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지난달 발표한 '신주인수선택권 운용 가이드라인'이 지나치게 기존 경영진과 지배주주의 경영권만 보호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신주인수선택권이 소액주주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봉쇄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개혁연대는 25일 논평을 내고 "법무부는 신주인수선택권의 행사 조건인 '주식매수자의 주식 취득 비율'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정할지, '회사의 가치 또는 주주 일반의 이익을 유지 또는 증진시키기 위해 (신주인수선택권이) 필요한 경우'가 어떤 경우인지 구체적인 기준을 내놓지 않았다"고 비판하며 이같이 주장했다.
신주인수선택권, 즉 포이즌필(Poison Pill)이란 적대적 인수‧합병이나 경영권 침해 시도를 막기 위해서 기존 주주들에게 헐값에 새 주식을 팔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존 지배주주나 경영진은 새 주식을 사들여 보유 지분을 확보함으로써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다. 정부는 현재 신주인수선택권을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 상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국회에 발의한 상태다.
법무부는 신주인수선택권 관련 법안이 해석상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 점을 고려해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해 법적 불확실성을 없애고, 기업들이 신주인수선택권을 남용하거나 주주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가이드라인 제정안을 발표했다.
법무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은 △일단 도입된 신주선택권이라 하더라도 1년~3년마다 주주총회에서 정기적으로 계속 승인 혹은 소각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한 '일몰 조항' △정관에서 정하는 일정 비율을 넘어 의결권 있는 주식을 취득하려면 주식매수자가 "회사의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목적이 없음"을 밝혀야 한다는 조항 △신주인수선택권 부여는 주주총회가 아닌 이사회 권한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권고 등을 뼈대로 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개혁연대는 "법무부는 논란이 될 만한 쟁점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기업 자율에 맡겼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새 주주가 주식을 어느 정도 취득해야 '적대적 인수합병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볼지 구체적인 비율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떤 주주가 5% 정도의 지분을 얻고, 주식 취득 목적을 '단순투자'라고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주인수선택권이 행사될 수도 있게 된다. 이 단체는 "법무부 가이드라인으로는 기존 경영진이나 지배주주가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소액주주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봉쇄하는 데 신주인수선택권이 악용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신주인수선택권이 발동될 수 있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법무부 개정안은 "회사의 가치 및 주주 일반의 이익을 유지 또는 증진시키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신주인수선택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기준은 부여하지 않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개혁연대는 마지막으로 "신주인수선택권을 이사회가 부여해야 한다는 법무부의 주장도 주주들의 의사를 지나치게 제약한다"고 비판했다. 법무부가 사외 이사 규정을 두고 있기는 하나, 사외 이사 또한 기존 지배주주의 추천으로 선임돼 독립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한국과는 달리 영국에서는 신주 발행을 주주총회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만 할 수 있으며, 프랑스에서는 이사회가 포이즌필을 발행하려면 건별로 임시주주총회에서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만 한다.
경제개혁연대는 "정부의 정책 방향이 경영진과 지배주주의 경영권 보장에 무게중심을 두는 한, 신주인수선택권의 도입은 주주 일반의 이익에 반하는 지배주주와 경영진의 이익을 위해 악용될 것"이라며 "국회에 계류 중인 법무부 상법 개정안을 전면 폐기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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