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DTI규제를 풀 경우 서민·중산층의 대출 한도가 늘어나는 것을 마치 혜택인 것처럼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부동산 부양을 위해 서민·중산층을 제물로 삼겠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미국발 경제위기를 부른 서브프라임론 사태처럼 서민·중산층을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 위험에 노출시키는 위험천만한 행태다. 이처럼 실제와는 정반대되는 표현으로 자신들의 정책을 미화하는 언어파괴 능력이야말로 이명박 정부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현 정부는 출범 이후 모두 아홉 차례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양도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 취등록세 감면,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 만기 연장, 재건축 규제 완화, 수도권 전매제한 완화, 미분양아파트 매입, DTI 해제 등 대부분 건설 및 부동산 부양책, 심지어 투기 조장책 일색이었다. 잔뜩 부푼 부동산 거품을 빼는 한편 중장기적으로 국민들이 저렴하면서도 쾌적한 주거생활을 누릴 수 있는 주택 및 부동산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정부 본연의 자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로지 부동산 거품 떠받치기에 급급했다.
이번 대책도 그 연장선상에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현 정부 들어 국공채 발행액만 200조 원을 늘리는 등 막대한 공공부채를 동원한 부동산 부양책의 약발이 다하자 다시 가계부채로 돌려막으려는 시도인 셈이다. 이미 가계부채 위기에 대한 경고음이 점점 커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부동산경기 부양이라는 명목 아래 마지막 금융소비자 보호제도라고 할 수 있는 DTI규제를 해제한 것이다.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유도해야 할 시기에 오히려 주택가격을 떠받치기 위해 가계로 하여금 계속 빚을 내 거품 잔뜩 묻은 아파트를 사라고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신 나간 정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런지를 살펴보기 위해 국내 가계부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정리해보기로 하자.
우선, <도표1>에서 금융기관의 가계신용 증가 추이를 살펴보자. <도표1>에서 보는 것처럼 가계신용은 2000년 1분기 222조 원에서 2010년 2분기에 755조 원으로 늘어나고 있다. 가계신용에서 카드사 등의 신용판매를 제외한 가계대출은 같은 기간 200조 원에서 712조 원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예금취급기관 대출액은 137조 원에서 568조 원으로 증가했다. 이들 대출의 증감 추이를 보면 부동산경기 진폭과 상당 부분 맞물려 변동하고 있음을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
2000년대 부동산 거품기에서 1차 폭등기인 2001~2002년까지 2년 동안 가계대출이 급증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인 2003~2004년에는 다소 가계대출 증가 폭이 줄어들었으나 이후 2005~2006년 수도권 2차 폭등기 때 비교적 큰 폭으로 가계부채가 다시 증가했다. 이후 가계부채는 2008년 말 경제위기 시기를 제외하고는 일정한 진폭을 보이면서도 꾸준히 늘고 있다.
<도표1> 가계신용 추이
▲ (주) 한국은행 자료로부터 KSERI(김광수 경제연구소) 작성 |
이어 주택담보대출 증가 추이를 살펴보면, 가계대출의 상당 부분이 주택담보대출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예금은행 주택담보대출 집계가 시작된 2003년 4분기 이후 주택담보대출이 전체 예금은행 가계대출액의 약 61~64%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의 주택담보대출액이 집계되기 시작한 2007년 4분기 이후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42~46%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주택담보대출 집계는 부동산 거품이 발생한 이후 한참 지난 시점부터 집계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 이전의 대출 추이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그 이전에 발생한 주택담보대출 추이를 개략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예금은행 대출액의 60%, 비은행예금취급기관 대출액의 40%를 주택담보대출액으로 잡아 그 추이를 살펴보자. 주택담보대출 집계 이후 최근으로 올수록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개략적 추정에 따라 산출한 주택담보대출액은 2001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해 부동산경기 부침에 따라 등락을 보이면서 꾸준히 늘어나 올 2분기에는 342조 원까지 급증했다.
이어 신용카드사, 할부금융사 등 여신전문기관 및 백화점, 자동차회사 등에서 제공한 신용 규모를 나타내는 판매신용 증가 추이를 보면, 2000년 1분기 22조 원이던 판매신용액이 2001~2003년 전반기의 카드 버블기에 편승해 2002년 4분기에는 48조 원까지 증가했다가 이후 카드채 버블이 꺼지면서 급감했다. 하지만 2004년 하반기 이후 다시 그 규모가 꾸준히 증가하다가 2008년 말 경제위기 때 일시 감소했다가 다시 늘어나는 추세를 보여 2분기 현재 43조 원 수준까지 늘어났다.
이 같은 가계부채 증가가 전반적인 경제규모나 가계 가처분소득 증가에 비해 얼마나 빠른 것인지를 <도표2>를 통해 살펴보자. 우선, 가계신용의 GDP비중 추이를 살펴보면, 가계신용은 GDP 대비 2000년 44.2%에서 2009년 69.0%로 증가했다. 개인가처분소득 대비로는 같은 기간 73.3%에서 122.7%로 훨씬 더 가파르게 증가했다. 주택담보대출 비중의 증가는 훨씬 더 가파르다.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은 GDP 대비로는 14%에서 30.9%로 약 2.2배 증가했고, 개인가처분소득 대비로는 23.2%에서 55.0%로 2.4배나 증가했다. 참고로, 자금순환표상 개인부문 대출금의 비중은 같은 기간 GDP대비로는 55%에서 80.2%로 증가했고, 개인가처분소득 대비로는 91%에서 142.7%로 증가했다. 국민경제 차원에서든 가계소득 측면에서든 가계부채와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도표2> GDP 및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 추이
▲ (주) 한국은행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
이번에는 <도표3>을 참고로 같은 기간 미국의 가계 대출액 및 모기지대출 추이와 비교해 보자. 우선 미국의 개인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대출액은 2000년 85.6%에서 금융위기가 본격화되기 전인 2007년 139.8%로 정점을 기록했다가 2009년에는 134.7%로 약간 감소했다. 이어 개인가처분소득 대비 모기지 대출액의 비율은 같은 기간 58.8%에서 2007년 106.7%로 정점을 찍은 뒤 2009년 102.3%로 소폭 감소하고 있다.
이를 한국 가계와 비교해보면, 한국은 이미 극심한 부동산 버블로 큰 고통을 겪고 있는 미국보다 개인가처분소득 대비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 물론 한국의 주택담보대출 비중은 일견 상대적으로 미국보다 낮은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한국의 경우 타인자본인 전세금을 안고 주택을 구입하는 비율이 매우 높고, 미국의 경우 일반적으로 장기 모기지대출을 안고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어서 나타난 착시현상일 뿐 결코 낮다고 하기 어렵다.
<도표3> 미국 가계대출 및 모기지대출 비중 추이
▲ (주)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
실제로 2005년 인구총조사 결과 전국 주택 수는 1568만여 호 가운데 전세로 사는 경우는 328만호 가량에 이르렀다. 평균 전세가를 1억 원으로 잡으면 전세에 들어가 있는 돈만 328조 원에 이른다. 주택 소유자는 전세입자로부터 전세계약 기간만큼 무이자로 돈을 빌리는 셈이므로 이만큼 사실 주택담보대출 수요가 줄어드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세금은 아무리 무이자라고 하더라도 주택 가격이 하락해 세입자가 전세금 반환을 요구하면 돌려줘야 하는 돈으로 결국 레버리지에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만약 전세금을 주택담보대출액과 합산하면 2009년 말 기준 주택소유자의 레버리지는 656조원에 이른다. 이를 개인 가처분소득 대비 비율로 보면 109.9%에 이르러 미국의 모기지대출 비중을 넘어선다. 더구나 보증부 월세 234만호로부터 빌린 보증금까지 포함하면 이 액수는 더욱 늘게 된다. 이처럼 국내 주택담보대출액 규모는 국내의 전세제도나 보증부 월세제도 때문에 겉으로는 과소평가되는 부분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한국의 경우 주택담보대출이 매우 빠르게 늘어나는 점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개인가처분소득 대비 2000년부터 2009년까지 모기지대출이 1.7배 가량 늘어나는데 그쳤으나 한국은 이보다 훨씬 높은 2.4배나 늘어난 것이다. 미국의 경우 주택시장 안정기인 1990년대부터 개인가처분소득 대비 모기지대출 비중이 40%를 넘어설 정도로 모기지대출을 통한 주택 구매가 제도화돼 있고 2000년대 모기지대출 광풍이 불었음을 감안한다면 한국의 주택담보대출의 증가속도가 얼마나 가파른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한국의 가계대출과 주택담보대출은 폭증하고 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기 위해 DTI규제 해제 등 부동산 부양책에 목을 매고 있다.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유도해야 할 시기에 가계가 더욱 빚을 내도록 부추기고 있으니 결코 제정신인 정부라고 하기 어렵다.
우리 연구소는 이미 오래 전 상책이나 중책을 쓸 수 있는 단계부터 이들 '예고된 위기'들에 대해 숱하게 경보음을 울려왔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의 거듭된 정책실패와 아파트 광고에 목을 맨 상당수 언론들의 선동보도 때문에 대처를 미뤄 이제 하책 밖에 안 남은 상황이 됐다. 이미 많이 그르친 상태에서 지금의 부동산 위기를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되돌릴 방법은 없다. 그래도 최하책에 이르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은 저금리 상황에서 이자 부담이 적을 때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유도하는 것, 정치적 탐욕에 따른 각종 부동산 막개발을 줄이고 기존의 무리한 사업을 정리하는 것, 시장퇴출이 실제로 일어나는 건설업체와 저축은행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 등이다. 또한 부동산 거품을 키우고 투기를 부추겼던 악성 제도인 선분양제와 3년거치 일시 상환식 대출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투기에 강한 내성을 가지는 부동산 보유세제 강화와 공공임대주택 재고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일 등도 부동산시장 건전화를 위한 기본 과제다. 또한 수도권 과밀화를 더욱 부추기는 현 정부의 정책기조와 달리 제대로 된 국토균형발전을 통해 수요를 분산시켜 나가야 한다.
▲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타워팰리스 전경. 부동산 신화의 한 상징이다. ⓒ뉴시스 |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이런 과제들은 방기하면서 근시안적인 부동산 부양책에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계속 미룰수록 부동산 버블 붕괴의 충격은 더욱 커진다는 점이다.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과 투기 조장책에 힘입어 지난해 가계부채가 45조 원 가량 늘어난 것이 대표적 예다.
주택대출 거치기간 만기를 계속 연장하면 2012년에는 분기별로 지난해의 두 배 가까운 만기 도래액이 한꺼번에 밀어닥치게 된다. 하지만 정부도, 금융권도, 가계도 계속 책임회피 식의 미루기를 선택해 90% 이상의 주택대출이 재연장되고 있다. 계속 이런 식으로 미루다가는 결국 걷잡을 수 없는 사태에 이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온갖 공적채무 폭증이라는 강력한 모르핀 주사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기회복'이라고 국민들을 현혹시키면서 임기 내에만 무탈하면 된다는 식으로 거품빼기를 미루고 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서만 200조 원 이상이나 공적채무 증가를 통해 쏟아 부었는데도 부동산 거품 붕괴를 막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중앙 및 지방정부, 공기업 가리지 않고 씀씀이와 부채를 줄여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각종 국공채 만기는 2012~2013년에 몰리고 있다. 그 때는 빚을 갚아나가는 것만 해도 정신 없게 된다. 지금부터라도 거품을 빼서 충격을 분산해야 그나마 일시에 충격이 몰리는 것을 피할 수 있다.
과도했던 주택 가격의 자기 정상화 과정을 정부가 억지로 막으려 하면 할수록 국민경제 전체적으로 막대한 기회비용만 누적된다. 언제까지 정부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집값을 떠받치고 가계에 빚을 권할 것인가. 그리고 언제까지 세금 한 푼 받지 않는 우리 연구소 같은 곳에서 집값 거품을 빼고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유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가.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잘못 든 길을 벗어나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적극 유도해야 한다.
필자 트위터 : @kennedian3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 : http://cafe.daum.net/kserifo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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