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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당, 비상대책위를 즉각 구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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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당, 비상대책위를 즉각 구성하라"

[기고] 깨지 않는 악몽, '정파게임 2008'

깨지 않는 악몽, "정파 게임 2008"

한국 진보 운동을 20년 넘게 좀먹어온 "정파 게임"의 2008년 신판 버전이 새로 나왔다. 얼마 전 가까스로 마련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주된 안건으로 삼았던 민노당 중앙위원회가 파행을 겪고 이에 따라 비상대책위원회 구성도 무산되고 말았다. 김창현 씨(편의상 이하 모든 존칭 생략) 등을 중심으로 한 NL 당권 세력은 비례 대표 후보 선임 권한을 넘길 수 없다고 나섰다. "분당"을 원하는 PD 세력 일부는 "종북주의 청산"이라는 희한한 조건을 요구하고 나섰다. 양쪽 다 비상대책위원회의 구성을 한사코 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민노당은 "이혼 수속"을 밟는 일만 남은 것 같다는 푸념이 사방에서 들린다.

"초헌법적 조치"니 "종북주의자와의 결별"이니 하는 명분으로 치장해도 허사다. 지금 비상대책위원회의 구성을 회피하고 거부하는 그 모든 논리와 주장은 2008년 새로운 버전의 정파 게임일 뿐이다.

1. "정파 게임": 책임 회피와 무능력 은폐의 상호 공조

정파의 존재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문제는 "정파 게임"이다. 이는 게임에 참여하는 모든 정파들이 서로 다른 정파의 "불량한" 본질을 공격하기만 하면 누구나 스스로의 책임을 회피하고 무능력을 은폐할 수 있게 되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정치 기술자들의 가면 무도회이다. 특히 진보 운동 내에서 이 "정파 게임"은 운동의 사분오열과 전체의 지적, 실천적 역랑을 갉아먹어온 오랜 연혁을 가지고 있다.

그 고전적인 예로서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경험을 들 수 있다. 스탈린 체제에 반대했던 트로츠키였지만 파시즘의 발흥과 2차 대전의 임박이라는 조건 속에서 일단 스탈린주의자들과 연대하여 반파시즘 전선에 함께 나서는 노선을 제출하였다. 트로츠키의 진단으로 2차 대전에서 일단 소련이 승리하고 나면 곧 소련의 혁명적 노동자들이 스탈린 체제에 맞서 봉기할 것이며 그것으로 세계 혁명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견하였기 때문이다. 비극은 45년 이후에 시작되었다. 트로츠키의 예견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세계 혁명은커녕 자본주의 진영은 더욱 공고해졌고 스탈린 체제는 내부 혁명은커녕 오히려 세계 지도의 절반을 잡아먹고 말았다.

이 사태를 어떻게 볼 것인가? "마지막 마르크스주의 혁명가"였던 트로츠키가 살아있었더라면 아마 이에 대해 솔직하고 성실한 태도를 취했을 것이다. 그는 1940년 암살당하기 전에 만약 이러한 사태가 벌어진다면 자신이 제시했던 모든 사상, 이론, 실천 방침을 전부 폐기하고 원점에서 다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유언했던 바 있다.

불행히도 트로츠키가 사라진 2차 대전 이후의 트로츠키주의 운동에는 이러한 정직하고 성실한 태도를 가진 인물이 없었다. 그래서 터무니없이 빗나가버린 자신들의 예견에 대한 반성도 이루지 않았다. 잘못된 실천 방침으로 숱한 이들의 희생을 개죽음으로 만들어버린 책임을 지는 이도 없었다. 완전히 변모해버린 1950년대의 냉전 상황에서 운동을 풀어갈 새로운 전략을 마련하는 이도 없었다. 대신 이들은 이렇게 우겼다. 노동자 혁명이 일어나지 않게 된 것은 모두 기회주의자들의 "개량주의적 야합" 때문이며, 자신들은 여전히 세계 혁명을 지도할 전위(vanguard) 집단이고,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 온대로 레닌과 트로츠키의 가르침을 굳건히 움켜쥐는 것만이 올바른 실천 전략이라고. 이 터무니없는 책임 회피와 무능력을 은폐하기 위해 이들이 골몰하기 시작한 것이 "정파 게임"이다. 이들의 선전물은 변화된 상황에 대한 새로운 분석과 전략 모색이 아닌 공산주의자들 사회민주주의자들과 같은 "개량주의자들"에 대한 폭로와 타격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만간 이 "정파 게임"은 집안싸움으로 비화된다. "개량주의적" 지도부에 대한 공격과 반박 속에서 이들은 오랜 집안 싸움을 겪어오면서 사분오열 아니 셀 수조차 없는 무수한 소집단으로 핵분열을 겪으며 지리멸렬의 길을 걸어갔다.

1980년대 한국에 모습을 드러낸 NL과 PD의 역사도 이러한 계통 발생을 되풀이해왔다. "한줌도 안되는 친미 세력과 매판 자본가들로 인해 자본주의 발전의 정체를 앓고 있는 한국의 인민들"은 왜 "전민항쟁"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마찬가지로 "한줌도 안되는 독점 자본가들과 그에 포섭된 부르주아 독재 권력"은 왜 그에 저항한 혁명적 노동 계급에 의해 민중민주주의 혁명을 맞지 않았는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자신들의 깃발을 따르라며 수많은 젊은이들과 노동자들과 시민들을 길거리로 감옥으로 때로 죽음까지 감수하게 만들었던 그때 그들은 어디 있는가. 한 때 운동을 지도한다며 의기양양하던 그 수많은 "이론가"들 "혁명가"들 "지도자"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는가.

적지 않은 수가 여기에 "그냥 그대로" 있다. 이들은 여전히 20년전과 똑같은 NL과 PD라는 간판과 울타리를 유지하면서 그 수장으로 군림하고 있다. 파산해버린 사상과 이론, 빗나가버린 현상 파악, 완전히 무력화된 운동 노선에 대한 정직하고 솔직한 반성과 고백은 한번도 공개적으로 하지 않은 채. 그래서 이들은 이명박이 청계천을 완공한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사회주의적 상상력"을 또 호소한다. 100년 전에 나온 이야기 그대로이다. 그리고 이명박이 경부 대운하를 공약으로 내건 2008년 대통령 선거에도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또 꺼내든다. 1960년대 북한의 주장 그대로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NL이건 PD이건 파산한 내용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고 현재 상황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도 없고 향후 실천 방향에 대한 구체적 방침도 내오지 못하는 책임 회피와 무능력으로 점철된 정파들이 어떻게 20년이 되도록 진보 운동의 양대 세력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을 수 있었을까. 대략 이 "정파 게임" 덕분이다. 서로가 서로의 무능력과 책임을 캐묻는 목소리와 핏대를 올리고 있는 한 양쪽 모두 혁명적이며 진보적이며 열정적이기까지 하다. 이렇게 양쪽 모두 "정파 게임"을 통해 각자의 책임 회피와 무능력을 은폐할 수 있었다.

과거에 대한 평가, 현재 상태에 대한 파악, 미래의 실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운동 집단의 임무이다. 이 혹독한 임무를 그들이 회피할 최고의 계책은 "정파 게임"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모든 값진 토론이다.

2. "정파 게임" 속에서 사라져버린 논의들, 비대위에서 맡아야 할 논의들

우리 모두가 지금 간절히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바로 민노당과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먼저 그동안 말만 많고 한 번도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적이 없는 당 혁신 방안이다. 여기에는 숱한 쟁점이 걸려 있다. 먼저 파행과 파행을 계속하면서 심각한 투명성의 문제를 야기했던 당 재정 운영 방침의 문제가 있다. 소위 말하는 "셋팅 선거"라는 입에 담기도 싫은 야비한 짓으로 당권을 장악하고 그 숫자를 빌어서 평당원을 소외시키고 소수의 정파 수장들에 의해 당 운영을 좌지우지했던 "패권주의"의 문제도 있다. "일심회" 사건 등에서 드러난 바 당내의 북한 정권 추종 세력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도 있다. 대략 2006년부터 중단되어버린 입법 발의안 생산의 책임과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의 문제도 있다. 이 모든 문제들은 이미 당 안팎에서 너무나 많이 회자된 것들이라서 이것들의 책임 추궁과 근본적 발본 대책을 마련하는 혁신 방안이 없이는 떠나간 숱한 당원들과 지지자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다시 찾아오는 일이 전혀 불가능하다.

둘째, 2007년 대선 평가의 문제이다. 창당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유리한 조직적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선 결과는 심각한 실패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 실패가 어느 정도의 실패인지, 또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지는 제 각각 생각이 다른 것 같다. 혹자는 완전 파산이라 하고 또 누구는 그렇게까지 큰 패배는 아니라고 한다. 혹자는 "코리아연방공화국"에 나타난 종북주의와 민족주의에 있다고 하고 또 누구는 다른 정파의 비협조적 태도 때문이라고 한다. 혹자는 책임은 권영길 후보를 추대했던 모든 세력이 져야 한다고 하고 있고 또 누구는 당 전체가 책임을 나누어야지 일부 세력에게만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한다. 이 정도의 현상 파악의 간격이라면 마땅히 서로 공개적으로 논쟁하고 따지고 비판하는 장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당원들과 지지자들에게 책임 있게 "아뢰는" 백서(白書)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셋째, 총선에 임할 전략이 제출되어야 한다. 지금 흩어질대로 흩어진 당 안팎의 역량을 가다듬고 대선과 다른 모습으로 유권자들 앞에 나설 수 있는 새로운 모습을 어떻게 갖출 것인가에 대한 논의이다. 지역에서 출마할 이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에 대해서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당의 얼굴이라고 할 비례 대표 명단의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신중하고 효과적인 전략이 제출되어야 한다. 이를 놓고 당원들은 물론 당 주변의 지지자들과 관심 있는 모든 이들의 폭넓은 의견과 바램이 적극적으로 터져나올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 안아야만 한다.

이렇게 민노당과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과 재구성의 열린 토론의 장이 바로 "비상대책위원회"가 반드시 있어야 할 이유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또 이전처럼 이런 저런 정파 세력의 야합과 꿍꿍이로 밀실에서 해결되고 나온다면 단연코 민노당의 미래는 없다. 2008년 한국 사회의 그 누구도 누구나 뻔히 알고 있는 문제들을 이리저리 얼버무리고 뭉개고 나오는 이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러한 논의가 최대한 광범위하고 투명하게 진행되도록 열려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 지금까지 당 안팎에서 작동했던 일체의 관성과 단철할 수 있도록 이 세 가지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논의를 주도하고 집행할 확실한 권한을 쥐어야만 한다.

불행히도, 이러한 비상대책위원회는 얼마 전 중앙위원회에서 태어나기도 전에 유산되고 말았다.

3. 중앙위원회: 정파 게임 2008 버전 출시

이러한 임무를 수행할 비상대책위원회의 출현은 그것이 나타날 경우 책임과 능력이 낱낱이 드러날 종파주의자들에게는 탐탁치 않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 유산은 예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김창현 등의 다수 NL 세력은 비대위가 확장된 권한을 갖는 것을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초헌법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에두르지 말자. 우리 모두 의심하고 있다. NL 내 여러 분파 세력들과 그 우두머리들의 초미의 관심이 지금 비례 대표 명단의 윗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닌가를. 최소한 "전진" 그룹은 비례 대표 불출마 선언을 밝히는 최소한의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김창현을 제외한 NL 집단의 수장들 그 누구도 비례 대표와 관련한 자신의 거취를 분명히 밝힌 바 없다. 이미 비례 대표 명부의 윗자리를 놓고서 NL 내부의 이런 연합 저런 연합 사이에 어떤 묵계가 오고 가는지에 대한 온갖 추문이 돌고 있는 현실이다. 이 상황에서 비대위가 마땅히 가져야할 총선 준비와 비례 대표 준비의 권한을 놓고 "초헌법적"이라고 우기며 반대하고 나선 것은 한마디로 "비례 대표는 꼭 움켜 쥐겠다"는 메시지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다.

PD 일각 세력은 "종북주의 청산"을 외치고 나왔다. 진보 진영에 조금이라도 애정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안다. 민노당 내의 친북주의의 폐해와 비윤리적 북한 추종 세력의 행태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를. 그런데 이 너무나 온당해 보이는 문제 제기 뒤에 완전히 은폐되고 있는 문제가 있다. 바로 대선 시기 나아가 지난 몇 년간 PD 세력 스스로가 노정했던 무정견과 무능력의 책임 문제이다. 대선 시기 그들은 무엇을 했는가. 대선을 한달 앞두고 출간된 "전진" 집단의 기관지는 "러시아 혁명 90주년과 레닌주의의 음미" 특집이 거의 전체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대선 시기 그들이 비판하는 대로 권영길 후보 진영이 "참패"의 길을 가고 있을 때에 그를 상쇄하고 당을 구출하기 위한 어떤 대안 제시와 실천을 보여주었는가. 나아가 지금 와서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그토록 비난하는 권영길 후보가 당 경선에서 뽑히던 당시 "전진"의 입장은 무엇이었는가. 권영길, 심상정, 노회찬, 누구든 무차별이니 각자 알아서 판단하고 선택하라는 것이 아니었는가. 이 모든 무능력과 책임 추궁은 이들이 새롭게 벼려낸 단어 "종북주의" 한마디에 모두 사라지고 있다. 친북주의도 아니라 "종북주의"란다. 이론 혁신과 실천에 쓸 힘을 모두 혀 끝에 모아 공격 상대의 심기를 자극하는 재주로 꽃을 피운다.

그러자 이번엔 김창현이 나선다. 우리 당에 "종북주의자"는 없다고 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 차라리 "종북주의가 왜 잘못이냐"고 나올 사상적 기개조차 내던지고 오로지 정파 게임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겠다는 능숙한 게임 운영자의 모습이다. 여기에 난데없이 민주노총의 이석행 위원장이 뛰어들면서 게임은 "stage II"로 들어선다. 그는 "친북주의 운운하는 자들은 반통일 냉전 수구 세력"이라고 하는 80년대 선전물 한 구절을 똑같이 되뇌인 뒤, "이들 분파주의자들과 함께 할 수 없다. 친북주의 운운하는 분당 세력은 당을 떠나라"고 역공세를 취하여 게임의 새로운 장을 열어제낀다. 당 안팎의 숱한 이들이 그토록 누누이 제기했던 이 친북주의의 문제는 그러면 모두 "아니 땐 굴뚝의 연기"요 "미 제국주의자들의 선동에 놀아난 어릿광대 짓"이었단 말인가. 대선 패배의 일대 원인으로 지목되는 "코리아연방공화국" 구호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성의 지점이 없단 말인가.

다음은 정해진 수순이다. 애초에 "종북주의"를 들고 나왔던 이들은 이제 기다렸다는 듯이 "분당"을 외치고 나온다. 가뜩이나 대선 패배 이후 유구무언으로 주눅들어 있다가 "종북주의"라는 언사에 심기가 상했던 NL 세력은 이를 보며 반갑게도 할말을 찾았다. 입을 모아 외친다. "분당 운운하는 해당파들은 당장 당을 떠나라". 탁구공이 둘 사이를 오간다. 순식간에 탁구공은 농구공이 되고 대포알이 되어 당 전체를 부수고 있다. 중앙위원회의 파행은 예견된 바 있다. 오랜 논의와 당 전체의 토론을 통해 집단적으로 도출되어야 할 친북세력의 문제를 지금 당장 꺼내들고 "종북세력의 척결"을 결정하라고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제안된 비상대책위원회 안건을 심사할 중앙 위원회의 성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밖에는 볼 수 없다.

이 낯익은 정파 게임의 아수라장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버린 것들이 있다. 바로 앞에서 말한 바 우리가 간절히 듣고 싶은 이야기, 민노당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차근차근 조리있게 순서있게 풀어갈 장으로서 어렵게 마련된 비상대책위원회의 가능성이다. 들어야 할 이야기는 듣지 못하고 이골이 나고 신물이 나고 진저리가 난 당원과 지지자들은 이제 떠날 때가 온 것을 안 기러기들처럼 먼 하늘로 쓸쓸하게 날아서 떠나가고 있다.

4. "분당"?: 0석, 빛잔치, 그리고 핵분열과 소멸

"분당"도 무조건 반대할 일은 아니다. 갈라진 민노당의 두 집단 중 최소한 어느 한쪽이라도 현재의 국면을 돌파하고 다시 진보 진영의 정치적 공간을 열어갈 역할을 해 줄 수 있다면 그리고 거기에 도움만 된다면 오히려 마땅히 전력을 다해 "분당"을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은 벌어질 수 없다. 앞서 말한 대로 당원, 지지자, 국민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민노당의 과거 현재 미래, 즉 지난 당 운영의 반성과 혁신 방안, 대선 평가, 총선 대응 전략에 대한 논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논의는 양 정파를 포함한 현재 민노당 당원과 전체가 집단적으로 논쟁하고 싸우고 서로를 비판하는 가운데에서만 생명력 있는 결론을 내 올 수 있고 객관적으로 또 진보 진영에 최소한의 관심과 애정을 가진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있고 다시 모셔올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분당을 하여 각자가 이 논의를 한다면 양쪽 모두 지금까지 자기들 내부에서 지겹게 되새김질 해온 NL과 PD 정파 각각의 아전인수식의 논리와 명제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가발전의 행위 이상이 결코 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시간의 퇴적물이고 정당은 더욱 그러하다. 만약 이렇게 되어 과거, 현재, 미래의 좌표조차 냉철하게 짚지 못한 두 개의 집단들이 각각 총선에서 국민들 앞에 나선다면 어떤 모습이 나올까?

우선 이명박 정권은 대대적인 정부 기관 개혁과 민영화 그리고 기업 부문과 금융 부문등의 "플랜"을 내걸 것이다.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 즉 "대안도 없으면서 철밥통을 끌어안고 있는" 노조, 운동 세력 그리고 이에 "기생하는" 모든 정당에 대해 공세를 취할 것이다. 먹고 살기 갑갑한 국민들은 여기에 일단 귀를 기울일 것이다. 이 상황에서 다른 이야기를 해야 우리가 살 수 있다. NL이건 PD이건 그런 능력이 있을까? 대선 때에 외친 "사회주의적 상상력"과 "코리아연방공화국"?

그 결과는 어떨까. 어느 쪽이든 "0"석이 될 가능성이 높다. 먼저 냉철하게 지역구에서의 당선 가능성은 배제하자. 개인기가 뛰어난 몇 선수가 선물을 들고 올지 모르지만 이는 미래 예측의 대상은 아니다. 그러니 비례 대표 쪽만 따져보자.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의 득표율은 3%다. 대선에서 보다 총선에서 훨씬 많은 득표율을 기록할 것이라는 환상은 버리는 게 좋을 듯하다. 잘 알고 있다시피 대선 투표율은 역대 최저인 63%였고, 이번 총선에서는 탄핵국면과 같은 외부의 호조건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진보정치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민주노동당 지지자 중 사표 심리로 권영길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은 이들은 8% 정도에 불과하다. 현상 유지가 된다 하더라도 총선 정당투표에서 민노당의 득표율은 3%를 크게 넘기 힘들다.

다른 방식으로 계산을 해봐도 결과는 거기서 거기다. 얼마 전 "분당파"를 고무하였던 바, 진보정치연구소의 의뢰로 대선 직후 (물론 "분당" 논의 나오기 전!)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자. 국민들의 5.8%가 다음 총선 정당투표에서 민주노동당에 투표하겠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는 50살 이하가 표본이라고 한다. 그 이상의 투표율은 아시다시피 대단히 높고 압도적으로 보수측 표이다. 그런데, 이 5.8% 중 실제 투표소로 갈 의지가 있는 이는 76% 뿐이라 한다. 표본의 한계와 예측되는 유효 특표율을 감안해보면 3.8% 라는 수치가 나온다. 더욱이, 설문 문안을 작성한 이가 진보정치연구소요, 게다가 이 조사가 상정한 투표율이 76%라는 터무니 없이 높은 숫자(이번 대선 투표율은 63% 정도였고 총선의 투표율이 대선 투표율을 넘은 적은 없었다)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수치 이상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두 수치가 말하는 민노당의 정당 투표 득표율은 3%대이다. 잠깐만 Reality Check. 현행법으로 비례 대표로 1석이라도 얻으려면 3%가 필요하다. 그리고 정당이 해산을 면하려면 2% 이상이 필요하다. "분당"의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무도 모른다. 단, 지금까지의 조직세로 볼 때, 6대 4로 표를 가져간다 하자. ("분당파" 쪽으로는 굉장히 유리한 계산). 최대한 허용하여 3.8%를 예상 전체 득표율로 보면 2.28%를 가질 것이다. B당은 1.52%가 될 것이다. 양쪽 다 "0"석.

반론이 많을 것이다. 더 많이 나올 것이니 분당해도 살 길이 있을 것이라고. 이들이 믿는 것은 2004년의 "14%"라는 환상적 정당 투표율일 것이다. 하지만 다음도 고려하여 계산해 주시압. 첫째, 문국현 정당이 총선으로 나올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이 두 번째이다. "분당"을 한다면 당신들이 진보 정당의 "대표(defalut) 정당"이라고 말할 근거가 없어지므로 그 시너지도 사라진다. 이 모든 할인(discount) 요인을 감안하면 사실 2%로 수렴할 것이라는 게 솔직한 직감이다.(이 경우 의석은 물론 두 정당 모두 아예 등록이 취소되는 사태이다), 그러니 이 감점 요인을 설명할 분명한 데이터와 논리가 없으면 우리의 논리는 논박이 힘들 것이라고 본다. (주체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요소 하나가 더 있다. 총선 투표율을 60% 이하로 낮추기다. 투표 당일 범국민적 낚시 대회 조직을 비밀리에 당 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A당. 의석은 없겠지만 최소한 당은 유지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민노당"이라는 브랜드를 유지한 덕이다. 따라서 빚도 둘러 쓴다. 아마도 총선 이후에는 60억을 훨씬 넘을 것이다. 60억은 정말로 큰 돈이다.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온갖 진흙탕 싸움과 빚잔치가 어우러질 것이다. 그리고 이는 진보 정당 운동의 역량을 심하게 잠식할 것이다. B당도 마찬가지다. 레닌 혹은 트로츠키 혹은 프랑스 누구누구를 외치며 비합법 정당을 하자는 이도 있고 그러니 반합법 정당을 하자는 이도 있고 그러니 합법 정당을 하자는 이도 있고, 심지어 그러니 다시 다함께 NL로 붙자는 이도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총선 판에 나온 욕망은 동일하다. 단 "한 석"이라도 얻어 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석은커녕 당도 날아간다면? 당연히 이들은 서로를 모험주의 기회주의 개량주의 의회주의 등등의 딱지를 붙여가며 앞에서 말한 트로츠키주의 분파의 슬픈 역사를 밟아 나가게 될 것이다. 아마도 B당은 총선 참패 후 최소한 3개에서 많으면 6개 멀리는 100000개의 분파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1990년대에서 2천 몇 년까지 이루어졌던 대한민국의 진보 정당의 실험은 종말을 고할 것이다. 빚잔치에 휘말린 합법 하지만 0석의 정당과 우주를 향하여 핵분열을 해나가는 "혁명적" 소그룹들로서.

5. 비상대책위원회를 즉각 구성하라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2008년 초엽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서 빨리 민주노동당의 공식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룩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것을 지금 막고 있는 것이 20년 동안 쌓여온 업(業), 즉 NL과 PD의 정파 게임이며 2008년 새롭게 태어난 최신 버전의 정파 게임이다. 이 깨지 않는 악몽을 조금이라도 멈추기 위한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모든 정파 수장들 특히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는 NL 정파의 수장들은 김창현의 예를 따라 불출마 선언을 할 것이며, 비례 대표에 대한 모든 권한을 일단 비상대책위원회로 넘겨라. 모든 할말은 거기서 하자. 또 민노당 당직자들 누구도 이번 총선에서 비례 대표 10번 위로 이름을 올릴 수 없음을 분명히 하자. 자본가들 세상에서도 존중되는 규칙이 있다. 어떤 기업이 청산 위기로 몰렸을 때에 우선적으로 집기이건 기계이건 가져가는 것은 채권자들이지 주주들이 아니다. 당신들이 정말 지난 몇 년간 "주주"로서 온몸을 바쳤다면 이 규칙을 이해할 것이다. 오로지 민노당이 10석 이상을 얻을 때에만 당직자들에게 "주주배당금"이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요컨대, 정파 수장으로 지목된 자들은 모두 대선 패배의 책임을 통감하고 비례 대표 출마를 포기할 것이며, 현재 당직자들은 모두 10번 이하의 순위가 주어져야 한다.

둘째, "종북주의 청산 요구"를 즉각 멈추어라. 정치의 기본은 "주관적 진실의 객관화"에 있다. 4천 몇백만 중 "종북주의"라는 말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몇 프로라고 보는가. 지난 몇 년간의 "종북주의"의 폐해의 모든 사례들과 모든 사실들을 데이터로 바꾸어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객관적 사실로서 제출하고 문제 제기와 비판과 혁신 방안을 그 안에서 논의하자. 따라서 "종북주의"라는 자극적 언사를 당장 멈추고 그 만큼의 분노가 있다면 객관적 데이터와 자료를 모으는 힘으로 바꾸어라. 할 말 있으면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하자.

이것을 조건으로 하여 이 악무한적인 "정파 게임"을 멈추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릴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비상대책위원회는 다음의 조건을 충촉해야 한다. 첫째, 이 모든 토론은 물론 의제의 설정에 있어서도 당내 양대 정파가 아닌 관심있는 모든 분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모든 논의 과정이 국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몇 개 정파 수장들의 합의를 통해 일을 해결하는 식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둘째, 그 모든 논의를 결코 "봉합"이라는 결론으로 정해놓고 가서는 아니 된다. 비상대책위원회의 권위와 그 한계는 이 글에서 말한 대로, 2008년 현재 민주노동당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당원 그리고 지지자 나아가 국민 모두가 좋든 싫든 이해할 수 있도록 해명하는 작업에 그 근거가 있다. 따라서 그 논의의 결론이나 심지어 중간 과정에서도 "분당"이 불가피할 경우까지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또 만에 하나 현재 존재하는 민주노동당을 "해체"하고 새롭게 재창당 작업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서면 그러한 과정까지를 책임질만큼 기동적이고 효율적인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셋째,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러한 의무를 받아들이는 조건에서 다음을 요구할 수 있다. 최고 위원회이건 중앙 위원회이건 오로지 당원 총회의 권위에만 책임을 지는 조건에서 누누이 이야기한 세 가지 임무 즉 당 운영 평가 및 혁신 방안, 대선 평가, 공천권과 비례 대표 명부 작성을 포함한 총선 대책에 대해서 전권을 요구하여 실제로 집행해야만 한다.

한마디만 덧붙인다. 비상대책위원회를 요구하는 이들에게 "너희들은 당권에 눈이 먼 심상정 노회찬의 앞잡이가 아니냐"는 소리가 종종 들려오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현재와 같은 비상 사태에서 비상대책위원회의 명분을 빌어 개별적 개인적 권력 확대를 꾀하는 이들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분당"의 논리는 다른가? 순전히 논리적 가정이기는 하지만 그들 중에 이 참에 기존의 당권 구조에서 소외된 자신의 입지를 일거에 뒤집어서 새 정당의 전면으로 나설 기회를 노리는 자들이 존재할 논리적 가능성은 없는가? 현재의 민노당 사태를 자신의 권력 확대의 기회로 삼으려는 세력이 존재할 가능성은 어느 쪽에든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분파주의의 전횡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비상대책위원회가 지금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이솝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이가 사람들에게 뻐겨댄다. 자신이 로도스(Rhodos) 섬에 있을 적에 사람 키 몇 배를 넘게 뛰어오르곤 했다고. 사람들은 비웃으며 말한다. "여기가 로도스 섬이다. 여기서 한번 뛰어 봐라!"(Hic Rhodos, Hic Saltus)

어떤 철학자는 이 우화를 이렇게 해석하였다. 제 아무리 뛰어난 주장을 가진 이라고 해도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는 그것이 현실에 실현될 수 있음을 몸소 증명해야 한다고. 또 정말 그렇게 뛰어난 진리라면 그러한 현실의 검증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자신이 정말 높이 뛰어오를 수 있다고 한다면, 저 머나먼 로도스 섬으로 도망가지 말고 지금 바로 우리 눈앞에서 뜀뛰기 능력을 보일 배짱이 있어야 한다고. NL이든 PD든 CF든 KBS든 누구든 좋다. 비상대책위원회가 바로 우리의 로도스 섬이다. 여기에서 주장을 풀고 논쟁을 하고 그것을 전체에게 관철시켜라. 뛸 수 있다면 지금 바로 여기에서 뛰어라. 우리 모두가 보는 바로 우리 눈 앞에서.

그 철학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작업을 피하지 않는 이들은 십자가 위에 피어난 장미꽃과 같고 그들의 고통은 십자가에 못 박힌 이가 추던 춤과 같이 흥겨운 것이라고. 그래서 위의 말은 이렇게 바꾸어 쓸 수 있다고. "여기에 장미가 있다. 여기에서 춤춰라!"(Hier ist die Rose, Hier Tanze!) 우리는 이번 총선에서 붉은 장미가 활짝 피어나는 것을 보고 싶다. 우리는 그 꽃 위에서 기뻐 뛰며 춤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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