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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당신들은 노예다"

재벌 비리 고발한 소설 <허수아비춤> 내놓은 작가 조정래

누가 그를 일흔에 가까운 나이라 하겠는가. 젊은 기자들 앞에 선 노(老)작가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했다.

"완벽한 세상은 없죠. 힘 있고 돈 많은 이들은 횡포를 부린 건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까지 포기할 수는 없죠. 작가에게는 모순과 불의에 맞서 진실을 이야기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럼 사회는 불편해하겠죠. 하지만 그게 작가의 임무입니다."

삼성, 현대를 그대로 빼닮은 <허수아비춤> 속 재벌

재벌의 불법 로비와 비자금 조성을 다룬 신간 <허수아비춤>(문학의문학 펴냄)을 들고, 나타난 조정래 작가의 말이다. 조 작가는 이 책을 내면서 한국 현대사를 다룬 대하소설 <한강>을 낸 뒤 10년 동안 품어왔던 '경제민주화'에 대한 생각을 담았다고 밝혔다. 현대사의 격동 속에서 정치적 민주주의는 꽤 자리를 잡았지만, 경제 영역은 아직 민주주의와 거리가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이번 소설에선 실제 재벌과 실존 인물을 떠올리게끔 하는 인물과 사건이 다뤄진다. 이름만 태봉그룹, 일광그룹으로 다를 뿐 삼성과 현대를 그대로 닮은 재벌들이 등장한다. 옛 삼성 전략기획실(구조조정본부, 비서실)과 닮은 조직에 몸담은 이들이 주인공이다. 또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교수와 변호사도 나온다. 역시 현실을 그대로 빼닮았다.

"특정 기업만이 아닌 한국 사회의 자화상"

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가한 기자들의 관심도 그 대목에 쏠렸다. 실존 인물을 다룬 소설 아니냐는 게다. 이날 나온 첫 질문이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고 쓴 소설 아니냐. 집필 과정에서 김용철 변호사를 만났느냐"였다.

조 작가는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었다. 하지만 김 변호사를 직접 만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동석한 출판사 관계자는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특정 기업 및 인물과는 관계가 없다"고 덧붙였다. 작가 역시 "소설에 그려진 상황은 특정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거의 모든 기업이 공통적으로 지닌 문제"라고 말했다. "일광그룹의 로비 실무자가 다른 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는 소설의 결말은 바로 그런 점을 암시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 작가 조정래(사진 가운데). 그는 올해 예순 일곱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힘찬 목소리로 '경제 민주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프레시안
"40년 동안 '성장'만 외치는 나라, 대체 '분배'는 언제쯤"

이날 간담회에 참가한 기자는 많지 않았다. 한 보수 언론 기자는 조 작가에게 "소설 속 인물들이 지나치게 편향돼 있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 대목에서 작가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전형성'은 있지만, '편향'은 아니라는 답변이다. 창작 과정에서 인물의 성격을 단순화하여 전형적으로 묘사한 대목은 있으나, 현실은 똑바로 봤다는 것. 이어서 작가는 말했다.

"1970년대 이후, 정부는 '지금은 분배가 아닌 성장과 축적의 시기'라는 말만 되뇌었습니다. 국민들은 40년 동안 분배를 기다려 왔죠. 하지만 아직도 분배에 관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금 탈루니 불법 상속이니 하는 재벌들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민의 절망과 분노는 커지고만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시급한 일은 경제 민주화입니다."

"스스로 과거를 배반한 486세대…그들의 야만에 상처입은 88만 원 세대"

▲ < 허수아비춤> 표지.
함께 참가한 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는 이른바 '486 세대'에 대한 절망감을 이야기했다. 민주주의를 위한 헌신은 486세대 자신에 의해 배반당했다는 이야기다. 재벌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는 현실이 빚어진 데는, 과거 민주화를 외쳤던 486세대의 책임도 크다는 말이다.

방 교수는 "486세대는 88만 원 세대를 가리켜 속물스럽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이들에게서 속물스러움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486세대가 연출한 새로운 야만의 세계에 부딪힌 젊은이들이 질러대는 비명의 한 단면일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화를 외쳤던 세대, 그들의 끈끈한 연고가 재벌의 로비에 이용되는 상황은 충분히 절망적이다. 대체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작가의 대답은 명료했다.

"시민단체가 희망입니다. 저만 해도 후원하는 시민단체가 여러 곳입니다. 시민들이 건강한 시민단체를 지원한다면, 그래서 이들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한다면 희망은 있습니다."

"강력한 시민사회가 희망이다"

시민단체가 정말 희망의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역시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국민, 당신들은 노예다"라는 작품 속 문장과 맞물리는 대답이다.

"어떤 이들은 시민단체로는 이 같은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건 아직 우리 시민단체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유럽 여러 나라들은 시민단체가 강력해서 정치인이나 기업인이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감시해서 오늘의 선진국을 만든 겁니다. 시민의식이 고양되지 않고서는 현대사회의 두 권력, 정치와 경제 권력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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