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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살아나도 정부 재정은 엉망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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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살아나도 정부 재정은 엉망인 이유

[오건호 칼럼] "한물간 '부자감세', 이제 '복지증세'다"

이번 주부터 국회가 2011년 예산안을 본격적으로 심의한다. 이명박정부가 내년 예산안에서 이루려는 가장 큰 목표는 재정수지 개선이다. 이에 가능한 수입을 늘리고 지출을 억제하려 한다. 내년 정부총수입은 올해 290.8조원에 비해 23.8조원, 8.2%가 증가한 314.6조원이다. 반면 내년 정부총지출은 올해 292.8조원에서 16.8조원, 5.7% 증가한 309.6조원이다. 재정지출 증가율이 재정수입 증가율에 비해 2.5%포인트 낮다. 그만큼 재정수지가 개선될 것이다.

대한민국 재정, 강력한 '지출 통제'에 직면하다

그러면 내년 정부총지출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내년 정부총지출을 의무지출과 재량지출로 구분해 살펴보자. 아래 <표>를 보면, 내년 정부총지출 중 법령에 따라 자동으로 정해지는 의무지출이 144.9조원으로 올해 132.9조원에 비해 12.0조원, 9% 늘어난다. 반면 정부의 정책 의지가 반영되는 재량지출은 인건비 몫을 제외하면 증가분이 3.4조원, 2.5%에 불과하다. 내년 물가상승률 2.6%를 감안하면 재량지출의 경우 실질적으로 동결 혹은 삭감되는 것이다.

이처럼 내년 예산안에서는 강력한 '지출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명박정부는 앞으로 균형 재정을 달성할 때까지 지출증가율을 수입증가율보다 매년 2~3% 포인트 낮게 유지하는 '재정준칙'까지 도입한다. 지금 우리나라 재정지출 규모에서 2~3% 수준의 재정준칙은 사실상 재량지출의 동결을 의미한다. 이명박정부 남은 임기 내내 대한민국 재정은 어느 때보다 강력한 '지출 통제'를 당할 것이다.

경기가 회복되고 지출이 통제됨에도 왜 '재정 적자'일까?

우리나라는 올해 5.8% 실질경제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성장률로만 보면 금융위기에서 거의 벗어났고, 경제성장과 연동되어 재정 수입도 확대될 것이다. 내년 이후에도 5% 내외 경제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괜찮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왜 내년에 25.3조원의 재정적자가 발생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재정지출이 애초 과대했을까? 4대강사업 등 불필요한 지출이 있지만, 총량에서 우리나라 전체 국가재정 규모는 외국에 비해 작다. OECD 기준으로 올해 우리나라 국가재정 규모는 GDP 31.3%로 OECD 평균 44.8%에 비해 무려 13.5% 포인트나 작다. 올해 GDP를 약 1100조원으로 보면 금액으로 약 150조원이 부족한 실정이다.

국가재정의 절대 규모가 작은데도 불구하고 재정건전성 문제가 생기는 근본 원인은 수입 부문에 있다. 2008년 부자감세로 올해부터 20조원 이상의 세수 감소가 항구적으로 발생한다. 결국 내년 재정적자는 대부분 부자감세에 의해 초래된 것이다. 부자감세를 원상회복하면 내년 재정수지 적자가 거의 해소된다는 이야기다. 이명박정부는 재정건전성을 운운할 자격이 없다.

▲ 친환경 무상급식이 시범실시되는 성북초등학교 6학년 3반 아이들이 교실에서 배식을 받고 있다. 무상급식에 대한 국민의 호응에서 확인되듯, 보편적 복지에 대한 잠재적 지지는 견고한 편이다. 그러나 보편적 복지를 구현하려면 튼튼한 재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프레시안(이경희)

MB의 '지출 통제' vs. 진보의 '복지 증세'

이명박정부는 2013~2014년에 재정균형을 달성하겠다고 한다. 2013년 예산안이 제출되는 시점인 2012년 가을은 차기 대통령선거전이 치열한 시기이다. 이 때 이명박정부가 재정균형 청사진을 제시할 경우 재집권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반대로 당시까지 재정균형이 가능치 않을 경우, 부자감세가 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다. 2012년 대선에서 이명박정부는 재정건전성 문제를 초래한 정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재정건전성을 해결한 정권이 될 것인가? 그만큼 재정균형은 이명박정부나 한나라당에게 중대한 사안이다.

그래서 이명박정부는 작년부터 재정건전성 프레임을 강력히 작동시키고 있고, 내년 예산안에서도 이를 적용했다. 이는 국세수입 확충을 위해서 4대강 사업, 부동산 거품 유지 등 경기 부양책이 계속될 것임을, 동시에 재정건전성에 압박을 가하는 복지 지출은 강력히 통제될 것임을 예고한다. 앞으로 정부총지출 증가분은 법령에 정해진 의무지출 증가분에 한정되고, 정책의지가 반영되는 재량지출은 동결 혹은 삭감될 것이다. 최근에는 보수 학자들을 중심으로 의무지출분을 줄이기 위한 법령 개악까지 언급되고 있다.

진보진영은 이러한 '지출 통제' 장벽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MB의 '지출 통제' 프레임에 맞서 보편적 복지를 구현하기 위한 '복지 증세' 프레임을 만들어가야 한다. 진보진영 내부에 여전히 '증세'라는 용어를 거북해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냥 '증세'가 아니라 '복지 증세'이다. 국민들의 복지 열망을 담으면서, 세출구조 불신을 넘기 위해선 세입과 세출을 연계한 증세운동이 필요하다. 이 과제는 더 이상 피하거나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최근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부자감세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고, 복지가 확대된다면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다는 국민들도 생겨나고 있다. 앞으로 복지국가 담론을 둘러싸고 논의가 확대될텐데, 명칭이야 다르지만 목표는 '보편 복지'로 거의 비슷할 것이다. 논점은 재원방안을 둘러싸고 생길 수 밖에 없다. 진보진영이 적극적으로 복지 증세를 제안하며 복지국가 담론을 주도해 나가자.

부유세 방식이냐? 일반 직접세 방식이냐?

우선, 2008년 부자감세 원상회복은 기본이다. 이미 소득세,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는 내년까지 보류되어 있는 상태이고, 정부가 내후년에 후속 인하를 강행하기 쉽지 않을 듯하다. 이미 한나라당 내부에서 이견이 존재하고 2013년 재정균형 목표를 위해서도 적절치 않기 때문이다. 부자감세 문제는 이명박정부 국가재정 운용의 정당성과 직결된 의제이므로 2012년 대선까지 끊임없이 원상회복을 요구해야 한다.

진보진영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본격적으로 사회복지세, 사회보험료 등 복지연계 증세 방안을 제기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복지가 확대된다면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다는 국민들이 생겨나고 있다. 현재 진보진영에서는 복지증세 방식을 둘러싸고 상위계층에 재원을 요구하는 '부유세 방식'과 중간계층까지 재정확충에 참여하는 '일반 직접세 방식'이 제안되고 있다.

부유세 방식의 복지증세 방안으로 대표적인 것은 과거 민주노동당의 부유세이다. 2004년 총선에서 국민들의 주목을 끌었던 부유세는 이후 민주노동당이 별다른 활동을 보여주지 못하고, 부동산부유세 취지를 지닌 종합부동산세가 도입되면서 흐지부지되어버렸는데, 최근에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이 사회복지부유세 신설을 주장하면서 다시 눈길을 끌고 있다.

법안 형태로까지 완성된 방안은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가 발의한 사회복지세이다. 사회복지세는 소득세, 법인세, 상속증여세, 종합부동산세 등 직접세목에 다시 누진세율을 적용하는 일종의 부가세(surtax)이다. 진보신당 사회복지세는 상위 5% 부유계층과 1%의 대기업을 과세대상으로 삼아 매년 15~20조원의 세수를 전망한다.

이러한 부유세 방식과 대비되는 것으로 중간계층 이상 모두가 참여하는 '일반 직접세 방식'이 있다. 최소한 직접세를 내는 계층은 모두 복지재원 마련에 기여하자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07년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통령후보가 내걸었던 사회복지세 공약이 있다. 이 세금의 구조는 현재 진보신당 사회복지세와 유사하게 소득세, 법인세, 상속증여세, 특별소비세 등에 누진적 부가세율(10~30%)을 적용하는데, 결정적 차이는 과세대상이 직접세를 내는 모든 납세자에 해당된다는 점이다. 전체 노동인구 중 대략 절반이 면세자이므로 중간계층 이상자는 모두 사회복지세를 내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를 통해 13조원의 세수를 예상했다.

복지재정 확충을 위해선 직접세 성격을 지니는 사회보장기여금의 확대도 증요하다. 대표적 예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운동이다. 이는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자는 무상의료 운동이지만, 재원의 성격을 보면 '복지 증세' 운동의 흐름에 있다. 기존에 국가, 기업에 무상의료 재정을 책임지라는 방식에서 가입자 모두가 보험료를 더 낼테니 그만큼 국가, 기업도 책임을 더 하라고 주장한. 이러한 면에서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참여재정 방식의 보건의료운동이다.

진취적 논쟁으로 '복지 증세' 프레임 만들어가자!

부유세 방식이든 참여재정 방식이든 모두 소득재분배 효과를 낳는 진보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나는 후자의 '참여재정' 방식을 선호한다. 양 방식의 '정책적 성격'보다는 각각이 발휘할 수 있는 '사회운동적 효과'에 더 주목하기 때문이다. 국가와 기업에 '내라!'라고 요구하는 것보단, '낼테니 내라!'가 훨씬 강력하고, 특히 이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복지운동 주체가 형성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이제 진보진영 내부에서 진취적으로 논쟁을 벌이자. 우리끼리 서로를 이기자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공론화 과정을 통해 '지출 통제'에 맞서는 '복지 증세' 프레임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다가오는 복지국가 담론 경쟁에서 진보진영이 도약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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