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U와 SPD의 지지율만 놓고 비교하자면, 과거 35% 대 35%였던 '박빙의 시대'가 간지 오래다. 이제 40% 대 30%의 관계가 거의 안착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상황이 2년간 계속되면서 SPD는 내적으로 분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일부는 좌파정당(Die Linke)으로 이전 정권 말에 떨어져 나간 터였다.
지난 정권의 당권파들, 즉 SPD 우파는 대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게하르트 슈뢰더(Gerhard Schröder) 전임 수상이 주창했던 '아젠다 2010' 프로그램의 사수를 위해, 이런저런 자리에 각료로 포진했다. '과거 SPD로의 복원'을 외치는 오스카 라퐁텐(Oskar Lafonten) 류의 급진 좌파는 당사를 박차고 나가, SPD 왼편에 새로운 좌파정당을 세웠다.
그러는 사이에, 한편으로는 우파를 내각으로 내몰고, 다른 한편으로는 당외 급진 좌파를 조롱하는 당내 좌파 세력이 지난해 5월 SPD의 당권을 쥐었다. 이들의 당권 쟁취와 동시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쿠어트 벡(Kurt Beck)이다. 이 벡의 뒤에는 바로 안드레아 나알레스(Andrea Nahles) 등 신진 좌파 그룹이 포진해 있다. SPD는 이들 신진 좌파의 시대를 조용히 열었다.
독일 '신진 좌파'의 '좌향좌'
그러나 벡의 역량은 당내외적으로 빨리 공고화하지 못했다. 당 대표로 취임한 후 그는 끊임없이 SPD의 리더로서의 자질과 대중적인 인기를 놓고 의심의 눈총을 받아 왔다. 슈뢰더라는 걸쭉한 대중스타가 사라진 후, 일종의 '에피고넨의 시대'에 등장한 벡은 대중에게 왠지 전임 '미디어 수상'이 지녔던 카리스마에 필적할 그 무언가가 부족해 보였다.
메르켈의 리더십으로 대연정이 굴러가는 사이, 독일 경제는 오랜 침체 후 마침내 회생의 징후를 보였다. 10년 묵은 체증이었던 고실업이 드디어 잡히는 듯한 고무적인 현상도 나타났다. 심지어 메르켈마저 이러한 정책의 공을 슈뢰더 시절의 개혁에 돌리는 정치적 겸손을 보였다. 그 결과로 다시 메르켈의 인기를 올리는, CDU의 입장에서는 선순환을, SPD의 입장에서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벡을 위시한 SPD의 신진 좌파는 대중 앞에서 자신의 좌파 지향적 정체성을 부각하기 시작했다. CDU와 메르켈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지난 정부를 이끌고 현 대연정에 적극 참가한 당내 우파도 비판을 면치 못했다. 특히 올해 초부터 벡은 SPD가 '민주적 사회주의(Domokratischer Sozialisums)'의 기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본격적으로 외치며, 법인세 인하를 비롯한 현재 대연정 주도 세력이 추구하는 우파 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10월 26일 전당대회가 다가올수록 벡의 붉은 목소리는 더욱 카랑카랑해졌다. 급기야 벡은 지난 시기 슈뢰더 정부의 상징적인 정책인 '아젠다 2010'의 수정까지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대표적으로 그 프로그램 하에서 단축된 실업수당(Arbeitslosengeld I)의 지급 기간을 다시 늘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당시 개혁 정책의 설계자이자 현 정부의 노동 정책의 실권자인 '슈뢰더의 적자'로 불리는 뮌터페링(Münterferring)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그는 슈뢰더 이후 현 SPD 우파의 우두머리 격이다.) 메르켈과 슈뢰더에 대한 불만이 뮌터페링을 공격하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슈뢰더나 뮌터페링은 이를 용납하려 들지 않았고, 전당 대회를 앞두고 당내 갈등은 계속되었다.
결국 지난 주말 함부르크에서 열린 전당 대회는 벡과 당내 신진 좌파에게 압승을 안겨주었다. 벡은 95%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수직을 인증 받았고, 벡의 후미에 신진 좌파의 실세로 군림해 온 나알레스도 약 75%의 지지율로 부총재의 위치에 올라섰다.
이런 SPD의 좌향좌는 2년 후로 예정된 차기 총선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심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호경기의 시기일수록 노동계급의 불만이 심화되고, 대중적 저항이 드세 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독일 경제가 살아난 이 상황은 SPD의 좌향좌를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차기 선거에서 수상 후보급의 '인물'로 거듭나려면, 벡 스스로 더 일관되고 선명한 입장에서 맞수인 메르켈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그는 아마 지금까지보다 더 전투적으로 SPD의 '좌향좌'를 외칠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은 당내 우파와의 새로운 전선 긋기와 전면 대결도 불사하는 것일 수 있고, 구체적으로 이전 정책에 대한 수정의 정도도 깊어질 수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벡 자신의 좌파적인 이미지와 정치적 카리스마를 고양시키는 방법일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대연정의 삐걱거림은 더욱 소음이 높아질 수 있다. 신진 좌파들이 이끄는 SPD의 행보에 대중이 반응 정도에 따라, 대연정의 붕괴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2년이 '봉합의 시대'였다면, 향후 2년은 어설프게 꿰맸던 자리의 실밥을 터뜨리고 다시 꿰매거나 아니면 아예 다 뜯어 버리는 시도로 발전해서 독일 정가가 꽤 시끄러울 예정이다.
정동영의 '좌향좌', 그리고 다음 카드는?
2년 전 SPD는 내각을 해산했지만, 올해 열린우리당은 아예 스스로 해체했다. 그 해체를 주도했던 정동영은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그는 지금 어려운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다. 무조건 노무현과 이명박의 두 산맥 사이에서 자신의 깃발을 눈에 띄게 흔들어야 한다.
지금은 정확히 1년 전 그가 2개월간의 독일 칩거를 마치고 돌아와 머리를 긁적이듯 '신중도'를 우물거리며 끄집어냈던 시절의 정치 지형과 많이 다르다. 그는 '평화‧개혁 세력'의 대통령 후보로 좀처럼 오르지 않는 지지율과 씨름하며 이명박과 다른 자신의 선명성을 부각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에게 더 이상 우향우는 영양가가 없어 보인다. 그는 자유무역협정(FTA)도 수정하고, 동일 노동 동일 처우도 실현하고, 비정규직도 사회 협약으로 대안을 내겠다고 외친다. 이라크에 보낸 군대도 철군시키자고 주장한다. 1년간의 고초를 통해 결국 그의 '신중도'는 '신좌도'로 옷의 색깔을 바꾼 듯하다.
열린우리당 시절의 정책을 수정하는 그의 정책 방향이 대체로 좌향좌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결국 노무현 정부 실패의 원인이 좌파 정책이 과도했기 때문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성격을 띤 우파 정책이 과도했거나, 아니면 좌파 정책이 미진했음을 간접적으로 고백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올 가을 독일과 한국의 상대적 좌파 세력의 새로운 리더들이 취하는 공통적인 코드는 '좌향좌'이다. 각각 메르켈과 이명박이라고 하는, 높은 대중 인기를 누리는 보수 정객과의 힘겨운 싸움을 치르고 있는 벡과 정동영에게 '좌향좌 카드'는 무엇보다도 정치가 개인으로서 자신들의 선명성을 부각하고 지지자들 사이에서 입지를 강화하는 데 쓰일 것으로 보인다.
벡이 스스로 크기 위해서 '슈뢰더의 코스'를 일부 부정하고 수정하려 하듯이, 정동영도 '노무현의 코스'를 적지 않게 반박하고 나설 수밖에 없다. 반면, 대륙의 서쪽과 동쪽 끝에서 새로 자신의 진지의 수장으로 떠오른 상대적 좌파들이 좌향좌로 선회하는 모습에 대해, 양국의 우파는 모두 "그것은 좌파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는 식의 공통의 역공을 가하고 있다.
양국 모두 우파는 숨을 고르며 무리한 모험을 자제하고 있다. 그 결과인지 대중은 우파의 집권에 아직 그렇게 큰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지 않은 듯하다. 메르켈과 이명박의 인기가 쉽게 내려가지 않고 있는 것은 이런 정서를 반영한다.
이러한 공통점에도, 벡과 정동영에게는 결정적으로 두 가지 차이점이 존재한다. 우선 독일 경제의 회생에 비할 정도로 한국 경제의 회생과 그에 대한 대중의 새로운 만족이 뚜렷이 관찰되지 않고 있다. 또 벡은 차기 선거가 2년 후의 먼 일이라 여유가 있지만, 정동영은 불과 2개월 뒤 '결정적 순간'을 맞는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면, 이 시점에서 정동영이 꺼내 들 카드는 과연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만일 그것이 더욱 더 급진적인 좌향좌라면, 그 한계선은 어디일까? 과연 그가 그리는 정책의 좌향 곡선과 그에 따라 변동하는 지지율 상승 곡선이 만나는 최상의 좌표점은 어디일까? 그 지점에 도달했을 때 과연 대중은 그에게 권력 획득이라는 궁극의 선물을 안겨줄 수 있을까? 만일 그렇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면, 그에게는 어떠한 대안 카드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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