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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임원들이 꼭 봐야 할 연극 <반도체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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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임원들이 꼭 봐야 할 연극 <반도체 소녀>

문화창작집단 '날', 소외된 이웃들의 이야기 담은 연극 공연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렸지만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숨진 노동자, 100% 사내하청으로 채워진 '꿈의 공장'에서 당장의 행복을 위해 특근을 하는 비정규직, 1000일 넘게 거리에서 복직 싸움을 벌이는 학습지 교사, 요양보호사, 택배배달원….

2010년 한해 동안 소외받은 노동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문화창작집단 '날'이 지난 11일부터 서울 대학로 극장 '혜화동 1번지'에서 공연하고 있는 <반도체 소녀> 무대에서다. 올해 노동 이슈의 중심에 있었지만, 동시에 많은 이들의 무관심에 직면했던 '삼성 백혈병' 논란, 동희오토 복직 투쟁, 재능교육 장기 투쟁을 벌인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꾸몄다.

▲ 연극 <반도체 소녀> ⓒ문화창작집단 날
사회주의 운동의 거목인 오세철 연세대 교수가 출연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반도체 소녀'는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유명세를 탔다. 보수 매체가 '공산주의 연극'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기도 했다. '날'의 대표를 맡고 있는 최현(35) 씨는 "예전 작품과 달리 홍보도 강화할 계획이었는데 이념적인 주제로 보도가 나와서 꽤 당황했었다"고 말했다.

신문 지상 한 구석의 소동과 달리 무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이념과는 거리가 멀다. 희생된 노동자들에 대한 신파조의 넋두리도, 체제에 대한 강한 불만이 직설적으로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등장한 배우들은 취업과 노동, 사랑과 행복이라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서 고민하고 고통 받으면서도 희망을 품는다. 그들의 삶이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힘겨울 뿐이지, 일상을 살아가는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다. 무거운 소재지만 무대는 유쾌하다. 60명이 꽉 차게 들어가는 소극장 속 관객들은 폭소하다가도 이내 눈시울을 붉힌다.

'88만원 세대'도 등장한다. '대기업 취업'과 '성공'을 등치시키는 그가 자신의 주위에 있는 노동자들의 현실에 냉소하는 모습은 '청년 백수' 상당수와 닮아 있다. 경쟁 체제에 순응하면서 그런 자신을 '자유로운 개인'으로 치부하지만, 계속되는 좌절 속에서 혼란을 겪는 장면까지. 하지만 연극은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숨지고 나서 살아있는 자들 주위를 떠도는 '반도체 소녀' 역시 이들을 지켜볼 뿐이다. 답은 배우가 아닌 관객의 몫이다.

▲ 연극 <반도체 소녀>의 한 장면 ⓒ이윤환(날 제공)

<반도체 소녀>는 '날'의 7번째 작품으로 지난 2005년부터 <마마>, <코뮌>, <관동여인숙>, <삽질>, <리스트> 등 사회적 이슈와 인간의 내면 심리를 짜임새 있게 풀어내는 연극을 선보여왔다. 공연은 내년 1월 2일까지 월요일을 제외한 평일 8시, 토요일 3시‧7시에 만나볼 수 있다. 문의는 02)953-6542. 공식 카페는 club.cyworld.com/munhwanal.

문화창작집단 '날'의 최현 대표 일문일답

- 지난 3월 삼성 반도체 피해 노동자인 박지연 씨가 백혈병으로 숨진 사건이 연극을 만들게 된 계기라고 알려져 있다.

▲ 최현 문화창작집단 '날' 대표 ⓒ프레시안(김봉규)
사실은 (삼성 반도체 첫 피해 노동자인) 故 황유미 씨가 모티브다. 친형이자 극본‧연출을 맡은 최철(38) 씨는 경북 문경에서 천연염색 일을 한다.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주위에 많을 수밖에 없다. 나도 독립영화를 찍으면서 불안정한 삶을 사는 배우로 비정규직 노동자와 마찬가지의 처지다. 연극에 등장하는 이들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계속 만나보고 겪어보면 여지없이 우리의 이웃이나 가족, 부모의 이야기였다. 그런 느낌이 배우에게 다시 관객들에게 이어진다. 각자의 마음 속에 이 연극이 뿌린 씨앗이 지금보다 나은 곳으로 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 올해 큰 주목을 받지 못한 다양한 노동 이슈가 등장했다.

생뚱맞은 일들이 아니고 항상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들이다. 예술 계통에서 스타나 재벌의 이야기들이 많으니 이웃들의 이야기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 같다. 신데렐라 이야기도 필요하지만 예술에서조차도 현실적인 이야기를 회피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이런 연극을 선보이게 된 계기가 됐다.

- 재정적으로 힘든 건 없나.

우리가 의미 있는 얘기를 한다고 여기는 분들이 십시일반 도움을 주신다. 첫 공연 때부터 팸플릿을 만들어 주시는 분도 있다. 배우들에게도 역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다 주지 못한다는 미안함이 항상 따라오는데 다들 이해하고 있다. 모든 구성원들이 그렇게 이해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활동이 가능하지 않나 싶다.

- 오세철 교수의 출연이 화제인데 어떻게 섭외하게 됐나.

개인적으로는 지난해 용산 참사를 다룬 <리스트>를 오 교수가 보고 추천글을 쓴 인연으로 알게 됐다. '반도체 소녀'의 교수 역의 모티브가 오 교수였기 때문에 요청을 드렸고 흔쾌히 승낙했다.

- 연극의 실제 주인공들인 반도체 피해 노동자 가족이나 다른 노동자들도 연극을 봤나.

반올림의 황상기, 정애정 씨, 공유정옥 전문의,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장 등이 관람했다. 재능교육 지부에서도 왔고, 동희오토 노동자들에게도 연락을 취하고 있다. 황상기 씨는 (故 황민웅 씨의 아내이자 삼성 반도체 노동자 출신인) 정애정 씨가 "마음의 치유를 받았다"고 말씀하셔서 굉장히 감사했다. (故 황유미 씨의 부친) 황상기 씨도 "처음 딸이 아팠을 때 어느 곳에서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는데, 무대에서까지 딸의 이야기가 알려지는 데 힘을 얻으셨다"고 했다.

당사자 분들이 살아가는데 약간의 위안이라도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이루어진 것 같았다. 아직도 이들의 이야기를 모르고 있는 분들, 더 나아가 삼성이나 재능교육 간부들이 와서 욕이라도 했으면 한다. 무관심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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