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외에도 지방선거와 월드컵이 올해에 있기 때문에, 역시 출판계에서는 최악의 시기라고 보았다. 책은 대체적으로 신문이 재미없을 때에 많이 팔리고, 선거나 월드컵 같이, 신문이 재미있고, TV가 재미있는 시기에는 잘 팔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 어쨌든 많은 한국인은 자신의 용돈계획을 구축하면서 '서적 구입비'를 별도로 설정하지는 않고, 오락비 중의 한 항목으로 처리하는 것 같다. 그래서 놀이에 일정한 돈을 지불하고 나면, 당연히 도서 구입이 줄어들게 된다.
도서계를 그냥 시장이라는 눈으로만 본다면, 최악의 계절은 가을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그건 워낙 책을 안 읽으니까 그런 말이라도 좀 붙여서 독서를 권면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사회과학이라는 눈으로만 본다면, 일년에 가장 나쁜 시장은 가을 시장이고, 가장 좋은 시간은 3월과 8월, 두 번이라고 할 수 있다. 3월에는 고등학생들이 학교에 입학하고, 또한 대학생들도 입학하는 시기이다. 요즘은 대학생들이 거의 독서를 하지 않지만, 고등학생들은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의 여성을 제외한다면, 한국에서 가장 왕성하게 독서하는 집단으로 분석된다. 물론 엄마들이 막 고등학생이 된 자녀에게 사주는 통계가 2중으로 잡히기 때문에, 분석은 좀 애매하기는 하지만, 아마도 단일 집단으로만 본다면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가장 큰 독서집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3월 시장이 가장 큰 시장으로 최근 자리를 잡은 것 같다.
그 다음 큰 시장이 7, 8월의 여름 휴가 시장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해석이 아직 좀 어렵다. 지난 2~3년 전부터 이 시장은 일반인들이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책들에게는 가장 우호적인 시장이 된 셈인데, 휴가철에 책을 가지고 가는 직장인이 많아서 그렇다는 해석과 양극화와 함께 소득의 하락으로 휴가는 냈지만 휴가를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책을 더 많이 읽게 된다는 해석이 팽팽하다. 나는 후자 쪽이 좀 더 그럴 듯한 설명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데, 여름 휴가에 책을 가지고 가서 독서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런 의심이 좀 있어서 그렇다.
이런 연간 변화량과 함께 지난 몇 년 사이의 서적 특히 사회과학의 판매량 추이가 또 한 가지 있다. 대체적으로 지난 년 동안 사회과학은 어려운 중에서도 특히 고전을 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것은 지난 가을에서 겨울 사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한국에서 사실상 사회과학 시장은 종료하고, 2010년에는 출판계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므로, 사회과학 출판사는 '살아남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라는 게 연초까지 한국 출판계 특히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을 둘러싸고 출판계에서 왔다갔다 하는 괴담이었다.
▲ <정의란 무엇인가> |
<정의란 무엇인가>가 지금과 같은 좋은 성과를 올리기 전에, 지난 봄을 버텼던 국내 저자들의 좋은 책들이 몇 권 있었다. 그 어렵던 시절에, 사회적으로 작지 않은 논란을 일으켰던 책들을 2010년 상반기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그 가운데 3권 정도를 이 기회를 빌어 다시 한 번 소개하고 싶다.
▲ <삼성을 생각한다> |
첫 번째는, 이것이 한국에서 매우 드문 인사이더의 자기 고백이라는 점이다. 양심선언을 비롯해서 한국에서도 '인사이더'들이 종종 등장한 적이 있는데, 그들의 삶은 대체적으로 불행해졌던 것이 사실인 것 같다. 삼성이라는 거대한 권력의 힘에 맞선 인사이더가 불행해지지 않고, 최소한 인간적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 그게 가능할까? 그 질문이 이 책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의미이다.
두 번째는, 한국에서 '재벌'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실종되어 버린 지난 10년간의 담론을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삼성이라는 아주 독특한 기업의 문제가 하나 있지만, 한국 경제가 대기업과 어떠한 관계를 가질 것인가라는 질문은 2010년, 특히 더 중요하게 된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벌에 대한 담론은 1998년 IMF 경제위기를 즈음해서 생겨난 '재벌해체'와 '순환출자 금지'라는 두 가지 정도에 머물러 있다. 그 다음 담론이 여전히 제시되고 있지 못하다. 현대자동차의 3세 승계 문제가 여전히 뜨거운 이슈이고, 그에 따라 현대건설에 대한 인수 논란, 쌍용차 논란, 지역경제에서의 기업형 슈퍼의 허용 문제,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서 과연 이러한 대기업들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할 것인가, 그리고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담론이 근 10년째 실종되어 있다. 그 빈 공간을 채울 수 있는 계기가 바로 이 책에서 형성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 <김예슬 선언-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
▲ <PD수첩-진실의 목격자들> |
시대가 어둡고, 진보/보수 혹은 좌우의 논쟁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 빈 공간을, 권력 내의 다툼이 채우고 있고, 영포회냐 선진연대냐, 아니면 박근혜파냐, 이런 내용 없는 기표들이 공중파와 신문을 채운다. 그러면 허전해서, 월드컵이나 보자, 그렇게 할 것으로 사람들은 생각했다. 전두환 시절의 섹스, 스크린, 스포츠라는 3S와 비슷한 암흑의 정국이 열리기는 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닫혀버린 공중파, 분석 없는 신문 대신에 책 그것도 골치 아픈 인문서나 사회과학 서적을 집어들은 것이 2010년 상반기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게 우리가 가진 가장 큰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책 읽는 국민들을 이길 수 있는 폭압 정치나 일방주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정의란 무엇인가>와 함께, 우리는 희망을 보았고, 그 희망이 2010년 하반기에는 더욱 큰 파도가 되기를 기대한다. 어둠이 짙으면 새벽이 올 때라고 누군가 하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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