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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적 '수도권 블랙홀',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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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적 '수도권 블랙홀',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홍성태의 '세상 읽기' <7> 추석 그리고 '수도권 블랙홀'

추석이다. 어려서 추석에는 친척들이 우리 집에 모여서 송편을 빚었다. 나는 친구들과 개운산, 배봉산으로 가서 솔잎을 따 왔다. 노천명은 '대추 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고 했지만, 나는 '솔잎을 따서 송편을 찌어야 추석을 차렸다'였다. 언제부터인가 송편도 빚지 않고 솔잎도 따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추석은 여전하다. 분명히 많이 변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추석은 큰 명절이다.

잘 알다시피 추석은 굉장히 오랜 내력을 지닌 명절이다. 아주 먼 옛날 농사를 짓게 된 사람들은 달이 휘영청 밝은 음력 8월 대보름에 봄부터 여름까지 고생한 것을 서로 위로하고 땅신과 하늘신, 그리고 조상신에게 감사를 드리게 되었을 것이다. 추석은 우리말로 '가위'이다.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추석이란 '달밝은 가을밤'이라는 뜻이며, 가위는 '조선의 가장 허다한 명일 가운데 가장 큰 명일'이라고 했다.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허투루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추석은 정말 즐길 만한 날이다.

그러나 추석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추석 연휴를 이용해서 해외 여행을 즐기고 있는 반면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비정규직과 신용 불량의 상태에서 한숨을 내쉬고 있다. 양극화의 그늘은 추석에도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가부장적 제사 문화로 말미암아 추석은, '여성은 일하고 남성은 노는 날'이라는 성격을 강하게 지니게 되었다. 많은 여성들이 이른바 '명절증후군'이라는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명절증후군'은 가부장적 제사문화가 빚어낸 한국 특유의 성차별 질환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명절증후군'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지면서 그 치유의 가능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 같다. 모쪼록 남성과 여성이 함께 일하고 즐기는 명절이 되고, 나아가 남성의 조상뿐만 여성의 조상도 함께 모시는 명절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매년 추석 때마다 우리가 심각하게 겪고 있는 문제인, 그리고 분명히 '명절증후군'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일, 한국 특유의 사회적 질환이 치유될 가능성은 오히려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수도권 블랙홀' 문제이다.
▲ 추석과 설 등 명절 때마다 나타나는 '민족 대이동'은 수도권 집중의 산물이기도 하다. ⓒ뉴시스

추석 때면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길을 나선다. 평소에는 서너 시간이면 갈 수 있던 곳을 열 시간이 넘어야 갈 수 있게 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길을 나서기 때문이다. 올 추석에도 연인원 4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길을 나설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야말로 전국민적 대이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거의 모든 국민이 부모님의 집을 찾아가거나 묘소를 찾아가기 위해 이동한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민족의 이동은 이른바 '게르만의 대이동'으로 알려진 것이다. 동쪽의 흉노족(이 위대한 초원족에게 시달리던 한족은 악랄하게도 이렇듯 흉악한 이름을 붙였다)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이들에게 쫓겨난 게르만 족이 대거 서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수는 얼마였을까? 그 수는 대체로 20만 명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모양이다. 이에 비해 우리의 이동은 정말 엄청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동하는 사람의 수로 따진다면, 세계 최대의 이동은 춘절 때 중국인의 이동일 것이다. 몇 억 명의 사람이 이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 인구 대비 이동 인구로 따지자면 단연 한국이 최고일 것이다. 그야말로 거의 모든 한국인들이 이동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점에서도 한국의 이동은 세계적으로 특이하다. 대부분의 이동 인구가 서울-수도권에서 다른 지방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추석 때마다 되풀이되는 민족의 대이동은 단순히 고향과 부모를 그리워하는 애틋한 마음의 발로가 아니다. 그것은 '서울-수도권 집중형 근대화'의 역사적 산물인 것이다. 전체 국토의 0.6%밖에 안 되는 서울에 전체 인구의 4분의 1 정도가 살고 있고, 전체 국토의 12%밖에 안 되는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2분의 1 정도가 살고 있다. 우리의 서울-수도권 집중은 세계 최악의 수준이다. 이 때문에 서울-수도권은 환경, 땅값, 물류 등의 여러 면에서 대단히 살기 어려운 지역이 되었다.

'수도권 블랙홀'은 단순한 지역 불균등 발전의 문제를 훨씬 넘어서는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그것은 다른 지역의 인구와 경제를 끊임없이 빨아들여 다른 지역을 고사시키며, 나아가 강원, 충청의 상당 지역을 종속시켜 통제하고 있다. '수도권 블랙홀'의 위력이 계속 강화되고 다른 지역의 유출이 계속 심화되는 악순환의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 참여정부는 수도권 집중을 약화하겠다면서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는 자기모순적 정책을 펼쳤다. 스스로 믿을 수 없는 정부라는 것을 이런 식으로 입증했던 셈이다.

2007년 대선은 정책이 사라진 심각한 문제적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한시바삐 망국적 '수도권 블랙홀' 문제에 관한 본격적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 여기서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이명박 후보와 손학규 예비후보의 생각이다. 두 사람은 각각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로 재직하던 때에 참여정부의 국가 균형 발전 정책에 맞서서 강력한 서울-수도권 집중 정책을 주장했던 대표적 정치인이다. 지금 두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여전히 서울-수도권 집중이 경쟁력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경기도의 인구 증가율은 전국의 6배에 이른다. 이 대로라면 2020년에 경기도의 인구는 1600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머지 않아 전체 인구는 줄어들기 시작할 텐데 경기도의 인구는 지금보다 무려 500만 명이나 더 늘어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서울-수도권을 위해서나 다른 지역을 위해서나 끔찍한 것이다. '수도권 블랙홀'은 정말 망국적 문제이다.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소모하는 민족의 대이동을 완화하기 위해서도 개혁은 절실하고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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