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에선 11일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극적으로' 한미FTA 협상이 타결되리라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2008년 촛불시위 당시, 광우병 위험을 걱정하는 시민들에게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강조했던 정부지만, 쇠고기 시장을 더 열 수는 없었다. 먹을거리 문제가 얼마나 민감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마침 이날, 한미FTA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G20대응민중행동이 개최한 '사람이 우선이다! 경제위기 책임전가 G20규탄 국제민중공동행동의 날' 집회의 일부다. '한미FTA 강행, 노동탄압 이명박 정부 규탄대회'가 열린 서울역 광장은 각종 시민단체 회원 및 민주노총 조합원을 비롯한 시민 1만 명(주최 측 추정, 경찰 추정 3500명)으로 가득 찼다. 이들에게 '한미FTA가 내 삶에 미칠 영향'을 물어봤다.
ⓒ프레시안(최형락) |
노동자들의 관심사는 역시 구조조정이었다. 한미FTA가 체결될 경우, 상대적으로 타격이 적으리라고 예상되는 섬유 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화학섬유연맹 이상진 위원장은 "미국에서도 고급 옷이 관세 없이 들어온다고 하니 우리 공장도 타격을 입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국 섬유산업이 미국의 고급 섬유산업과 동남아시아 등의 저가 섬유산업 사이에 낀 상태라는 것이다.
현대자동차 지부 이화백 아산위원회 부의장은 "자동차 규제가 풀리면 미국산 자동차가 물밀듯이 들어와 한국 자동차 물량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의장은 "자동차 수출이 늘어난다고들 하지만 이미 미국에 현지 공장이 많이 들어선 상태"라고 지적했다. 수출 효과는 미미한 반면 내수 시장에만 타격이 온다는 얘기다. 그는 "당장은 괜찮겠지만 5~10년 뒤에는 노동조건이 악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회사에서 근로시간을 단축하거나 구조조정을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감은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서울역 근처에서 만난 시민 채희정(가명·57) 씨는 "미국산 농산물이 물 밀 듯이 들어와서 국산 농산물은 잘 못 먹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국산을 비롯한 수입 농산물은 방부제를 많이 뿌렸을것 같아서 불안하다"고도 덧붙였다. 수입산은 아무래도 유통기간이 길므로 방부제 과다 사용 우려가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건설 노동자인 이선희(가명·38) 씨는 "가격 안 따지고 산지 음식을 먹기가 쉽지 않은 현실"을 지적했다. 이 씨는 "식당에서도 한국산은 잘 안 쓴다"며 "제대로 먹으려면 유기농을 찾아다녀야 하는데 포기상태다. 그냥 대충 먹는다"고 말했다. "지금도 서민들의 먹을거리가 부실한데 수입산이 들어오면 오죽하겠느냐"는 것이다.
노점상을 하는 이종학 씨는 "가난한 사람은 더 걱정"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돈이 없으니, 어쩌다 쇠고기를 먹을 일이 있으면 수입 쇠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씨는 수입 쇠고기가 광우병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믿는다. "한미FTA로 한국 축산업이 위축되면, 결국 수입산 쇠고기밖에 선택지가 없어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청소미화원인 한옥선 씨는 "시골에서 소를 키워봐서 그런지 한우 아니면 안 먹는다"고 했다. 한 씨는 "쇠고기 때문에 농민들이 힘들어하니까 농촌 출신인 나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수입산 쇠고기는 값이 싸지만, 손자들에게 먹이기는 싫다고 했다.
이날 만난 시민들에게 한미FTA에 관한 질문을 던졌을 때, 돌아온 대답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한결같이 나오는 말이 있었다. "없는 사람만 더 힘들어진다"는 말이다.
시민 김태완 씨(30)는 "투기자본이 한국에서 주식 빼 가서 피 빨아 먹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날 외국인의 대량 매도로 주가가 폭락한 것을 가리킨 말이다. FTA는 자본의 이동을 촉진하는 결과를 낳겠지만, 그게 보통 시민들에게 꼭 이익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어진 그의 말이다.
"가난해서 힘들어요. 정권이 없는 사람 주머니 털어서 가진 사람 배만 불리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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