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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大개조 작전… '시민'에서 '주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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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민 大개조 작전… '시민'에서 '주주'로

[연못 속 고래, 국민연금②] 국민연금 '독립만세'일까?

지난 11일 정부가 내놓은 '국민연금 운용체계 개편방안'의 핵심은 한마디로 국민연금의 운용체계 중 '돈'만 따로 떼어내 민간 금융가와 금융기관들이 맘껏 굴릴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정부가 이런 내용의 개편안을 내놓은 명분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국민연금을 운용하는 데 있어 정부의 정책 목표나 정치적 의도가 개입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연금의 수익률을 여느 민간 펀드 못지않게 올리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민간 상설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최고의사결정기구)와 기금운용공사(사무국)를 신설하는 내용의 개편안을 내놓았다. 기금운용위원회와 기금운용공사는 보건복지부 기금운용위원회와 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용본부가 각각 독립·확대된다.

기금운용위는 민간 금융·자산운용 전문가 7명만으로 구성된다. '비전문가'인 정부 공무원이나 가입자 대표는 돈을 굴리는 '전문가' 영역에서 철저히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 개편안을 오는 11월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한나라당과 통합민주신당은 이 개편안을 환영하는 분위기고, 오직 민주노동당만이 반대하고 있다. 별다른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정부 개편안은 대선 막바지 이슈들에 묻혀 조용히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연금 '무늬만 독립'

정부가 내놓은 국민연금 지배구조 개편안의 핵심은 표면적으로는 '국민연금의 독립'이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기금(2007년 7월말 현재 212조 원)에 대한 통제권을 쥐려고 다툼을 벌였던 보건복지부와 재정경제부를 포함해 정부 전 부처가 기금에서 손을 뗀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 개편안은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을 불식시키고자 하는 정부 나름의 성의가 담긴 측면도 있다.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민간 펀드의 수익률만큼 높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는 △정부 관료들이 기금을 정부의 정책목표를 달성하는 데 오용하거나 △비전문가인 정부가 잘못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해 왔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개편안을 뜯어보면 정부가 국민연금에서 정말로 손을 떼게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참여연대와 경제개혁연대, 연금제도정상화를위한연대회의 등 시민단체들도 정부 개편안이 공개되자마자 이구동성으로 이런 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무엇보다 수백, 수천조 원의 뭉칫돈을 쥐락펴락할 기금운용위 전문가 7명이 정부 입김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7명의 민간 전문가를 '추천위원회'가 선정하기 때문이다. 추천위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관계부처 공무원 5명, 공익대표 3명, 가입자 대표 3명 등 총 11명으로 구성된다. 사실상 정부 관계자 8명(공무원 5명+공익대표 3명)이 의사결정을 하는 구조다.

이것만으로 부족했던지 정부는 추천위가 뽑은 전문가에 대해 국무총리가 제청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또 기금운용위와 기금운용공사는 감사원의 감사와 국회의 국정감사를 받게 된다.

게다가 이번 개편안에는 전직 관료출신이 기금운용위의 민간 전문가가 되는 것을 제어하는 장치가 단 한 개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른바 '회전문 현상'의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정부 개편안이 원안대로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재정경제부를 위시한 경제 부처들은 보건복지부에서 떨어져 나온 기금운용위와 신설되는 기금공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보건복지부도 산하 연금심의위원회를 통해 기금 운용계획 전반에 대한 심의·의결권을 행사하게 된다.

이쯤 되면 이번 개편안이 국민연금을 두고 다툼을 벌였던 "재경부와 복지부의 야합의 산물"이라는 민주노동당의 비판이 지나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 ⓒ연합뉴스

국민연금, '자본시장 덩치 불리기'의 구원투수로 투입

정부가 국민연금에서 정말로 손을 떼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이번 개편안의 핵심은 무엇일까?

바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국민연금 적립금이 정부와 가입자들의 통제권을 벗어나 자본시장에 '몽땅'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곧 자산운용사나 투자신탁회사가 국민연금 기금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 세계 어느 나라의 연기금 운용기관도 시도한 적이 없는 '획기적인' 일이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국내외 자본시장에서 벌어지는 머니게임의 판돈을 키우기 위해 더 많은 연금의 참여를 원했던 국내 금융자본의 기대에 부응한 것이다.

이는 또 세계 금융자본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부는 1999년부터 국민연금을 공공 부문에 투자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모두 금융시장에 쏟아 붓기 시작했다. 이는 1998년 금융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투명성 제고'라는 명분으로 포장됐지만, 실제로는 정부에 묶여 있는 돈뭉치를 자본시장의 판돈을 불리는 데 쓰라는 명령이었다.

하지만 국민연금을 통째로 민간에 맡기겠다는 것은 이같은 국내외 금융자본들의 요구를 훌쩍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발상이다. 정부는 도대체 왜 이런 일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을까?

무엇보다도 이번 개편안은 해외 금융기관을 국내로 유치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되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골드만삭스나 메릴 린치와 같은 외국계 자산운용사들을 국내 자본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지난 10년 간 백방으로 뛰어왔지만, 이를 위한 제도적인 수단은 한국투자공사(KIC)의 자산 위탁밖에 없었다. 여기에 국민연금을 '구원투수'로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2010년부터는 퇴직연금이 세 번째 구원투수로 투입될 예정이다.)

해외 금융기관의 국내 유치는 김대중-노무현 자유주의 정부의 금융허브 정책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국내 자본시장의 판돈을 불려 금융허브를 구축하고 여기서 세계적인 금융자본들이 돈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는 자본시장통합법과 한미 FTA에서 일관적으로 관찰되는 정부의 정책목표이기도 하다.

국민 모두의 피 같은 노후 자금을 정부의 정책 목표로부터 독립시킨다는 미명 하에 도입되는 국민연금 지배구조 개편이 사실은 '자본시장의 덩치 불리기', '금융허브 육성'이라는 정부의 정책 목표를 가장 근거리에서 지원 사격하게 되는 셈이다.

'주주자본주의' 덫에 빠진 국민연금의 진짜 주인

국민연금의 뭉칫돈이 자본시장을 키울 연료로 투입될 상황에서, 정작 이 기금의 주인인 국민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정부는 이번 개편안에서 국민연금 운용 시 가입자들의 참여를 철저히 배제하기로 했다. 명함만 가지고 있었던 가입자 대표들을 기금운용위에서 아예 몰아내 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주인'은 오히려 안도하는 모습이다. 정부가 자신의 돈을 엄한 데 쓸 것(실제로 과거에는 46조 원을 그렇게 썼다)이라는 공포가 극에 달한 탓일까, 아니면 연일 재정파탄을 경고해온 보수언론이 이번 개편안을 쌍수 들고 환영한 탓일까. '수익률만 올려준다면 뭘 더 바랄까'는 식의 태도가 연금 가입자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

그런데 이같은 분위기는 국내외 금융자본과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지난 10년 간 이 땅에 이식하고자 노력해온 영미식 주주자본주의의 가치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연금이 무엇을 하는 지에는 관심이 없다, 수익률만 높다면'이라는 논리로, 국민연금은 금융자본으로 국민은 주주 행세를 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 국민이 국민연금이라는 공적 제도를 통해 사회적 안전망을 공동 구축하는 '시민'이 아니라 매일매일 기금 수익률을 점검하고 더 큰 수익률을 내라고 자산 운용자들을 채근하는 '주주'가 되는 것이다. 시민을 주주로 탈바꿈시키는 거대한 작업, 이것이 바로 이번 개편안의 핵심이기도 하다.

'수익성'과 '공공성'이라는 이분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기성언론은 연금의 주인을 주주자본주의의 덫에 빠지게 한 원인 가운데 하나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수익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되 공공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공자님 말씀만 되풀이하고 있으니, 국민들은 자연히 "수익률이 1%포인트만 올라도 보험료율은 3%포인트 내린다"는 금융자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마련이다.

노동자의 돈이 노동자 대량해고에 쓰이는 미국처럼

피터 드러커는 이미 1970년대 '노동자본의 출연(rise of labour's capital)'과 '연기금 사회주의(pension fund socialism)'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미국 노동자들의 쌈짓돈이 하나로 뭉친 연기금이 국민경제의 구조와 성격을 좌우할 시대가 올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의 역사는 이와 정반대되는 경험을 보여줬다. 기금의 주인인 노동자들은 일치된 소리를 내지 못했고, 이들의 뭉칫돈은 미국 자본시장의 덩치를 키우고 세계 각국을 금융세계화 시키는 동력으로 쓰였다. 그 와중에 이들의 주인인 노동자들은 대량 해고와 노동여건의 지속적인 악화를 감당해야 했다. 노동자의 돈이 '수익률 제고'를 지상가치로 여기는 자본시장에 흡수된 후 노동자를 핍박하는 데 쓰였던 것이다.

우리의 국민연금이 지금 미국의 길을 따라가려 하고 있다. 그것도 미국이 했던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가기 위해 '국민연금 전액 민간 위탁'이라는 획기적인 방안까지 마련됐다.

금융화의 불쏘시개로 사그라질 운명에 놓인 국민연금, 이 돈을 제 자리로 돌려놓을 방안은 없을까? 아니, 그 전에 공적 운영과 사적 투자 사이의 회색지대에 놓인 국민연금의 성격에 대한 논의부터 제 자리로 가져다 놓을 수는 없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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