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찬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한미 FTA의 효과를 놓고 팽팽히 맞서는 찬반 양측 모두 한미 FTA로 한국 농업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한미 FTA 찬성 측은 어차피 농업의 몰락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굳이 농업에 매달리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식이다. 대다수 대선 후보도 이런 인식에는 큰 차이가 없다. 이 상태대로라면 소농의 '퇴출'은 시간문제다. 아니 이미 회복 불가능한 수준이다. 현재 농업으로 생계를 꾸리는 40대 이하의 비율은 1970년대 35%에서 2003년 3.5%로 급감했다. 2013년경에는 1% 미만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고작 25%에 불과한 먹을거리 자급률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렇게 이 땅에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일이 하찮게 여겨지는 상황 한 편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진행된다. 먹을거리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06년의 '불량 급식' 파동과 같은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감을 자극하는 일이 계속 반복된다. 값 싸고 질 낮은 중국산 먹을거리로 식탁이 점령된 지는 오래다. 그 영향인지 '참살이(웰빙)'를 내세운 값비싼 먹을거리가 구매력이 있는 소비자를 유혹해 주머니를 열게 한다. 먹을거리 산업은 매년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국내 먹을거리 산업은 2001년 26조 원에서 2005년 36조 원으로 30% 가까이 늘었다. 온갖 먹을거리 유행을 전하는 언론은 이런 상황을 부추긴다. 이런 상황에서 이른바 '먹을거리 양극화'가 도래했다. 구매력이 없는 소비자는 값싼 먹을거리로 겨우 배만 채우는 실정이다. 치명적인 전염병에 감염될 위험이 크다는 경고에도 미국산 쇠고기를 주저 없이 집어 든다. 그 결과는 끔찍하다. 빈부 격차가 다음 세대의 건강 상태로 이전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은 이런 모순적인 상황을 극복하고자 '로컬푸드(local food·지역 먹을거리)'에 주목했다.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를 매개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결돼 먹을거리 산업을 좌지우지하는 초국적기업을 견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농업의 회생과 먹을거리를 둘러싼 문제를 해결할 단초가 제공되리라는 판단 때문이다(☞관련 기사 : "지역 먹을거리? 바로 이런 거야!" ). 이미 2004년부터 지역 먹을거리에 관심을 가지고 대안을 모색하려는 국내의 다양한 실천에 주목해온 데 이어 앞으로 8회에 걸쳐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되는 지역 먹을거리 실천의 현장을 보여줄 예정이다. 지역 먹을거리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을 함께 고민하면서 한국의 상황에 맞는 대안을 찾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 기획은 한국언론재단의 취재 지원을 통해 진행되었다. 또 취재 과정에서 허남혁 로컬푸드시스템학회 간사, 한재각 민주노동당 녹색정치사업단 집행위원장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편집자> ① "세상에 '믿고' 먹을 게 없다고? 이걸 먹어라!" ② "빈 땅을 찾아라! 텃밭을 일궈라! 도시가 바뀐다" ③ "우리 아이 급식, 언제까지 이대로 둘 건가요?" ④ "'이윤에 굶주린 자'들을 굶겨 죽여라" ⑤ "이것은 '유행'이 아니라 '생존'입니다" ⑥ "주는 대로 먹으면서 세상을 바꾸겠다고? 우리는 달랐다!" ⑦ "'착한' 먹을거리, 과연 착하기만 할까?" |
2006년 7월 21일, 대구 달서구 대구공업대학 주차장. 평소에는 매연을 내뿜는 자동차만 가득한 공간에 생기가 넘쳐흘렀다. 삼삼오오 장바구니를 든 사람도 모여든다. 이날 대구에서는 첫 농민장터가 열렸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8시간 동안 열린 이날 농민장터를 찾은 시민은 3000명. 오후 3시가 되자 준비했던 품목의 3분의 1은 동이 났다.
대구에서는 이날부터 10월 27일까지 약 3개월간 달서구, 북구, 수성구의 4곳에서 번갈아가며 총 10번에 걸쳐 농민장터가 열렸다. 매번 열리는 농민장터를 찾은 시민은 2000~4000명. 경상북도 11개 시·군 농민회에서 먹을거리 약 25개 품목을 내놓아 농민장터가 열릴 때마다 2000~25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언론의 관심도 뜨거웠다. 대구문화방송(MBC)은 농민장터를 직접 주관한 데 이어 농민장터 현장을 오전 11시부터 12시까지 생중계하기도 했다. 대구MBC는 '농업은 생명이다'라는 연중 캠페인을 통해 농업 문제가 지역 사회의 관심거리가 될 수 있도록 애를 썼다. 매번 농민장터가 열릴 때마다 많은 시민이 참여한 것은 이런 대구MBC의 노력 탓이다.
대구의 실험…10번의 농민장터
이런 대구 농민장터는 농업 문제가 결코 농민만의 것이 아니라는 공감대를 가지고 수년간 공동 대응을 모색해 오던 노동운동, 농민운동, 사회운동의 연대가 낳은 결과물이다. 이미 대구에는 학교 급식에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를 공급하자는 운동이 전국적으로 진행되던 2004년부터 좀 더 진전된 움직임이 있었다.
2004년 10월 민주노동조합총연맹 대구본부의 2만5000명 노동자는 "사내 급식에 반드시 우리 쌀을 이용할 것을 노사 간 단체협약으로 체결하겠다"고 밝혔다. 쌀 시장 개방을 놓고 논란이 한창이던 당시 노동운동이 농민운동과의 연대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관련 기사 : "회사 급식에 우리 쌀 쓰도록 사측에 요구하겠다").
이런 움직임은 결국 2006년 5월 대구 지역의 노동운동, 농민운동, 생태·환경운동 등이 공동으로 지역 농업 지키기에 나서는 선언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가 지역에서 유통·소비되는 '지역 먹을거리 체계'를 대구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바로 그 첫 성과가 바로 농민장터이다(☞관련 기사 : "세계화? 우리는 '지역화'로 극복하겠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농민장터는 10번을 끝으로 더 이상 이어지지 않고 있다. 2006년 10월 27일 마지막 농민장터가 열리는 날 민주노총 대구본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구지부,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지부 등이 지역 먹을거리를 직거래하기로 협약을 맺었지만, 그뿐이다. 아직 현실화되지 않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라
"지속 불가능한 구조였다." 김병혁 농업자치연대 사무국장은 2006년의 실험이 올해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를 이렇게 한 마디로 설명했다.
농민장터를 비롯한 지역 먹을거리 체계를 꾸리는 데 나섰던 사람은 김 국장을 포함한 두 사람이었다. 이들은 농민장터에 먹을거리를 내놓을 농민을 섭외하는 것부터 농민장터를 운영하는 것까지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
농민장터는 매번 열릴 때마다 매출의 2%를 사무국의 몫으로 뗐다. 매번 농민장터가 열릴 때의 매출이 2000~2500만 원 선이었으니 사무국으로 고작 40~50만 원이 떨어지는 셈이다. 40~50만 원은 2명의 인건비는커녕 경북 전역을 돌아다니는 교통비로도 모자라는 금액이었다.
영국의 농민장터는 이와 대조적이다. 영국의 농민장터는 하루 매출의 약 10%를 운영비로 낸다. 예를 들어 한 농민이 농민장터에 매대를 설치해 하루 150파운드(약 3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면 10~15파운드(약 2만~3만 원)를 내야 한다. 하루 1500파운드(약 3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면 80~90파운드(16~18만 원)로 그 비율은 5% 선으로 떨어진다.
영국농민장터협회의 셰릴 코언 씨는 "농민의 신고에 기댄다는 한계가 있지만 실제와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라며 "이렇게 마련된 운영비는 사무국의 살림을 꾸리고, 농민장터를 열 공간을 빌리는 것과 같은 일에 사용된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농민장터는 대개 지방 정부 소유의 주차장, 학교의 운동장 등에 소정의 대가를 지불하고 빌린다.
정부로부터 독립하라
김병혁 국장은 "대구시의 비협조적인 자세도 농민장터가 열리는 내내 장애물이었다"고 지적했다. 김 국장은 "장소를 구하는 게 어렵다보니 애초 계획과는 상관없이 구해지는 장소에 맞춰서 농민장터가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농민장터는 10번 열리는 동안 달서구, 북구, 수성구의 5곳을 전전했다.
김 국장은 "이런 대구시의 태도는 경북도와 몹시 대조적"이라며 "경북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농민장터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 국장은 "대구시가 농업 문제가 단순히 농민의 문제가 아니라 대구 시민의 먹을거리 문제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면 이렇게 무관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대구시의 태도를 비판했다.
코언 씨의 생각은 김병혁 국장과 달랐다. 코언 씨는 "농민장터는 가능하면 정부와 관계를 맺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언 씨는 "정부는 변덕쟁이라서 언제든지 농민장터에 대한 지원을 끊을 수 있다"며 "농민장터가 정부 정책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지속 가능하려면 애초 중앙, 지방 정부의 지원을 받으려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코언 씨는 "바로 이런 사정 때문에 농민장터는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농민장터에서 수익을 내는 농민도 이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매출의 적지 않은 비율을 운영비로 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먹을거리에 우호적인 런던시가 있음에도 굳이 대가를 지불하며 공간을 대여하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다양성을 유지하라
대구에서 농민장터가 10차례 열리는 동안 먹을거리 품목의 종수가 많지 못한 점도 계속 문제가 됐다. 농민장터 실무를 담당했던 조동현 씨는 "경북 11곳 시·군 농민회에서 가져오는 품목이 중복되는 게 많아서 생산자, 소비자 양쪽에서 불만이 나왔다"고 말했다. 시·군마다 같은 품목의 농사를 짓다보니 발생한 일이다.
조 씨는 "똑같이 고추를 가져왔는데 농민장터에서 한 지역의 고추만 잘 팔리면 당장 다른 지역의 농민들로부터 불평이 나왔다"며 "시민은 시민대로 대형 할인점처럼 품목이 다양하지 않아서 농민장터를 찾았다가 발걸음을 돌리는 일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조 씨는 "앞으로 농민장터가 계속 시민의 호응을 얻으려면 꼭 극복해야 할 문제점"이라고 덧붙였다.
영국의 농민장터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코언 씨는 "현재 런던농민장터협회에는 160명의 농민이 등록돼 있고 200명이 대기 명단에 있다"며 "이를 토대로 각 지역에서 열리는 농민장터마다 품목이 약 30가지가 유지되도록 조정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조정을 통해 런던 시민은 농민장터에서 항상 약 30가지의 계절 먹을거리를 구매할 수 있다.
물론 런던에서 열리는 농민장터에서도 같은 품목의 먹을거리가 동시에 경쟁하는 경우가 많다. 코언 씨는 "장터에서 같은 품목이 경쟁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이런 경쟁을 통해 농민은 먹을거리의 질을 높이고, 시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도록 홍보하는 기술을 습득하도록 자극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단골을 만들어라
대구 농민장터의 또 다른 문제는 수량 조절의 어려움이었다. 김병혁 국장은 "도대체 각 품목마다 얼마나 나갈지 알 수가 없어서 난감했던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7월 21일 첫 농민장터가 열렸을 때는 5시간 만에 준비한 품목의 3분의 1이 동이 났다. 그러나 정작 8월 4일 열린 농민장터에서는 더운 날씨 탓이었는지 품목이 많이 남았다.
김 국장은 "며칠 뒤인 8월 18일 열린 농민장터에서는 불과 2시간 만에 대부분의 품목이 동이 나는 일이 벌어졌다"며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수량을 어떤 기준으로 맞춰야 할지 정하는 게 어려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특히 과일, 채소는 남을 경우 폐기할 수밖에 없어서 수량 조절이 더 큰 문제였다.
이런 수량 조절의 어려움은 영국, 미국, 캐나다의 농민장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국 메릴리본 농민장터에서 양고기를 파는 이안 베스트(38) 씨는 "농민장터에 여러 번 먹을거리를 내놓으면서 수량을 적절히 조절하고 있지만 지금도 절반 정도 남겨갈 때가 있다"고 밝혔다. 이런 사정은 다른 매대의 농민도 비슷했다.
메릴리본 농민장터 코디네이터를 맡고 있는 엘리자베스 엘리엇(25) 씨는 "단골이 생기면 농민은 매주 열리는 농민장터에서 단골들이 구입하는 기본 수량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수량 조절에 좀 더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농민장터를 매개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중·장기적인 관계가 마련되면 최소한 준비한 먹을거리를 남겨가는 일은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구의 실험은 계속된다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대구 농민장터는 적지 않은 성과도 남겼다. 조동현 씨는 "농민장터에 와 본 시민들이 품질, 가격에 만족하면서 농민장터가 계속됐으면 하는 바람을 표현하기도 했다"며 "좀 더 안전하고 질 좋은 먹을거리를 구하려는 욕심이 자연스럽게 지역의 농업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계기를 마련한 것도 큰 성과"라고 지적했다.
김병혁 국장은 "10차례의 농민장터가 열리는 과정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문제점을 알리는 홍보 활동을 계속했다"며 "농민장터가 지역 먹을거리를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거래하는 공간을 넘어서서 농업과 관련된 다양한 정치·사회 현안이 토론되는 공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국장은 "거리 한 복판에서 농업 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외치는 것보다 이런 농민장터가 열리는 공간에서 농업 문제를 알리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외국에서도 농민은 지역 먹을거리 직거래 과정을 통해 다양한 농업을 둘러싼 정치·사회·경제·문화 의제를 소비자에게 알린다(☞관련 기사 : "농민, 소비자, 저소득층 모두를 살리는 '직거래의 지혜'").
지난 8월 14일 대구 달서구 도원중학교 인근에서 올해 첫 농민장터가 열렸다. 경북 고령군 농민회와 연계해 진행되는 이 농민장터는 현재 같은 장소에서 매달 둘째, 넷째 금요일에 계속 열리고 있다. 2006년의 실험이 농민장터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었다면, 이번 실험은 농민장터의 정상적인 운영이 목적이다. 실험은 다시 시작됐다.
(<프레시안>은 이번에 소개한 대구의 사례 이외에도 한국의 지역 먹을거리에 관한 다양한 사례를 앞으로 계속 소개할 예정이다. 연말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이 지역 먹을거리 운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노력 역시 아끼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지역 먹을거리 운동은 주로 농업 문제에 관심이 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진행 중이다. 이것은 시민단체, 환경단체가 공정 무역 먹을거리에는 관심을 가지면서도 지역 먹을거리에는 별 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농업운동과 환경운동, 시민운동의 연대가 활발한 것을 염두에 두면 이런 한국 상황은 분명히 우려스럽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역 먹을거리 운동은 아직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까? 여기 자신의 삶을 바꿈으로써 '지역 먹을거리'에 대중의 눈길을 끌어 모은 사람이 있다. 바로 엘리사 스미스 씨. 그는 최근 북미 지역에서 '100마일 다이어트'란 유행어를 만들어 내며 지역 먹을거리 운동을 확장시킨 주인공이다. 지난 2005년 스미스 씨는 친구와 함께 1년간 모든 식사를 자신 아파트 주변 150㎞(100마일) 이내에서 난 먹을거리로 해결하는 '생활 실험'에 도전했다. 실험을 하는 동안 이들은 'The Tyee'라는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생활을 알려나갔다. 경험을 모아 묶어 낸 책 <100마일 다이어트(100 Mile Diet)>도 유명해졌다. 스미스 씨는 지난 2006년에 '100마일 다이어트 소사이어티(100Mile Diet Society)'라는 단체를 만들어 지역 먹을거리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주로 운영되는 이 단체는 몇 달 사이 북미 각지에서 수천 명의 회원을 불러 모았다. 스미스 씨는 평소 절반의 시간을 지역 먹을거리 운동에 할애하고, 나머지는 본래 직업인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도시 안에서 삶을 바꾸자 프레시안 : 경계를 100마일로 정한 이유가 있나? 스미스 : 특별한 이유는 없다. 숫자가 쉬우니까. 그리고 밴쿠버 지역의 특성상 북쪽으로 100마일 가량 떨어진 지역부터 농산물을 재배하기가 어렵다. 프레시안 : 100마일 식단(diet)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스미스 : 환경운동에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원래 먹을거리를 직접 키워 먹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 지역 먹을거리 운동을 알게 됐고, 2005년 남자친구와 직접 100마일 식단을 실천해보게 됐다. 프레시안 : '100마일 식단'이란 말이 짧은 기간 널리 알려졌다. 사람들이 이 운동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뭐라고 보는지? 스미스 : 캐나다인 80%가 도시에 산다. 도시와 농장이 매우 멀다. 과거 히피들은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도시를 떠났지만 우리는 도시 안에서 삶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지난 10년간 점차 작은 유기 농업 농장이 각광을 받고 있다. 지역 먹을거리가 맛이 좋고 신선하다는 사실을 주방장들이 먼저 알아챘다. 밴쿠버에서는 주방장의 사회적 영향력이 강한데 이들이 지역 먹을거리를 애용하면서 밴쿠버 시민 사이에서 지역 먹을거리의 중요성이 잘 알려지게 됐다. '가능한 한' 지역 먹을거리를 먹자 프레시안 : 100마일 내에서 안 나는 식품, 커피 같은 것도 먹지 말자는 건가? 스미스 : 모든 것을 다 포기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한' 지역 먹을거리를 먹으라고 한다. 나는 커피는 마시지 않지만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다만 우리는 활동 초기 1년 동안만 한정해서 엄격하게 100마일 내의 농산물을 먹었다. 식품이 어떤 경로를 통해 유통되는지, 대량 생산된 먹을거리에 어떤 한계가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당시 가장 어려웠던 게 100마일 이내에서 나는 밀가루를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두부를 만드는 콩 종류도 여기서 수천 마일 떨어진 온타리오에서만 났다. 그래서 감자만 7달을 먹고 산 적도 있다. 프레시안 : 밴쿠버 일반 식료품점에 가보니 미국, 특히 캘리포니아산 수입 농산물들이 많았다. 100마일 식단을 실천하는데 어려움이 많을 듯하다. 스미스 : 캘리포니아는 농업 환경이 좋다. 그러나 캐나다는 좀 다르다. 슈퍼마켓에서 캘리포니아산 농산물을 제외한 채 지역 먹을거리를 찾아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우리는 지역 먹을거리 운동에 참여하려면 농민장터에 찾아가는 등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고 본다. 밴쿠버에서는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농민장터가 열린다. 프레시안 : 캐나다에는 이주민이 많다. 그들이 100마일 식단을 실천할 때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스미스 : 파파야나 망고 같은 열대과일과 달리 상당수 아시아 농작물이 여기서 자랄 수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한'을 100마일 내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를 권유하는 것이지 모든 음식을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한국에서는 100마일 운동이 좀 더 쉬울 것 같다. 주민들이 전통적으로 먹던 식량들이 대부분 한국에서 자라지 않나. 여기는 기존 캐나다 대륙에서 자라지 않던 밀가루가 주식이 됐기 때문에 우리 운동도 고생을 많이 했다. 프레시안 : 시 차원에서 지역 먹을거리 운동에 대한 정책적 변화, 지원은 있나? 스미스 : 캐나다에는 연방 정부와 지방 정부가 있다. 밴쿠버 시 차원에서는 지역 먹을거리 운동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관심도 많은 편이다. 그러나 연방 정부 차원에서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 밴쿠버 시는 30년 전부터 시 외각 지역 녹지개발을 제한해 농민들이 경작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도시가 확장되면서 땅이었다. 그러나 주택 개발 바람이 불면서 이 제한을 해제하고 있다. 지역 먹을거리 운동이 확산되려면 소농들에게 교외 농경지를 저렴하게 임대하는 일, 농민장터 터를 내주는 등 정부정책 이 병행돼야 한다. 한국, 북미의 전철을 밟지 말라 프레시안 : 지금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농업의 희생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스미스 : 만약 정부가 지역 먹을거리에 반하는 정책을 펼친다면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될 것 같다. 미국과 캐나다 역시 지난 30~40년간 이처럼 소농을 죽이는 정책이 꾸준히 진행돼 왔다. 하지만 시민들이 나서서 지역 소농이 생산한 농작물을 구입하고 농부들에게 농작물을 팔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다면 농업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한국이 우리가 겪었던 착오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 FTA는 농산물 품종 보호와 관련해서도 심각하다. 한국의 경우에도 각 식품점에서 어디서 온 어떤 종류의 식품인지 제대로 표시하지 않고 파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당근을 예로 들면 각국, 각 민족이 먹어오던 종류는 각기 다 다른데 식료품점에서는 '당근'이라는 이름 하나로 이들을 뭉뚱그려 파는 거다. 이 상태에서 FTA가 심화될 경우 지역 고유 품종은 사라지고 종자가 없어지게 될 수 있다. 현재 캐나다에서도 그런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프레시안 : 100마일 식단이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의 운동이라는 생각도 든다. 스미스 : 그렇지 않다. 나는 사람들의 삶을 두 분류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만약 일만 열심히 한다면 시간은 없겠지만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돈을 적게 번다면 시간을 내 농민장터에 가서 식품을 싸게 살 수 있다. 북미에서는 첫 번째 부류의 생활이 좋지 않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그것은 '삶'이 아니다. 지역 먹을거리 운동은 그런 인식의 변화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일에만 매인 삶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여긴 사람들은 좀 더 자연 친화적인 삶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자신이 먹는 음식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우리 북미인은 제대로 된 방향이 아닌 길로 아주 많이 걸어왔다. 한국인이 이런 오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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