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꽃을 아름답게 여기는 것, 좋습니다. 하지만 솔직했으면 좋겠습니다. 재능교육의 철학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그 첫째가 '인간에 대한 이해(재능교육철학에서 참조)'입니다.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자발적 본성'을 내세우며 학습지를 팔아 돈을 버는 재능교육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시늉'이라도 해야 옳은 일이지요.
사람이 있는 꼴이 보기 싫어 사람의 자리에 꽃을 심어 화단을 만드는 회사라면, 재능교육의 철학이 '사람보다는 꽃에 대한 이해'가 첫째라고 내세워야 맞습니다. '재능 스스로 학습법'을 광고하며 굳이 영어나 수학을 내세우지 말고 식물도감을 맨 앞자리에 세워야 합니다.(물론 꽃들이 파업을 하며 거부할 가능성은 있지만)
지난 9월 15일은 재능교육 학습지 선생들이 농성을 시작한지 1000일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농성의 시작은 대화의 단절이었습니다. 2007년 12월 회사는 학습지 선생들에게 새로운 임금체계를 제시했고, 학습지 선생들은 새로운 임금체계가 급여를 50만 원 가까이 삭감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니 개선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노동자와 사용자 간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헌법에서도 보장한 단체협상권이 있기에 충분히 대화로 대안을 찾을 수 있는 '평범한 일'입니다.
이 평범한,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은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번집니다. 재능교육은 이 기회를 이용해 아예 노동자와 붉은 도장을 찍으며 약속한 단체협약을 2008년 11월에 깨버렸습니다. 이어서 농성에 앞장섰던 학습지 교사를 해고했습니다. 천일의 시간이 흘렀고, 다섯 번의 명절을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 길바닥에서 보내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제 낼모레는 여섯 번째 맞이하는 명절 추석입니다.
농성 701일째 만난 유명자 재능교육 학습지 선생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선합니다.
"농성이 끝나면요? 카메라를 메고 여행을 가고 싶어요. 제주도 올레길. 홀로 말이에요. 그리고 학습지교사 할 거예요. 이번 싸움 끝나면 학습지 선생 안하겠다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할 거예요. 10년을 돌이켜보면, 지금도 밤 10시, 11시까지 수업하고 나서 조합원들 만나러 새벽에 다니고 그럴 때가 가장 신났던 거 같아요. 저는 꼭 다시 들어가서 학습지 선생님들하고 일하고 싶어요.(2009년 11월20일 인터뷰)"
그리고 삼백일이 지나 유명자 선생을 다시 만났습니다. "천일을 농성할지 몰랐습니다" 농성이 끝나면 사진기를 들고 제주도 올레를 걷고 싶다는 유명자 선생은 말합니다. "내가 천일을 이 자리에 지키는 것은, 나를 지키고 싶어서입니다. 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고 천일을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내가 인간답게 살려고 싸우는 겁니다."
ⓒ이동수 화백 |
"결혼한 지 7년 된 교사가 결혼 7년 만에 어렵사리 임신을 했는데, 8개월 만에 사산을 한 일이 벌어졌어요. 유산끼가 있어 쉬려고 했는데, 만삭이 되도록 계속 수업을 강제한 거예요. 수업을 해라, 해라, 강제로 시킨 거예요. 정말 딴 걸 떠나서 상식적으로, 인간적으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사산, 유산하는 교사들이 비일비재해요. 유산끼가 있어서 수업을 하지 않겠다는 말은 회사에 먹히지도 않아요. 워낙 많으니."
여기서 묻고 싶습니다. 진정 '인간'을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인간이고 싶어 천일을 회사 정문 앞에 주저앉은 재능교육 유명자 선생일까요, 아니면 정문 앞에 쭈그리고 앉은 사람이 보기 싫다고 정문 앞에 화단을 만들어 꽃을 심은 재능교육 경영자일까요?
곧 추석입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 혹 혜화동을 지나실 일이 있으면 재능교육 본사 앞을 찾아가보세요. 다가오는 추석날이어도 좋고, 비가 억수로 내리는 날이어도, 한여름 땡볕이 지글지글 아스파트를 달구는 날이어도, 손가락이 꽁꽁 어는 한겨울이어도, 한밤중이어도, 상관없습니다. 그곳에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법을 말해줄 벗이 늘 기다립니다. 또한 사람보다 꽃을 중요시 여기는 재능교육의 '노동자 교육법'을 '스스로 학습'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참세상>에도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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