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지난 몇 년 동안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체제에 맞설 새로운 국가발전 전략으로 역동적 복지국가론을 주창해왔다. 특히 2010년 3월 15일에는 그 동안의 연구 성과를 모아 펴낸 책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의 출판을 기념하고,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주요 정책을 국민에게 알리는 공식행사를 서울 여의도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다. 이 시기를 전후로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언론보도 등을 통해 정치권과 학계 및 시민사회에 일정하게 알려지게 되었다.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체제를 극복할 우리나라의 대안적 국가발전 모델인 역동적 복지국가가 우리 사회에서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민생불안의 해소와 삶의 질 향상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역동적 복지국가'를 염원하는 다수 국민의 '기대와 희망'이 풀뿌리 수준에서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역동적 복지국가의 담론과 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정치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조직되어야 한다. 둘째, 이러한 복지국가를 향한 국민적 열망을 정치적으로 받아 안아 실현시킬 수 있는 강력한 정치세력이 존재해야 한다.
이 중 첫 번째 것은 우리 시민사회의 "깨어있는" 수준을 의미하는데, 이를 위한 시민정치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이것이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니겠으나 우리사회의 불안정성과 역동성을 고려하면 빠른 시일 내에 안 될 것도 없다. 최근 출범한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시민정치포럼'은 이러한 노력의 하나다.
두 번째 것과 관련해서는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아직까지 강력한 복지국가 정치세력이 없다. 그저 신자유주의 또는 경제적 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이 주로 영남과 호남이라는 지역적 연고를 중심으로 여야로 나뉘어 다투고 있을 뿐이고, 진보정당들은 존재감이 없다.
지난 6.2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이미 보편적 복지와 복지국가를 향한 국민적 '기대와 희망'은 싹트고 자라나고 있으되, 아직까지 우리 국민이 믿고 의지할만한 복지국가 정치세력은 없는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기대와 희망'이 확산되고 수평적으로 잘 조직화될수록 역동적 복지국가의 노선과 비전으로 무장하고 수권능력을 갖춘 강력한 진보정치세력의 출현과 범야권 정치질서의 진보적 재편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더 커진다. 또, 역으로 강력한 복지국가 정치세력의 존재가 역동적 복지국가를 향한 국민적 '기대와 희망'을 더 잘 조직화하게 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와 같이 진보정치세력이 분열되어 있고, 이에 더해 이들 내부에서 과거의 진보담론 또는 지나치게 먼 미래의 진보담론이 상당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현실에선 '역동적 복지국가'의 실현이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풀뿌리 시민사회에서 역동적 복지국가라는 새로운 진보담론을 확산하고 공고히 함으로써 진보정당들 내부의 기성 진보담론을 재구성해야 한다. '담론의 재구성' 없는 진보대통합 또는 진보의 재편은 별 의미도 없을뿐더러 성공 가능성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보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주요 정치지도자들의 '역동적 복지국가'에 대한 태도와 입장을 주목하는 이유다.
다행히 지난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진보신당의 경기도지사 후보였던 심상정 전 의원과 서울시장 후보였던 노회찬 전 의원은 모두 보편적 복지를 중심으로 하는 '복지국가' 노선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러한 노력들 덕택에 복지국가는 현재 진보신당의 공식 노선이자 정책방향으로 채택되어 있다. 진보개혁 성향의 시민사회 지도자들과 지식인들도 복지국가를 신자유주의 대한민국을 대체할 국가발전 전략으로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거나 대체로 수긍하고 있다. 아직 낡은 진보의 틀에 갇혀 있는 부분이 없지 않으나, 이들도 정책적으로는 보편적 복지를 위시한 복지국가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바야흐로, 진보담론이 재구성되고 있다.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범야권 정치질서의 진보적 재편에서 '진보정치의 재구성'과 더불어 중요한 것이 '민주당의 진보적 재편'이다. 현재의 민주당은 '경제적 자유주의'라는 신자유주의의 본질적 성격에서는 한나라당과 별반 차이가 없다. 경제적 자유주의 스펙트럼에서 보자면, 민주당 내에는 보수적 자유주의자, 중도적 자유주의자,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공존하고 있는데, 보수와 중도를 넘나드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최근 민주당 내부에서 진보적 자유주의에 가까운 그룹들이 복지국가론을 민주당의 정치노선으로 주장하고 있는 바, 이는 한국 복지국가의 가능성과 민주당의 미래 발전에서 의미가 크다 하겠다.
2012년 총선 이전까지 민주당은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당내 주도권을 쥐고 중도적 자유주의와 일부 사회민주주의 성향이 공존하며 경쟁하는 명실상부한 '진보개혁 정당'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우리나라 정치질서의 재편에 올바르게 부응하는 길이다. 장차 민주당은 복지국가를 염원하는 국민적 '기대와 희망' 때문에, 그리고 진보정당들의 통합적 재편에 의해 진보 쪽으로 견인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피동적 성격의 견인보다는 민주당 내부의 진보적 동력에 의한 복지국가 정치세력으로의 능동적 재편을 추구하는 것이 정치적으로도 훨씬 더 유리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할 경우에는 2012년 총선과 대선 승리에 유리한 '힘 있는 연합정치'의 가능성이 크게 열리게 된다. 국민적 지지를 압도적으로 추동하는 연합정치의 장을 열기 위해서는 먼저 민주당이 '복지국가' 정치세력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그리고 복지국가 실현의 주도권을 놓고 진보정당과 경쟁하고 연합해야 한다. 내부의 동력에 의한 민주당의 복지국가 지향으로의 능동적 재편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그런데 최근 민주당 전당대회를 계기로 이러한 재편의 동력이 내부에서 생겨나고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정동영 의원과 천정배 의원이 민주당의 내적 변화를 위한 동력의 생성과 확산의 한 가운데 서 있다.
▲ 2007년 대선 당시, 후보였던 정동영 의원이 천정배 의원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 정 의원이 지금 내세우는 구호는 지난 대선 당시의 것과 많이 다르다. 이런 입장 변화가 단순한 정략적 고려에서 나온 것이라면, 정 의원은 정치적 사망 선고를 피하기 어렵다. ⓒ뉴시스 |
그러면서 정동영 의원은 역동적 복지국가를 매개로 진보진영과의 연합정치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지난 10년간의 민주정부 기간 동안 40%였던 최고소득세율을 35%(김대중 정부 때 40%를 36%로, 참여정부 때 36%를 35%로 인하)로 내렸던 전력이 있는 민주당의 보수적 분위기에서 정동영 의원은 부유세 신설과 누진적 증세를 주장하고 있다. 매우 진보적이며 과감하고 파격적이다. 정 의원은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는 '부자감세 철회'와 '4대강 예산 축소'를 통한 복지재원 조달과 같은 진부한 정치적 언사가 아니라 "복지국가를 위해서는 이보다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 세금을 더 내야하며 부자들이 더 많은 부담을 감수해야"한다는 분명한 증세 주장을 내놓고 있다.
한편, 천정배 의원은 '정의로운 복지국가'로 자신의 논리를 정식화하여 책까지 펴냈다. 진보적 자유주의에 입각한 그의 논리는 매우 정연하고, 정치적으로도 민주당에서 널리 수용되기에 손색이 없다. 천 의원은 자신의 정의로운 복지국가 논리를 바탕으로 진보정당 및 시민사회의 진보적 제 세력들과 2012년 양대 선거 이전에 민주-진보 대통합 정당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천 의원의 이러한 정치 구상은 '역동적 복지국가' 대한민국으로 가는 큰 여정에서 우리 국민들의 복지국가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키우고 확산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정동영 의원이나 천정배 의원의 경우처럼 명시적으로 '복지국가' 노선을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담대한 진보를 처음으로 주창하며,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 과정에서 진보적 민주당을 위한 486정치의 새로운 실험을 주도하고 있는 이인영 전 의원도 충분히 주목받을 만하다. 이 전 의원은 전당대회의 후보 간 토론에서 보편적 복지, 담대한 진보, 누진적 증세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면서 다른 후보들과의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전 의원은 김근태 전 의원의 계보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김 전 의원은 이미 여러 차례 복지국가를 민주당의 정치노선으로 주장한 바 있다.
새롭게 구성될 민주당 지도부에는 복지국가 노선을 주장하는 세력이 상당부분을 차지할 전망이다. 개정을 준비 중인 민주당의 정강정책에는 기존의 중도개혁주의가 폐기되는 대신 '보편적 복지'가 명시되고 있다. 민주당의 확실한 좌측으로의 이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에 우리사회의 신자유주의 주류세력과 보수언론들은 '복지국가를 향한 선명성 경쟁'을 우려하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민주당의 좌 클릭이 여당의 연쇄적 좌 클릭을 가져오고, 이러한 반복을 거쳐 2012년의 총선과 대선에서 이른바 '여야의 모든 정치세력을 망라하여 복지국가를 누가 더 잘 실천할 것인가를 놓고 선명성 경쟁'을 벌이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기실 이러한 상황 전개야말로 우리 국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던 바가 아니던가! 복지국가를 향한 모든 정치세력들 간의 역동적 경쟁, 이를 통해 진정으로 진보적인 정치세력이 누구인지가 가려질 것이다. 지금은 누구도 자신들만이 진보정치세력라고 말할 수 없다. 이는 역동적 복지국가를 향한 역사적 진군의 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다.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정치세력의 재편은 진보정치세력과 민주당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바, 최근까지의 경과를 보면 진보정치세력의 '역동적 복지국가'로의 재편은 더딘 데 비해, 민주당의 재편은 기대 이상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정치세력들에겐 더 많은 성찰과 노력이 요구된다 하겠다.
더불어 민주당의 정동영 의원, 천정배 의원, 그리고 이인영 전 의원에게는 역동적 복지국가를 향한 지속적 노력과 함께 더 큰 성공이 함께 하길 기대한다. 그런데 최근 일부 논객들이 정동영 의원의 진보적 행보에 대해 진정성을 문제 삼고 있다.
충분히 그럴만하다. 과거 정 의원의 정치노선과 정책적 행보는 최근의 진보적 내용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정 의원의 진정성을 문제 삼는 데 반대한다. 정치에서는 개인의 진정성 못지않게 정치적 맥락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담대한 진보를 추진하겠다며 역동적 복지국가를 정치 전략으로 선택하였고, 역동적 복지국가론의 주요 정책을 실천하기 위한 재원조달 방안으로 부유세와 누진적 증세까지 제시한 정 의원이 앞으로 달리 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필자는 오히려 진정성 논란은 정치노선으로 '애매한 진보'만을 정치적 수사로 제시하며 누진적 증세를 주장하지 않는 정치인들에 해당한다고 본다. 장차 이들 '애매한 진보' 정치인들은 정치노선 또는 정책적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지만, 최소한 정동영 의원은 갈 곳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 만약 정 의원이 다른 곳으로 간다면 그날로 그의 정치생명이 끝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정치인 개인의 진정성 보다는 그가 처한 정치적 맥락이 정치노선 상의 진정성을 더 담보해 주기도 한다. 지금 정 의원의 경우가 그렇다. 외통수의 길로 접어든 정 의원이 정치적으로 성공하기 바라며, 그래서 역동적 복지국가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에서 그가 일익을 담당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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