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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차 암환자', 병원비 폭탄 맞는다"

[기고] "건강보험 재정 확충 대신 행정편의주의 택한 정부"

참여정부가 남긴 민생분야의 눈에 띄는 성과의 하나로 '암 등 중대질환'에 대한 보장성의 특별한 확충을 들 수 있겠다. 이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전문가들도 동의하고 있고, 특히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이 무척 고마워한다. 이는 사실 참여정부 당시 시민사회운동이 제기한 '암부터 무상의료'라는 기치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개혁적 지도부가 적극 동조하면서 동력을 형성하였고, 이를 정부가 수용하게 되면서 성취된 것이다.

정부는 2005년 9월 1일부터 암 등 중증질환자의 진료비 경감을 위해 '암 등 중증질환자 산정특례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암으로 확진을 받아 등록한 암 환자가 5년 동안 암 상병으로 외래와 입원 진료 및 관련 합병증 치료를 받은 경우, 총 진료비 중 환자 본인부담을 10%(2009년 12월 1일부터는 5%)만 적용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부담한다. 이를 '암 환자 진료비 산정특례제도'라고 한다.

얼핏 들어보면, 암 환자의 경우 전체 진료비의 5%만 내면 되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전체 진료비에는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상급병실, 선택진료 등) 의료항목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고스란히 환자의 부담이다. 그래서 실제로 암 환자들이 부담하는 진료비 규모를 추정해보면, 평균적으로 전체 진료비의 5%가 아니라 대략 20% 정도를 부담하고 있다.

그래도 이는 전체 진료비의 60% 정도만을 보장해주는 현행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에 비하면 큰 혜택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은 정부가 운용하고 있는 '암 환자 산정특례제도'에 대해 우호적 태도 보이거나 큰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암 환자 특례에 따른 혜택으로부터 벗어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특례 기간이 5년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2005년 9월 1일부터 이 제도가 시행되었으니, 올해 9월 1일부터는 5년의 특례 기간이 만료되는 환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특정 시점에서 암 환자로 판명되면, 진료 중인 병원을 통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암 환자 등록을 하게 된다. 이때부터 암 환자 진료비 특례가 적용되므로 환자는 입원과 외래 모두에서 급여 진료비의 5%만 부담하면 된다. 그런데 특례가 적용되지 않으면, 대학병원에서 진료 받는 일반 질병들의 경우와 동일하게 입원 진료비의 20%와 외래 진료비의 60%를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갑자기 입원의 경우는 4배, 외래의 경우는 12배나 환자 부담이 증가하는 것이다.

5년 전 암으로 진단 받은 환자들은 그동안 첫째 사망하였거나, 둘째 암의 재발 또는 새로운 암의 발견으로 치료받고 있거나, 셋째 완치되었거나, 이러한 경과 중의 어느 하나를 밟을 것이다. 둘째의 경우는 특례 기간 5년이 지난 후 곧바로 다시 등록하면 특례 혜택을 계속 받게 된다. 문제는 셋째의 경우다. 매년 약 20만 명의 암 환자들이 새롭게 등록을 하고 있는데, 올해 9월 이후부터는 이들 중 사망하였거나 암이 재발한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경우에서 특례 혜택을 보지 못하게 된다. 진료비 부담이 급증하는 것이다.

암 환자에서 완치라고 하는 것은 매우 불확실한 상태다. 언제 재발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적검사(follow up)'가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현재의 암 환자 특례제도 하에서는 원래는 국민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인 MRI나 PET와 같은 고가의 검사도 급여항목으로 포함되고 있다. 그래서 암 환자 등록 후 5년의 특례 기간 동안에는 이러한 고가의 추적검사 비용도 5%만 환자가 부담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암 환자 등록 후 5년이 지나 일단 암으로부터 치유는 되었지만 지속적인 추적검사가 필요한 환자는 특례 혜택을 보지 못하게 된다. 외래에서의 추적검사 비용은 갑자기 12배로 늘어나게 된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추적검사는 불필요한가? 의학적 관점에서, 기존의 암 환자였던 사람은 일반인에 비해 암 발생의 위험이 훨씬 높다. 그리고 암이 재발했을 경우 한시라도 빨리 발견하여 치료해야 한다. 그것이 의학적으로 타당하고 윤리적으로 올바르다.

당장 잔존 암이나 전이 암이 없다고 하더라도 정기적인 추적검사는 암 환자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치료의 일환인 것이다. 이런 암 환자의 특성을 무시하고 5년 이후의 추적검사가 선택사항인 것처럼 산정특례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암 투병으로 경제적 여유가 없는 수많은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을 외면하는 것이자, 사회권적 기본권인 '건강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이다.

암 관련 합병증의 치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최초 등록 시부터 5년까지는 암과 관련한 합병증 치료 때 산정특례를 인정하지만, 5년 이후에는 제외하고 있다. 산정특례제도를 적용함에 있어서 암과 관련된 합병증 치료를 5년 전과 5년 후로 구별할 합리적 이유는 없다. 5년이 경과할 때까지 합병증이 낫지 않아 5년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라면 경제적 부담은 가중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국립암센터에서 2001년 암 진단을 받은 환자 5400여 명을 대상으로 6년 동안 추적 관찰한 결과에 따르면, 47%의 환자가 1년 이내에 직장을 잃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 가운데 30%의 암 환자는 직장에 복귀했으나, 나머지 70%는 5년 동안 직장에 복귀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특히, 저소득층일수록 암 진단 이후 짧은 기간에 직장을 잃고, 직장 복귀도 늦어지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즉, 많은 수의 환자들이 암 진단 이후 5년 이상이 경과해도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또한, 경제활동에 복귀한 경우도 상당수는 비정규직과 같은 불안정 고용 상태일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5년 동안 누적된 병원비와 생활비 부담을 고려하면, 암 환자들의 사회경제적 상황은 이전보다 더욱 열악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주어지던 본인부담금 인하 '암 환자 특례' 혜택을 중단하겠다는 발상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 ⓒ뉴시스
결국, 5년의 등록기간이 경과된 환자들을 일률적으로 산정특례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은 행정 편의주의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데,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산정특례 대상자를 제외해서 절감된 재정을 초기 암 환자 지원에 사용할 수 있다는 궁색한 답변을 내놓고 있다.

암 환자를 포함한 모든 질환자의 치료와 의료비 보장은 민주정부의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이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다른 암 환자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방식이 아니라, 국민건강보험 재정규모를 획기적으로 확충해서 돈을 마련해야 한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의 활동이 각별히 중요한 이유다. 우리는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기 위한 풀뿌리 시민운동의 네트워크로서, 국민의 병원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일체의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축소 조치를 반대한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 축소되면 민간의료보험이 확대되는 것인 바, 우리는 이러한 의료민영화 추진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기에 더욱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보편적 의료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금번 암 환자 산정특례 축소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 5년이라는 특례 기간 제한 자체를 폐기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최소한 암 합병증 치료와 의학적으로 필요한 추적검사에 대해서는 산정특례 조치가 지속적으로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 과잉진료를 방지하기 위해 추적검사의 횟수 등에 대해서는 의학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한정해야 하는 바, 암 전문가들을 통해 암 종별 추적검사 지침을 마련하면 될 일이다. 이제 정부는 더 이상의 임기응변식 정책 추진을 중단하고,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획기적으로 확충하는 근본적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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