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현안 가운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파업이 있다. 지난 15일 울산 현대자동차 1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간 지 24일로 10일째다. 시트부 30여 명의 조합원들의 출근 강행으로 시작한 싸움은 하루도 지나기 전에 1000여 명 이상이 1공장 CTS라인을 점거하는 대규모 파업으로 커졌다. 22일 금속노조는 현대차가 교섭에 나오지 않을 경우 12월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결의했다. 열흘도 채 걸리지 않았다.
빨리 달아오른 만큼 '연평도 포격'이라는 찬물이 끼얹어진 상황에서 열기도 빨리 식을까? 적어도 외부의 시선만 보면 그럴 만도 하다. 포격 당일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의 파업 관련 인터뷰가 2개나 취소됐다. 장외 농성 중이던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도 이날 만나 24일 오전에 야5당 공동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계획했지만 사건이 터진 후 없던 일이 됐다.
하지만 울산의 농성장은 분위기가 다르다. 금속노조의 총파업 의지 역시 물러설 기미가 없다. 사측이 음식 반입을 차단하고 전기까지 끊는 등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이들은 "이 곳 역시 전쟁터"라고 말한다. 어쩌면 <조선일보>가 언급한 "분열적 책동"은 파업이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놓았던 '불법 파견'을 겨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대차 파업은 노동자가 주인임을 선포하는 싸움"
24일 울산 현대자동차 정문 앞에서 금속노조 확대간부 결의대회가 열렸다. 현대차 울산‧전주‧아산 비정규직 3지회와 현대차 정규직지부를 비롯해 전국공무원노조, 사무금융연대 등 다른 노조까지 가세해 3000여 명(경찰추산)을 넘어섰다. 현대차 파업에 연대해 잔업을 거부한 기아자동차 화성분회 비정규직 조합원들도 합류했다.
결의대회에 앞서 열린 사전대회에서 이달 초 원직 복귀에 합의한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이백윤 지회장이 무대에 올랐다. 이 지회장은 영화 <300>에 빗대 농성자들을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로, 사측을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로 묘사하면서 "스파르타가 소수정예로 페르시아 군을 막아 아테네가 전쟁을 끝냈듯 1공장 농성자들이 사측의 대군을 막고 있지만 전쟁을 끝내는 건 금속노조 전체가 되어야 할 것"이라며 총파업을 독려했다.
1895일에 걸친 농성 끝에 정규직 고용 약속을 얻어낸 기륭전자분회 김소연 분회장도 마이크를 잡았다. 최근 민주노총 투쟁본부장 직책을 맡은 김 분회장은 "처음엔 법을 이기기 위해 싸웠던 노동자들이 이젠 법을 지키기 위해서 싸울 정도로 힘든 상황이 됐다"면서도 "서울에서도 1인 시위와 현대차 본사 앞 농성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비정규직 싸움을 지지하는 이들이 많다"고 격려했다.
조희주 노동전선 대표는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노동조합도 투쟁도 몰랐는데 (파업을 하고 나서) 노조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 사회에서 노동자가 주인이라는 걸 알았다고 한다"며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은 노동자가 주인임을 선포하는 투쟁"이라고 말했다.
▲ 24일 울산 현대자동차 정문 앞에서 열린 금속노조 간부 결의대회에는 3000명(경찰추산)이 넘는 이들이 참여해 총파업 의지를 다졌다. ⓒ프레시안(김봉규) |
"'한 명만 더 있었으면'하던 마음, 이제야 결실 봐"
현대차 비정규직 3지회의 젊은 조합원들도 마이크를 잡았다. 전주지회 김평준 현장위원은 "2007년 4월 입사당시 사장과 현장소장이 면접을 한다며 부르더니 노조와는 말도 섞지 말고 커피도 같이 마시지 말라고 하더라"며 "처음엔 노조가 뭔지도 몰랐지만 일하면서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와 탄압이 무엇인지 알게됐고 노조가 왜 싸우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대법원 판결 이후 노조에 가입하자마자 사측의 회유와 협박이 있었지만 '당신들이 내 인생을 책임질 건가'라고 대꾸했다"며 "황인하 조합원의 분신 소식을 들었을 때는 한 번도 못본 동지였지만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고 덧붙였다.
울산2공장 소속의 석근도 조합원은 "2002년에 입사해 2003년에 조합에 가입했는데 그 뒤로 비정규직 투쟁이 실패할 때마다 '한 명만 더 있었으면…'이라고 안타까워했다"며 "지금 한 번도 싸워보지 않은 조합원들이 두세 배가 넘는 상황을 보면서 그때 바람이 이제야 결실을 봤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황인하 동지가 어머니가 아파 농성장을 나왔다 다시 들어가다 깨지고 또 깨지니 미안한 마음에, 앞길을 밝혀주기 위해 분신했다"며 "병원을 찾아갔더니 목소리도 안 나오는 상황에서 붕대감은 팔을 들어 '투쟁'이라며 팔을 흔들더라"고 덧붙였다.
아산지회의 윤동희 조합원은 "결의대회에 참석하러 내려오는 길에 휴게소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청소부 아주머니가 입고있던 옷을 알아보고 자기도 비정규직이라며 꼭 이기고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하더라"라며 "아산공장에서도 사측의 탄압에 깨지고 병원에 입원해도 조합 가입 원서가 날아오고 비조합원이 미안하다며 투쟁기금을 전달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재 나선 현대차 지부, 성공할 수 있을까?
대회에 참가한 정치인들은 연평도 사건을 언급하면서 사태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는 "어제 늦은 오후부터 한 가지 쟁점이 한국 사회를 빨아들이고 있다"명백히 규탄해야할 문제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한국 사회에 산다는 것 자체도 하나의 전쟁"이라며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부터 사교육 비용, 불안정한 직장, 노후대책까지 모든 문제의 핵심이 850만에 이르는 비정규직 문제"라고 말했다.
박유기 금속노조 위원장은 "우리에겐 명분과 정당성이 있기 때문에 (파업에) 전국적 관심과 지지를 이어오고 있다"며 "(총파업) 결의 따로 가고 실천이 따로 가는 건 무책임하며 훗날 어떤 책임이 돌아오더라도 앞장서겠다"라고 파업 결의를 다졌다.
농성 중인 이상수 울산지회장도 전화 연결로 결의대회에 참가한 이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이 지회장은 "우리가 공장에 들어온 이유는 불법 파견을 없애고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것 한 가지"라며 "김밥 한 줄로 끼니를 잇고 농성 환경은 날이 갈수록 열악해지지만 우리의 의지는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초 비정규직 파업 해결에 '신중론'을 펴서 지회와 입장차를 보여왔던 이경훈 현대차지부장은 "한 사업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왔던 현실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아름다운 투쟁을 외치며 (농성장을) 엄호하고 지지하고 있다"며 "대회가 끝난 후 3지회장 및 박유기 위원장과 함께 현대차를 강제하기 위해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지부는 이날 확대 운영위원회를 열어 파업의 발단인 시트사업부 하청업체 고용승계, 교섭창구 개설, 총파업 찬반투표 실시, 총파업 이전 상황 정리라는 4가지 입장을 정했다. 지부는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결의대회 이후 3지회 및 금속노조 지도부와 함께 합의점을 찾고 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법 파견'에 대한 교섭을 파업 중단의 기본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지부의 중재가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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