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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의 미래? 지금, 이곳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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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생명공학의 미래? 지금, 이곳의 현실!"

[화제의 책] 마이클 크라이튼의 <넥스트>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 마이클 크라이튼 씨의 <넥스트(Next)>(이원경 옮김, 김영사 펴냄)가 최근 국내에서 출간되었다. 생명공학의 문제점을 파헤친 이 소설은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쥬라기 공원>의 원작을 통해 이미 1990년대에 생명공학의 문제점을 파헤친 작가가 15년 만에 내놓은 생명공학을 소재로 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 탓인지 몇몇 주요 언론은 외부 필자까지 동원해 이 책이 생명공학의 어두운 미래를 경고할 의미 있는 소설이라는 식의 소개를 했다. 그러나 김명진 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의 평은 정반대다. 그는 최근 발행된 <시민과학> 2007년 9~10월호(제68호)에 쓴 이 책의 서평에서 "현실과 허구가 부적절하게 조합된 '무성의한 소설'일 뿐"이라고 혹평했다.

특히 김 위원은 "이 책의 전반부는 실제로 있었던 사건들을 인물의 이름만 바꾸고 적당한 대사를 붙여 거의 그대로 옮겨 놓은 대목이 지나치게 많다"며 "이 책 전반부의 일화는 <인체 시장>(궁리 펴냄), <휴먼 보디숍>(김영사 펴냄)과 같은 책이나 신문 기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실제 사건을 약간 윤색한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이미 일어났던 사건을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허무맹랑한 사건들과 마구 뒤섞어 한 편의 소설을 만든 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책의 많은 내용이 앞으로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 아니라 이미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인데도 사람들은 그 모두를 '픽션'으로 치부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은 이 책이 크게 의존한 <인체 시장>을 국내에 직접 소개한 과학학자이다. <프레시안>은 김 위원과 시민과학센터의 동의를 얻어 <시민과학>에 실린 서평을 싣는다. <편집자>

<쥬라기 공원>으로 유명한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의 신작 소설 <넥스트 >가 최근 국내에서 번역돼 나왔다. <넥스트>의 원서는 2006년 말 미국에서 출간되었는데, 크라이튼이 <쥬라기 공원> 이후 15년 만에 다시 유전공학과 생명공학의 문제로 돌아왔다고 해서 큰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솔직히 나는 작년에 원서의 출간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이었다. 크라이튼 같은 유명 작가가 이 문제를 다루면 생명공학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한 인식이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될 테니 한편으로 이는 분명 반길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먹이(Prey)>(2002)나 <공포 상태(State of Fear)>(2004)와 같은 최근의 몇몇 작품들에서 크라이튼이 보여준 갈지자 행보-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폭주하는 나노머신의 위험성을 경고했다가, 지구 온난화는 몇몇 기후학자와 환경 테러리스트들이 꾸며낸 음모라며 공박했다가-는 우려를 자아내는 요소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대체 유전자 검사나 인간 유전체(genom)의 상업화 같은 문제를 크라이튼은 어떻게 다루었을까?

소설로 보기엔 너무 '무성의'한…
▲ <넥스트>(마이클 크라이튼 지음, 이원경 옮김, 김영사 펴냄, 2007). ⓒ프레시안

막상 뚜껑을 열어 책을 읽으면서 처음 들었던 느낌은 당혹감이었고, 책의 후반부로 가면서 이는 점차 우려로 바뀌었다. 최근 생명공학의 상업화로부터 파생된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다루었다는 측면에서는 비교적 높은 점수를 줄 만했지만, 결과적으로 생명공학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 책은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많을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 책에 대해 구성이 너무 산만하다든지, 생명공학 회사와 과학자, 법률가들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든지 하는 불평들이 제기된 바 있지만, 이는 핵심을 찔렀다고 보기 어렵다. 내가 보기에 <넥스트>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책의 내용 중 많은 부분이 소설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무성의'하다.

실제로 있었던 사건들을 인물의 이름만 바꾸고 적당한 대사를 붙여 거의 그대로 옮겨놓다시피 한 대목이 (특히 책의 전반부에) 지나치게 많다. 의사가 환자 몸의 세포들을 몰래 빼돌려 특허를 출원했는데도 환자는 이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고(31~46쪽), 이혼 소송에서 남편이 자녀에 대한 친권 확보를 위해 부인에게 유전자검사를 요구해 부인이 야반도주하고(46~51, 101~104, 180~181쪽), 딸이 사망한 아버지의 DNA를 빼내어 부계 혈연 검사를 한 후 어머니를 간통으로 몰아붙이고(88~94쪽), 의사나 장의사가 죽은 사람의 뼈나 장기 같은 신체 일부를 빼돌려 팔아먹는(114~118, 161~163쪽) 등의 일화는 <인체 시장>이나 <휴먼 보디숍> 같은 책이나 신문 기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실제 사건을 약간 윤색한 수준에 불과하다. 아무리 '팩션(faction)'의 전성시대라지만 상상력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이런 식의 소설 작법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지 당혹감을 감추기 어려웠다.

현실과 허구의 부적절한 조합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그처럼 이미 일어났던 사건들을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허무맹랑한 사건들과 마구 뒤섞어 한 편의 소설을 만들었다는 데 있다. 가령 사람의 유전자를 집어넣어 말을 할 수 있게 된 오랑우탄과 침팬지, 사람의 말을 따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말할 줄 아는 앵무새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이 후자에 속하는데, 현재 대다수 국가들에서 법률로 금지되어 있는 그런 식의 종간교잡 실험이 설사 시도된다 하더라도 소설에서와 같은 결과를 얻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동물실험에 쓰이던 유전자치료용 바이러스를 흡입한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교화'된 행동을 보인다는 극중 전개 역시 임상시험에 대한 허술한 규제와 과학자의 윤리의식 부재를 꼬집으려 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한두 개 유전자를 집어넣어 특정인의 사회적 성향을 완전히 바꿔놓는다는 식의 설정은 난센스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소설을 읽은 후 생명공학의 발전이 제기하고 있는 현실적 쟁점들에 관해 완전히 오도된 인상을 받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앞서 지적했다시피 책의 내용 중 많은 부분이 앞으로 일어날 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라 이미 지금-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인데도 그 모두를 단순한 '픽션'으로 치부해 버리고 '설마 그런 세상이 오지는 않겠지' 하는 안이한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있어보인다는 얘기다.

저자의 무신경함은 책 말미에 수록된 '작가의 말'에서 제시한 다섯 가지 결론에서도 잘 드러난다. '유전자 특허를 금지하라', '인간 세포 사용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마련하라', '유전자 검사 결과 공개법을 제정하라', '베이-돌 법을 폐지하라'와 같은 항목들과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근거들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네 번째 항목인 '연구를 금지하지 말라'와 나란히 놓고 보면 과연 앞뒤가 맞는 얘긴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가령 배아복제 연구를 허용하면 자연히 난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고, 따라서 소설에서 묘사한 것처럼 젊은 여자들이 돈을 받고 난자를 파는 것과 같은 상업화의 경향이 촉진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간단한 사례에서도 크라이튼이 내놓은 결론은 조화롭게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 연구의 자유를 무제한적으로 허용하면서도 생명공학의 발전이 가져온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과학의 상업화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의 결과물로는 보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넥스트>를 읽고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인해 야기되고 있는 문제들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물론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관심이 자칫 잘못된 인상이나 안이한 결론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책의 내용 중에서 옥석을 가리는 안목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다. 그러한 안목은 <넥스트> 같은 '팩션' 속에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진행 중인 여러 사건에 대한 관심을 갖고 다양한 계기를 통해 그 속에 직접 참여함으로써만 얻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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