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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病' 독일이 경제위기에도 튼튼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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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病' 독일이 경제위기에도 튼튼한 이유는?"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OECD-TUAC 롤란드 쉬나이더 인터뷰

'국가대사(國家大事)'인 서울 G20 정상회의에 맞춰 노동계도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한국노총은 지난 9일 '경제위기 이후 미래 고용전략에 관한 국제정책세미나'를 열어 국제 사회의 최대 현안이 되고 있는 고용위기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세미나에는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과 국제노동기구(ILO)의 전문가들이 참가해 경제위기 이후의 고용전략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여기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노동분야 자문기구인 노동조합자문위원회(TUAC)에서 정책관으로 일하는 롤란드 쉬나이더(Roland Schneider) 씨를 만나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집행한 고용정책의 성과를 들어보았다. 그는 "2008년 금융 위기는 미국식 금융시장 모델뿐만 아니라 미국식 노동시장 모델도 종말에 이르렀음을 잘 보여준다"고 운을 뗐다.

윤효원: 노동시장 측면에서 경제위기 이후 가장 안정된 성과를 보인 나라는 어디인가?

쉬나이더: 가장 안정된 성과를 보인 대표적인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은 최악의 금융위기로부터 자국 노동시장을 성공적으로 보호했고, 고용을 안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2008년 금융위기 전에는 실업률이 9%였는데, 위기 이후 오히려 7.2%로 떨어졌다.

윤효원: 한국의 보수언론들은 2004년 무렵 노동시장이 가장 경직된 나라로 독일을 거론하면서 '노조병(病)' 때문에 독일 경제가 무너져 내릴 거라고 전망한 적이 있는데, 금융위기 이후 실업률이 낮아졌다니 흥미롭다.

▲ 롤란드 쉬나이더 OECD TUAC 정책관 ⓒ프레시안
쉬나이더:
각국의 노동시장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노동시장 유연성 관련 지표가 높다는 사실과 실업률이 낮다는 점은 별다른 관련이 없다는 점이 확인된다. 그리고 높은 노동시장 유연성이 풍부한 일자리를 갖춘 경제회복(job-rich recovery)을 가져온다는 실증 증거도 없다. 보수경제학자들이 노동시장이 경직되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노동시장이 안정되어 있음을 뜻한다. 이번 경제위기는 노동시장의 안정성이 노동시장을 강화하고, 결국 국민경제를 보호하는데 중요함을 보여주었다.

윤효원: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어떻게 노동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었나?

쉬나이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 나누기(work sharing)가 대표적인 방법이다. 실업을 억제하기 위해 독일 정부는 단시간(短時間) 근무제도(Kurzarbeit)의 활용을 장려하였다. 단시간 근무제도는 법률상 제도로 노사 합의를 통해서 시행하도록 되어 있다. 이 제도는 기업이 경제위기 등 노동력 수요가 없을 때 노동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사합의를 통해서 종업원의 노동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제도다. 이 경우 노동자들은 자신이 받던 임금의 70%까지 받을 수 있다. 기업은 노동자가 일한 시간만큼만 급여를 지불하고, 나머지는 연방정부가 실업보험이나 사회보험에서 지급한다.

2009년에 6만3천개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150만 명이 단시간 근무제도를 신청했고, 결과적으로 48만개의 일자리가 유지될 수 있었다. 2010년 3월 현재, 69만 명의 노동자가 이 제도 하에서 노동시간을 줄여 일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6개월이었던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급여의 지급 기간을 작년 5월 최장 24개월까지 늘렸다.

윤효원: 독일의 경우 단시간 근무제도말고도 노동시간 계좌제도(work-time accounts)를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 제도에 대해 설명해 달라.

쉬나이더: 노동시간 계좌제도는 노사의 단체협약에 기반한 것으로, 노동자가 연장근로(overtime)를 한 경우 150%니 200%니 하는 연장근로수당을 받지 않는 대신에 연장 근로한 시간만큼 자신의 노동시간 계좌에 넣어두었다가 필요할 때 돈 혹은 시간으로 보상받는 제도를 말한다. 예를 들어, 4개월 동안 단체협약에서 정한 노동시간 보다 250시간을 더 일했다면 할증 수당, 즉 연장근로수당을 안 받는 대신 적립된 250시간에 대해 나중에 필요할 경우 휴가로 쓰거나 임금으로 지급받는 것이다.

윤효원: 금융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active labor market policy)이 노동시장을 시장원리에 내맡기는 정책보다 효과적이었다는 말인데.

쉬나이더: 물론이다. 위기 이전에 이미 적극적인 노동시장 제도와 정책을 갖고 있었고, 위기가 일어난 후 이후 그러한 제도와 정책을 바탕으로 신속하고 실질적인 조치를 취한 나라들은 그렇지 못한 나라들보다 금융 위기의 부정적인 충격이 상대적으로 덜했다.

덴마크, 스웨덴, 독일, 벨기에, 오스트리아 등 강력한 노동시장 안정 메커니즘을 갖춘 나라들은 미국, 아일랜드, 스페인 등 노동시장 메커니즘이 취약한 나라들보다 실업 문제의 심각성이 덜하다. 특히 적절한 수준의 실업 급여를 갖고 있느냐 여부가 중요하다.

OECD 2010년 <고용전망>이 지적했듯이 충분한 수준의 실업급여는 위기 중에 소득과 수요를 유지시키는 데 도움이 될 뿐 만 아니라, 노동 재분배(labour reallocation)를 촉진하여 숙련된 인력의 수요와 공급을 개선함으로써 기업 생산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윤효원: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의 고용 상황은 악화되었다. 미국과 함께 '앵글로 색슨' 모델로 거론되는 영국은 어떤가?

쉬나이더: 미국에서는 위기가 고용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지만, 전통적으로 노동유연성의 대표적인 나라로 여겨지는 영국은 그렇지 않고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고용 손실을 경험하였다. 그런 점에서 '앵글로 색슨' 모델로 일반화할 수 있는 고용 모델은 없다.

영국 사정이 미국보다 나은 것은 유연성 때문이라기보다는 노사정이 올바른 전략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교육과 보건 분야에 대한 사회적 지출을 늘렸고, 노사는 임금 억제와 고용 안정을 맞바꾸었다.

사실 노동시장 유연성과 일자리 손실 사이에는 의미 있는 연관성이 없다. 이런 결과는 2006년 나온 <OECD 일자리 전략>의 결론과 완전히 일치한다.

사용자에게 채용과 해고의 자유를 더 많이 보장하는 '앵글로 색슨' 모델의 기본틀이 낮은 실업률의 전제조건은 아니다. 노동시장 규제 정책만이 좋은 고용 성과를 가져온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노동시장 규제 완화가 그렇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노동시장 제도와 노동시장 정책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윤효원: "노동시장 제도와 노동시장 정책 사이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말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달라.

쉬나이더: 노동시장 유연성과 노동시간을 예로 들어보자. 유연성이 높으면 경제 위기로 일감이 없을 때 노동시간 단축이 쉬워야 한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른바 경직된 노동시장을 가졌다고 알려진 독일과 스웨덴에서는 위기 이후 노동시간 단축이 큰 폭으로 이뤄지면서 일자리 나누기가 "유연하게" 이뤄졌다. 반면, 유연한 노동시장을 가졌다는 영국에서의 노동시간 단축은 상대적으로 더뎠다. 노동시간 변화가 경직적이었던 것이다.

윤효원: '고용 없는 성장'이 문제고, 이번 금융 위기 이후 일자리 없는 경기회복에 대한 우려가 높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쉬나이더: 노사정 3자 가운데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정부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일자리 중심의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단체교섭을 촉진하고 그 단체협약의 적용률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사정 3자의 사회적 대화를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저임금이 '최저' 수준이 아니라 적정한 수준으로 상향되어야 하며, 사회보장제도에 기초하여 노동자의 소득 수준을 올리는 방향으로 사회경제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고용 전망을 개선해야 한다.

윤효원: 노동시장 양극화와 고용 위기에 노동조합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쉬나이더: 무엇보다도 단체교섭의 범위를 확대하고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을 강화해야 한다. 최근 독일 금속노조와 철강사용자협회가 체결한 단체협약은 중요한 사례를 제시해준다. 이 합의로 동일노동에 대해 동일임금이 실현되면서 비정규직의 임금이 정규직 수준으로 올랐다. 인력파견업체나 하청업체가 동일 임금을 지불할 수 없으면, 원청업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원칙은 노조원이냐 비노조원이냐를 가리지 않고 단체협약이 적용되는 사업장의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된다.

OECD 기준에서 볼 때 한국의 단체협약 적용률은 대단히 낮다. 정규직은 16.3%인데 반해, 비정규직은 3.1%에 불과하다. 기업별 노조체계와 기업별 수준의 단체교섭이 주된 원인이다. 산업별노조로의 전환과 산업·전국 수준의 단체교섭이야말로 노동시장 양극화에 대응하는 데 있어 노동조합의 가장 중요한 전략이 될 것이다.

윤효원: 유연성의 다양한 측면이 있는 것 같은데, 유연성에 대한 노동의 대응은 어떠해야 하는가.

쉬나이더: 노동조합이 유연성에 반대만 할 수는 없다. 물론 채용과 해고를 자유방임하는 방식의 외부적(external) 유연성에는 반대한다. 노동조합은 좋은 임금과 좋은 노동조건에 신경써야 하지만, 신기술이나 신기계의 도입 같은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 관심의 결과는 직업훈련에 대한 노동조합의 역할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기능적(functional) 유연성에 대해서는 노동조합이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기업과 정부는 확인되지 않은 유연성의 장점에만 너무 몰입되어 있다. 특히 미국식 노동시장 체제가 세계 모든 나라에 통용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것은 이데올로기다. OECD 자료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나며, 이번의 금융위기도 미국식 체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윤효원: 마지막으로 한국의 기업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쉬나이더: 독일 기업이 정부나 노조의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종업원을 유지하려는 데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 금융위기 전에 이미 금속, 화학, 기계 산업의 기업들은 단시간에 인력 공백을 채우는 게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을 이미 깨닫고 있었다. 고도로 숙련되고 전문화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서는 4만 달러가 넘는 추가 비용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해고를 하면 비용이 절감되는 게 아니라 반대로 비용이 커지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그래서 독일 기업들은 노동 수요가 감소할 때도 노동자를 계속 고용하려고 했다. 인적 자본을 잃고서는 기업을 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해고를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면 비용이 줄 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반면 미국 기업들은 전혀 다른 접근법을 취해왔다. 일감이 줄면 노동시간 단축보다는 노동자를 감축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래서 일부 관찰자들은 미국 기업들이 노동자를 "일회용(disposable)" 존재로 본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는데, 최근 나온 세계경제포럼(WEF)의 '세계경쟁력보고서(Global Competitiveness Report)'는 미국식 접근법이 생산성·혁신·경쟁력에 장애가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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