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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 노조 만들자는 글이 영업 기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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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 노조 만들자는 글이 영업 기밀인가?"

상벌위 출석한 박 대리 "끝까지 싸우겠다"

삼성전자 사내 전산망에 노동조합 설립을 호소하는 글을 실었던 이 회사 박종태 대리. 회사가 그에 대한 징계를 결정하기 위한 상벌위원회(징계위원회)가 25일 오전에 열렸다.

상벌위 출석을 마치고 나오는 박 대리의 목소리는 밝았다. 그는 "상벌위가 열리는 동안, 많은 동료들이 격려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떤 결과가 나오건 견뎌내겠다. 끝까지 싸우겠다"고 덧붙였다.

삼성 노조 만들자는 글이 영업 기밀인가?

상벌위에서 회사 측은 박 대리가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고 주장했다. 박 대리는 삼성전자에서 임신한 여성 노동자가 과로로 유산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으나, 이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게 삼성전자 측 입장이다. 또 박 대리가 회사에서 따돌림을 당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회사 측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회사 측은 박 대리가 사내전산망에 올린 글이 <프레시안>에 공개된 것도 문제 삼았다. 사내 보안 규정을 위반했다는 게다.

이에 대해 박 대리는 여성 노동자의 유산, 자신이 따돌림 당한 경험 등이 모두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사내전산망에 올린 글을 외부에 공개한 것을 문제 삼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회사의 영업 기밀을 공개했다면 잘못이겠지만, 언론에 공개한 내용은 누가 봐도 영업 기밀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게다.

이날 상벌위에 대해 박 대리가 문제 삼은 대목은 '인적 구성'이다. 과거 박 대리는 '한가족협의회' 근로자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런데 임기를 10개월 남겨 놓고, 상벌위의 징계 결정에 따라 근로자위원 자격을 박탈당했다. 회사가 마련한 '한가족 스쿨' 행사에 불참했다는 게 이유였다. 당시 박 대리는 그 행사가 근로자위원에게 불필요한 '사치성 해외여행'라고 봤었다.

문제는 당시 징계를 결정했던 이들이 이번 상벌위에도 참가한다는 점이다. 박 대리는 이런 인적 구성으로는 공정한 결정이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상벌위의 최종 결정이 언제 내려질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박 대리는 "최악의 결정에 대해서도 맞서 싸울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 삼성전자 박종태 대리가 직무대기 처분을 받았을 당시, 그는 혼자 하루 종일 텅 빈 책상을 지키고 있어야 했다.

"월급 더 받자고 노조 만드는 것 아니다"

이날 상벌위에 출석하기 전까지 박 대리는 여러 차례 <프레시안>과 만나 자신의 심경을 이야기했다. 박 대리 관련 기사가 나올 때면 흔히 나오는 지적들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예컨대 "삼성전자에 노동조합이 생기면, 또 하나의 귀족노조가 되는 것 아니냐"라는 지적이 있다. 이에 대해 박 대리는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상당수 삼성전자 직원들의 노동조건은 무척 열악하다"고 대답했다. 제조부문(생산직) 노동자들의 처지가 특히 열악하다고 했다. 오랫동안 논란이 된 반도체 공장 여성 노동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또 생산직 외에도 무리한 야근 등으로 힘겨워 하는 직원이 많다고 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삼성전자 직원은 우리 사회 평균 이상의 생활수준을 누리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극심한 실업난,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 등을 떠올리면, 대기업에 다닌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득권층으로 분류될 만하다.

이에 대해 박 대리,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삼성 직원들은 "노동조합을 만드는 목적이 꼭 월급을 더 받는 데만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오로지 월급을 더 받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회사 관리자에게 잘 보여서 진급을 하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이라는 게다. 진급은커녕 해고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는 일, 즉 노동조합 결성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것.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 참관 후 지난 17일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하면서 올해 연말 사장단 인사에서 장남인 "이재용 부사장을 승진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용 씨가 삼성 경영권을 물려받아도 고(故) 이병철 회장 시절부터 내려온 '무노조 경영' 방침은 계속 고수하려 할 게다. 이를 바꿀 수 있는 힘은 오로지 삼성 노동자들에게서만 나온다. ⓒ뉴시스


"'배부른 노예' 거부하는 삼성 노동자, 봇물처럼 쏟아질 것"

또 삼성에는 워낙 튼튼한 사원 복지 체계가 마련돼 있기 때문에 굳이 노동조합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들은 한결같이 "살아가는 데는 돈이나 복지혜택이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폭언을 일삼는 관리자, 직원을 일회용 소모품쯤으로 여기는 경영자에게 질릴 대로 질렸다는 게다. 이런 관리자, 경영자 앞에서 현장 노동자가 최소한의 존엄성을 인정받으려면, 단결 외에는 답이 없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게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진짜 이유라고 말한다. 살찐 돼지, 배부른 노예로 계속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

국내 최고의 기업이라는 삼성전자에서 '배부른 노예'의 삶을 거부하겠다는 이들이 몇 명이나 될까. 박 대리는 "대놓고 말을 못해서 그렇지 불만은 차곡차곡 쌓여있다"며 "누군가 물꼬를 트기만 하면, 봇물처럼 터져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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