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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걸스' 팔아 '표' 구걸하려는 수준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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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걸스' 팔아 '표' 구걸하려는 수준이라니…"

대선, 삐딱하게 읽기 <6> 서태지, 원더걸스 그리고 '그분'들

2007년 대선을 맞아 <프레시안>은 기존 매체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연재를 마련했다. 여론조사의 통계 수치로만 존재했던 20대의 생생한 목소리를 독자에게 들려주기로 한 것. 그간 정치 평론을 독점해 온 40대 이상과는 다른 위치에서 정치 현상을 바라보는 이들의 '새로운' 시각이 오는 대선을 둘러싼 얘깃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리라고 본다.

"음악을 사랑하는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자신을 밝힌 서른한 살의 '리오'님이 여섯 번째 글을 보내왔다. 그는 이명박 후보부터 권영길 후보까지 거론되는 대선 후보들이 '음악'을 비롯한 '예술'에 대한 관심은 전무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인민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줄지 고민하지 않는 후보는 결코 인민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고 꼬집는다.<편집자>

서태지가 내년 상반기에 새 앨범을 낸다고 한다. 이 앨범은 과연 몇 장이나 팔릴까? 요즘 음악으로 밥벌이하는 이들의 초미의 관심사다. 그러나 이명박부터 권영길까지 대통령 선거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 중에서 이 질문을 이해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마도 음악인의 이런 관심사에 한마디 거들거나 최소한 어떤 맥락인지 이해할 수 있는 후보는 없을 것이다.

이런 사정은 지지율 두 자리 후보는 말할 것도 없고, 서민을 위한 정당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들 주변에 있는 사람도 대충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정·재계에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이 뭔가 대단한 존재라고 여기는 사람은 대체로 예술에 무관심하다. '회장님 사모님' 사이에 미술관을 운영하는 게 유행인데, 그들이 정말 미술을 사랑할까?

그들이 진짜 사랑하는 것은 그들만의 사교 모임에서 자신의 예술적인 식견과 취미를 자랑하는 것이다. 또 그들은 미술계를 지원한다는 허위의식에 젖어 있어서, 그림에 대한 관심도 보석을 대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이러한 토양에서라면 '신정아 스캔들' 같은 사건이 터지는 것도 전혀 엉뚱한 맥락은 아니다.

찬밥 대접 받는 예술
▲ '텔미'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여성 그룹 '원더걸스'. 이들의 인기가 높자 대선 후보들은 '텔미'를 선거 운동에 활용하고자 공을 들이고 있다. ⓒjype.com

한국에서 예술이라는 것이 어떠한 대접을 받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참으로 암울하다. 이건 뭐 진보 세력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진보 세력에게 필요한 음악은 대부분 집회에서 부를 수 있는 투쟁가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필요한 영화는 <파업전야>같은 것들이다. 간혹 켄 로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켄 로치가 좌파이기 때문에 좋아한다.

진보 세력의 고상한 교수라면 사정이 좀 나아질까 생각했지만,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미래구상'의 출범식에서 교수들은 록 스타일로 편곡한 '캐논 변주곡'으로 유명한 임정현을 초청했다. 그들은 이 아마추어 기타리스트에게 정장을 입혀놓고 무대가 아닌 단상에 세우고 MR반주에 맞추어서 연주하게 했다.

음악계에 직접 몸담고 있지는 않지만, 음악을 매개로 귀로도 숨을 쉰다고 믿는 나는 그 장면을 목격하면서 솔직히 능욕당하는 심정이었다. 이 장면은 한국에서 음악을 바라보는 인식수준을 아주 잘 보여준다. 보수 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 세력도 예술을 대하는 방식은 도구 이상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혹시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좋은 음악이 얼마나 정치적인가 하는 것을 말이다. 베트남에서 수많은 인민과 죄 없는 젊은이들이 죽어나가자 밥 딜런은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라는 노래로 소곤거렸고, 존 레넌은 전쟁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라며 조용히 흐느꼈다.

음악은 급진적인 정치 행위다

음악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당연히 정치적인 행위이다. 사실 그렇게 따지자면 인간이 하는 일들 중에서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정책을 입안하는 적극적인 정치도 있겠고, 투표를 하는 소극적인 정치도 있다. 심지어 '나는 정치에 관심 없어' 라고 말하는 것조차 역설적이게도 정치적인 행위가 된다.

때문에 미술도 정치적이고, 문학도 정치적이고, 음악도 정치적인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다. '모든 게 다 정치로 환원된다면, 역시 정치가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건 거꾸로 말하자면 정치라는 것이 그다지 특별한 게 아니라는 말이 된다.

인민에게 정말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일은 바리케이드에서 '짱돌'을 던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인민에게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게 가르쳐 주는 일은 인민에게 자유무역협정(FTA)의 실상을 알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예술적으로 각성한 사람의 정치적인 힘이란 절대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혁명의 시기에 가장 먼저 탄압받는 곳이 언론과 함께 예술이라는 사실을 상기해보라. 인민이 예술을 사랑하게 된다면 정치 엘리트는 이들을 점점 더 두려워 할 것이다. 정치 엘리트가 인민을 두려워하기 시작하면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피의 학살에 가담하는 파병 따위는 엄두도 못 낼 것이다. 한미 FTA 같은 것도 당장 백지화가 될 것이다.

결식아동에게 피아노 가르칠 생각은 왜 못하나

그러니 FTA 반대를 위한 시위도 중요하지만 결식아동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는 것도 그만큼 중요한 일임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지금 한국 음악계는 음악 교육을 이수한 사람을 다 수용하지 못한다. 수용 못한 이들은 어린 학생을 가르치는 사교육 시장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사교육을 통해 음악을 배운 다음 다시 사교육에 투입되는 슬픈 악순환.

하지만 대선 정국 어디에서도 이런 공약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음악 교육을 이수한 사람 중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을 저소득층 청소년을 위한 무상 음악 교육에 투입하겠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현재 대통령 후보나 그들의 캠프에 한 사람이라도 있길 바란다.

하지만 현실을 보자면 대선 후보와 그 언저리에 있는 이들이 생각하는 음악이라는 게 고작 선거 운동에 원더걸스의 '텔미'를 이용할 생각을 하는 것뿐이라니 씁쓸하기만 하다. 당신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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