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잠시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돌아가 보자. 그는 이미 잊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반값 등록금'이라는 공약이 있었다. 정책적으로 대학 등록금을 낮추기 위한 시도는 방향은 맞다고 생각한다. 수단과 수준에 대한 논란이 있겠지만, 방향 자체가 틀리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공약은 사라졌고, 그 대신 대학생들에게 학자금을 융자해주는 제도로 바뀌었다. 기존 시스템에 비하면 약간의 장점은 있는데, 등록금 상한제와 연결되지 않으면 등록금을 더 높이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보조금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어차피 융자금은 개인의 부담으로 남을 수밖에 없고, 사회 출발을 하자마자 많은 청년들은 정부에 빚쟁이가 되면서 출발하게 된다. 이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등록금을 낮추려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학생들에 대한 손쉬운 조절 장치를 하나 가지게 되었다. 성적에 연동시키는 방식 등을 통해서 대학생들에 대한 융자 조건을 결정할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은 대학생들에 대한 정부의 통제장치가 구조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값 등록금과는 정치적으로는 반대의 방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 구조조정을 명분으로 정부에서 대학의 서열을 취업율에 연동시키고, 다시 이것에 대한 압력수단으로 학자금 대출을 규제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몇 가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정신도 좋지 않다.
우선 질문할 수 있는 것은, 대학의 서열화가 옳은 것이냐는 근본적인 철학적 질문을 할 수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대학 사이에 엄연한 서열이 존재하고, 그것을 공식 행정용어나 법률 용어는 아니지만 '학벌'이라고 부른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과 정부가 그러한 서열에 따른 행정을 운용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어떤 정부도 학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다. 그 뿐인가? 연령차별 금지와 함께 학력차별 금지가 법적으로 하나의 제도로 정착되어 가고 있는 이즈음, 어떠한 이유로든 대학 서열화를 인정하는 행정을 정부가 직접 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어떤 이유로든 대학이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거나 혹은 존재의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 운영상의 어려움을 그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이 과연 행정적으로 타당하느냐고 물을 수 있다.
조금 더 안전한 대학 혹은 취업율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것은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알아서 선택할 일이다. 현 제도 상에서는 그렇다. 그런데 이미 진학한 대학생들에게 융자 차별을 주겠다는 것은, 대학이 아니라 1차적으로 학생들에게 차별적인 벌을 주겠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아무리 요즘 대학생들이 만만하다고 하더라도, 대학이 져야 할 책임을 우선은 대학생들에게 주겠다는 발상이 행정적으로 타당한가, 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다는 말이 있다. 단 한 학기라도, 융자를 받지 못하게 된 대학생의 다음 학기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행정은 그것이 아무리 옳더라도 피치 않은 피해자를 최소화시키고, 돌이키기 어려운 삶의 전복이 가능하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알고 있다. 사회적으로 약자이고, 경제적으로도 약자인 대학생들에게 피해가 가게 하는 일은, 현 상황에서는 맨 마지막으로 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지금의 행정은, 대학은 재단도 무섭고, 총장도 무서우니까 직접 건드리기는 어려우니, 약자인 대학생들에게 압력을 넣어서, 그 학교에 입학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너무 작전과 같은 개념이다. 아무래도 일반 대학생보다는 대학 재단이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힘이 더 클텐데, '만만한 놈' 먼저 건드리겠다는 것 아닌가? 효율적일 것 같지만, 이렇게 스스로를 지키기 어려운 사람을 법과 행정이 먼저 보호하지 않는 조치는, 그 자체로 정의로운 일은 아니다.
세 번째 문제점, 그리고 역시 근본적인 문제점. 과연 대학이 한국에서 취업을 위한 기관인가라는 점이다. 대학은 학문을 재생산하고, 지식인을 재생산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대학이 취업이나 다음 단계 진학을 위한 중간단계이기는 하지만, 대학의 존재 목표 자체가 취업은 아니다. 정말로 대학이 취업을 위한 기관이라면, 국가가 국립대학이나 공립대학 같은 것을 힘들게 유지할 필요가 없고, 사립대학에 대한 지원도 할 필요가 없다. 국가와 기업이 매칭펀드 형태로 소규모의 특화된 취업 학원을 많이 만드는 게 아마 더 비용도 저렴할 것이고, 효율성도 높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대학이라는 매우 특수한 사회적 기관이 자본주의에 필요한 기본 지식과 과학 혹은 학문과 같은 것을 생산하기에 필요한 기관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취업율을 기준으로 수험생들이 자신이 진학하고자 하는 대학을 선택할 수는 있어도, 그걸 명분으로 정부가 대학의 기준을 세우고 거기에서 '융자 방식'이라고 자신들이 정리한 대학 등록금에 대한 제도적 기반을 무기로 사용하는 것은 부당하다.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 취업율을 기준으로 대학생들에게 벌을 주는 이런 황당한 경우가 있는가?
네 번째 문제점, 이것은 세 번째 질문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이명박 정부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실제로 제기하는 질문은, 대학 서열화의 인정 혹은 융자 금지라는 규제방식을 통해서 특정 대학의 대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고 불온한 것이라는 점이다. 청년 실업이라는, 우리 모두가 그 존재를 이해하고 있는 현상이 하나 있다. 여기에 대해서 정부는 자신은 책임이 없고, 전부 제대로 취업 준비를 시키지 않는 대학과 무능한 대학생 탓이라는 떠넘기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물론 나도 한국의 대학에 문제가 있고, 대학생들에게 느끼는 불편함이 있다. 그러나 설령 대학에서 죽어라고 취업 준비를 하고, 학생들이 지금보다 몇 갑절 취업 준비를 열심히 해서, 지금의 '취업 5종 셋트'에서 설령 '취업 10종 셋트'로 상향조정을 한다고 해서 없는 일자리가 생겨나는가? 어느 대학 졸업생이 더 많이, 어느 학과 졸업생이 더 많이 취업하는가라는 개별적 해법과 거시경제 내에서의 일자리에 관한 얘기는 전혀 다른 얘기다.
기본적으로 취업은 제로 섬 게임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대학에서 하는 준비와 취업준비생의 스펙은 상대적 게임에 불과하고, 국가 전체로 보면 청년 실업 해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대기업은 대학에 책임을 전가하거나 신입사원의 자질 탓을 해도 된다. 거시경제를 운용하고, 고용을 조절하는 것이 대학의 1차 책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에게는 전체적으로 그런 것들을 살펴야 하는 1차 책임이 있다. 정권 차원에서의 대학과 대학생에게 청년 실업의 문제를 떠넘기기, 그것은 이데올로기적으로 효과가 있을지는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무의미하다. 그리고 '책임감 있는 정권'으로서 올바른 태도도 아닐 것 같다.
▲ 등록금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삭발한 대학생들. ⓒ프레시안 |
다섯 번째, 행정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지나치게 많은 정책을 하나의 프레임에 집어넣으면서 문제가 생기기는 했지만, 그들은 '로드맵'이라는 방식으로 장기계획을 수립하고, 그 과정에서 국민적 논의를 했다. 나는 로드맵 신봉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개괄적인 장기계획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국민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 정부는, 교육의 근간 중의 하나인 대학 구조조정이라는 과정에서 전체 방향이나 기본 그림을 국민들에게 보여준 적이 한 번도 없다. 이것은 단순히 대학 문제만이 아니라, 최근의 이명박 정부의 기본 행정이 대부분 그러하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장기계획은 정권 임기 기간 내에 4대강 사업 외에는 사실상 없는 것 아닌가?
만약 내부적으로 아무런 장기계획이 없다면, 그것은 졸속 행정이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이 편의 해석이 맞는 것 같다. 그때 그때 아무 거나 행정 같아 보이는 것을 직보 체계에 의해서 수립하고, 자신 없으니까 언론에 살짝 던져서 '간 보기' 하는 방식으로 끌어가는 것 같다. 고용이나 대학, 이런 것들은 국가의 기본에 해당하는 행정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운 띄고 간 보기' 방식으로 하면 정말 큰 일 난다.
그러나 국민에게는 말한 적이 없지만, 예를 들면 대기업과의 밀약 같은 것을 통해서 대학의 구조조정이라는 것은 특정 기업들에게 학교를 하나씩 나누어주는 방식 같은 것으로 기본 계획이 잡혀 있다면, 아니면 또 다른 방식의 방향 설정이 있다면? 이것은 밀실 행정이다. 소통과 토론을 통한 사회적 합의라는, 우리가 지난 10년 동안 어렵게 만들어놓은 기본 행정절차를 무시하고 다시 군부독재 시절의 밀실행정으로 돌아가는 것 역시 곤란한 일이다.
자, 어쨌든 현재의 정부 행정의 일방주의와 비밀주의를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자신들의 집권당인 한나라당과도 제대로 협의를 안 하는 집권세력이 도대체 국민을 국민으로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 '간보기'로 운을 뗀 지금의 정책이 너무 위험해보인다고 생각한다.
이번 주에, 등록금 융자의 제약을 받게 될 대학들을 발표한다고 한다. 아마 여러 가지 지표들만으로 보면, 지방대 특히 국가공단과 같이 그래도 대규모로 고용을 어느 정도 처리해주지 않는 곳들이 중점적인 관리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논리적 질문 앞에 서게 된다. 과연 현재의 청년 고용의 문제 특히 지방경제에서의 문제, 그것이 지방대가 책임질 수 있는 성격의 문제인가? 그리고 지방에 있어서 고용상 불이익을 받는 문제가, 융자금 제약과 같은 처벌의 대상이고, 대학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 서울 중심주의를 완화하기 위해서 어려운 지역일수록 더욱 도와주고, 촉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어쨌든 지켜볼 일이지만, 지방대 중심으로 대학 융자금 제약이 진행되면 사회적 저항이 이번에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