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는 11일 논평을 내고 "한국과 미국이 지난 10일 발표한 합의 문서에 따르면, 한미 FTA 공동위원회는 국내 절차를 이행하지 않아도 협정상의 약속을 수정할 권한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11일 정부종합청사에서 한미 FTA 재협상 서명 강행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한미 양국의 통상교섭본부장이 공동의장이 되는 공동위원회에 '사실상 재협상' 권한을 부여한다면, 미국이 협정상의 약속을 수정하자고 요구할 때마다 별도의 견제 없이 '미국 퍼주기'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범국본은 "원 협정 문안이 재협상에 대해 국회가 견제할 길을 원천적으로 차단했고 이번 합의 문안이 이를 분명히 했다"며 "따라서 가령 양국의 통상관료들만 합의하면 한국의 자동차 관세 유예 기간을 더 늘릴 수도 있고,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의 유예기간도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조치는 미국이 다른 국가와 체결한 FTA와도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왔다. 공동위원회에 이처럼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 것은 미국의 다른 FTA에서도 전례가 없다는 분석이다. 범국본은 "미국이 호주, 바레인, 싱가포르와 체결한 FTA에서는 협정문의 개정뿐만 아니라 협정상의 약속을 수정할 때도 각 당사국의 적법절차를 완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이번 재협상 결과는 굴욕적이고 불평등하다"고 주장했다.
"재협상 합의문서, '조약문' 아니라 '행정협정문안'에 불과"
재협상 합의 과정에서 '조약문'이 아니라 '행정협정문안'이라는 꼼수를 썼다는 점도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미국은 지난 2007년 무역촉진권한(TPA: Trade promotion Authoritiy)에 따라 한미 FTA 조약문을 체결했다. TPA에 따라 체결된 무역 협정에서는 의회가 협상 과정이나 내용에 관여할 수 없고, 최종 협상안에 승인만 할 수 있다. TPA가 적용되면 절차를 간소화해 신속하게 무역 협정을 도입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만약 협상문을 수정하면 미국은 TPA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미국이 낸 고육지책은 '국회의 승인 없이 정부가 단독으로 체결할 수 있는 국가 간 협정'인 행정협정문안 방식이다. 원 협정문안과는 별도인 행정협정문안을 만들면 미국은 원안은 원안대로, 재협상안은 재협상안대로 처리할 수 있다.
남희석 범국본 정책위원장은 "관례상 외교 조약에는 하나의 문서에 조약 당사자 두 사람이 동시에 서명해야 하는데, 이번 합의문서는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가 보낸 서한에 김종훈 한국 통상교섭본부장이 확인 서명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고 지적했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외교 서한 형식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여당은 이번 재협상이 '별개 협상'임을 강조하며 "원안은 원안대로, '별도 조약'은 별도 조약대로" 각각 국회에서 처리하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야당은 재협상 합의문서가 2007년 한미 FTA와 별개의 조약으로 볼 수 없으므로 원안과 추가협상안을 동시에 국회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범국본 또한 "통상관료들끼리 주고받은 외교서한을 가지고 국회 동의절차를 요청하는 편법을 부리지 말고, 원 협정문안이 수정된 전체 협정문을 하나의 조약으로 보고 국회 동의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범국본은 이날 1시 서울 종로구 정부종합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미 FTA 재협상 서명 강행을 규탄하고 협정을 폐기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대표는 "정부는 3년 전에 FTA를 체결했을 때도 '이익의 균형을 이뤘다'고 하더니, 미국에 많은 조건을 양보한 지금도 '이익 균형을 이뤘다'고 주장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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