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지난달보다 더 긴박해졌다. 한 달 사이 일본이 대규모 양적완화(유동성 공급) 조치를 취했고, 환율전쟁이 본격적으로 온 세계를 휘감고 있다. 김 총재의 선택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한은이 물가를 선택하느냐, 아니면 환율을 선택하느냐가 이번 금통위에서 갈릴 전망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한은 스스로가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 ⓒ프레시안 |
다시 유동성 펌프질 시대
이번 금통위의 최대 이슈는 배추파동으로 상징되는 고물가와 환율전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은은 기준금리를 올려 본연의 임무인 물가안정에 나서거나, 원-달러 환율 하강속도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 금리를 동결(혹은 인하)해야 한다. 둘 모두 현재로서는 쉽게 빼들기 어려운 카드다.
무엇보다 선진국 경제가 여전히 심각한 지경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좀처럼 실물경기가 회복되지 않자, 최근 들어 선진국들이 앞다퉈 유동성을 더욱 공급하는 극단의 처방을 내리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시장에 유동성을 퍼부어 경기를 띄우기 위해서다.
지난 5일 일본은행(BOJ)이 엔고현상 저지를 막기 위해 제로금리를 부활시키고 5조 엔에 달하는 대규모 자산매입기금을 설립하면서 양적완화의 신호탄을 쐈다. 미국 또한 유동성 추가 공급 의지를 보이고 있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은 지난 4일(현지시간) "국채 추가매입이 금융 환경을 개선시켜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8일 발표되는 9월 실업률 지표가 예상보다 더 나쁠 경우, 미국은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에 나설 것으로 시장은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예상 규모가 적게는 1000억 달러에서 많게는 1조 달러에 달한다.
이처럼 대규모로 풀린 유동성이 원화 강세의 배경이다. 선진국의 금리가 이미 제로 수준으로 떨어진 반면, 한국은 여전히 3년물 국채금리가 3%대를 유지하고 있다. 선진국들이 경쟁적으로 풀어놓은 유동성이 원화가치를 띄우게 됐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리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고유선 대우증권 경제금융팀장은 "한국이 일본처럼 공격적으로 돈을 풀기는 쉽지 않지만, 최소한의 대응에는 나설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한은이 금리인상 속도 제어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둔 마당이라 정부의 적극적인 외환시장 개입이 쉽지 않은 만큼, 한은의 '소극적 대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대우증권은 이번달 금통위가 지난달에 이어 기준금리를 2.25%로 동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가는 어쩌나
문제는 기준금리 동결이 물가 급등세를 더욱 부채질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생활물가는 전년동월대비 평균 4.1% 급등했다. 지난 2008년 10월 4.8% 이후 최고치다. 생활물가는 정부가 체감물가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소비자들의 구입 빈도가 높고 지출비중이 높아 가격변동 수준이 민감한 품목 152개의 가격변동을 따로 산정한 수치다.
밥상머리 물가가 문제였다. 상추값은 1년 전보다 무려 234%가 뛰었고 호박도 220% 올랐다. 국정감사에서도 최대 이슈가 된 배추 역시 119%가 올랐다.
선진국과 달리 국내 실물경제가 견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 역시 변수다. 한은은 이미 지난 4월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4.6%에서 5.2%로 대폭 올려잡았다. 기관에 따라 규모는 다르지만 최소 660조 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단기부동자금 또한 물가에 중요한 자극제다. 기업들의 3분기 실적 역시 대체로 시장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고 있다.
한은이 이번 달에도 기준금리를 동결한다면 정치·사회적으로는 기관의 제1 설립목표인 물가안정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이라도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며 "국내 자산시장에 단기 유동성이 너무 많이 풀린데다, 물가 불안은 국내 경제만 놓고 보면 심각한 변수"라고 지적했다.
상당수 금융기관에서 한은이 이번에는 기준금리를 끌어올리리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정용택 KTB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10월에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며, 최소한 4분기 중에 추가 인상이 있을 것"이라며 "이번에도 동결해버리면 시간이 지나 급하게 끌어올려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 지금이 타이밍"이라고 말했다.
금융투자협회가 채권시장 종사자 23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도 응답자의 61.1%가 이번 금통위에서 기준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취임 당시부터 한은을 정부의 종속기관으로 만들 것이라는 우려를 낳았다. ⓒ뉴시스 |
결국 김중수의 실기
기준금리를 둘러싼 논란은 금융위기 이후 한은에 큰 부담을 지우고 있다. 해외 사정이 워낙 좋지 못한데다, 국내변수가 시시각각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간 한은은 정부가 위기 탈출을 위해 추진하던 재정적자+유동성공급 기조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작년 2월부터 지난 6월까지 16개월간 기준금리 2.00%를 유지했다. 이후 지나치게 풀린 유동성이 국내 경제에 새 위협요인으로 꼽히자 한은은 7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연내 추가 인상이 있으리라는 전망이 당시 시장에 우세했다.
가장 적절한 시기로 지난달 금통위가 꼽혔었다. 경기가 호조를 보여 경상수지 흑자기조가 7개월째 이어졌고, 이에 따라 물가 상승 우려가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실제 김 총재도 금통위 전 여러 차례에 걸쳐 과거보다 강경한 어조로 기준금리 인상 방침을 시사, 시장에 예고(시그널)신호를 보냈다. 8월 12일 김 총재는 "금리가 낮을 때 가계부채가 과도하게 증가할 수 있다"고 말했고 같은 달 17일에는 "현재의 통화정책 기조가 매우 완화적인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9월 금통위에서 김 총재는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곧바로 채권금리가 급락하는 등 시장에 충격이 이어졌다. 이날 하룻만에 국고채 5년물 금리는 0.20%포인트 급락해 1년 8개월 만에 가장 낮은 3.83%까지 떨어졌다.
노골적으로 한은을 비판하는 보고서가 곧바로 쏟아질 정도였다. 이날 삼성증권은 곧바로 보고서를 내 "7월 금리인상으로 한은의 독립성이 커진 것으로 봤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이 확인됐다. 앞으로 한은의 신호보다는 금통위 이전에 나오는 청와대나 정부 입장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정치에 휘둘리는 한은의 행보를 꼬집었다.
키움증권도 "향후 한은의 통화정책이 채권시장에 미칠 영향력이 줄어들고 결국 금리 변동성이 작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숙제를 뒤로 미룸에 따라 이번 금통위에서 한은의 부담은 더 커지게 됐다. 결국 한은 스스로 사면초가에 빠지게 된 셈이다.
장민 금융연구원 국제거시금융연구실장은 "9월에 올렸다면 이번에는 동결해도 부담이 덜했는데 이미 늦어버렸다"며 "그 동안 기준금리를 너무 낮은 수준으로 유지해오다 이제 올릴 수도 없고, 동결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한은의 실기"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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