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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내 곁의 사람들을 보다

〈김봉준의 붓그림편지 19〉

ⓒ 프레시안
오랜 만에 내 딸이 온다는군요. 서울 마포 자취방을 대충 치웠습니다. 내 외동딸이 어느덧 다 커서 스물한 살 처녀로 자랐습니다. 내게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니 소중함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요. 자기 자식에 대한 그리움은 모든 부모가 마찬가지겠지만, 자식과 떨어져서 살아 온 애비라 자식에 대해 미안함과 그리움이 더 큰가 봅니다.

모처럼 나를 찾아온다는 자식과 저녁 식사라도 같이 할까 전화를 하니 먼저 먹으라네요. 딸과 밥 한 끼 먹고 싶어서 여러 차례 시도 했었는데 번번이 실패합니다. 마음 줄 사람 찾기 힘든 서울에서 오늘도 혼자서 밥을 사먹어야겠습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줄줄이 이어지는 오월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정의 달은 찾아와서 내 곁의 사람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네요. 자식 낳아서 길러봐야 부모 마음 안다더니 자식은 사람이 사람을 끝없이 그리워하라고 생겼나 봐요. 부모 자식 관계가 만들어진 것은 세상을 그리움으로 어질게 살라고 하늘이 내린 것 같습니다.

작은 삭월세방에 사시는 어머님 아버님은 지금 어떻게 계시는지 괜스레 마음 산란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불효자식입니다. 부모님 기대에 어긋나게 살았습니다. 나이 오십이 넘을 때까지 실업자 같은 예술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말로는 화려한 그 이름, 화가이지만 한국에서 전업화가란 실직의 천형을 짊어지고 가는 실업자에 다름 아닙니다. 그것도 조용한 야인 생활도 아니고 시국사범이니 반독재운동이니 산골 야인이니 하며 간단없는 진력에 청춘이 갔습니다.

빈손처럼 남은 것은 팔다 안 팔고 쥐고 있는 그림과 조각뿐입니다. 아직 덜 배가 고파서 그러는지 그림을 시장 분위기에 맞추지 못합니다. 화랑이 화가의 분위기에 맞춰야지 화가가 왜 화랑분위기에 맞춰야 합니까. 그러려면 화랑이 창작 작업을 해야지요. 얄팍한 미술 시장에 구차하게 타협하기 싫습니다. 예술이란 공감하면서 반응이 보여야 하는데 요즘은 감상론도 오가지 않는 메마른 미술계입니다. 대량의 시장물품에 익숙한 사람들은 아직 수공예 예술품에 눈을 돌리지 않습니다. 어중간한 시대입니다. 그냥 춥고 배고픈 예술인생을 참고 살면서 홀로 즐기듯 작품이나 남기고 가렵니다.

그러다가도 내가 너무 '에고이스트'는 아니었나 돌아보게 됩니다. 예술 길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몽유병자처럼 홀로 걸어가니 내 곁의 사람들에게 미안합니다.

벌써 6년전 이지요. 부끄러운 과거 또 들추어 말하게 됩니다. 중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었습니다. 일년은 병실에 누워서, 2년은 요양하면서 쓸쓸이 투병생활을 했습니다. 이 때 처지야말로 설명하기 구차하지요. 의료보험도 안 통하는 큰 병원비나, 계속 들어가는 가정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것은 실직자 같은 예술인에게 무기형벌이 따로 없었습니다.

아프고 궁벽해지니 그런 마음까지 생깁디다. 나를 위한 모금운동이라도 벌이고 싶었습니다. '80~90년대를 보내면서 무슨무슨 모금 전시회가 오죽 많았습니까. 요청 오는 모금전마다 거의 빠짐없이 목판화를 찍어 단체에다 내보냈었는데, 진작 내가 절박할 때 모금은커녕 문병도 안 오더이다.

치열한 반독재민주화운동 시절 서울에서 몸 담았던 조직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 때 동지로 살자던 뜨거운 맹세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투쟁 할 때 동지라면 어려울 때도 동지 아닌가 싶어 내 곁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큰 단체들일수록, 운동이념이 높았던 선후배들일수록 거의 내왕이 없더라고요. 소문이 나서 알고는 있는 것 같아 지나다가라도 들를 수 있는 교통 좋은 세브란스 병원에 누워 있었건만 끝내 오지 않았네요.

미술운동을 같이 하던 작은 동인 사람들, 지역사회운동을 같이하던 지역 사람들이 주로 문병을 오더군요. 그들은 내 판화를 가져다가 모금까지 하였습니다. 부천 지역에서 목판화로 모금판매를 해 주었고 원주 지역 사람이 그림을 주문해서 목돈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친척들 도움도 컸습니다. 벼랑 끝에서 내 손을 잡아 준 사람들은 내 삶의 바로 곁에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80년대 뜨거운 혁명을 노래하던 동지들이 '하나는 전체를 위해서 전체는 하나를 위해서'를 주장 했건만, 집단적 신명론으로 공동체문화를 강조 했건만 조직은 클수록 말만 무성하고 삶이 따라가는 운동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거대이념, 대조직으로 갈수록 말이 구호로 바뀌고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기야, 나도 그렇습니다. 첫 째는 내가 덕이 없어서 그런 것이지요. 나는 많은 사람들을 품을 만큼 덕이 없습니다. 나는 군자도 못되고 조직의 지도자도 못되고 굳이 소속을 밝히자면 어딘가 좀 모자란 장인입니다. 청소년 시절 학교에서 장래 희망을 쓰라는데 저는 별로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저 있다면 고갱처럼 외딴 섬으로 달아나고 싶었고 고호처럼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습니다. 그 때는 한국미술도 잘 몰랐습니다.

누워서 별 생각이 다 나데요. 마지막까지 싸늘한 환자의 몸뚱이를 곁에서 지키고 있는 가족들이 불현듯 미안하고 불쌍해졌습니다. 그 때 저는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렇게 하자. 이제 내가 다시 살아나면 가족들을 위해 여생을 쏟으련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몸 내던지던 기백이라면 남은 인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집안을 살리련다"라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렇게 고쳐먹은 오늘 나는 어떤 모습인가. 보모님께 효도하지도 못하고 가족들 사랑도 변변히 못하고 그냥 하루하루 지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찾아서 내 멋대로 사는 내 삶은 하나도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반성한 기색도 별로 없고 또 다시 NGO 일 하고 예술도 포기하지 않으며 삽니다. 생활비 마련은 어떻게든 하겠지만 그 이상 집안 부흥은 난망입니다.

오늘 같은 날들처럼 자식 부모 생각하라고 가정과 관련된 날들을 몰아 놓으면 나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 나오고 싶지도 않습니다. 가족 손 잡고 나들이는커녕 그저 몸 둘 바를 모릅니다. 텅 빈 주머니에 마음 쓰기가 맥이 빠지는 걸 어쩌겠습니까. 이런 날이 되면 요즘 돌아가는 집들의 평균치는 해야 한다는 세태에 나라고 초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정의 달이 나는 싫습니다.

온다던 딸이 밤 11시가 넘어도 안 오네요. 이 글을 다 써가는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인데도 작은 내 님은 오지 않네요. 내가 업어서 기르던 부천 산동네 시절, 최루탄 냄새 자욱한 거리투쟁에 아이 업고 나갔다가 '아빠! 눈이 아파' 하며 앙앙 울던, 나도 함께 울면서 도망가던 그 시절, 기른 아픔만큼 진한 게 자식이고 살아 온 시련만큼 살가운 게 곁의 사람들입니다.

단란한 가정생활에 실패한 이 중년의 가장이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 이웃과 함께 어질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연못은 깊어야 고기가 살고 산은 깊어야 짐승이 왕래한다. 사람은 부유해야 어질고 의로움도 따른다.' 淵深而魚生之 山深而獸往之 人富而仁義附焉. 이 말은 史記 貨殖列傳에 나오는 말입니다. 정하영 스승님의 강독입니다.

공자 왈 '덕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 德不孤 必有鄰이라 하였거늘, 가난을 핑계로 어질지도 못한 놈이 예술은 한답시고 모진 척 살아 온 생활이 창피합니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반성하는 글 쓰게 만드는 프레시안의 오월이 야속합니다. 고금을 막론하고 쌀독에서 인심 난답니다. 가난하면서도 어질게 사는 요즘 서민들이 어쩌면 옛날 군자보다 더 군자 같습니다.

아, 내 딸이 왔군요. 어두운 지하 단칸방이 갑자기 훤해졌습니다. 내 곁에 딸도 누었습니다. 이제 이 아이와 함께 지낼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해외 유학 간다기에 내 친아우 곁으로 보내렵니다. 오늘 이 밤은 그래서 아주 특별히 애틋한 가정의 달의 밤입니다. 잠결에 내 곁의 사람들은 하나 둘 멀어지고 꿈결에 다시 만나기를 기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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