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금속노조와 현대차 정규직 지부,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해 이들의 싸움을 지지하고 있지만 사태를 풀 방법론에 있어서는 다른 속사정을 내비치기 때문이다. 특히 실질적으로 사측과의 교섭 창구를 열어줄 현대차 정규직 지부는 '현실론'을 강조하면서 현재는 파업으로 촉발된 사측과의 갈등을 해소하는 게 먼저고, 정규직화 싸움은 장기적인 사안이라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불법 파견에 따른 정규직화'를 내세우는 지회와 대립하는 부분이다.
현대차 지부가 비정규직 파업과 관련 연대 총파업 실시 여부를 투표에 붙이는 대의원 대회에 돌입한 상태여서 그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지부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울산 노동운동의 산증인으로 꼽히는 하부영(51) 울산혁신네트워크 대표도 앞으로의 결과가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하지만 각자의 사정은 이해하되 당장의 갈등보다는 장기적인 노동 운동의 방향을 모색하는 관점에서 이번 파업을 지지해야 한다는 그의 관점은 되새길 필요가 있다.
29일 하부영 대표와 <프레시안>이 전화로 나눈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편집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온도차, 23년의 역사적 차이라고 봐야"
프레시안: 현대차 사내하청 업체에 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예전에도 불법 파견 투쟁을 벌인 일이 있다. 예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어느 정도의 진전이 있었다고 보나?
하부영: 현재 검거 중인 공장 안과 밖을 더하면 2500여 명 정도가 파업에 참가하고 있다. 숫자로는 2005년 당시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 때는 준비가 덜 된 상태였지만 지금은 대법원 판결이라는 계기가 있었고, 이후 가입을 원하는 조합원을 대상으로 기초적인 교육도 이뤄진 상태였다. 예전 싸움의 경우 공장 점거까지는 하지 못했는데 이번엔 500여 명이 단호하게 라인을 잡았다. 2‧3공장 역시 점거까진 아니지만 밖에서 결합한 이들이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2005년과는 확연히 다른 상황이다.
▲ 하부영 울산혁신네트워크 대표 ⓒ프레시안(자료) |
프레시안: 공장 점거가 유지되는 건 음식을 반입하고 관리직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막고 있는 정규직 조합원의 역할도 크다. 반면에 불법 파견 싸움과 관련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요청도 제기된다.
하부영: 두 가지 입장이 공존한다. 이경훈 집행부가 직접 나서서 도시락을 나르고 대의원과 조합원들이 사측의 압박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놓고, 기대했던 역할의 120%를 보여준다는 평가도 있다. 한편에서는 일상적인 엄호‧지지를 넘어서 좀 더 적극적으로 파업을 주도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 지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의 주체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으로 이해가 된다. GM대우 창원공장이나 기아자동차 사례와 같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연대해 잘 싸우다가도 노노갈등을 빚고 무너진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정규직들이 너무 무리하게 주도하거나 앞장서다가 조합원들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22일 금속노조 결의대회에서 총파업을 결의했는데 지부는 조합원 투표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경훈 지부장은 "파업하면 3~5일 내에 박살난다"며 총파업에 부정적인 입장도 내비쳤다. 이에 대한 전망은.
하부영: 투표 과정에서 정규직 조합원들이 연대 파업에 나설지, 갈등을 표출할지 우려는 반반이다. 투표로 찬반을 묻는 건 위험하지만 대규모 공장을 끌고 가는 집행부 입장에서 일방적인 지시만으로 조직을 움직일 수는 없다.
투표를 하느냐, 마느냐의 논쟁은 사실 불필요하다. 조합원들에게 이번 싸움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이해시켜 통과시키는 게 올바른 방침이다. 울산 여론을 봐도 70~80%가 이번 싸움이 정당하다고 한다. 준비기간도 없이 갑작스럽게 점거가 벌어져서 총파업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지부장 생각도 일면 타당한 면이 있다.
프레시안: 하지만 그런 차이가 각 노조 사이의 온도차를 느끼게 하는 원인이 된다. 세대별로도 비정규직들이 대부분 젊은 세대인 반면, 지부는 이제 중년으로 접어든 조합원이 많다. 그런 차이점으로도 분위기 설명이 가능한가.
하부영: 고령화 등의 요인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과 정규직 체계로 분할되면서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층이 생겨났다. 정규직 노조는 상대적으로 기득권을 가진 세력이 됐고, 어느 사회건 그런 위치에 있으면 안정을 추구하는 쪽으로 변하는 게 당연하다. 반대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 환경 등에서 차별을 겪기 때문에 분노를 폭발하게 된다. 1987년 이후 23년을 거치는 동안 쌓인 역사적 경험의 차이라고 봐도 된다.
"불법 파견 적용 대상자 850만 중 70만 불과, 질적으로 변화한 노동운동 필요"
프레시안: 이번 파업이 노노갈등을 피하고 원만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 거라고 보나
하부영: 3단계로 나뉜다고 본다. 첫 번째는 본래 요구인 불법 파견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다. 두 번째는 불법 파견에 해당되지 않는 비정규직 문제다. 물류나 간접지원 분야의 비정규직 노동자, 2‧3차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을 엄격하게 다시 조사할 필요가 있다. 정규직화 대상인지, 간접고용 형태로 내버려 두어야 하는지 정리가 되어야 한다.
세 번째는 청소 노동자나 식당 노동자와 같이 합법 파견의 형태로 고용된 노동자들도 근로기준법 상에 규정된 일반적 구성력의 효과를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소속 사업장 과반 이상이 체결한 단체협약을 적용받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번 파업의 성과를 사업장에서만 적용하는 게 아니라 산업 전반에 효력이 확장되도록 하는 게 산별 노조의 역할일 것이다. 2~3단계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가장 시급한 불법 파견 문제를 해결해 교두보를 마련해야 한다는 차원으로 봐야 한다.
프레시안: 사측이 불법 파견 문제조차도 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버티는 상황에서 그 다음 단계까지 생각할 여유가 있나?
하부영: 쉽게 답을 낼 싸움이 아닌 건 맞다. 사실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한 사안이다. 파업 이전에도 현대차가 교섭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과반 이상이 조직돼 1공장 뿐 아니라 5공장까지 세워야 한다고 했다. 그런 상황까지 가면 사측도 분명 교섭에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철폐, 정규직화 쟁취'라는 노동계의 슬로건 자체는 일종의 허상인 측면이 있다. 사내하청 비정규직이 이번 파업의 성과로 정규직화를 이뤄낸다 해도 이 사례를 적용할 수 있는 대상은 850만 비정규직 중 70만 명도 되지 않는다. 300인 이상 대공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전체 노동자의 1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90%가 소속된 중소‧영세 사업장에서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가 없다.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일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다단계로 이뤄지는 재하청 시스템에서 중간착취가 발생하기 때문에 사장도 정규직을 고용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정규직 파업을 하면 다른 비정규직이 손가락질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자신들의 처지는 정규직화로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것보다 중소‧영세기업에서 벌어지는 노동 문제까지 포괄해 중간착취를 막는 게 전체적인 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그 노동자들은 임단협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렇게 질적으로 전환될 노동운동을 산별노조가 해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아직은 기업노조의 관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