득계층별로는 얼마를 부담할지?'는 해당 사회의 가치와 사회적 합의, 그리고 사회세력의 힘의 관계에 따라 결정될 사안이다.

무상의료를 실현하는 복지국가에서는 '사회구성원들이 전반적으로 조금씩 더 부담하면서, 기업과 고소득층이 통상적인 수준보다는 더 많은 책임을 지는 것'이 일반적 모습이다.

보수진영은 공짜로 병원 다니려는 못된 심보를 버리라고 국민에게 삿대질을 하고 있다. 그리고 복지란 아무런 대가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선물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일부 진보단체들도 세상 사람들이 무상의료를 '공짜의료'로 오해하도록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그러나 무상의료란 대가 없이 거저 얻을 수 있는 선물이 아니다.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

무상의료는 '저질의료'인가?

▲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는 건강보험비 1만1000원을 더 내고 모든 의료비를 '건강보험 하나로' 해결자는 모토를 걸고 있다. 사진은 건강보험 하나로 거리서명에 참여하는 시민. ⓒ프레시안(자료사진)
최근 무상의료 논란 와중에 접한 어이없는 주장의 백미는 무상의료가 '저질의료'이고, 무상의료를 실현하고 있는 복지국가 국민은 이런 '저질의료' 때문에 도탄에 빠져 있다는 보수언론의 보도이다.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서 몇 개월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고, 의사와 간호사는 관료적이고 불친절하며, 원하는 검사나 치료도 제대로 못 받고 있다는 보도 내용을 보고 있자면, 무상의료를 하면 정말로 큰 일 나겠다는 겁이 덜컥 날 정도다.

정말로 보수언론의 보도처럼 무상의료는 저질의료일까? 무상의료를 실현하고 있는 복지국가 국민의 건강수준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훨씬 양호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자기 나라 의료제도에 대한 국민 만족도는 어떨까? 보수언론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자기 나라 의료제도에 대한 복지국가 국민의 불평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어야 한다.

2003년 세계보건기구가 발간한 'Health Systems Performance Assessment' 보고서에는 OECD 16개 국가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만족도 조사 결과가 실려 있다. 16개 국가 중 무상의료의 대표 국가라고 할 수 있는 스웨덴과 영국, 그리고 무상의료와는 거리가 먼 미국의 결과를 비교해 보자. 만족도 조사영역 중 자율성과 선택권은 미국이 우세한 반면, 환자의 비밀보호, 인간적 존엄 보장, 치료에 지지적인 환경 제공 등은 스웨덴과 영국이 미국보다 우세하다(그림 1).

각 영역별 결과를 종합하면, 이들 3개 국가 간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비슷한 수준이다. 이것이 국제적인 통념이고 상식이다. 특히,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이 만족도 조사는 지난 1년 사이에 입원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환자만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는 점이다.

돈 때문에 입원치료를 포기한 사람의 의견은 이 조사에 반영되지 않았다. 영국과 스웨덴에서는 돈 때문에 입원치료를 포기하는 일은 아예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너무나 흔한 일이다. 이런 점까지 고려한다면, 자기 나라 의료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는 영국과 스웨덴이 미국보다 월등히 우월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의료산업 측면에서는 어떨까? 무상의료는 새로운 기술의 혁신과 활용 동기를 약화시킬까?

이것 역시 근거 없는 주장이다. 우리나라 지식경제부 산하기관인 산업정책연구원에서는 IPS 모델을 활용해서 각 국가별 산업경쟁력을 비교하고 있다. 이 모델로 각 국가별 의료산업경쟁력을 비교한 결과, 우리나라의 의료산업경쟁력은 비교 대상 60개 국가 중에서 중간 수준인 26위로 분석되었다.

우리나라는 국가의 절대 규모를 기준으로, 스웨덴, 스페인, 영국, 프랑스, 대만 등과 함께 '중간 규모 그룹'에 속해 있는데, 놀랍게도 '중간 규모 그룹' 국가 중 의료산업경쟁력이 가장 높은 국가는 바로 스웨덴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노르웨이가 잇고 있다. 전체 순위도 스웨덴이 3위, 노르웨이가 8위로 나타났다. 26등 먹은 우리나라가 3등 먹은 스웨덴, 8등 먹은 노르웨이를 일컬어 '저질'이라고 핀잔하고 있는 셈이다. 행여 스웨덴이나 노르웨이가 우리나라에서 이런 웃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까봐 걱정된다.

▲ 그림1 . 스웨덴, 영국, 미국 국민의 의료제도에 대한 영역별 만족도 조사 결과

자료: WHO. Health Systems Performance Assessment: Debates, Methods and Empiricism. 2003

무상의료는 의료비 지출을 급증시키는가?

먼저 분명히 할 점이 한 가지 있다. 건강보험하나로 시민회의를 위시한 제 단체와 정당 등이 상정하고 있는 일차 목표는 '입원진료의 보장률을 90%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입원 중심의 사실상 무상의료'와 '외래와 입원을 합친 연간 본인부담 100만원 상한제'이다. 질병으로 인한 가계 파탄을 막기 위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것이 바로 '입원진료비'라는 인식 때문이다.

그런데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무상의료를 시행하면, 의료비 지출이 지금보다 무려 2배 이상 폭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무상의료가 의료 남용을 야기한다는 근거로 제시하는 대표적 사례 2가지를 보자.

첫째는 2006년 시행된 6세 미만 영유아 입원 법정본인부담 면제 정책이다. 법정본인부담이 면제되자, 불필요한 의료이용이 급증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건강보험하나로 이슈 리포트'에서도 밝힌 것처럼, 이 정책으로 인한 불필요한 의료이용은 없었다(☞관련 기사: "무상의료 때문에 과잉 입원?…<조선>, 거짓선동 멈춰라!").

법정본인부담 면제 이후에 늘어난 의료이용은 통상적인 증가 추세를 따라간 것에 불과했다.

이런 사실은 법정본인부담 면제 정책이 시행되고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발표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보도 자료에서도 동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법정본인부담 면제 정책으로) 수진자 1인당 입원일수는 2.53% 증가하였고, 입원일당진료비는 3.82%의 증가율을 보여 급여확대 후 진료비용의 증가가 있으나, 증가폭이 자연증가율(수가인상, 공급자요인, 의료욕구 증가 등 연간 10% 수준)을 약간 웃도는 수준으로 본인부담 면제에 따른 진료비 급등 현상은 아직 관찰되지 않았다(국민건강보험공단 보도자료, 2007.06.29)."

둘째는 본인부담이 없는 의료급여(과거 의료보호) 환자들의 의료 남용이다. 본인부담이 없다 보니, 굳이 병의원에 오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병의원을 방문하고(일인당 이용횟수 증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검사나 치료를 해서(일당 진료비 증가) 의료급여 지출이 폭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이미 4년 전에 사실 관계가 판명된 사안이다.

2006년 말, 보건복지부는 의료급여 환자의 심각한 의료 남용을 줄이기 위해 이들에게도 본인부담을 부과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분석결과가 발표되면서, 보건복지부 정책의 기본 전제가 틀렸다는 사실을 밝혀졌다.

2003년~2005년 기간 중의 진료비 지출 증가에 영향을 미친 요인을 분석해 보니, 일인당 이용횟수 증가와 일당 진료비 증가가 전체 의료급여 진료비 증가에 미친 영향은 약 16%였다. 그런데 같은 기간 동안, 건강보험 진료비 증가에 이들 요인이 미친 영향은 약 19%였다.

건강보험보다 의료급여에서 이들 요인이 미친 영향의 크기가 더 작았던 것이다. 본인부담이 없어서 의료급여 환자들이 불필요하게 의료 남용을 했다면, 이들 요인이 미친 영향의 크기는 건강보험의 그것을 훌쩍 상회했어야 한다. 물론, 본인부담이 면제되면서,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한 것으로 의심되거나 확실시되는 개별 사례들은 분명히 있다. 그리고 비록 일부일지라도, 이런 의료 남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방지하는 노력과 안전장치도 필요하다. 그러나 극히 일부의 문제를 마치 전체의 문제인양 과장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무상의료는 의료비 총량을 늘리는 정책이 아니라 환자와 건강보험의 비용 분담 비율을 조정하는 정책이다. 그 동안의 국제적 경험과 연구결과에 따르면, 무상의료 수준이 높을수록 의료비 지출 증가율이 오히려 더 낮음을 알 수 있다.

'그림 2'는 2000년 이후의 국가별 의료비 지출 증가율과 무상의료 수준 간의 관계를 나타낸 것이다. 왜 이럴까? 우리나라의 경우를 들어 설명해 보자.

우리나라에서 의료비 증가의 주범은 행위별수가제와 비보험 진료였다. 의료행위 하나하나에 가격을 매겨 건강보험에서 비용을 지불해주다 보니, 당연히 의료이용량이 늘어나 지금은 OECD 평균의 2배에 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의료이용량, 특히 입원이용량의 증가 추세가 눈에 띄게 수그러들었다. OECD 보건통계를 보면, 외래진료의 빈도 증가 추세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지만, 입원진료의 빈도(평균 입원일수)는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행위별수가제 하에서 의료공급자들이 의료이용 빈도를 이미 최대치로 끌어올려 놓은 상황이기 때문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이상의 추가적인 빈도 증가가 쉽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비보험 진료는 여전히 심각한 문제이다. 각종 비보험 검사와 치료, 투약은 어떤 항목이, 어떤 가격으로, 얼마나 환자에게 제공되는지에 대한 기본 현황조차도 파악되지 않고 있으며, 파악할 수 있는 방법도 마땅치 않다.

의료공급자들은 시시콜콜하게 참견 당하는 건강보험 진료보다 사회적 관리와 통제에서 자유로운 비보험 진료를 선호한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관리와 통제의 부재 속에서 의료공급자에 의한 과잉공급과 이로 인한 환자의 의료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만약,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획기적으로 강화되어서, 대부분의 비보험 진료가 건강보험 진료 항목으로 전환된다면, 지금처럼 환자에게 무분별하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진다.

즉, 무상의료는 지금까지 아무런 관리와 통제를 받지 않은 채, 환자의 의료비 부담을 늘려왔던 비보험 진료를 사회적 관리와 통제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이것이 무상의료 수준이 높은 국가가 의료비 증가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핵심 기반이었다.

"무상의료가 의료비 지출을 급증시킨다"라는 말은 "앞으로 급증할 의료비 지출에 대응하기 위해서 무상의료를 시행해야 한다"라는 말로 바뀌어야 한다.

▲ 그림 2. 무상의료 수준과 의료비 지출 증가율(자료: OECD Health Data 2010)

무상의료, 누가 찬성하고 누가 반대하나?

특정 사안이 어떤 효과를 발생시키고,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 지는 누가 찬성하고 누가 반대하는지를 보면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는 건강보험하나로 시민운동에 대한 반대 입장을 진즉에 밝혔다.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그리고 민주당으로 이어지는 무상의료 주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무상의료로 의료이용이 폭증한다면, 이는 의료공급자가 가지게 될 몫이 그만큼 커진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쌍수를 들어 반겨야 할 텐데, 이들은 왜 한사코 반대하는 것일까?

무상의료는 '공짜의료'가 아니다. 무상의료가 '저질의료'는 더더욱 아니다. 병원비 걱정 없는 세상을 향한 국민의 열망을 잠재우기 위해 멀쩡한 남의 나라까지 끌어들여 난도질하는 보수언론의 터무니없는 행보가 놀랍다. 그리고 무상의료가 불필요하게 의료비를 증가시키지도 않는다. 오히려 불필요한 의료비 증가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리고 무상의료는 국민이 병원비 걱정과 의료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 준다. 이것이 무상의료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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