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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폭탄' 프레임을 깨려면…"

[이태경의 고공비행] "'시장생태계'부터 복원해야"

융성하는 '복지국가' 담론을 제압하기 위해 조·중·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보편적 복지와 이로 인한 정부의 재정적자에 초점을 맞춰 복지국가론을 거세게 공격하고 있다. 조만간 이들은 한나라당이 제기하고 있는 '세금폭탄론'의 확성기 노릇을 할 것이다.

시대정신이 된 '복지국가론'에 위기의식을 느낀 조·중·동이 '복지국가론'을 음해하기 위해 나선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한국사회 주류의 이해관계를 가장 극명하게 대변하는 신문이 조·중·동이니 말이다. 문제는 '복지국가론'에 대한 조·중·동의 공격이 무시하기 어려울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중·동의 '복지국가론' 흔들기가 무서운 건 단순히 이들이 가진 매체력 때문만은 아니다. 악의적인 왜곡과 과장으로 점철되긴 했어도, '복지국가론'에 대한 조·중·동의 비판이 대중의 동의를 일정 정도 끌어낼 만한 논리적 힘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조·중·동이 '복지국가론'의 무력화를 위해 주로 사용하는 논리는 '보편적 복지의 전면적 시행→ 천문학적인 복지예산 확보 필요 → 만성적인 재정적자 발생 → 대대적인 증세(세금폭탄) 불가피'라는 것인데, 이러한 논리구조는 '국가가 나에게 해준 게 뭐가 있느냐'는 생각에 사로잡힌 대한민국 유권자들-이들 대부분은 납세자이기도 하다-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매우 효과적인 논리적 연관고리로 구성되어 있다.

조·중·동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할 것이 확실한 '세금폭탄' 프레임은 논리적 정합성이나 현실 적합성 측면을 떠나 그 자체로 가공할 만한 위력을 발휘한다. 이미 조·중·동은 참여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설계하고 집행한 종합부동산세에 세금폭탄이라는 딱지를 붙여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 바 있다. 종부세의 납부 대상은 전체 세대 가운데 고작 2%에 불과했다.

물론 복지국가 건설을 주창하는 그룹 가운데에는 최근 들어 국민들의 인식이 '세금을 더 내더라도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 좋다'는 쪽으로 확연히 바뀌고 있으며, 지난 6.2지방선거에서 맹위를 떨친 무상급식 의제가 그 실증적인 증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력 정치인이나 일군의 학자들 및 시민운동가들이 '세금이 복지이고, 증세 없는 보편적 복지는 허구다'라고 주장하는 배경에는 이 같은 상황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최근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 복지 확대를 위해서 세금 부담을 감수하겠다는 여론이 고작 절반 남짓-여론조사 대상자들은 흔히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선호하는 성향이 강하므로 이들의 선호가 얼마나 견고할지는 의문이다-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 무상급식에 대한 유권자들의 호응과 지지를 보편적 복지에 대한 그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견강부회일 수 있다는 점, 무상급식 의제가 야권의 6.2지방선거 승리에 미친 영향이 다른 요인들-예컨대 이명박 정부의 폭주에 대한 견제심리의 발동, 천안함 사건으로 촉발된 대북 강경 드라이브에 대한 제동의지의 표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미안함, 야권 연대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미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증세의 때가 도래했다는 판단이나 증세를 기준으로 전선을 구축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은 자칫 패착(敗着)이 될 수도 있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보편적 복지나 그에 수반하기 마련인 증세가 불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무차별적으로 펼칠 '세금폭탄론'을 효과적으로 분쇄시키기 위해서는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정책대안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세금폭탄론'에 복지국가가 좌초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시장생태계 복원을 통한 복지수요의 최소화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하고 합리적인 증세 로드맵의 설계이다.

▲ 무상급식이 실시되는 학교 풍경. 무삭급식으로 시작된 보편적 복지에 관한 논쟁이 한국 사회를 강타했다. ⓒ프레시안(이경희)

시장생태계 복원을 통한 복지수요 최소화를 도모해야

역동적 복지국가 건설을 꿈꾸거나 복지국가 동맹을 기획하는 그룹이 증세 이전 혹은 증세와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중 하나가 시장생태계 복원을 통한 복지수요의 최소화이다.

복지국가의 주요한 개념적 징표 가운데 하나는 조세제도와 사회제도를 통한 '구매력 이전 정책' 혹은 '자원 및 가치의 재분배 정책'이다. 복지국가가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자원 및 가치의 1차적 분배를 책임지고 있는 시장기구가 사회 구성원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만큼의 후생을 적절히 공급하는데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시장기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시장생태계가 그 건강성을 회복한다면 국가의 개입을 통한 '가치 및 자원이 재분배', 즉 복지의 필요가 현저히 줄어든다는 뜻이다.

시장기구를 '악마의 맷돌'로 간주하거나 '가치와 자원의 분배에 있어 구조적이고 항상적인 왜곡 및 편중을 야기하는 매커니즘'으로 이해하는 구좌파적 시각이 아니라면, 시장생태계의 건강성 회복을 통한 복지수요의 최소화에 반대할 복지국가론자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면 병들고 망가진 시장생태계가 일으키는 폐해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심대함을 알 수 있다. 기실 한국사회가 직면한 최대의 현안이라 할 양극화-자산양극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양극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양극화,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의 양극화 등-는 이 시장생태계의 파괴에서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황폐해진 시장생태계를 관통하는 열쇳말은 특권과 반칙이다.

천문학적인 불로소득을 전유하면서 수다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일으키는 대토지 소유자들, 국가로부터 무한대의 특혜를 누리면서도 기본적 납세의무마저 해태하는 재벌총수들, 중소기업에 대한 지속적인 수탈을 자행해 중소기업의 정상적인 성장을 방해하고 이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기회를 박탈할 뿐 아니라 내수까지 위축시키는 재벌집단들, 출신대학을 기준으로 고정불변의 사회적 신분을 정하고 이를 통해 과점적 지대(地代)를 수취하는 학벌지상주의자들과 그 추종자들이 시장생태계 교란의 주범이고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위치한 포식자들이며 특권과 반칙의 달인들이다. 정치인, 관료, 주류언론, 검찰 등은 이들의 든든한 파트너이다.

이들이 전유하고 있는 특권과 반칙을 혁파해야 하며, 이들이 교란시키고 있는 시장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 그래야만 시장의 1차적 분배 기능이 정상화되고 복지수요가 현저히 줄어든다. 예를 들어 보유세 정상화, 토지공공임대제 등을 통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면 토지불로소득의 사유화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자산양극화, 빈부격차 심화, 국가재정의 낭비와 왜곡, 산업구조의 후진화, 노사갈등의 격화, 고지가 등으로 인한 국가경쟁력의 약화 등-이 대거 해소될 뿐 아니라, 어지간한 구매력이 있는 사람들은 시장에서 주택을 구매하기가 용이해지기 때문에 굳이 임대주택을 요구하지 않게 되어 주거복지를 위한 유효한 정책수단이라 할 공공임대주택 수요가 크게 줄어든다.

또한 중소기업을 수탈하는 재벌집단을 단호히 징치해 공정한 거래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구축한다면 소기업→중기업→중견기업→대기업으로의 성장이 지금보다 한결 용이해질 것이고, 이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 및 내수진작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는 실업급여 등에 대한 예산 지출을 상당히 경감시킬 것이다.

이처럼 시장기능의 회복 및 시장생태계의 복원은 시장임금을 높이는데 그치지 않고 복지수요를 줄이는 이중의 역할을 수행한다.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시장기능의 회복 및 시장생태계의 복원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심화 및 확장, 실질적 법치주의의 확립이 시장생태계의 복원을 가능케 할 것이며, 강하고 유능하고 정의로운 국가가 이의 실행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정교한 증세로드맵을 설계하자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시장의 1차적 분배기능이 정상화되고 시장생태계의 복원이 이뤄진다면 복지수요는 지금보다 많이 줄어들 것이다. 그럼에도 역동적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재정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를 마련하기 위한 대강의 원칙을 세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대강의 원칙은 첫째 증세 이외에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방안을 최대한 강구하고, 둘째 증세는 불로소득에 대해서 먼저 하며 근로소득은 나중에 하는 것으로 정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재정 마련을 추진함에 있어 무엇보다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각종 조세특혜 제도의 대대적인 개혁, 공평과세, 조세정의의 원칙이다. 즉 각종 조세 특혜를 누리고 탈세를 자행하면서도 아무 일 없이 건재한 무리들을 그냥 두고는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는 납세자들에게 증세를 설득할 길이 없다. 불로소득에 먼저 증세하고 근로소득에 대해 나중에 증세하는 것도 조세정의 차원에서 보면 지극히 정당한 조치이다. 이런 원칙들을 기준으로 증세 로드맵을 거칠게 설계하면 아래와 같다.

①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무분별한 부자감세를 철회하고 환원시키면 대략 20조 원에 달하는 재정이 마련되는데 이 중 일부를 즉시 복지재원으로 사용한다.
→ ② 예산 낭비를 줄이고 탈세(특히 재벌총수 일가가 저지르는 각종 탈세)를 방지하며 각종 비과세 감면제도를 전면 개혁해 재정을 확보한다. 또한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간이과세 제도를 폐지한다. 이렇게 하면 보수적으로 잡아도 대략 20조 원이 넘는 재정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 ③ 지출구조의 혁신을 통해 복지재원을 마련한다. 오건호(2010)에 따르면 콘크리트 지출, 국방비 지출, 경제지원 지출 등을 복지 분야로 돌리는 지출전환 프로그램을 통해 40조 원 정도를 복지예산으로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
→ ④ 국가로부터 무한대의 특혜를 받아 온 재벌집단에 대한 법인세 실효세율을 현실화시킨다.
→ ⑤ 금융종합소득에 대한 과세 개혁, 상장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 도입,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에 대한 증세 등 불로소득에 대한 대대적인 증세를 추진한다. 선대인(2010)에 따르면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선진국 수준으로 환수할 때 보유세 26.8조 원, 양도세 5조 원, 임대소득세 6조 원 합계 39조 원을 징수할 수 있다고 한다.
→ ⑥ 끝으로 소득세 및 법인세 등 근로소득에 대한 증세를 추진한다.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복지를 주창하는 그룹이 추산하는 추가 복지예산이 대략 100조~150조 원 사이라고 한다. 이미 언급한 바 있는 시장생태계 복원이 성과를 거둔다면 이 같은 복지예산은 크게 절감될 것이 자명하며, 위에서 정리한 증세 로드맵대로만 재원 마련이 된다면 소득세와 법인세에 대한 증세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복지예산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증세 프레임에 정면으로 맞서라

머지않아 복지국가론자들은 조·중·동이 퍼붓는 세금폭탄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 조·중·동의 '세금폭탄론'에 맞서 '세금이 복지다'라는 식의 대응을 하는 건 정치적 자살행위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조·중·동이 펼치는 증세 프레임을 회피하라는 말이 아니다. 조·중·동의 악의적인 증세 프레임에 단호히 맞서 싸워야 한다. 단 시장생태계를 복원해 복지수요를 줄이겠다는 정책, 증세는 다른 합리적 수단들을 통한 복지재정 마련 후에 그것도 공평과세와 조세정의를 기준으로 하겠다는 정책을 정면으로 표방하며 조·중·동과 일전을 벌여야 한다. 정의(justice)가 복지의 근간임을 국민들이 인정할 때 조·중·동의 증세 프레임을 분쇄시킬 수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 역동적 복지국가 건설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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