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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종량제' 도입, 과연 '뜬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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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종량제' 도입, 과연 '뜬소문'이었을까?

[IT 일상다반사] '망 중립성'이 뭐길래…

2008년 '촛불 집회' 당시 '정부가 인터넷 종량제를 도입하려 한다'는 소문이 퍼진 일이 있다. 정부에 비판적인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을 규제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식으로 소문이 확산되자 방송통신위원회가 나서 '종량제 도입은 없다'고 못 박는 일까지 벌어졌다. 정치적인 맥락에서 불거진 종량제 논란은 '괴담과 유언비어의 근원지'로 인터넷을 묘사할 때 등장하는 소재가 됐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인터넷 트래픽, 무선까지 겹치면…

하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인터넷 종량제를 괜한 뜬소문으로 넘기기 어렵다. 21세기 들어 급격히 성장한 IT산업은 인터넷 이용을 폭발적으로 늘렸다. 한국은 그 선두주자다. 세계적인 통신장비회사 시스코는 보고서에서 2014년까지 전 세계 아이피(IP) 트래픽은 4배로, 무선데이터 트래픽은 40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도 예외는 아니다. KT는 2000년 이후 해마다 평균 53%씩 인터넷 트래픽이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이런 인터넷 이용 추세 증가에 불을 당겼다. 뒤늦게 스마트폰에 문을 연 한국은 지난 6월 기준으로 아이폰 공급사인 KT가 최대 129%까지 트래픽이 치솟는 등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늘어난 인터넷 이용량을 감당하기 위해선 통신망 공급업체가 설비를 늘려야 한다.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같이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이익을 올리는 기업에 대한 볼멘소리가 나오고, 일반 이용자들보다 훨씬 더 막대한 용량의 데이터를 내려받은 '헤비 유저'에 대해서 종량제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언론지상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이유다.

프랑스·핀란드 "인터넷은 공공재,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어야"

반면 인터넷의 고전적인 속성은 개방과 평등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인터넷 망이 깔리면 누구나 자유롭게 인터넷 서비스에 접속할 수 있어야지 특정 대상에 제한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이미 현실에서 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된 인터넷을 일종의 공공재로 받아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프랑스 대법원은 지난해 인터넷 이용을 기본권으로 못 박았다. 핀란드 정부도 올해 7월부터 모든 국민의 인터넷 접근권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합리적인 요금'으로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원가에 최소한의 이익만 더한 게 '합리적인 요금'이다. 인터넷 망 제공만으로 큰 이익을 기대하지 말라는 게 핀란드 정부가 통신업체에 던진 메시지다.

이런 입장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망 사업의 발전을 주장하는 통신업계와 인터넷 서비스기업, 그리고 소비자 권리가 첨예하게 부딪힌 결과물이다. 이런 논쟁의 핵심에는 '망 중립성(Network Neutrality)' 논란이 있다.

미국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망 중립성' 논란

지난 1일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무선 인터넷에 망 중립성을 적용하는 규제안을 확정짓는 작업을 11월 치러질 중간 선거 이후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IT업체들 사이에서 의견을 모으고 여론을 수렴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지만, 민감한 선거를 앞두고 극심한 갈등을 빚는 사안에 대해 '눈치보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망 중립성이 뭐기에 미국 내에서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게 된 것일까? 이 용어가 최근에 등장한 건 아니다. 1990년대 초, 망 중립성은 통신망 사이를 상호접속할 때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의미했다. 그 뒤, 인터넷이 성장하면서 인터넷 망 서비스업체(ISP)가 콘텐츠제공업자(CP)들을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뜻으로까지 확대됐다.

이러한 망 중립성의 개념은 △비차별성 △상호접속 △접근성으로 요약된다. 통신 사업자는 발생하는 모든 트래픽에 차별을 두지 않고 동일하게 처리해야 하며, 다른 망 사업자와 상호 접속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예컨대 KT가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웹 사이트에는 쉽게 접속되게끔 하고, 그렇지 않은 웹 사이트에는 접속이 어렵도록 하는 일 따위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 인터넷 망 사업에 직접 진출할 뜻을 밝히고 있는 구글은 최근 VoIP 서비스인 구글폰을 선보이면서 망 중림성 논란의 핵심에 서 있다. FCC의 망 중립성 법제화 추진 과정에 맞춰 버라이존과 공동으로 제안한 내용에 따르면 무선 인터넷 영역에서는 망 중립성을 유보하자는 뜻을 담고 있어 소비자들의 거센 반발을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망 사업자에 불리한 사이트는 접속 속도가 늦다"…FCC, 시정 명령

망 중립성은 인터넷을 이용하는 이용자들에게 동등한 접속 권한을 부여하는 이상적인 개념이 될 수 있다. 반면 IT업체들에겐 치열한 이해갈등과 맞물린 개념이다.

최근 대표적인 망 중립성 침해 사례로 등장한 사건이 지난 2007년 미국의 최대 케이블 사업자인 컴캐스트(Comcast)가 P2P 파일공유 프로그램인 비트 토런트(Bit Torrent) 접속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다 발각된 일이다. 비트 토런트란, 큰 용량의 파일을 수많은 조각으로 쪼갠 후 다수의 이용자들로부터 동시에 내려받는 전송 기술이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공유를 통해 손쉽게 파일을 내려받을 수 있는 기술이지만 동시접속수가 많으면 통신업체로서는 그만큼 과부하가 걸리게 된다.

컴캐스트는 이러한 이유로 특수한 장비를 동원해 비트토런트에 접속하려는 트래픽을 지연시켜오다가 시민단체의 고발로 <AP>에 보도되면서 논란을 낳았다. 컴캐스트는 비트토런트 이외의 다른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의 혼잡을 막기위한 조치였다고 해명했지만 FCC는 2005년 발표했던 망 중립성 원칙에 위배된다면서 시정을 명령했다.

망 중립성 공약 내건 오바마 행정부에 제동 건 美 법원

이후 줄리어스 제나코스키 FCC 의장이 2009월 9월 망 사업자들이 정보 유통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망 중립성 논란이 본격화됐다. 오바마 행정부는 대선 공약 중 하나로 망 중립성을 내걸었다. 반면 기업 자율을 강조하는 공화당 의원들이 망 중립성에 강하게 반발한다. 결국 정치적인 쟁점으로 부상했다.

망 중립성을 지지한 FCC의 '질주'는 지난 4월 미 법원이 컴캐스트에 대한 FCC의 제제 명령이 법적 근거가 없다고 무효화시키면서 일단 제동이 걸린 상태다.

최근 망 중립성 논란은 모바일 바람을 타고 성장한 무선 인터넷으로 번졌다. 유선 통신망에서 트래픽 과부하 문제가 부각되었다면, 무선 인터넷 영역에서 주된 쟁점은 인터넷 사업자의 통신망 '무임승차'다.

인터넷 전화 사업은 '무임승차'?

'무임승차' 논란이 가장 두드러진 분야가 인터넷전화(VoIP) 사업이다. '스카이프'와 같은 인터넷전화 업체들은 통신망을 갖지 않고도 스마트폰에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면 이동통신 통화료보다 저렴한 수준으로 인터넷 전화가 가능하게끔 했다. 인터넷 전화는 거리에 따른 제한도 없어서 국제전화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다.

인터넷 전화에 맞서 통신사들은 이들의 서비스를 제한하는 조치로 맞섰다. AT&T는 스카이프의 서비스를 무료인터넷인 와이-파이(wi-fi) 환경에서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앞서 영국의 보다폰과 오렌지 등 통신사들도 VoIP 서비스에 대한 접속을 거부하거나 정액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 왔다. 국내 통신사 역시 3G 무선인터넷 환경에서 VoIP 서비스 이용이 불가능한 상태였다가 최근 SK텔레콤이 3G망에서 VoIP를 허용하겠다고 밝히면서 변화의 조짐이 막 보이기 시작한 상태다.

망 사업자 설비 투자 부담, 누가 감당해야 하나

망 사업자들의 이익률이 해마다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 사업자(CP)가 늘어나면서 망 중립성 논란은 깊이를 더해갈 전망이다. 망 사업자들은 폭증하는 트래픽을 감당할 수 있는 설비를 확충하려면 콘텐츠 사업자들과 이익을 나눠야 한다는 입장이다. 망 사업자가 설치한 인터넷 기반 위에서 콘텐츠 사업자가 얻은 이익 가운데 일부는 망 사업자의 몫이 돼야 한다는 것. 망 사업자에게 콘텐츠 사업자는 무임승차자에 다름 아니다.

반면 콘텐츠 사업자 측은 망 중립성을 무너뜨리고 경쟁 체계를 도입하면 결국 대기업들에게 유리한 통신환경이 구축되고 영세한 신규 기업들의 진입장벽만 높여 반경쟁 체제로 갈 거라고 반박한다. 일리 있는 반박이다.

인터넷 이용자 입장에서도 망 중립성은 민감한 이슈다. 프랑스나 핀란드처럼 인터넷 이용은 기본권이라는 합의가 이뤄진다면,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런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대다수 국가에선 사정이 다르다.

인터넷 공공성에 대한 합의 없이 망 중립성 원칙만 유지할 경우, 망 사업자들은 설비 추가에 따른 비용 부담을 인터넷 이용자에게 떠넘길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가장 손쉬운 해법이 인터넷 종량제다. 그러나 지난 2008년 촛불정국 당시 여론에서 확인했듯, 인터넷 종량제에 대한 반발은 실로 격렬하다.

망 중립성 원칙을 흔드는 경우 역시 격렬한 반발이 필연적이다. 자신이 즐겨찾는 웹 사이트에 접속하기 위해 예전보다 더 큰 불편을 겪는 인터넷 이용자가 생긴다. 정부나 기업 등을 비판하는 인터넷 사이트의 접근이 차단 또는 지연되면서 정치·사회적 갈등이 생길 수 있다.

걸음마 수준인 국내 망 중립성 논의

그럼에도, 국내에선 아직 망 중립성 관련 논의가 본격화되지 않은 상태다. 지난 5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를 중심으로 발족한 망 중립성 포럼은 이동통신3사와 대형 포털인 NHN, 다음까지 끌어들였지만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올해 11월로 예정된 공청회에서 국내 통신 환경을 고려해 진일보한 망 중립성 이슈를 내보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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