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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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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깔

[한윤수의 '오랑캐꽃']<272>

베트남 사람은 대개 한 성깔 한다.
마른 사람일수록 불같다.
마른 장작이 화력(火力)이 센 거나 마찬가지다.

팜 콩 도안은 무척 마른 사람이다.
그러니 성깔은?
내사 마 감당이 안 된다.
어느 정도냐 하면,
저를 도와주는 나한테도 성깔을 부리니까.
ⓒ한윤수

도안이 성깔을 부린 데는 이유가 있다.
그가 다닌 회사는 충북 옥천의 D섬유.
판매 부진으로 사세가 기울더니 도산하는데 몇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서로 먼저 돈을 받으려고 아우성이었다.
어찌 됐든 도안을 제외한 친구들은 밀린 임금을 일부 받았다. 하지만 도안은 받지 못했다.
왜 저만 못 받아?
친구들은 변호사인지 노무사인지, 하여간 사(士) 짜가 붙은 현지 사람한테 (수수료 주고) 부탁해서 일부나마 돈을 받고 끝내버렸다.
하지만 도안은 (수수료는 안 받지만) *행동이 굼뜬 나에게 부탁하는 바람에 돈을 날래 받지 못한 것이다.
남은 받고 나는 못 받고.
부글부글 끓지!

*도안은 성깔이 나가지고
"나 머리 아파!"
하며 의자 위에 비스듬히 눕기까지 했다.
나 역시 성깔이 나서
"니가 머리 아프면 난 머리에 쥐가 나, 인마!"
하고 욕이 튀어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으며
"그래도 어떻게 해? 머리 아파도 좀 참아."
하며 달랬었지.

도안의 성깔이 가라앉은 것은, 뒤늦게 내가 받아준 돈이 친구들이 받은 돈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보증보험에서 200만원을 받아 수수료로 사(士) 짜에게 100만원을 떼어 주었으므로 결과적으로 100만원 밖에 못 받은 셈이다. 그러나 도안은 수수료 줄 필요 없이 보증보험으로만 200만원을 받았으니 튀어나왔던 입이 쑥 들어가지!

그 다음부터 도안은 달관한 사람처럼 관대해졌다. 마치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이 덤으로 인생을 살듯이.

반년이 지날 무렵,
총 *715만원 중에서 아직도 받을 돈이 197만원이 남아 있었지만 그는 전혀 조바심을 치지 않았고 가뭄에 콩 나듯 몇 달에 한 번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띄며 탐색차 방문할 따름이었다.
나는 도안의 돈을 받아주려고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까지 몇 번 갔는지 모른다. 민사소송, 가압류, 본압류, 1차 경매 유찰, 2차 경매 유찰, 3차 경매 유찰, 4차 경매 낙찰 그리고 배당에 이르기까지.
2008년 7월 24일 사장님과 첫 협상을 시도한 날로부터, 2010년 7월 27일 도안의 통장에 197만이 입금되기까지 장장 24개월 3일이 걸렸다.
최장기록이다.

지난 일요일.
도안이 포도와 배를 사들고 왔다. 그리고 베트남 통역 요안을 통해서 소감을 피력했다.
"그 많은 베트남 사람들 여기 발안 센터 왔지만, 여기 역할 잘 모르고 믿지 않는 사람도 많아요. 돈 받는 거 포기해 버리고 자기 전화번호 바뀌어도 알려주지 않는 애들도 많잖아요! 심지어 여기서 수수료 받는 줄 아는 놈도 있어요. 하긴 나도 처음엔 수수료 받는 줄 알았으니까
2년 동안 중간 중간 좌절하고 그냥 안 될 것 같으니까 실망하기도 했죠.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려도, 선생님들이 수없이 바뀌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와주시는 것 보고 나도 끝까지 해줄 거라 믿었어요. 나야 기다리기만 하면 되니까. 더 이상 잃어버릴 것도 없고요. 몇 달에 한 번 *약간의 교통비 들여 발안에 와서 확인해보고 가면 되니까요.
막상 통장에 찍힌 돈 보니 감동이 오더라구요. 여기 선생님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받아줘서 고마워요."

왜 이리 청승을 떠나?
생판 성깔도 없는 놈 같이!

좌우지간,
성깔 있는 놈들
몰려오게 생겼다.

*행동이 굼뜬 나 : 행동이 굼뜰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 센터가 도안 한 사람만 상대하는 게 아니라 매년 3천명의 외국인을 상대하기 때문이다.

*도안은 성깔이 나가지고 : 오랑캐꽃 51번 <독백> (2009년 3월 19일) 참조.

*715만원 : 석 달 임금과 퇴직금 합계.
사장님을 형사 처벌하지 않는 조건으로 1차적으로 회사에서 받아낸 돈이 318만원(2008년 10월 7일),
보증보험으로 받은 돈이 200만원(2008년 12월 23일),
그리고 민사소송을 통해 4차 경매까지 가서 받은 돈이 197만원(2010년 7월 27일)이다.
이걸 받는데 도합 2년 3일이 걸렸다.

*약간의 교통비 : 도안이 현재 일하는 공장에서 발안까지는 약 4킬로. 편도 버스비 11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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