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6월 회의를 계기로 최대 이슈가 재정건전성 회복과 금융규제 강화로 바뀌게 되었다. 구체적으로는 글로벌 위기 극복을 위해 2009~2010년 동안 5조 달러에 달하는 경기부양방안을 실시하기로 했던 결정을 철회했다. 이 회의에서 각국 재무장관들은 언제 긴축기조로 선회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으나 '성장 친화적'인 재정정책을 추진한다는 데는 합의했다.
그런데 '성장 친화적' 정책이란 다름 아닌 긴축적 재정정책을 의미한다. 문제는 현 시점에서 긴축적 재정정책은 '더블딥'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결코 '성장 친화적'이지 않은 정책이란 점이다. 그런데 왜 선진국들은 '성장 친화적'이라는 미명하에 긴축적 재정정책을 추진하려는 것일까?
선진국들이 재정건성성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게 된 것은 올해 초 그리스를 비롯한 일부 남유럽 국가들이 과다한 재정적자와 정부부채 문제로 위기를 겪게 되면서부터이다. 그리스 위기는 작년 9월 선거에서 승리한 사회당이 2009년의 재정적자가 GDP의 12.7%에 이른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시작되었다. 이것은 유럽연합(EU)의 가이드라인인 3%의 4배가 넘는 수준이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러한 심각한 재정적자 문제를 수년 동안 우파 정부가 감추어왔다는 점이었다.
한편, 프랑스와 독일의 주요 은행들이 그리스 국채를 많이 보유하고 있어서 그리스의 국가부도는 유럽연합 전체를 위기에 빠트릴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이에 유로존과 국제통화기금이 부도위기에 처한 그리스에 3년간 총 110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했고, 그 대신 그리스는 2012년까지 재정적자를 300억 유로(2009년 GDP의 11%) 감축하는 등 초강도의 긴축조치들을 시행하기로 했다.
그리스 위기의 여파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더욱 중요하게는, 긴축적 재정정책 기조로 전환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금융위기의 과정에서 거의 모든 선진국들이 재정수지의 급격한 악화와 정부부채의 확대 등 그리스와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동일한 위기를 겪을 수도 있다는 공포 때문이다.
특히, EU 회원국들의 경우 GDP 대비 재정적자의 비율이 2008년 2.3%에서 2009년 6%로 높아지는 등 전체적으로 가이드라인 3%를 넘은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데, 회원국들 중 또 다시 위기를 겪는 국가가 생기게 된다면 그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므로 서로 허리띠를 졸라맬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경제회복이 본격화될 경우 그동안 풀려나간 돈들이 인플레이션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경고도 재정긴축으로의 선회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었다.
▲ 유로존 은행들에 대해 긴축 조치에 나선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 총재. ⓒEPA=연합뉴스 |
그러나 그리스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언론들은 그리스의 관대한 연금제도를 주된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1980년대에 집권한 사회당이 기간산업을 국유화하고 유럽에서 가장 관대한 연금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른 국가들의 경우 대개 40년 일해야 연금을 수령할 수 있으나 그리스의 경우는 35년을 일하면 연금수급 자격을 주고 연금수준도 소득이 가장 높은 은퇴 직전 5년간을 기준으로 95.7%를 준다고 한다.
물론, 이와 같이 복지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연금제도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관대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를 비롯해서 이번에 과다 부채국가로 지목된 남유럽 국가들은 선진국들 중에서 복지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국가들이 아니라는 점에서 관대한 복지프로그램이 재정적자의 주요인은 아니다. 그리스의 경우 1995년부터 2006년 사이에 유럽국가들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연간 1900시간)였다고 하니 국민들 사이에 '복지병'이 만연되어 있었다고 볼 수도 없다.
그리스 위기의 근본적 요인으로는 유로 가입으로 인해 야기된 취약한 거시경제 환경에서 우파정부가 추진했던 감세정책을 들 수 있다. 그리스를 포함한 남유럽 국가들은 오래 전부터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과의 수출 공세에 밀려 만성적인 경상적자 문제를 겪어 왔었다. 2002부터 시작된 유로의 평가절상은 치명타가 됐다. 그런데 유로존 가입으로 환율이 고정되어 있고 통화정책에서도 재량을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할 수단이 없었다.
따라서 그리스 정부의 적자재정 정책이 경제를 지탱하는 유일한 거시경제 수단이 되었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4년에 정권을 잡은 우파정부는 대규모 감세정책을 추진했다. 2004년과 2007년 사이 법인세율이 35%에서 25%로 10%포인트나 인하되었고, 같은 기간 친척 간 부동산 상속세를 폐지하는 정책이 추진되기도 했다. 감세정책으로 세수가 주는 와중에 금융위기로 경기침체가 시작되자 정부수지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던 것이다.
한편, 그리스 정부는 국채를 대량 해외자본에 판매함으로써 재원을 정부수지 악화에도 불구하고 계속 지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유로존에 가입했으므로 재정적자를 GDP 대비 3% 내에서 관리할 의무를 가지고 있는 그리스가 어떻게 GDP 대비 10%를 넘을 정도로 방만하게 재정을 운영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월스트리트가 이번 사태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그리스는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과 대출을 통화교환처럼 처리하는 거래를 함으로써 유럽의 '부채 제한규정'에 맞추면서도 자금을 계속 조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즉 골드만삭스 뿐만 아니라 JP모건체이스, 그리고 다른 많은 은행들이 그리스, 이탈리아 등의 정치인들이 추가 대출을 은폐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은밀한 내부사정을 알고 있던 투자은행들은 동시에 그리스가 부도가 날 때 오히려 큰 돈을 벌 수 있는 상품도 미리 사두었다.
투자은행들은 위험을 헷지해 둔 것이라고 말하겠지만 그들의 행태는 다급한 사람에게 사정을 봐주는 척하면서 점점 더 많은 빚을 지게 만드는 악덕 사채업자의 행동과 다를 바 없다. 채무자가 빚잔치를 하게 되면 악덕 사채업자들은 큰 이득을 챙기게 된다. 즉 그리스가 위기를 맞게 된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지속 가능하지 않은 부채증가를 가능케 하는, 또는 그것을 부추기고 위기를 조장하는 금융 자유화, 개방화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 상태에서 그리스가 정부지출을 급격히 축소하는 것이 올바른 문제해결책인가?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들이 대대적인 지출삭감에 나선다면 경기침체가 더욱 악화되고 그로 인해 그리스 국민들 전체가, 특히 서민층이 큰 고통을 겪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외환위기 직후 IMF의 권고에 따라 긴축적인 재정 및 통화정책을 실시함으로써 단기간에 전대미문의 경기침체를 겪었던 우리나라의 예를 떠올려볼 수 있다.
더 나아가 몇몇 국가가 아니라 세계 주요 국가들이 '부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동시에 긴축정책으로 돌아선다면, 또 다른 글로벌 경제위기가 잉태될 수도 있다. 현재의 재정적자와 정부부채가 탐욕적 금융시스템이 야기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인데, 왜 애매한 서민층이 그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재정건전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말로 재정건전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직접세 세율을 인상하여 고소득층과 자본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는 방안이 있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G20회의에서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반면, 재정건전성 회복을 위한 재정지출 감축은 거의 복지프로그램들이 그 대상이다. 과다 재정적자 국가들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스페인을 'PIGS' 국가로 지칭하는 것도 이 나라 국민들을 '탐욕스런 돼지'에 은근히 비유함으로써 과다 복지지출이 재정적자의 주요인이라는 편견을 갖게 한다.
이에 그리스의 경우 사회당은 사회보장지출 10% 삭감, 월 2000유로 이하의 공공 근로자까지 포함한 공공부문의 임금동결을 긴축재정정책의 구체적인 방안으로 내놓았다. 이러한 움직임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신념을 버릴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금융위기가 1929년의 대공황과 달리 단기간에 끝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들은 다시금 직접세 인하, 공공부문 축소, 복지 축소를 밀고 나가려 하고 있다. 즉,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경제모델로 여전히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위기 전까지 진행된 직접세 인하, 공공부문 축소, 복지 축소 등의 신자유주의 개혁이 그들이 주장하던 것처럼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시장을 활성화시키며 노동자들의 근로의욕을 자극해서 경제를 성장시켰는가? 1980년대 이후 영국과 미국 등 선진 각국은 소비와 투자를 촉진시켜 성장에 이로울 것이라는 논리로 직접세의 세율을 하락시켜왔다. 198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자들이 정권을 잡게 되자 소득세와 법인세 세율을 인하하기 시작했는데, 자본 및 금융의 국제화로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게 됨에 따라 국가들 간에 조세경쟁을 촉발시켰다.
대륙 유럽에서는 중심국인 독일이 '세율인하-기업경쟁력 강화-투자 증가 및 성장'의 논리로 세율인하 분위기를 유도했고, 다른 국가들은 유럽통합이라는 목적을 위해 이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세율을 낮추는 국가는 국내투자가 늘고 해외로부터 자본이 많이 들어와 성장률이 높아질 것이라 기대했지만 세율인하가 추진된 후 투자와 성장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아일랜드와 같은 경우 주위 국가들보다 세율을 크게 낮추어 주변국 자본을 유치함으로써 효과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매우 작은 국가이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했다. 그에 비해 독일, 프랑스 등 규모가 큰 국가들은 세율을 낮추었지만 해외자본 유치, 투자증대의 이득보다는 직접세 세수 감소의 비용이 더욱 컸다. 그리고 감세로 인한 세수 면에서의 압박은 지출 측면을 압박하게 되었고, 특히 복지지출이 축소 압력을 받게 되었다.
물론 유럽 국가들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복지를 달성했고 복지국가에 대한 좌우파 정부의 합의가 있었기에 복지국가의 기조 자체가 포기된 것은 아니지만, 복지프로그램의 축소는 가계의 구매력을 하락시킬 수밖에 없었다. 1980년대 이후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소비부진 현상을 겪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저성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여러 조치들을 시행했지만 그로 인한 복지축소와 고용불안은 소비부진을 야기했고, 이는 투자부진과 정체를 가져왔다.
1980년대 이후 선진국들에서 'GDP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몫'이 줄어들고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의 소득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는 점으로부터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양극화와 소비부진을 야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미국 경제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통해 높은 성장률과 낮은 인플레율이라는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으므로 "금융규제만 조금 강화하면 미국식 신자유주의 모델은 위기 이후의 모델로서 바람직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겉보기에 화려했던 미국 경제의 실체는 가계부채가 과도하게 증가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당시 미국 경제를 뒷받침한 것은 강력한 소비증가였는데, 많은 경제학자들이 비판했듯이 이것은 막대한 가계부채에 기인한 것이었다. 즉, 부동산자산 및 금융자산의 가격 상승에 기대어 가계가 부채를 얻어 자산을 구입하고 소비를 하는 부채 주도적 성장모델이었던 것이다.
미국 제조업이 이미 경쟁력을 상실했기에 가계가 구입하는 소비재는 주로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로부터 수입하는 수입품이었다. 자연히 대외수지도 악화될 수밖에 없었지만 저렴한 수입품으로 인해 인플레율은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즉,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야기하는 가계의 구매력 저하 및 소비부진을 해결하는 방법이 미국에서는 부채증가였으며,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금융부문의 팽창이었던 것이다.
금융위기가 터진 후 '무엇이 잘못되었던가?'에 대한 반성은 이와 같은 메커니즘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금융부분의 팽창은 몇몇 금융기관들의 일탈적 행위 때문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개혁이 야기하는 소비부진을 해결하기 위해 필연적이었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G20은 자기자본 비율을 강화하고 유동성 관리를 강화하며 몇몇 파생상품을 금지하면 금융위기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감세, 공공부문의 축소, 복지축소라는 신자유주의적 모델은 금융팽창이 없다면 소비부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아무리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 제품을 싸게 공급해도 가계의 구매력이 없다면, 모든 국가가 동시에 바닥으로의 경쟁에 나서는 셈이 된다. 따라서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모델이 다시 득세한다면 세계경제는 수요부족으로 지지부진한 모습을 이어가던가, 새로운 거품을 만들어 성장하다가 다시 붕괴하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성장모델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것은 고용과 수요를 뒷받침하는 '복지의 강화'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복지국가 모델은 영국의 블레어 정부가 시행했던 모델, 즉 일하는 사람에게만 복지혜택을 주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일자리가 부족해서 또한 일할 능력이 없어서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못하는 사람을 배제하는 복지는 대안이 될 수 없다.
노동의 유연화에서 오는 불안정성을 막아주고 구매력을 유지시켜 주기 위해서는 경제 전체의 수요를 창출하고 노동 능력을 향상시켜 주는 보편적이고 적극적인 복지여야만 향후 지속가능한 모델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현재 선진국들은 예전의 모델로 서둘러 돌아가려 하고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현재 우파정부들이 정권을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현명하다면 신자유주의적 모델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 터인데, '그들은 왜 공공부문의 축소와 복지축소에 그토록 열심일까?'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의문을 가진 사람이 필자 혼자만은 아닌 것 같다. 케인스와는 별도로 뒷날의 케인스 혁명으로 통하는 사상을 전개했던 칼레츠키가 40여 년 전에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의 의문은 "완전고용의 유지가 자본가들에게도 유리할 터인데, 왜 그들이 반대하는가?"였다.
그 의문에 대해 칼레츠키는 "정부가 그 자신의 구매를 통해 고용을 증가시킬 수법을 알게 되면, 기업의 강력한 통제력은 그 효력을 잃게 된다. 따라서 정부개입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재정적자는 위험한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건전재정'이라는 교리의 사회적 기능은 고용의 수준을 '기업'에 의존하게 만드는 일이다"라고 분석했다('완전고용의 경제적 측면', 12장, 1971년). 그의 분석은 현재의 재정건전성의 강화와 복지축소 논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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