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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국놈 믿지 마라, 일본놈 돌아온다"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인도인들이 보는 연평도 사태

노조 간부들에게 국제노동기준을 교육하기 위해 인도 뭄바이에 출장을 다녀왔다. 그런데 만나는 노조 간부마다 노동 문제 이야기 대신에 걱정스러운 얼굴로 한반도에 전쟁이 날 것 같은데 어떻게 출장을 나왔냐며 한국은 괜찮으냐고 물었다.

<CNN>과 <BBC>가 전하는 소식은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가했고, 그 결과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식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인지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가하기 전에 남한이 호국훈련이라는 이름으로 한미 합동 상륙작전 훈련을 펼치던 중이었고, 그 작전의 일환으로 남한군이 북한의 코앞 바다에 수천 발의 포탄을 몇 시간 동안 쏟아 부었다는 소식을 아는 이는 없다.

▲ 북한의 해안포 공격으로 폐허가 된 연평도의 민간인 거주 지역 ⓒ해양경찰청

남한과 북한, 인도와 파키스탄은 닮아 있어

1953년 체결된 휴전협정이 내륙의 경계선은 정했지만, 해상의 경계선은 정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이 일방적으로 북방한계선(NLL)을 그었는데, 이것은 국제법상으로 효력이 없기 때문에 북한은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북한은 서해 5도 근방이 남한보다는 북한에 가깝기 때문에 그 주변 바다를 자기 영해라고 주장하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가 합동으로 상륙훈련을 펼쳤고, 북한이 중단하라고 수차례 경고 했으나 이를 무시하고 북한 코앞에서 훈련을 강행하다가 북한의 포격을 받았고, 거기에 남한군이 응사를 하면서 긴장이 고조되었다. 이런 설명을 해주지만, 한반도 지정학의 복잡성과 역사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외국인은 드물다.

인도에서는 남북한 관계를 인도와 파키스탄의 관계에 빗대어 설명해주면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많다. 인도는 1947년 독립할 때 파키스탄과 갈라섰다. 파키스탄과의 분단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쳤던 마하트마 간디는 암살당하고 만다. 인도 사람들은 지금도 인도와 파키스탄은 역사와 문화가 하나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카슈미르를 둘러싸고 두 나라의 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남북한이 으르렁대듯이 인도와 파키스탄도 으르렁댄다. 2008년 11월 26일에 있었던 파키스탄 테러리스트의 뭄바이 타지마할호텔 공격사건이 대표적이다. 뭄바이 시내의 서점에 가면 통일된 강대국 인도를 원하지 않았던 영국이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단을 막후에서 조종했다는 내용의 책들을 볼 수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단도 20세기 제국주의의 산물이듯이 한반도의 분단도 제국주의의 산물이라는 설명을 곁들이면 한반도의 문제가 자기 문제인양 인도 사람들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인도인이 말하는 핵(核)

그런데 여기서 국제 정세에 밝은 한 노조 간부가 대답하기 거북한 질문을 던진다. 북한은 중국과 같이 합동군사훈련을 펼치지 않는데, 왜 남한은 미국과 같이 합동군사훈련을 펼치는가. 남한이 북한보다 훨씬 잘 살고 국방비도 많을 텐데 싸우려면 일대일로 싸우지 미국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뭔가?

남한에 3만 명에 달하는 미군이 전국 도처에 주둔하고 있으며, 긴밀하게 미군의 지휘를 받고 있다고 답하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린다. 뭐 이런 나라가 있냐는 표정이다. 그 분위기에서 남한과 미국이 체결한 협정에 따라, 남한이 북한과 전쟁을 하게 되면 남한군의 "사실상(de facto) 총사령관"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미국의 오마바 대통령이 된다는 말은 차마 꺼낼 수 없었다. '전시작전권'을 미국에서 되찾아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조속히 이관하는 것을 반대하는 게 애국애족이라고 남한의 지배층이 주장한다는 이야기도 꺼내지 못했다.

북한 핵 문제를 근거로 한반도의 위기 상황을 이야기해보려 했지만, 인도 노조 간부들에게는 별로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인도도 핵무기를 갖고 있고, 인도의 최대 적대국인 파키스탄도 핵무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은 두 나라의 명운을 건 국가 차원의 사업이다.

세계 최대의 강대국인 미국에 맞서 국가와 체제의 생존을 위해 북한이 핵무장에 목을 매는 것은 인도인의 입장에서는 별로 이상할 게 없는 일인 셈이다. 인민을 헐벗고 굶주리게 만들며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심하지 않느냐는 주장에 바로 반론이 따른다. 그 점에서는 인도와 파키스탄도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이며, 가난한 나라도 자위(自衛)를 위해 핵무기를 개발할 권리는 있다.

주제가 핵무기로 옮겨가자 노동조합 상급단체에서 나온 간부가 한마디 툭 내뱉는다. 세계 평화를 위해 이스라엘의 핵무기와 북한의 핵무기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심각한 문제이냐. 자기가 보기에는 이스라엘이 더 위험하다. 왜냐하면 북한보다 훨씬 많은 핵무기를 갖고 있으며, 성향 자체가 공격적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북한은 남한만 공격했지만, 이스라엘은 주변국 대부분을 공격했다. 게다가 미국은 이스라엘이라면 일방적으로 두둔하고 감싼다. 중국이 북한을 감싸는 것보다 그 정도가 광적으로(crazy) 심하다.

이어서 그는 북한, 인도, 파키스탄은 핵실험만 했지만, 미국은 핵무기로 수십 만 명의 민간인을 대량 살상한 전쟁범죄 국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사상 최초의 핵무기 공격으로 수십 만의 일본인과 더불어 수 만의 조선인이 불타 죽었고, 그 자손들이 지금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려다 말았다.

'한미일 동맹'이라는 변태적인 이름

마침 위키리크스의 미국 기밀 누설로 미국이 인도 정부 앞에서는 파키스탄을 비난하는 듯 입장을 취했으나, 뒤로는 파키스탄을 지원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인도의 신문과 방송은 "미국이 인디아의 뒤통수를 쳤다"며 반미 분위기가 고조되던 참이었다. 이런 시점에 "미국의 바짓가랑이 뒤에 숨어" 같은 민족인 북한을 상대로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남한이 인도 노조간부들의 눈에 약삭빠른 여우(狐)로 비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해방 직후 "소련놈 속지 말고, 미국놈 믿지 마라, 일본놈 돌아온다"는 말이 유행했다고 한다. 소련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한국의 우익 정부가 북한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한미 합동으로 상륙 훈련을 벌이다 북한의 공격을 받았고, 이를 빌미로 미국의 등 뒤에 숨어 제 손으로 민족의 자존을 훼손하는 사이 일본이 돌아오고 있다. '한미일 동맹'이라는 변태적인 이름을 내걸고서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씨가 한나라당 국회의원 자격으로 일본천황생일 파티에 남보란 듯 참가한 것과 미국이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을 추진하면서 자위대를 한반도로 불러들이는 것은 남북한의 갈등을 악용한 '일본의 귀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들이다.

교육을 마치고 저녁을 먹는데, 맞은편에 앉은 인도 노조간부가 한마디 한다. "미국놈 믿지 마라. Do not trust America." 여기에 내가 한마디 보탰다. "일본놈 돌아온다. Japan is coming back." 이 친구 무슨 이야긴지 모르고, 빙긋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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