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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 또 조심하지만…'예비 엄마'는 불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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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 또 조심하지만…'예비 엄마'는 불안해!

하리하라의 '육아 일기' <2>

별이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 : 2004년 4월 20일

안녕, 별아. 엄마란다. 넌 아직 삼신할머니 품에 안겨 있겠지? 언제쯤 엄마한테 가야할까 궁리하면서 말이야. 엄마는 드디어 아빠랑 결혼을 했어. 그리고 저번에 말했듯이 그 즈음부터 '다이안느'를 먹기 시작했지. 별이를 만나는 시간을 조금 뒤로 미루고, 결혼식을 앞두고 심해진 피부 트러블도 진정시키고 싶었거든.

혹시 엄마가 별이 만날 시기를 일부러 늦춘 것이 서운하니? 하지만 그건 절대로 별이를 만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 그저 엄마는 별이 맞을 준비를 좀 더 철저히 한 뒤에 만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어. 물질적으로든, 심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엄마가 될 준비가 되어야 비로소 별이 앞에 나설 수 있을 것 같더구나. 별이가 얼마나 귀한 손님인데 준비도 없이 아무렇게나 맞을 수 있겠니?

처음에는 다이안느라는 피임약이 있는 것도 몰랐어. 결혼 후, 별이 만날 시기를 좀 늦추려고 피임약을 사러 약국에 갔다가 약사가 추천해 준 게 다이안느였지. 다이안느는 초산시프로테론(cyprotenone acetate·CPA)과 에치닐에스트라디올(Ethinyl Estradiol·EE)의 복합제제로 피임 효과와 함께 항생제에 반응하지 않는 여드름을 완화시킨다고 했어. 그간의 경험으로 항생제는 내게 전혀 듣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엔 다이안느를 믿어보기로 했지.

자꾸 여드름 이야기를 했으니, 여드름에 대한 이야기부터 먼저 하고 넘어가야겠다. 여드름은 피지가 과다하게 분비돼 피지선을 막아 면포를 형성하게 되면, 이 면포에 통칭 여드름균이라고 불리는 Propionibacterium acnes(P. acne)가 결합해 염증을 일으키는 증상이야.

여드름을 일으키는데 세균이 관여하기 때문에 초기 여드름의 치료에는 항생제를 사용하지. 균을 죽여서 여드름을 치료한다는 발상이야. 이 방법은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단다.
▲ 여드름의 가장 큰 원인은 피지 탓이다. 여드름이 생기는 과정을 그린 그림. ⓒ과학동아

사실 여드름을 일으키는 더 큰 원인은 얼굴에서 솟아나는 피지야. 원래 여드름균은 스킨 플로라(skin flora)라고 해서, 언제나 피부에 존재하는 일종의 상재균이야. 마치 누구의 장에든 대장균이 사는 것처럼 말이야. 대장균이 평소에는 별다른 이상을 일으키지 않는 것처럼, 여드름균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여드름이 생기는 것은 아니야. 여드름균은 호지성(lipophilic, 지방을 좋아하는 성질)이어서 피지가 넘치는 부위에서만 증식이 되거든.

따라서 여드름의 가장 큰 원인은 넘치는 피지야. 지성 피부인 사람에게 쉽게 여드름이 나는 건 피지 분비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지. 그런데 이런 과도한 피지는 안드로겐과 연관이 있어. 안드로겐은 다른 말로 '남성 호르몬'이라고 불리는데, 남성의 생식계 성장과 발달에 영향을 주는 호르몬을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야. 가장 대표적인 안드로겐이 바로 남성의 고환에서 생성되는 테스토스테론이란다.

별아, 인간의 성은 수정 순간에 염색체에 의해 결정되지만, 성기의 모양은 나중에 결정된다는 것을 알고 있니? 원래 발생 중인 태아는 장차 여성 성기가 될 뮐러관(Mullerian duct)과 남성 성기가 될 볼프관(Wolffian duct)을 모두 가지고 있단다. 그리고 각 성에 따라 한 쪽만 발달해서 성기로 변하고, 다른 쪽은 퇴화해 없어지지.

임신 8주쯤 되면 남자 태아의 좁쌀만한 고환에서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어 볼프관이 남성 생식기로 변신하는 것을 지시한단다. 만약 이 과정에서 어떤 이유로 인해 테스토스테론의 작용이 방해를 받게 되면, 염색체는 분명 XY의 남성인데, 여성의 성기를 가지고 태어나는 불행한 일이 생길 수도 있어. 인간의 성기 발달은 기본적으로 여성형으로 되어 있어서, 테스토스테론의 자극이 없으면 남성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어도 뮐러관이 발달해 여성 성기가 만들어지거든. (이 과정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얘기해 줄게.)

자, 다시 안드로겐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안드로겐은 주로 남성에게서 많이 분비되는데 남성 생식계를 발달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야. 그런데 이 안드로겐은 남성 생식계뿐 아니라 피지 분비를 늘어나게 하고 몸의 털을 증가시키는 작용도 같이 해. 그래서 안드로겐 분비가 왕성해지면 피부에 기름기가 번들거리게 되고, 이것이 과도해지면 여드름, 지루(脂漏), 다모증(多毛症), 안드로겐성 탈모증이 일어날 수 있지. 안드로겐이 많아지면 몸에는 털이 많아질 수 있지만, 오히려 머리숱은 적어진대. 남아있기를 바라는 곳은 없어지고, 없어졌으면 하는 곳은 더 생기다니, 참 불공평하다, 그치?

안드로겐은 '남성 호르몬'이라는 말처럼 주로 남성에게서 많이 분비되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은 남자에게서 더 자주, 더 심하게 나타나곤 한단다. 그렇지만 여자도 남자보다는 적지만 안드로겐이 분비되고, 약 10~20%의 여성에게서 안드로겐 과잉증(hyperangrogenism)이 나타나기 때문에 같은 증상을 겪을 수 있어(엄마도 아마 그래서 끊임없이 심한 여드름에 시달렸나 봐). 또 평소에는 여드름이 나지 않다가 생리 주기가 다가오면 여드름이 나는 여성들이 많은데, 이것도 안드로겐 때문이야. 안드로겐이 생리 직전에 약간 증가하니까 피부가 거기에 반응하는 거지.

어쨌든 안드로겐은 피지 분비를 증가시켜 여드름을 일으키는 주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어. 그런데 다이안느에 들어 있는 CPA는 안드로겐의 활동을 방해하는 작용이 있어. 즉, CPA는 안드로겐에 의한 피지선 자극을 방해해서 피지 분비를 줄인단다. 피지 분비를 줄여서 여드름을 없앤다는 원리는 '로아큐탄'과 대동소이하지.

엄마는 로아큐탄에서도 효과를 봤기 때문인지, 다이안느도 효과가 있었어. 피부가 많이 진정되었거든. 물론 너무 오랫동안 고생했기 때문에 백옥같은 피부는 되찾지 못했지만, 더 이상 새로운 여드름이 올라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했지. 그러고 보니 지성이니 건성이니 하는 피부 타입도 가족력이 있다고 하는데, 엄마 탓에 우리 별이도 커서 여드름으로 고민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억해두렴. 얼굴의 여드름은 치료할 수 있지만, 마음에 난 생채기는 치료할 수 없다는 걸. 엄마는 우리 별이가 얼굴보다는 내면의 살결이 고운 사람이 되었으면 해.

어쨌든 엄마는 다이안느를 6개월 정도 복용하고 중지했단다. 피부도 어느 정도 안정된 것 같고, 이젠 별이를 맞을 준비도 되었던 것 같아서였지. 늘어날 식구를 위해 지금 살던 집보다 넓은 집으로 이사도 했고, 서점에 가서 임신 관련 책도 한 권 샀어. 그리고 이제부턴 본격적으로 배란일과 생리 주기를 체크하기 시작했어. 이젠 정말 별이를 만나기 위해서 말야. 하지만 넌 엄마를 정말 많이 기다리게 하더구나. 엄마가 널 맞이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지 3년이나 지나서야 엄마를 찾아왔으니 말이야.
▲ '다이안느'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널리 쓰였으나, 과대·과장 광고를 했다며 시민단체로부터 큰 비판을 받았다. ⓒ한국쉐링

그렇게 별이를 기다리며 한동안 잊고 있었던 다이안느라는 이름을 엄마는 얼마 전에 다시 발견하고 놀라고 말았어. 지난 2007년 6월 13일,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등 8개 시민단체는 다국적 제약업체 쉐링의 '다이안느35'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가졌어. 그들이 제기한 바로는 다이안느가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약임에도 제약사 쉐링은 이를 축소 발표했으며,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이를 알고도 묵인했다는 것이었어.

쉐링은 다이안느를 국내 시판하면서 꽤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도했지. 피임약에 대한 광고는 여성지의 지면 광고가 주를 이뤘지만, 다이안느는 이례적으로 TV 광고에까지 얼굴을 비췄거든. 그래서 다이안느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복용했단다.

그런데 이들 시민단체의 주장을 보면(☞기자 회견문 보기) 다이안느는 과대·과장 광고로 인해 소비자를 현혹시켰다는구나. 그들의 주장을 잠깐 옮겨 볼게.

"외국에서 다이안느는 장기간 경구용 항생제 용법이 듣지 않는 심각한 여드름이나 약간 심각한 다모증 치료제로 여성에게만 사용할 수 있다. 비록 이 약이 피임약처럼 작용하기는 하지만, 피임 목적만을 위해서 사용되어져서는 안 되며 안드로겐 의존성 피부 질환 치료를 요하는 여성에게만 단기간 사용되어져야 한다."

즉, 다이안느는 '여드름 치료를 주목적으로 하는 약'이지, '피임약'이 아니라는 거야. 게다가 다이안느는 간암 유발, 정맥혈전색전증 발생 등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주로 장기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피임약으로는 부적절하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어.

이런 주장이 나오자 제조사인 쉐링 측에서는 이에 대해 반박을 했지만, 그 후로 다시 들어가 본 한국쉐링 홈페이지에는 다이안느의 약품 설명서의 '효능·효과' 부분이 이렇게 바뀌어 있더구나.

여성의 다음과 같은 안드로겐 의존성 질환의 치료.
-경구용 항생제에 반응하지 않는 여드름,
-안드로겐성 다모증


'피임'은 효능·효과 부분에서 빠져 버린 거야. 분명 엄마가 이걸 먹을 당시에는 피임약이라고 생각해서 먹었는데 말이야. 그나마 복용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기에 다행이었을까? 그리고는 역시 아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모든 것에 항상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별이와의 만남이 행복하려면, 별이도 물론 건강하고 튼튼해야겠지만, 엄마 역시 건강해야 하니까 말이야.

이제 엄마는 얼굴에 여드름이 나던 기미와 주근깨가 사이좋게 자리 잡던 상관않기로 했어. 로아큐탄에게도 다이안느에게도 영원히 안녕을 고했지. 우리 별이를 건강하게 만나기 위해서 말이야.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널 이토록 오래 기다리게 될 줄은, 그것도 수정 이후 9개월이 아니라 14개월 만에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단다. 나머지는 다음 편지에서 이야기해 줄게.

참고 문헌

박기범, '10대들의 고민 여드름-안드로겐이 주 원인, 음식과는 무관', <과학동아> 1999년 7월호(통권 제163호).

한국쉐링 홈페이지(☞
바로 가기)

다이안느 홈페이지(☞
바로 가기)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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