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하반기 집값 하락에는 정부 정책도 큰 공헌을 했다는 점이다. 정부가 하락을 부추기면서도 하락을 두려워해 관련 규제를 푸는 상황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정부, DTI 규제 완화할 듯
그동안 '규제 완화는 하지 않는다'던 정부의 기조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19일 오후 '소기업 소상공인 경쟁력 강화 포럼' 초청 강연 뒤 "(DTI와 LTV 규제의 완화 여부에 대해) 현재까지 입장 변화가 없다"면서도 "앞으로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는 상황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영원불변한 법칙은 없다"고 말했다.
일정 정도 손을 댈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에 앞서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지난 14일 KBS 라디오 <열린토론>에서 "DTI(총부채상환비율), LTV(주택담보인정비율)는 부동산 경기가 과열됐을 때 도입한 것"이라며 "그렇지 않을 때는 신축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서는 주택거래 활성화 대책이 오는 7.28 재보선 이전에 발표될 것이라는 전망이 강하다. 당장 가능성이 높은 날은 비상경제대책회의가 열릴 오는 22일이다.
정부가 손을 댈 제도는 DTI가 꼽힌다. 강남3구와 서울, 수도권에 각각 40퍼센트, 50퍼센트, 60퍼센트로 적용된 DTI를 5~10퍼센트포인트가량 끌어올릴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DTI는 대출받으려는 이의 소득을 기준으로 금융부채 상환능력을 평가한 후, 그에 맞게 대출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당장 야당에서 반발이 거세다. 이용섭 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가계부채 증가를 부추기는 DTI와 LTV 규제 완화는 매우 위험한 정책 선택"이라며 "젊은층과 중산서민들에게 주택을 빚내서 구입하라고 부추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부동산 가격은 더 떨어져야 한다. 우리나라 (땅값)은 국제 수준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다"며 "떨어져야 할 가격이라면 떨어지게 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여당 내에서도 '곤란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CBS와 인터뷰에서 "빚을 낸 사람이 더 빚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는 정책 방향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지 생각해야 한다"며 "(지금은) 부동산 가격이 계속 내려가도록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부동산 가격은 무조건 오른다'는 경험칙은 '부동산 불패' 시각을 나라 전체에 퍼뜨렸다. 부동산 가격 하락이 마치 큰일인양 생각하게 됐다. 정부마저도 이에 자유롭지 않은 모양새다. ⓒ뉴시스 |
부동산 공급은 지속
이 부의장의 말대로 부동산 시장은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가 규제를 풀어 주택 구입수요를 촉진시키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은 오르게 돼 있다. 특히 국내 부동산 거래가격에는 투자 목적이 포함돼 있어, 가격이 지속적으로 올라야 시장 안정이 가능하다.
19일 국토해양부 자료를 보면 지난달 서울 땅값은 전달대비 0.03퍼센트 하락했다. 서울 땅값이 하락한 것은 15개월 만이다. 최고점이었던 지난 2008년 10월에 비해서는 4.33퍼센트 빠졌다.
특히 강남구는 5월보다 0.12퍼센트 떨어져 3개월 연속 하락했다. 서초구와 송파구 가격도 각각 0.04퍼센트씩 내렸다. 부동산 경기 위축이 수개월 간 이어지면서 상대적으로 가격 변동폭이 적은 토지 매매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부동산 시장 침체에는 부정적인 시장 전망도 한 몫을 하고 있다. 특히 올해 하반기는 대규모 주택공급이 예정돼 있어, 침체가 보다 길게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예정된 전국의 신규 입주물량은 16만3092가구에 달한다. 이는 상반기보다 12.9퍼센트 늘어난 수치다. 고양시에서만 1만2887가구가 입주하고, 용인 6457가구, 파주 6321가구, 인천 남동구 6036가구, 서울 은평구 5707가구 등 주로 공공택지를 중심으로 물량이 쏟아진다.
문제는 시장이 이를 수용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국토해양부 자료를 보면 5월 말 현재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11만460가구로,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분양가 자체가 높은데다 앞으로도 경기가 하락하리라는 전망이 많아 실수요자와 투자자 모두 시장을 외면한 상황이다.
"정부 갈팡질팡해 문제"
이와 같은 공급 폭탄 현상에는 정부도 한 몫을 했다. 정부는 지난 2008년 경제위기 이후 건설 경기가 하강할 때도 건설사 구조조정을 민간에 맡기는 한편, 각종 대책을 쏟아내 건설업체 지원에 나섰다. 경제 추락을 막기 위해 불가피했다는 평가도 있었으나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을 막아 건설사 난립을 부추겼다'는 비판 역시 많았다.
이와 관련,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부도난 건설업체 수는 총 255개로, 2008년 대비 42.4퍼센트 급감했다. 경기가 좋을 때인 2001년과 2002년 당시에도 508개, 420개에 달하던 부도업체 수가 오히려 경기 하강기에 대폭 줄어든 것이다.
건설업은 기본적으로 대량의 빚을 지는 특성이 있다. 이 빚을 주택 건설 후 분양으로 들어온 현금으로 되갚고, 다시 빚을 내서 대형 건설사업을 벌이는 게 국내 건설업 구조의 핵심이다.
건설업체가 하강하는 경기에 맞게 적정수로 줄어들지 않는 한, 난립한 건설업체들은 지속적으로 공급물량을 늘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가 건설업체의 구조조정을 막아 주택 공급량이 늘어나는 원인을 제공해놓고, 그 해결책으로 부동산 규제를 풀겠다고 나서는 셈이다.
이처럼 정부 정책 자체가 확실한 방향을 갖지 못해 시장이 더욱 불안정해진다는 지적이다.
이 부의장은 "향후 부동산 시장의 안정이 우선인지, 부동산 경기 활성화가 우선인지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며 "부동산 대책이 왔다갔다하면 시장이 불안을 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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