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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 다 망하면, '통큰치킨' 값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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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재래시장 다 망하면, '통큰치킨' 값도 오른다"

재래시장 재건축, 알고 보니 롯데마트

17일 서울 강북구 미아동 삼양시장. 재래점포 곳곳에는 상인들이 손수 적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삼양시장 재건축에 대기업이 웬 말이냐, 재래시장 활성화는 말로만", "초가집에 모여 아웅다웅 살고픈데 공룡 발밑이네-둘리", "롯데마트 오픈하는 순간 동네 상가는 개박살 난다-똘이."

형광색 도화지에 앙증스러운 강아지 발바닥 그림 옆에 적힌 '똘이'라는 글씨가 눈에 띄었다.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이 똘이거든. 똘이가 말하는 거야. 롯데마트가 오픈하는 순간 동네 상가는 '개'박살 난다고."

정육점을 운영하는 조규홍(56) 씨는 자기가 적은 문구가 다시 생각해도 재미있다는 듯 슬그머니 웃었다. 조 씨는 롯데마트라는 '공룡' 아래서 장사하는 재래시장 상인들은 '둘리'라고 덧붙였다.

▲ 삼양시장 곳곳에는 롯데마트 입점을 반대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재래시장 재건축' 알고 보니 롯데마트

삼양시장은 그야말로 폭풍전야다. 롯데마트가 '재래시장 재정비 사업'을 가장해 삼양시장 내 삼양상가에 입점을 시도하면서부터다. 1년 전 재건축 때문에 상가에서 쫓겨났던 상인들은 "삼양상가 재건축이 끝나면 다시 들어와 더 쾌적한 공간에서 장사에 전념할 수 있을 줄 알았다"고 입을 모은다. '재래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에 의해 추진된 재건축인 만큼 그 자리에 대형마트가 들어설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인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가 있었다. 삼양상가는 삼양시장을 대표해 재래시장으로 등록돼 있다. 삼양상가의 주인인 삼양시장주식회사가 재래시장 등록을 취소하고 롯데마트를 들이면 삼양시장 전체는 재래시장 지위를 잃게 된다. 재래시장 주변 500m 내에 대형마트가 들어서지 못하도록 한 유통법도 롯데마트 입점을 막는 데 소용이 없어진다.

삼양시장, 수유시장, 동북시장 상인 100여 명은 이날 삼양시장오거리 앞 롯데마트 입점예정지에서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삼양시장 재정비 사업은 롯데마트 입점을 목적으로 허위로 꾸며진 사업"이라며 "시장재정비 사업은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다.

"재입점 협상 막으면서 재래시장 상인은 입점 의사 없다?"

삼양시장주식회사는 재래상인들의 재입점을 필사적으로 막아야 하는 상황이다. 만약 롯데마트 부지에 재래상점이 단 한 점포라도 들어온다면 '대형마트 등록'은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절차다. 현행법상 삼양상가의 재래시장 등록을 취소하고 대형마트로 신고하려면 삼양상가에서 장사했던 상인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재건축 때문에 잠시 자리를 내줬던 상인들은 삼양상가에 다시 들어가서 장사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삼양상가에 다시 들어가려는 상인들이 롯데마트 입점에 '걸림돌'이 된 셈이다.

삼양시장주식회사는 지난 3일 재래상인들에게 "3일 내 재입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입점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겠다"고 알려 왔다. 재래상인 15명은 재입점 의사를 거듭 표시했지만, 삼양시장주식회사는 임대정보를 알려주지 않고 "협상이 결렬됐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 삼양시장, 수유시장, 동북시장 상인 100여 명이 롯데마트 입점 예정지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재래시장 상인은 주차장에서 장사하라고?"

삼양시장에서 대를 이어 40년동안 떡집을 운영했다던 김진상 씨는 "속았다"며 허탈해했다. 1년 전에 삼양시장주식회사가 '재입점 계약서'를 체결하면서 재래상인들을 내보낼 때만 해도 그는 다시 입점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계약서를 자세히 살펴보니 구석에 '특약조항'이 있었다. 삼양시장 주식회사가 입점 상인들에게 퇴거하라고 하면 3개월 내에 나가야 하는 일방적인 조항이었다.

김 씨는 "재건축 시에는 가설 시장을 마련하거나, 재건축으로 영업활동을 하지 못하는 손실을 보전하거나 이주비 등을 지원해야 한다"며 "삼양시장주식회사는 이 모든 문제를 3개월 치 임대료나 먹고 떨어지라는 식으로 해결했다"고 비판했다. 상인들은 삼양시장주식회사가 정말 임대할 의사가 있다면 임대조건과 정보를 문서로 작성해달라는 입장이다.

삼양시장주식회사는 입점 상인들과의 협상에서 "지하 1층부터 3층까지는 롯데마트와 약정이 돼 있다"며 4층이나 5층에서 장사를 하라고 말했다. 재건축 상가 4층에는 롯데마트 직원휴게실이, 5층에는 주차장이 있다. 김 씨는 "삼양시장주식회사는 직원휴게실이나 주차장에서 영업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말라는 식으로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구청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관"

삼양시장에서 닭집을 운영하는 이춘세(59) 씨는 "저렇게 큰 기업에서 이런 데까지 와서 없는 사람들 거 빼앗아가야겠느냐"며 "정부에서 안 막아주나…"라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재래시장 상인들이 대책을 요구해도 롯데마트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강북구청은 묵묵부답이다. 상인들은 "강북구청이 강 건너 불구경하듯 사태를 방관한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박진효 수유재래시장 부회장은 "구청이 애초에 롯데마트가 들어설지 철저히 조사해서 재래시장 재건축 허가를 내지 말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는데 재봉사가 아무리 훌륭해도 옷이 만들어질 수 없다"고 말하는 박 씨의 얼굴에는 씁쓸함이 묻어났다.

"동네치킨 다 죽으면 '통큰 치킨' 가격 올렸을 것"

"걔들 못할 줄 알았어. 사다 팔면 또 모를까. 만들어서 파는 데는 시간과 정성이 들거든."

닭을 손질하는 이춘세(59) 씨의 손길이 빨라진다. 이 씨가 파는 치킨은 한 마리에 8000원. "롯데마트에서 팔았던 5000원짜리 '통큰 치킨'보다 더 크고 좋은 놈"이라는 설명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롯데마트가 '통큰 치킨' 판매를 포기하기 전까지는 그도 내심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포장부터 상큼한" 5000원짜리 치킨이 들어오면 타격을 입을 게 뻔 하다는 것이다.

삼양시장 치킨 상인들은 "5000원 치킨은 미끼 상품에 불과하다"며 "설사 롯데마트가 치킨 판매를 계속한다고 하더라도 재래시장이 죽고 나면 가격을 올렸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삼양시장에서 '공주 닭집'을 30년간 운영해온 또 다른 상인 박명환(가명, 75) 씨는 "롯데마트가 여기서 끝까지 치킨을 팔겠다고 하면 우리 가게는 사라져도 찬성"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5000원에 치킨을 팔면 손해를 보니 주변 동네치킨집이 다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서서히 가격을 올리겠지. 다 죽어야 돈을 벌지 지금은 밑지고 투자하는 거야. 열 사람이 죽으면 한 사람이 살겠지. 돈 있는 사람은 살고 돈 없는 사람은 죽는 건데 뭐."

동네치킨보다 싸게 파는 치킨이 생기면 소비자에게 이익 아니냐는 질문에 이 씨는 "그러면 약한 사람은 도태돼야 한다"며 "그래도 벌어 먹고사는 편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강북구 주민인 조성환(84) 씨는 "여기서 장사하는 사람은 전부 영세 상인인데 대기업만 부자가 돼서는 안 된다"고 거들었다. 조 씨는 "롯데마트 하나 들어서면 수백 사람이 실업자가 될 텐데 주민인데 나도 마음이 안 좋다"고 덧붙였다. 삼양시장을 물가를 보면 지역 주민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이해될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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