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 원 세대>(박권일·우석훈 지음, 레디앙 펴냄)의 저자 우석훈 2.1연구소 소장은 무상 급식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판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그는 "멕시코에서는 국립대학교의 경우 공짜로 학교를 보내주되, 세금을 내는 국민에게 미안함을 가지라고 상징적으로 등록금을 2~4페소, 우리나라 돈으로 약 200~400원 정도 물렸다"고 말했다. 유럽은 물론이고 멕시코 같은 나라도 일찌감치 무상 교육을 하는 마당에, 고작 무상 급식에 훼방을 놓는 오세훈 시장을 비롯한 보수 세력을 꼬집은 것이다.
7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한국 사회, 왜 도덕인가' 토론회에서 우석훈 소장은 젊은 시절 유럽에서 경험했던 다양한 복지 관련 일화를 풀어냈다. 그에게 한국 사회는 한마디로 '갈 길이 먼 사회'였다. 그만큼 한국과 유럽의 간극이 컸기 때문이다.
▲ 지난 7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한국 사회, 왜 도덕인가' 토론회. 왼쪽부터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김민웅 성공회대학교 교수, 김용철 변호사, 우석훈 2.1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
학비 공짜인 유럽은 '망국적 포퓰리즘' 국가?
'한국 사회, 왜 도덕인가' 토론회에서 사회를 맡은 김민웅 성공회대학교 교수가 오세훈 서울시장의 무상 급식 반대 논리에 대한 견해를 묻자, 우석훈 소장은 "유럽의 무상 교육에 비하면 무상 급식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운을 뗐다.
김민웅 : 무상 급식 논란을 두고 여론이 뜨겁다. 오세훈 시장은 "무상 급식은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말했다.
우석훈 : 오세훈 시장 논리대로라면 대학교 학비가 공짜인 유럽은 벌써 망하고도 남았다. 유럽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스위스에는 세계적인 초국적기업 네슬레 회장 아들도 등록금을 50만 원만 내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나라가 망하던가? 무상 급식은 무상 교육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유럽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나서, 국민소득이 8000~1만 달러일 때부터 대학생에게 등록금을 지원했다. 한국은 지금 국민소득이 2만 달러인데도 등록금만 1000만 원 가까이 낸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공부를 잘 하던가? 공부를 못하면 밥이라도 맛있게 먹여야 하지 않겠나?
"반려동물 의료보험이 우습다고?"
서울 시장이 무상 급식을 '망국적 포퓰리즘'이라는 과격한 언사로 공격할 정도로 한국 사회에서 무상 급식을 포함한 복지 정책은 여전히 생소하다. 복지를 시민의 보편적인 권리로 인식하는 이들도 드물다. 복지를 원하는 시민이 있는 반면 복지에 고개를 갸웃하는 시민도 많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김민웅 교수는 "무상 교육이 진보의 정치적 구호였는데 시민들이 이를 외면했다가 최근에 무상 급식은 받아들였다"라고 현재 한국 사회가 가진 복지에 대한 인식 수준을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복지가 윤리적으로 정당하다는 논리를 어떻게 세울 수 있느냐"고 우석훈 소장에게 물었다.
"유럽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복지가 왜 필요 하느냐는 질문 자체가 생소하다. 복지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석훈 소장은 이렇게 대답하며 "우리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덧붙였다. 복지가 왜 필요한가를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복지를 확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라는 뜻으로 들린다. 우 소장은 한국과 유럽의 복지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큰지를 설명하고자 반려동물의 예를 들었다.
▲ 우석훈 2.1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
그런데 영국은 사람의 병원비는 무상인데 반해서 개,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의 병원비가 오히려 비싸다. 이런 사정 탓에, 반려동물 몇 마리까지 의료보험을 지원할 것인지를 놓고 논쟁이 붙었다. 결국 한 사람당 강아지 2~3마리까지 적용해주기로 했다.
이런 기사를 보면서 추운 날 밥도 못 먹는 사람이 많을 텐데 반려동물에게까지 의료보험을 적용해줘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복지에 대한 그들의 인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사람을 넘어서 사람이 아닌 대상까지 복지의 대상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이렇게 개,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까지 복지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윤리의 대상도 넓어진다. 사람이 지켜야 하는 가치를 사람이 아닌 대상으로까지 확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개, 고양이도 사람처럼 여기게 된 것이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같은 사람인 이웃에 대한 공감의 폭도 넓어질 수 있을 테고."
"사람을 때리느니 차라리 전화기를 던져라!"
유럽에서는 도덕의 대상에 사람이 아닌 동물까지 포함되고 있다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인간에 대한 도덕성마저 등한시되는 사례가 많다. 최근에 한국 사회의 도덕성을 가늠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재벌 2세인 최철원 씨가 이른바 '맷값'을 주고 운수업자를 폭행한 사건을 두고 여론이 들끓었다.
우석훈 소장은 "재벌들에게만 시간이 정지되는 것 같다"며 최철원 폭행 사건을 "소아병적인 현상"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국 사회에서 사람을 때려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생긴 지 오래인데, 아직도 재벌들의 시계는 20년 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그는 1990년대 중반에 대기업에서 일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좋은 회사 사장실에는 전화기도 좋은 게 있을 줄 알았는데 1만 원짜리 전화기가 있더라. 왜 그런가 했더니 직원이 잘못하면 던지라고 있는 거였다. 그 전화기는 선이 있어서 던져도 앞에 떨어지지 맞지는 않았다. 1990년대 중반에 우리 재벌을 변화시켰던 민주화의 가장 큰 성과(?)였다. 차라리 전화를 부수고 말지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는 합의를 이룬 것이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흔히 상사가 부하를 때렸다. 회사뿐 아니라 재벌, 운동권, 대학 동문회도 마찬가지였다. 밖에서는 민주화를 말하면서 집에 돌아가면 자기 부인을 때리는 게 부당하다는 것을 좌·우파의 상당수가 이해를 못하던 시기였다. 유독 재벌만 아직도 20~30년 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폭력을 휘두르는 대가로 돈을 지불하는 것은 부당한 거래다. 그렇다면 언제 부당 거래가 생길까? 우 소장은 "뭔가 잘못됐는데 '얘기하면 너만 다쳐'라고 말하며 눈감을 때"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부당 거래가 생기고 용납되는 이유는 이를 고발하지 못하는 "우리 모두의 겁 혹은 먹고사니즘"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필연 몰락 바라는 시민들에 희망을 건다"
우석훈 소장이 경험한 두 가지 풍경, '민주화를 말하면서 집에 돌아가면 자기 부인을 때리는 운동권'과 '애완동물도 의료보험을 적용받는 유럽'의 간극은 너무나 크다.
그러나 우 소장은 한국 사회에도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시민이 부정의에 공감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는 "실은 오늘(7일)이 SBS 드라마 <자이언트>가 끝나는 날"이라며 "이 토론회를 9시에 끝내면 들어가서 볼 수 있는데…"라고 운을 떼 청중의 폭소를 이끌어냈다.
"드라마에서 악역을 맡은 '조필연'(정보석)이 총리 후보가 돼서 청문회를 한다. 과거에 돈 받고 사람 죽인 것을 다 감춰놔서 서류상으로 완벽한 사람이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으면 한국 최고의 총리 후보가 될 수 있었지만, 진실은….
<자이언트>를 보면서 한국이 안 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다 조필연을 싫어하더라. 드라마에서 악인이 멸망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좋아하면 현실에서도 그럴 거라고 본다. 도덕은 대중의 공감, 느낌, 감정의 흐름을 따라 간다. 한국은 아직 조필연이 안 죽고 총리됐다고 사람들이 기립 박수 치는 사회는 아닌 것 같다."
드라마에서 희망을 본다니 조금은 엉뚱한 답변 아닌가?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시민의 '공감 능력'을 선거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대선이 경제 대선이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조필연 같은 사람을 뽑아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오는 대선은 다를 것 같다. 조필연 같은 사람이 나쁘다는 것을 공감하는 능력을 갖춘 국민이 절반이니까. 우리가 꿈꾸는 도덕 사회는 바로 그때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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