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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서 노조 만들기란…유서 쓰고나니 눈물이 왈칵"

[인터뷰] 삼성SDS 노조 추진 최모 차장 "이건희 사건, 노조가 있었다면…"

삼성SDS 안에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지난 7일 <연합뉴스>, <한겨레> 등에 소개된 삼성SDS 최모 차장이다. 그는 지난 5일 이 회사 직원 300여 명에게 노조 설립을 촉구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사내게시판조차 운영하지 않을 정도로 폐쇄적인 삼성SDS의 문화를 바꾸려면, 합리적인 평가와 보상 체계를 마련하려면, 경영의 도덕성을 확보하려면, 노조가 필수적이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메일은 순식간에 삭제됐다. 대부분의 수신자는 메일을 열어볼 틈도 없었다. 최 차장의 메일에 응답한 사람은 10여 명에 불과했다. 메일 발송 40여 분 뒤, 회사 인사팀은 최 차장에게 "회사의 자산인 사내 메일시스템을 업무 외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한 번 더 이런 일이 있으면 엄중 처벌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와 함께 회사 측은 최 차장의 근무지를 대전에서 서울로 바꿨다. 삼성SDS에서 노조를 만들려는 시도는 이렇게 무산되는 듯했다.

최 차장, 유서 쓰고 노조 설립 호소했다

▲ 서울 역삼동에 있는 삼성SDS 사옥. ⓒ뉴시스
그런데 과연 그럴까. SI(System Integration) 등 IT서비스 분야 1위 기업인 삼성SDS에 노조가 생길 날은 아직 먼 걸까. 이런 궁금증이 최 차장을 찾게끔 했다.

8일 오후, 대전에서 만난 최 차장은 밝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자신이 공개적으로 벌인 일이 낳을 파장을 몰랐던 걸까. 그건 아니다. 메일을 보내기 전, 그는 유서를 썼다고 했다. 노조 설립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상의했을 때, 워낙 험한 말을 많이 들었던 탓이다. 그는 누군가가 자신을 짓누르면 더 힘이 나는 성격이라고 했다. 이번 일로 회사가 자신을 해코지한다면, 더 강력한 카드를 들고 싸우겠다고도 했다.

그는 1993년 경력직으로 삼성SDS에 입사했다. 줄곧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했고, 개발을 천직으로 알았다. 밤샘이 잦은 개발자 생활이 괴롭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손사래를 쳤다. 그만큼 성취감이 크다는 대답이다. 삼성SDS 김인 사장에 대한 평가도 아주 후했다. 김 사장을 존경한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가.

도덕성 강조하던 이건희, 알고보니 범죄자…개발자 자부심이 부서지다

문제가 있다. 바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다. 천생 개발자였던 그의 자부심에 흙탕물을 끼얹은 게 바로 이 회장이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이 회장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언론이 워낙 호의적으로 보도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회장은 직원들에게 높은 도덕성과 인간미를 강조했다. 재벌 총수가 이윤보다 윤리를 앞세우는 모습이 그에겐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김 변호사의 양심고백은 이런 생각을 산산이 깨뜨렸다. 직원들에게 무한한 도덕성을 강조하던 총수가, 알고 보니 범죄자였다. 회삿돈을 비자금으로 빼돌렸고, 직원들의 땀이 배인 돈으로 공무원을 타락시켰다. 그래서 노조를 만들기로 했다. 그게 2008년 여름이다. 하지만 그때도 회사의 방해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회사는 천생 개발자인 그를 총무 부서로 옮겼다.

그리고 2년이 지났다. 그 사이 이 회장은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곧 사면됐으며, 다시 삼성 회장으로 복귀했다.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 죄를 지었다면, 비록 용서를 받았다고 해도 조용히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 게 순리다. 그런데 이 회장의 선택은 반대였다. 내부에서 비판하고 견제하는 세력이 없는 기업은 필연적으로 타락하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쳤다. 결국 다시 노조 결성을 호소하고 나섰다.

이런 그에게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길 원하는지 물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에겐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이 있다. 그러나 회사가 탄압의 강도를 높인다면, 그 때는 다른 생각이 있다고 했다. 지금처럼 조용히 메일을 보내는 차원을 넘어서는 싸움을 하겠다는 뜻이다. 최 차장과 나눈 이야기를 간추렸다.

"'가족 때문에 바른 말 못한다?'…목숨 걸고 상소한 선비들은 다 고아였나"

-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려면, 상당한 각오를 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조선시대 선비들의 삶을 동경해 왔다. 왕에게 직언을 하려면, 선비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어느 시대인들, 옳은 목소리를 낼 때 부담이 없겠는가. '가족이 있는데 괜찮겠느냐'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럼, 나는 되묻는다. '조선시대 선비들, 80년대 민주화 운동하던 이들은 다 고아였느냐.' 누군들 가족이 소중하지 않겠는가. 노조 설립을 준비하면서 유서를 썼는데, 첫 문장에 '여보'라는 말을 쓰고 나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누구나 그럴 게다. 그러나 그게 뻔히 보이는 잘못을 덮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이 순식간에 삭제됐다.

"삼성SDS 사내 전산망에는 자유 게시판이 없다.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리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삼성SDS에는 '미래공감협의회'라는 노사협의회가 있는데, 이곳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 '관계없는 내용'이라며 삭제되기 일쑤다. 그러니까 메일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이들은 왜 그렇게 '정면돌파'를 했느냐고 말한다. 메일을 보내면, 회사에서 알고 대응할 게 뻔하지 않으냐는 게다. 내 생각은 다르다. 노조 결성을 시도하면, 어떻게든 언론에 알려지게 돼 있다. 계속 숨어서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는 게다. 그리고 메일 내용을 들여다보고, 함부로 삭제한 회사의 잘못에 대해서는 왜 이야기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업무와 관계없는 내용이라서 삭제했다는데, 그렇다면 주말에 함께 놀러가자는 메일도 다 삭제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 메일은 내버려두면서 왜 노조 결성 하자는 메일만 문제 삼는지 모르겠다."


-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을 보면, '선진 노조'라는 표현이 나온다.

"무책임한 파업으로 회사와 노동자 모두에게 피해를 끼치는 노조가 있다. 나는 그걸 '강성 노조'라고 부른다. '선진 노조'는 그와 다른 개념이다. 회사와 노동자가 상생하게끔 하는 게 '선진 노조'라고 본다. 독일 노조가 그렇다고 들었다."

- 정상적인 노조라면, 회사와 충돌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 노사분규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이 아니다. 회사와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 다만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싸움을 하자는 게다. 예컨대 삼성은 이건희 회장 일가를 위해 비자금을 만들었다. 이런 일에 대해 강하게 문제제기 해야 한다.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싸워야 한다. 만약 삼성에 노조가 있었다면, 그토록 많은 비자금을 조성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게다."

"노조 설립 방해가 불법이라는 걸 모르는 삼성 직원들, 안타깝다"

- 노조 설립을 호소했을 때, 동료나 선후배들의 반응은 어땠나.

"사실 답답하다. 삼성에 똑똑한 사람들이 참 많은데, 노조에 대해서는 대부분 아는 게 없다. 예컨대 노조 설립 방해 행위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오히려 반대로 아는 사람이 많다. 노조 설립이 마치 범죄쯤 되는 듯 여기는 게다.

노사협의회가 있는데 굳이 노조를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말도 많이 한다. 하지만 노사협의회는 노조가 아니다. 노사협의회 위원은 노동자가 뽑는 게 아니다. 당연히 회사 측 입장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노사협의회 위원이 되면, 급여 및 인사 등에서 혜택을 누린다. 그러니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기 어렵다. 자신이 좋은 대우를 받으니까,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들에게는 아무래도 관심을 갖기 어렵다.

가까운 예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발생한 백혈병 문제가 있다. 이런 끔찍한 일이 생기는데도, 다들 남의 일로만 여긴다. 물론 속으로는 안타까워하고 있을 게다. 하지만 그래서는 바뀌는 게 없다. 노조가 있다면, 적어도 이 지경은 아닐 게다."


▲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지난 3월 31일 사망한 고 박지연 씨. 숨을 거둘 당시 박 씨의 나이는 불과 스물셋이었다. 유족이 박 씨의 '미니홈피'에 있던 사진을 인쇄한 현수막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이상엽


- 삼성SDS는 삼성 계열사 전체의 전산망을 관리한다. 삼성 그룹의 모든 정보가 모이는 곳이라는 이야기다. 이 회사 엔지니어들이 노조를 만든다면, 삼성 그룹 총수 일가는 대단히 긴장할 듯하다.

"아마 그럴 게다. 그래서 더 세게 짓누를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나는 기본적으로 낙관하는 입장이다. 김인 삼성SDS 사장의 인품과 철학을 존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 사장은 지난 2003년 취임 이후 한 주도 거르지 않고 'CEO 월요편지'를 전체 직원들에게 보내왔다. 이게 보통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편지 내용도 정말 좋다. 그런 글을 쓰는 분이라면, 기본적인 믿음은 가질 수 있다.

이런 믿음이 깨진다면, 회사가 터무니 없는 탄압을 한다면, 그때는 새로운 카드를 들고 싸울 계획이다. 나는 괴롭힘 당하면 오히려 힘이 나는 성격이다."

"고생은 개발자가 했는데, 생색은 법무팀이 냈다"

- 이건희 회장 일가의 비자금 사건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백혈병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것 말고, 노조 설립을 결심한 개인적 동기가 있나.

"있다. 2004년께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겪은 일이다. 당시 프로젝트 발주처와 분쟁이 생겼다. 그 결과, 우리 회사(삼성SDS)가 큰 손해를 입게 됐다. 프로젝트 실무자였던 나는 분통이 터졌다. 그래서 회사 법무팀에 문의했다. 변호사의 답변은 '어쩔 수 없다. 돈을 물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법무팀이 제대로 알아보기나 한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내가 계약 내용을 다시 검토하고 차근차근 따져나갔다. 그랬더니, 우리 회사가 돈을 물어주지 않아도 된다는 근거를 찾을 수 있었다. 이런 내용으로 보고서를 썼고, 그게 법무팀에 전달됐다. 당연히 법무팀은 반가워할 줄 알았다. 그런데 반응이 시큰둥했다. 그리고는 보고서 마지막 부분을 문제 삼으며, 관련 규정을 더 찾아보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법규를 따지는 일은, 원래 개발자가 할 일이 아니라 법무팀의 업무 아닌가. 그런데 왜 그걸 계속 떠넘기나 싶었다. 그래도 규정을 더 찾아서 보고서를 완성했다. 그 결과, 회사는 손해를 피할 수 있었다. 기분이 뿌듯했다. 그런데 이후 상황이 묘하게 돌아갔다.

법무팀은 이런 공적을 자기들이 한 일이라고 윗선에 보고했다. 그리고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법무팀이 할일까지 떠앉았던 나는, 오히려 인사상 불이익을 겪었다. 고과점수가 떨어졌고, 그 결과 2007년 9월 일년치 연봉을 줄 테니 퇴직하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나는 받아들이지 않고 버텼다.

사실, 어느 회사에서나 있는 일이다. 실제로 고생하는 사람과 혜택을 누리는 사람이 따로따로인 구조 말이다. 그러나 노조가 있다면,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 누가 봐도 불합리한 평가 및 보상 체계에 대해 다수 노동자를 대표해서 비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용 승계 문제, 합리적으로 이야기해보자"

- 삼성 내부에선 이건희 일가의 민감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렵다. 노조가 있다면, 좀 달라질 텐데 싶다.

"그렇다. 이 회장이 비자금을 조성하고 유죄 판결을 받아서 회사에 심각한 피해를 끼쳤는데도, 회사 안은 조용하기만 하다.

회사의 미래를 결정짓는 경영권 승계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 총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충분한 실력과 인품을 갖춰야 한다. 그릇이 아닌데 단지 총수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영권을 물려받는다면 잘못이다. 반대로 뛰어난 사람이 총수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잘못이다. 예컨대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삼성 그룹 경영권을 반드시 물려받아야 할 이유도, 그렇지 않아야 할 이유도 없다는 게다. 중요한 것은, 이런 문제가 합리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돼야 한다는 점이다. 노조가 있다고 해서 모든 게 풀리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계기는 되리라고 본다."


- '삼성에 노조를' 관련 주요 기사 모음


(1)☞"삼성전자 박 대리는 왜 정신병원에 가야 했나"
(2)☞"정신병원 입원했던 삼성 박 대리, 복귀해도 여전히 '왕따'"
(3)☞"왜 삼성에선 출장 사망도, 여사원 과로 유산도 본인 탓인가?"
(4)☞"삼성전자에 노조를!"…朴대리 두 번째 글도 삭제, 징계 통보"
(5)☞"누가 삼성전자 朴대리에게 유서를 쓰게 만들었나?"
(6)☞"삼성에 노조 만들자는 글이 영업 기밀인가?"
(7)☞"삼성전자, '노조 설립' 호소한 朴대리 전격 '해고'"
(8)☞"'삼성전자에 노조를!'…해고된 朴대리, 재심 청구"
(9)☞"'삼성전자에 노조를!'…박종태 대리, 해고 확정"
(10)☞"'삼성에 노조를!'…해고된 朴대리 딸 "아빠 피아노 끊을게요""
(11)☞"사람이 죽어나가면 모를까 삼성에서 여사원 유산쯤이야…"
(12)☞"삼성전자 해고자 박종태 씨와 함께할 사람, 모여라!"
(13)☞"박종태 대리 해고, 정말 '삼성 노조' 추진과 무관한가?"
(14)☞""저 사람이 朴 대리다"…두유 건네며 격려하는 삼성 직원"
(15)☞"유서 썼던 삼성 朴대리 "나는 왜 살아서 싸우기로 했나""
(16)☞"무조건 해고…이러고도 삼성이 초일류기업입니까?"
(17)☞"삼성 '왕따 직원' 박종태가 수세미 들고 나타난 까닭?"

(18)☞"삼성 해고자 박종태, 산재 불승인…"삼성노조와 함께 싸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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