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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다 죽이는 축산 방역, 오로지 한국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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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다 죽이는 축산 방역, 오로지 한국뿐"

[기고] 문명의 이름으로 동물 집단학살을 자행하는 현장에서

우리 마을이 구제역 발생 마을이 되었습니다. 강원도 문막에서 가장 깊은 산골 오지 마을인 우리 마을에도 한 농가의 소 한 마리가 구제역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이 병든 소 한 마리 때문에 마을 전체가 최대 위기에 빠졌습니다. 지금 나도 마을에서 나가지 못하고 외부 출입을 금지 당했습니다. 이곳 주민 25가구 100여 명이 모두 강제로 감금된 상태나 다름 없습니다.

언론 보도에는 구제역이 발생한 축산농가만 '외부출입을 삼가하라'는 정도로 알려서 시민들이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축산방역법은 흡사 계엄령 같이 소, 사슴, 돼지, 염소등 우제류를 살처분은 물론 모든 주민을 통제하는 막강한 법적 강제력을 행사합니다.

그러나 '살처분'이란 말은 방역당국의 용어이지 정확한 말이 아닙니다. 그 현장에서 보면 동물의 집단학살이 맞습니다. 하루 이틀만에 수백마리 건강한 동물과 어린 송아지까지 삽시간에 죽이는 현장을 한번 들어와서 보십시오. 이걸 동물 집단학살이라고 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집단학살인가요. 거기다 주민은 마을 밖으로 나갈 수도 없습니다. 우리 마을은 산골마을이라 저자로 나가는 길이 외통길입니다. 입구만 막으면 높은 산을 기어넘지 않는 한 나갈 수 없습니다.

나는 엊그제 저수지 앞길까지 집에서 4km 밖까지 나갔지만 막고 선 강제집행 공무원들과 실랑이 하다가 돌아왔습니다. 20일 동안을 외부로 나갈 수 없답니다. 연말연시의 바깥으로 업무를 못 봅니다. 축산마을이 아닌 집도 연좌제에 걸린 것처럼 덩달아 통제 당했습니다. 우리 마을 주민의 절반은 축산업을 하지 않습니다.

소, 사슴, 염소가 350마리 가량 있는 우리마을은 집단우울증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노인들, 부녀자들은 자기집 소를 밤새 도살하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평생 소와 같이 살아온 농부들은 심각합니다. 쓰러지고 우황청심원 먹고 야단입니다. 집단적으로 트라우마에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병원도 못 갑니다.

여기는 비상사태마을입니다. 소 값을 시세대로 보장하고 사료와 볏짚까지도 보상한다지만 보상이면 다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남자들은 술 먹고 푸념을 합니다.

"우리집 소가 먹이를 줘도 안 먹어"
"그러게 자기도 죽을 줄 다 아는 가봐"
"어떻게 알까? 옆집이 멀어서 죽이는 걸 본 것도 아닌데"
"글쎄, 울음소리, 피 냄새 이런 걸로 동물도 알겠지"
"이게 말이 되는 겨, 멀쩡한 소까지 왜 죽여! "
"반경 오백미터도 넘는 곳 소까지 다 죽일 건 없잖아"
"누가 아니래, 이런 법이 어디 있어"


김 씨와 박 씨 농부의 대화입니다. 동물도 사람이 알아듣지 못할 뿐이지 서로소통도 하고 영혼이 있습니다.

위의 농부들이 말한 '이런 법'은 사회법이고 마음 속 법은 자연법입니다. 사회법이 자연법의 상위에 있는 세상이 되다 보니 농부들 말은 우습게 알 겁니다. 인권과 자연보존과 이동권을 보장하는 헌법도 경시하는 가축전염병예방법에 근거한답니다. 이렇게 야단법석하며 구제역을 막는다고 하지만 어제 소식에 의하면 인근 소초면에도 이미 구제역의심 소가 발생했고 우수한우 브랜드를 자랑하는 횡성지역도 구제역발생지역이 되었습니다. 강원도 경기도 경북도 45곳으로 퍼졌습니다. 지금 하는 식으로 멀쩡한 동물들까지 모두 집단학살을 해서 매몰하고 모든 주민을 감금하다시피 하는 이런 방역법은 악법입니다.

이런 예는 선진국에서도 없고 후진국에도 없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은 병 걸린 소만 선별처리하고 후진국은 구제역 걸린 소, 돼지도 그냥 먹는답니다. 먹어도 인간에게 해롭지 않고 구제역 걸린 동물도 1~2주면 자기 면역력으로 건강을 되찾는답니다. 그런데 무조건 다 죽이는 이런 축산방역법은 개정해야 마땅합니다.

▲ 진밭마을은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산골오지마을이다. 이런 청정지역마저 구제역병이 돌아서 온 마을의 소, 사슴, 염소 약350마리를 집단학살 했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로부터 청정 축산지역을 획득하고 유지하려고 700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두달 만에 쏟아버리는 이런 방역체계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한번 물어봅시다. 왜 한국은 바이러스와 공존할 수 없나요? 바이러스도 동식물처럼 번식하고 성장하고 전파하는 미생물입니다. 동물에게 유해해서 병에 걸리게 하기도하고 하면서 아프다가 낳고 또 병에 걸리다 죽고 하는 것이 생노병사의 자연이치입니다. 동물도 생노병사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동물을 청정먹거리를 공급하는 식품으로만 여기니까, 그 아픈 꼴을 못 보는 겁니다. 동물도 아플 권리가 있고 그러다가 낳을 자생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자연의 질서를 거역하고 자기들만 살 수 있는 청정지역을 넓혀나간다는 것은 선진국 인간들의 기준에 맞는 청정지역을 지구촌에서 점점 더 확대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 기준대로라면 아프리카 서아시아 지역의 양, 소, 낙타, 염소, 야크, 라마 모두 다 구제역 발병만 하면 집단학살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이기주의와 독선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마을의 예를 보아도 기업형 축산업을 하는 이보다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 온 소농부가 반발의사가 분명했습니다. 이들은 자연질서를 몸으로 알고 사회법의 모순을 울분으로 토하고 있었습니다. 인간과 생물의 공생의 질서가 자연의 질서입니다. 인간이기주의는 지구촌의 동식물과 공존하는 평화의 질서를 망가뜨려 왔습니다. 동물집단학살이 문명이란 이름 아래 자행되는 것은 기만입니다. 동아시아의 오랜 문화전통으로 볼 적에도 구제역병 소를 죽이는 것도 모자라 동물집단학살을 자행하는 이 짓은 서양의 인간중심주의 도시문명관에서 비롯합니다.

인간이 만든 도시를 청정지역으로 보고 자연에서 야수와 야만이 언제든 쳐들어 올 수도 있으니 지켜야 한다는 배타적 인공문화입니다. 동아시아의 오랜 문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소는 농경사회의 시작과 함께 농경문명을 알린 상징입니다. 그래서 고구려벽화에 그려진 우두인신牛頭人神은 한 손에 벼 이삭을 들고 있는 신선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달려가도 너무 막 달려가는 한국의 짝퉁 근대주의의 정책은 중심 되는 가치와 철학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을은 30년 전 축산을 문막에서 제일 먼저 시작한 마을로 주민들이 자랑하여 왔었기에 이번 사건은 그래서 더 큰 충격이 되었습니다. 그 이상 말문을 열고 싶지 않습니다. 축산마을에서 이웃으로 살아온 나는 소, 염소, 사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동물위령제라도 지내고 싶은 심정입니다.

지구촌의 어느 생물종도 다른 생물을 집단학살 할 권한은 없습니다.

▲ 6세기 집안현 오회분 4호묘 널방 천장고임돌 벽화에는 불의 신과 함께 소신이 그려져 있다. 우두인신(牛頭人神)의 소의 신이 나락을 들고 신선의 옷을 입고 천지를 휘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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