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 노사가 부산 영도조선소에 불어 닥친 대규모 정리해고를 놓고 대립한 가운데 '2년간 수주 0'라는 영도조선소의 경영상황에 대한 진실공방이 일고 있다. 사측은 영도 조선소의 한계에 따른 경쟁력 약화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인 반면, 노조는 사측이 사실상 국내 조선업에 손을 떼는 수순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한진중공업은 지난 15일 영도조선소 생산직 노동자 400명에 대한 희망퇴직을 신청받는다고 노조 측에 통보했다. 한진중공업은 27일 낸 자료에서 "2년째 신규수주가 중단되고 내년 5월이면 일감이 모두 소진되는 긴박한 상황"이라며 "협소한 부지와 고비용 구조 등 경쟁력 상실 요인을 방치한다면 더 이상 수주가 불가능해 조직 슬림화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조는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측이 제시한 경영악화의 이유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영도조선소가 충분히 흑자를 낼 수 있는 상황임에도 필리핀에 만든 수빅조선소의 이익이 더 크기 때문에 영도조선소를 포기하려고 정리해고를 추진한다는 주장이다. 사측과 노조가 부딪히고 있는 사안을 항목별로 정리했다.
Ⅰ. 수주율 '0', 정말 경쟁력 문제인가?
필리핀 수빅조선소가 지난달에도 8척의 컨테이너선을 수주하는 등 호황을 누리고 있는 반면, 영도조선소는 지난해부터 신규 선박을 한건도 수주하지 못했다. 사측은 이에 대해 "지난 2년간 120여 차례 각국 선주사와 접촉했지만 영도조선소의 선박 건조비용이 경쟁사보다 15~20% 이상 높아 선주에게 견적을 보내도 수주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18만 톤급 벌크선의 선가가 절반 가까이 떨어진 5500~6000만 달러인데 반해 영도조선소의 건조비용은 6500~7000만 달러로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노조는 이 숫자에 의문을 제기했다. 15일 정리해고 통보 당시에는 선박 건조비용이 수빅조선소가 5435만 달러, 타 조선소가 5700만 달러인데 반해 영도조선소는 6258만 달러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리해고 통보이후 시민대책위원회에서 수빅 및 국내 조선소의 최근 수주단가가 6000만 달러 수준이라는 걸 밝혀냈다"며 "(사측이) 타사의 (최근) 단가에 맞게 수치를 재조정하면서 영도조선소의 단가를 근거없이 250~750만 달러 더 올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또 "한진중공업은 1조 원의 현금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영도조선소는 지난 10년간 줄곧 흑자를 내왔다"며 "사측의 경영난 주장은 객관적인 근거가 없으며 정리해고를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사측은 정리해고를 피하기 위해 3000억 원대의 자산을 매각하고 임원 급여를 반납하는 등 많은 수단을 동원했다고 설명했지만 노조는 이에 대해 "수주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산규모와 생산능력을 줄여 수주를 더 어렵게 하려는 조치"라고 주장했다.
Ⅱ. 영도 조선소, 태생적 한계 맞았나?
사측은 영도조선소가 다른 국내 조선소 부지 면적의 5%에 불과한 8만 평에 불과해 대형선 건조가 원천적으로 불과하다고 밝혔다. 게다가 건조가 가능한 중소형 선박은 중국 조선소나 국내 신규조선소가 저가 수주를 내세워 싹쓸이해 '샌드위치 형국'이 됐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노조는 영도조선소의 경쟁력이 다른 조선소에 밀릴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70년이 넘게 부산 경제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갖춘 경험과 노하우, 숙련된 노동력이 있다는 얘기다. 또한 임금 수준도 정상 조업시기인 2008년 기준으로 국내 다른 조선소가 26~38% 더 많이 받고 있어서 임금 부담도 경영 악화를 증명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노조는 수빅조선소가 수주한 3800TEU급 컨테이너선은 영도조선소에서도 흑자 건조가 가능한 배라며 이 물량만 전환해도 조선소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측은 "수빅 조선소의 낮은 임금과 원가경쟁력 때문에 계약이 성사된 것"이라며 "영도조선소의 높은 원가로는 선주를 설득시킬 수 없다"고 반박했다.
Ⅲ. 한진중공업 사태의 '해결책'은?
사측은 "경쟁력을 상실한 영도조선소의 현실을 고통스럽지만 인정해야 한다"며 생존을 위해서는 고부가가치 선박을 건조하는 경쟁력 있는 조선소를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규모 인력을 동원하지 않고 높은 기술 수준이 필요한 특수선 건조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조는 이러한 사측의 계획 역시 영도조선소의 축소 폐쇄를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고 규정했다. 이들은 "사측이 금융위원회에 제출한 2009년 분기보고서를 보면 특수선 매출액은 12.6%에 불과하다"며 "고부가가치 조선소를 만들겠다고 하면서도 올해 설계본부에서 400여 명을 퇴사시켰고 영도조선소에 대한 투자계획이나 시설개선 계획도 전무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영도조선소가 적자가 아닌데도 필리핀 조선소와의 이익 차이 때문에 국내 노동자를 실직자로 만들고 부산경제에 타격을 주는 '먹튀경영'을 한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사측은 정리해고를 철회하고 노조와 함께 경영 정상화 방안을 공동의 노력으로 찾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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